2021-10-24 20:06 (일)
독자마당
오늘날에도 특별계시가 주어질까?
icon 김대운
icon 2016-07-26 18:33:01
첨부파일 : -

 성경으로 모든 계시가 완성되고 종결되기 전 특별계시의 수단으로서 주어졌던 기적이나 현현, 주의 음성과 예언이 오늘날에도 나타날 수 있을까? 모든 개혁주의자들의 대답은 아니오다. 이 글을 통하여 먼저 기적에 대해서 살펴본 뒤, 예언과 현현에 대해서 고찰해보겠다. 

 

(1) 기적의 정의

 

19세기 미국에서 최고의 칼빈주의 신학자로 불렸던 찰스하지는 기적을 이렇게 정의 내린다. “이적이라는 말은 놀라다는 의미를 가진 miror라는 말로부터 유래되었고따라서 놀람을 자극하는 것을 의미한다이 어원적 의미를 통해서 놀람을 자극하고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채택된 어떤 특별한 사건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그런데 이적을 가리키는 성경에 사용된 용어들(페레아오트모파트게부라 등)은 대부분의 경우에 그것들이 적용되는 사건들의 본질보다는 그 의도(혹은 계획)를 나타낸다." 그러면 신학적으로 기적은 어떻게 이해해야할까그는 이어지는 설명에서 그는 기적이 아닌 것과 기적에 해당하는 것을 분류함으로서 기적의 정의를 내리는 데 도움을 준다.

 

이적에 대한 이런 성경의 용어들이 정확히 정의 내려지지 않음으로 교회 안에서 매우 느슨하게(산만하게사용되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예를 들면 루터는 '회심은 모든 이적가운데 최고의 이적이다.'라고 말한다또 그는 '매일 이적을 목격한다어느 마을이든 십만의 마귀들이 복음에 일제히 반대해도 복음을 고수하며진리가 이 악한 세상에서 지켜지는 것이야말로 계속되는 이적으로병자를 고치거나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가벼운 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하지는 루터조차도 이적의 어원과 용법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갖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며 성경의 이적들을 면밀하게 검토함으로 바른 이적의 개념에 도달시켜 준다.

 

 하나님에 의해 지탱되고 인도되는 제2원인들의 일반작용에 기인하는 사건들로 자연의 통상적 과정들곧 식물과 동물의 성장천체들의 질서 있는 운행그리고 아주 기이한 사건들,지진화산폭발인간사회에서의 폭동과 혁명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또 중생성화영적 조명과 같이 인간들의 마음에 미치는 성령의 역사에 기인한 사건들이 있으며이상의 부류들 가운데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사건들이 있는데인간이 관찰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으로2원인들의 어떤 협력도 받지 않는 것(-창세기 1장의 창조)이다. 이중 성경이 말하는 이적(기적)은 자연의 성장이나 우주의 신비중생이나 성화와 같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 권능이나 단순한 의지에 의해 일어난 사건으로 정의될 수 있다예를 들면나사로의 부활이나 죽었던 야이로의 딸이 다시 살아난 것은 인간의 개입이나 협력 없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나타난 사건이었다문둥병자의 치유와 오병이어 사건바람과 파도를 잠잠케 하신 것도 모든 물리적 원인들의 협력이 무시될 뿐 아니라 아주 확실히 부정된다(찰스하지).”

 

이제 기적이 무엇인지 신학적으로 정확히 이해했는가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일컫는 기적들 중 대부분은 위에서 찰스하지의 정의에 의하면첫 번째와 두 번째 부류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수사적인 의미에서 기적이지 신학적으로 기적으로 분류할 수 없는 것들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기적에 대한 신학적 정의가 정확하게 내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이 용어를 남발함으로 원래 개혁주의적 의미를 희석시켜 버렸다일례로 월터챈트리의 오늘날의 은사주의 운동과연 성경적인가?(부흥과 개혁사)를 보면월터챈트리 박사는 오늘날에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책을 시작한다그가 말한 기적은 찰스하지가 분류한 목록 중2번째자연의 기적생명의 기적,..이런 것들로 수사적인 의미에서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신학적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을 기적으로 분류했다이런 기적에 대한 신학적 모호함이 오늘날의 기적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켰다물론 그는 이 책에서 신오순절주의자들의 기적은 가짜라고 말했지만 만일 그가 기적에 대한 개혁주의의 정통적 입장을 고수하고 시작했다면 이 책은 개혁주의 진영에 큰 확신을 심어주는 명저가 될 수 있었지만 기적에 대한 잘못된 이해신학적 입장이 아닌 수사학적으로 기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 혼란만 가중시키는 아쉬움을 남겼다사실 월터챈트리의 입장이 오늘날 개혁주의자라고 자처하는 많은 분들의 입장일 것이다.

 

기적은 모든 자연법칙과 물리법칙을 초월하는 것으로어떤 다른 존재들의 협력 없이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의 나타남이다.

 

(2) 기적의 의도(목적)

성경의 이적은 그 사건 자체보다는 이적을 주신 의도(계획)가 더 중요하다(찰스하지).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적을 주신 의도(계획)에 주목하기 보다는 이적 자체에 치중함으로서오늘날 은사주의자들처럼 기적을 간구하거나 유사개혁주의자들처럼 오늘날에도 기적이 일어날 개연성이 있다는 허황된 주장을 하게 된다하지는 계속하여 어떤 것이 이적(기적)이며 어떤 것이 아닌지를 명확하게 분류한다따라서 우리는 기적 그 자체보다는 기적이 베풀어졌던 목적과 의도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우선 구약 시대에 베풀어진 기적들은 선지자들이나 사사들이 주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자임을 입증하는 의도를 갖고 베풀어졌다그들을 통해서 나타난 이적을 통하여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자임을 인식하고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케 하기 위함이었다자연법칙을 초월하는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기적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아들되심메시아되심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으며제자들에게 나타났던 기적들은 그들이 주님의 보냄 받은 자이며그들이 전하는 복음의 확증을 위하여 주어진 특별계시의 수단이었다.

 

기적과 함께 현현이나 직접적인 음성예언도 주의 뜻을 알려주시는 특별계시의 수단으로 성경의 완성과 함께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주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세계 3대 칼빈주의자 중의 한 사람인 B.B 워필드의 기독교기적론이 탁월한 답을 주고 있다. "기적의 은사들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라고 권위를 부여하여 임명하신 대리인들로서의 사도들이 지닌 신임장의 일부였다그러므로 이 같은 기능은 그 은사들을 분명히 사도들의 교회에 한정시켰으며당연히 사도들의 교회와 함께 사라졌다."워필드는 성경의 완성과 함께 더 이상 기적의 은사가 나타나지 않았음을 역사적으로 신학적으로 증명해낸다칼빈도 기독교강요에서 더 이상의 새로운 복음이 없는 데도 기적을 간구하거나 찾아다니는 것의 불합리함을 "한 복음이 모든 땅모든 백성모든 시대를 위해 충분하듯이그 한 복음에 대한 기적의 입증도 모든 땅모든 시대를 위해 그만큼으로 충분하다따라서 더 이상의 기적들이 복음과 관련하여 기대되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헤르만바빙크는 개혁교의학에서 "특별계시는 하나의 역사의 과정의 형식으로 베풀어져 왔던 바그것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그 정점에 이르렀음"을 설명하면서 특별계시가 사도들에 의해서 성경기록으로 완성된 후에는 더 이상 보태질 수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그는 개혁교의학의 요약판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큰 일에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제는 특별계시의 새로운 구성 요소들이 더 이상 보태질 수 없다이는 그리스도께서 오셨고그분의 사역이 이미 행해졌고따라서 그분의 말씀은 이제 완전하기 때문이다이어지는 논증에서는 만일 사도시대 이후에 어떤 기적이 우연히 발생했다는 가정 하에 기적이 계속 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 기적은 어떤 중요성이나 우주적인 의미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 목적이 달성되고 아버지께서 성령과 교통하심으로 아들 안에 계시하신 이런 계시를 믿고 고백하는 교회가 이 세상에 심어졌을 때 외적으로 볼 수 있는 이적들은 멈추고이방인의 충만함이 차고전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때까지 중생과 회심의 영적인 이적들이 교회 안에 계속된다성경의 증거에 따라세상 끝날에는 그리스도가 나타나시고 죽은 자의 부활심판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는 미래의 이적들이 올 것이다(헤르만바빙크)." 바빙크는 교회의 설립까지만 이런 이적이 베풀어졌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적은 멈추었고찰스하지의 분류에 의하면 기적으로 볼 수 없는 영적 기적중생과 성화의 역사만 나타났다가 마지막 날 주의 재림 때 하나님의 직접적인 권능에 의해서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적이 나타날 것을 교훈하였다.

 

워필드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의 완성된 계시로부터 각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영적 양식을 얻게 하셨다."는 표현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계시의 수단이었던 기적을 계시가 완성 된 후에는 기대할 수도 없고 실지로 계속되지도 않았음을 논증했다(기독교기적론). L.벌코프 역시 동일한 신학적 입장을 그의 조직신학에서 밝혔다.

 

(3) 기적에 대한 결론

계시의 완성과 종결을 믿는 성도라면 이런 기적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주님의 섭리주권을 믿고 어떤 상황에서도 신앙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기적적인 주님의 개입을 구하는 기도를 하기 보다는 주께서 우리의 삶을 최선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늘 신뢰하며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신앙인으로서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기를 기도해야 한다.

 

진실한 성도라면 비록 성경에 기록된 기적은 나타나지는 않을지라도 주님의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에 의해서 우리의 구원이 안전하게 보장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감격해야 하지 않겠는가물론 우리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기적으로 부를 만큼 놀라운 주님의 은혜들을 수 없이 경험하게 된다그러나 이는 앞서 찰스하지나 BB워필드가 설명한 신학적 의미에서의 기적자연법칙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권능의 현시는 아니다우리는 그런 것들을 가리켜 섭리라고 부른다주께서 미리 예비해 놓으신 은혜들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것이다공중의 새와 들의 풀과 꽃들도 돌보시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돌보신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간다면 비록 눈과 귀에 아무 증거가 없을지라도 우리는 완성된 계시인 성경만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예언과 현현직접적인 주의 음성.

 

기적과 함께 성경이 완성되기 전 특별계시의 수단이었던 주님의 직접적인 음성이나 예언도 하나님의 백성에게 교훈을 주시고 책망하고 교정하기 위하여 주어진 계시의 수단이었다그런데 이런 성경적 특별계시(예언)에 대한 신학이 정립되지 않은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계시가 주어진다고 주장한다그들은 대부분 이런 주님의 계시를 단지 미래를 내다보는 무당 점치는 수준으로 격하시키고 있다.

 

가장 쉬운 예로 요나의 예언을 한 번 생각해보자요나는 회개하지 않으면 40일 후에 니느웨 성이 멸망한다고 예언했다이 부분만 보면 요나가 미래를 내다 본 것처럼 볼 수도 있지만 왕부터 시작해서 모든 백성들이 금식하며 회개하자 니느웨 성은 멸망하지 않았다그러면 이 예언은 불발된 것인가계시나 예언에 대한 성경적 정의가 내려지지 않은 사람그래서 점치는 수준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불발로 보인다그러나 요나의 예언은 회개를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었기에 이 말씀이 주어진 목적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

 

바울은 고전14:31에서 예언을 통하여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고 교훈함으로 성경이 완성되기 전 예언(계시)의 교육적 목적을 분명하게 교훈하고 있다11:28의 온 천하에 흉년이 들리라는 아가보 선지자의 예언은 안디옥교회로 하여금 예루살렘의 성도들을 돕기 위한 헌금에 참여하게 하는 도덕적 결단을 내리게 했다.

 

바울이 밀레도의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고별설교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라는 바울을 향한 성령의 계시를 생각해보자21장에도 아가보 선지자가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 매고 성령이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고 예언을 하자그 예언을 같이 들었던 사람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면하는 장면이 나온다.

 

왜 성령께서는 바울에게 이런 계시를 주신 것일까바울이 체포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처럼 바울에게 단지 미래의 위험을 미리 알려줌으로 피하게 하기 위한 의도였을까?아니다결박과 환란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을 전할 각오와 결연한 의지를 갖게 하기 위하여 이런 계시를 주신 것이었다21:13을 보시면 저들의 만류를 뿌리치기 위하여 바울이 이렇게 대답한다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을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바울은 이미 성령께서 주신 계시를 통하여 죽기까지 각오하고 복음을 전하기로 굳은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성경이 완성되기 전 교육적 기능으로 주어졌던 계시(예언)는 성경의 완성과 함께 종결된 후에는 성경을 통하여 주의 뜻을 깨닫는 것으로 대체되었다딤후3:16,17을 보면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만으로 우리가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될 수 있다우리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게 했던 예언의 기능이 성경말씀을 읽고 배우는 것으로 대체된 것이다.따라서 우리가 더 나은 신앙인이 되기 위하여 또 다른 특별계시(방언예언기적)가 필요치 않고기록된 말씀을 깨닫고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의 조명만 필요하게 되었다.

2016-07-26 18:33:01
124.49.223.146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 20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