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신학과 김동수 교수는 나에게 특별하게 기억되고 있는 분이다. 나의 부족한 책 출간되었을 때, 가장 먼저 비판의 글을 언론에 올리신 분이기 때문이다. 당시 김동수 교수는 다음과 같이 나의 책의 내용을 비판하였다.“그는 방언은 주장하는 김우현, 치유를 주장하는 손기철, 예언을 주장하는 김하중을 비판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사실 이들 각각이 이러한 은사가 지금도 존재한다고 믿고 그러한 신앙 행동을 한다는데 있다. 내가 볼 때 그가 비판한 많은 내용은 그가 오순절적 신앙 행습에 익숙하지 않고, 그러한 신앙 형태를 부정하는 것에서 온 것이다. 그는 치유는 인정하지만, 방언과 예언이 현재에 지속된다고 믿지 않는다. 이러한 은사들이 지금도 계속된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
성령의 은사로서의 방언은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서나 고린도 교회에서나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인간의 언어다. 그러나 현대 교회의 영음 방언은 인간의 언어가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 교회의 영음 방언은 성령이 초대 교회에 주셨던 방언의 은사와는 다른 것이다.고린도전서 12장 10절의 은사 목록에 방언의 은사와 함께 통역의 은사가 있다는 것은, 방언이 외국인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 언어라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1) 뿐만 아니라 고린도전서 14장 27절에서 방언을 말하고 그것을 통역하도록 바울이 명령하고 있는 것도, 방언이 언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분명한 증거이다.그럼에도 김동수 교수는 “만약 실제 외국어였다면 방언을 하는 사람은 방언 통역하기를 기도하라는 바울의 권면은 앞뒤가 맞지 않는
김동수 교수는, “방언은 처음 체험한 이후 계속 변(발전)하며, 한 가지 방언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방언을 하게 된다”1)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스스로 자신의 방언이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김동수 교수가 설명한 일련의 현상들이야말로 자신의 방언이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들이기 때문이다.오순절주의자들이 받았다고 하는 방언의 은사는 인간이 노력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기묘한 소리내기’로서 인간의 노력에 따라 발전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한다. 또 개인의 창의력에 따라서 여러 가지 소리들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그날 기분에 따라 소리가 들쭉날쭉 변하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방언에는 고수도 있고 하수도 있으며, 상황에 따라 방언이 녹슬었다고 여기기도 하고, 성령
- 이창모 목사(제자들경배와 찬양교회 담임)김동수 교수는 롬8:26의 “성령의 탄식”을 방언기도라고 주장한다.1) 물론 이런 주장은 거의 모든 거짓방언자들의 믿음이다. 이들의 주장대로 롬8:26의 “성령의 탄식”이 정말로 방언기도일까? 결론부터 먼저 말한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의 거짓방언을 성령의 은사로 둔갑시키기 위해 바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롬8:26의 “성령의 탄식”을 방언기도라고 우기고 있다. 조금 주의깊게 살펴보면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김 교수뿐만 아니라 방
바울은 고전14:27-28에서 통역의 은사를 사용해서 거짓방언을 분별해 교회에서 퇴출시키도록 고린도교회에 권고했다는 필자의 주장을 김동수 교수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바울은 고전 14:5에서 방언 통역의 목적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것은 예언의 효과와 똑같은 것이다. 예언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기에 듣는 이의 신앙을 북돋아 줄 수 있었듯이(고전 14:4), 방언 통역은 방언에 대한 통역이었기에 듣는 이에게 신앙적으로 도움이 되는 말이 되었던 것이다. 또 이들의 주장은 만약 방언이 영의 기도라면, 하나님과 은밀한 기도인데 그것을 통역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감히 하나님과 은밀히 하는 기도의 내용을 알려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4:14-15에서 바울이 가정법을 써서 ‘방언으로 기도하다’라는 말을 쓴 것은 자신이 방언으로 기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이창모)나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김동수 교수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이것은 헬라어의 기초를 전혀 모르고 하는 주장이다. 헬라어에서 가정법 구문이 꼭 현실과 반대되는 상상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본문에서 현재 가정법으로 쓰인 구문인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은 ‘내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혹은 기도할 때 마다]’라는 뜻이다.(Gordon D. Fee,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rev. ed., 742).만약 본문에서 이 사람의 주장대로 가정법 구문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에
(제목 입력 공간의 한계로 이 글의 제목에서 '김동수 교수'라고 호칭하지 못했음을 독자들께서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른믿음 편집자) 오늘 전개되는 현대 교회의 변태적인 거짓 방언에 대한 토론에 참여하기 위해 먼저 독자들은 나와 김동수 교수가 주장한 다음의 내용을 먼저 파악하기 바란다. “고전 14:2,4에서 방언이 하나님께 말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바울의 주장이 아니라 고린도교회의 주장을 인용한 것이다”(이창모)."이러한 주장은 바울이 전혀 말하지도 않은 방언에 대한 정의(외국어를 말하는 능력)에서 출발해서 이런 엉뚱한 해석을 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이 자신의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반대하는 고린도교회의 주장을 인용한 것이라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기록 당
(기사의 제목에서 '김동수 교수', '김동수 목사' 등의 존칭이 누락된 것은 김동수 교수를 무시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제목이 짧아야만 화면에 다 나타나는 공간의 문제로 인한 상황입니다. 바른믿음은 바른신앙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상대가 누구일지라도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하는 것을 당연시하나, 그 방법은 언제나 정당하고 그리스도인 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어긋나는 글을 발견하면 언제든지 지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고전 14장에서 참 방언과 거짓 방언을 구별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글로사’(방언)의 복수형은 성령의 은사로서의 참 방언을, 단수형은 거짓 방언을 가리키는 것으로 양자를 구별하고 있다”(이창모 목사).한국의 대표적인 거짓 방언 중독자이며 옹호자인 김동수
평택대학교 교수인 김동수 목사는 다음과 같이 옹알거리는 거짓 방언을 옹호했다.“바울이 말한 방언은 방언 기도가 아니라고? 이들의 주장의 요체는 바울이 소개한 방언은 기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방금 앞에서 말한 대로 바울은 분명히 방언이 기도라고 말했다. 그는 “기도하다”라는 용어까지 사용한다(14:15).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근거로 바울이 말한 방언이 기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가?“(김동수)“바울은 분명히 방언이 기도라고 말했다. 그는 ‘기도하다’라는 용어까지 사용한다”(14:15)는 김동수 교수의 주장은 그가 과연 정상정인 신학자인가를 의심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이 주장은 전후문맥을 무시하고, 또한 고린도전서 14장 15절이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고린도 교회의 상황, 즉 어린아이 수준의 고린
김동수 목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옹앙거리는 소리현상을 방언이라고 옹호하였다. “바울과 누가가 방언에 대해서 말할 때 공통점은 이것은 인간의 능력이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행 2:4; 고전 12:7) 된 것이라는 것이다. 또 이것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 말을 배우지 않은 것이었기에 이것이 외국어이든, 실제 언어가 아니든 자신은 그 말의 뜻을 모르고 했다는 것이다.그런데 바울이 다른 사람보다 더 방언을 많이 했다는 것을(고전 14:18) 바울이 외국어 구사 능력이 있어서 외국어를 더 많이 했다고 이해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또 바울은 우리가 성령의 은사로 부르는 것을 ‘성령의 나타남’(고전 12:7)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피아노를 잘 치거나, 운동을 잘 하거나 하는 은사와 같
언제나 무지하게 거짓 방언을 옹호하는 평택대학교의 신학과 교수 김동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부채도사 유형의 영성을 드러내는 온누리교회의 김하중 장로 등에게서 나타나는 일들이 사도행전 성령의 역사라고 극찬하는 등의 내용을 보고서 어떤 사람들은 그를 '박사급 박수무당'이라고 한다. 김동수 목사는 아무 의미가 없는 사이비 소리현상이 기독교의 신령한 영의 언어이고, 그것이야 말로 원래의 기독교의 방언이라고 우기는 항상 안타까운 행동을 계속 일삼는다. 최근 김동수는 이창모 목사의 저서 (밴드오부퓨리탄, 2014)에 대해서도 훼방하는 어리석은 글을 써서 또 많은 신실한 신자들의 눈살을 찌뿌리게 만들었다. 이에 이창모 목사는 아무런 바른 지식이 없으면서도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