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옥 전도사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죄인들에게 명확하게 계시하신 특별계시를 접할 수 없었던 과거의 자연적 인간들에 대한 구원의 가능성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등장한 이후로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여부로 구원이 결정되는 것은 타당하나, 그 이전에는 인간 본성에 존재하는 하나님 감정, 즉 신의식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었던 사람들에게 구원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불공평한 분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아직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또는 갑자기 다른 영의 미혹을 받음으로 나타나는
오늘날 은사주의는 병 고침과 기적 행함을 주장한다. 그러나 은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사례들은 성경의 사건들의 특징과 달라 보인다.성경에서 주 예수님과 사도들의 병 고침의 사례들은 즉각적이고 비제한적이었다. 죤 맥아더는 예수님과 사도들의 병고침의 특징을 이렇게 열거한다:① 한마디의 말씀이나 한번의 만짐으로 치료하셨다(막 8:22-26에 소경에게 두 번 안수하신 예외는 있었지만).② 즉시 치료하셨다.③ 완전히 치료하셨다.④ 모든 사람을 치료하셨고 하실 수 있었다.⑤ 신체 기관의 질병들도 고치셨다.⑥ 죽은 자들을 일으키셨다. 그러나 오늘날
1. 감리교는 죽었다세계교회협의회(WCC) 따라가면 교회가 죽는다. 진보계 에큐메니칼 운동의 포용주의 신앙무차별주의 다원주의를 수용하면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최근의 영국감리교회(Methodist Church in Britain)의 죽음이 이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WCC 회원교회인 영국감리교회는 존 웨슬리가 전개한 복음운동에서 태동했다. 영국국교회(성공회)에서 분리하여 독립했다. 세계 감리교회들의 모체이다. 세계 감리교는 장로교보다 훨씬 더 많은 신도수를 지니고 있다. 감리교(Methodism) 운동은 근대 기독교의 중요한 움직
창조, 모든 것의 출발성경의 말씀은 인간이 고안해낸 것이 아니다(딤후 3:6).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받은 계시의 책이다. 이들 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소개한다(계 10:6).창세기 전반부(1-3장)는 창조주 하나님이 스스로 밝히는 창조에 대한 자기 선포이다. 창조의 하나님은 성경의 첫 말을 ‘태초’(bereshith)라는 말로 시작한다. 하나님은 시간의 주관자요 시간의 창조자임을 나타낸다. 시간의 주관자는 하나님이므로 하나님 이외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무대응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필자는 20년 전에 날조된 역사를 바로잡으라고 명료한 글의 형태로 권했다. 시간이 더 지나가면 고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총회신학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 당국들과 함께 위 학교들의 설립연도와 졸업생 차수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의 기회를 가질 것을 재차 제안하는 바이다. 교회사를 가르치는 교수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하나님 앞에서 역사를 진실하게 보편 타당하게 기술해야 그 노력이 후학들과 신앙고백공동체의 발전이 이바지할 수 있다.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밑거름삼아 발전할 수 있다. 교회는 하기오그래피가
질문>“(현재의 방언이 성경적 근거가 없다는) 목사님의 글을 잘읽었습니다. 방언훈련은 저도 목사님의 글에 반대합시다 그럼 목사님은 오늘날나타나는 성령의 은사적 사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방언기도를 심리적 현상이나 위조품, 마귀에 기인한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성경적 근거는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명쾌한 답을 성경에서 찾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답변>현대 방언에 대해 설명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이나, 오늘은 이 방법으로 성경의 방언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도행전의 방언은 배운적이 없는 이방인들의 외국어가 나타나는 은사이고,
초자연적 은사들의 실재성이 의문됨셋째로, 은사주의는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이 교회역사상 계속 있었고 오늘날 교회들 안에도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그 실재성이 의문된다. 계시와 예언초대교회에 몬타누스파는 초자연적 은사들을 주장했으나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18세기 에드워드 어빙이 설립한 카톨릭 사도교회도 사도적 은사들을 주장하고 예언도 했으나 어떤 것들이 성경과 충돌하고 또 성취되지 않았으므로 정죄되었다. 19세기에, 안식교, 몰몬교, 및 여러 신비주의 집단들이 성경 외의 하나님의 계시와 예언들을
벤저민 B. 워필드(Benjamin Breckinridge Warfield, 1851년 11월 5일 ~ 1921년 2월 16일)는 네덜란드의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와 함께 세계 3대 칼빈주의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신학자다.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1887년부터 1921년까지 교수로 재직한 그는 방대한 저작물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그는 성경무오에 대한 저작으로 유명한 학자다. 또한 그는 철저한 칼빈주의 신학자로도 유명하다. 위키 백과는 이 부분에 대해 그는 "칼빈주의자는 모든 현상의 배후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보며, 모
사도 도마의 한반도 선교에 대한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도 도마의 한반도 선교 주장에 대한 신학적 입장과 그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사도 도마는 누구인가도마는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 성경에는 예수의 부활 승천 이후 도마의 행적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도마는 예수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요 20:28)이라고 최초로 고백한 제자였다. 이 고백을 통해 도마는 예수가 어떤 존재인지를 가장 먼저 정확하게 인식하고 믿음을 보인 최초의 제자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그가 예수
1. 능동적 순종:그리스도가 율법준수로 얻은 의를 전가하여 택자들에게 영생을 수여한다는 주장17세기 때부터 개혁파 신학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2가지로 구분하여 전개하였다.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의 작정을 순종하여 십자가에 죽어 피 흘리심으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한 것과 그리스도가 입법자로서 율법순종의 의무가 없는데도 자원하여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율법을 준수하여 의를 이룩하였으므로 그 의를 백성들에게 전가하여 백성들이 영생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는데도 자원하여 지켰으므
은사주의는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한다. 은사주의는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무시하고 성령 체험을 강조한다. 즉 신앙생활을 성경말씀의 바른 지식과 실천보다 은사 체험에 의존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기적 체험에 근거하지 않고 십자가 속죄의 복음에 근거한 새 생활이다. 사도 바울은 기적을 전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했다(고전 1:22-23). 사도 시대의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하나님의 진리들을 전달하고 확증하기 위함이었고 부분적, 일시적, 초보적 성격의 것들이었고 그에 비해 성경은 하나님의 온전한 계시의 말씀이다.
창세기 1장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기독교의 신학자들은 창세기 1장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 왔을까? 역사 속에 나타난 많은 신학자 중에서 창세기 1장 해석에 있어 중요한 두 신학자를 살펴보려 한다. 바로 오리겐(185-254)과 칼빈(1509-1564)이다. 한 사람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초기 형성기에 있어 미숙한 가운데 창조 신앙 해석의 틀을 놓은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성경과 역사 속 신학자들의 해석을 바탕으로 창세기와 성경 해석의 바른 틀을 세운 핵심적인 신학자 중 대표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다.이 두 신학자의 창조 해석 방법에
은사주의는 예언, 방언, 병고침 등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가 역사상 계속 있었고 오늘날도 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오순절파뿐 아니라 또한 전통적 교단들 내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견해를 가진다. 그러나 은사주의는 다음과 같이 비평되어야 한다.성경의 충족성과 종결성을 부정함첫째로,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이 계속 있었다거나 회복되었다는 주장, 특히 하나님께서 성경 외에 다른 계시와 예언을 주신다는 주장은 성경이 하나님의 충족한, 최종적 권위의 말씀, 즉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범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플라비우스 유스티누스(Flavius Justinus, 100-165) 1: 제2세기의 박해예수가 무슨 의미를 지녔기에 왜 기독인들은 그를 자기의 목숨보다 더 귀중하게 여길까? 도대체 예수 신앙이 무엇이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까? 로마제국 시민들이 갈릴리 촌사람들의 이야기에 사로잡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로마인들은 예수 신앙 운동 가담자들을 비웃고 눈치를 살피고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기독인들의 삶의 고결성, 진실성, 대담성에 감탄했다. 궁금증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기독인들이 당하는 박해 상황을 겪어보고 싶은
I. 창조경륜의 견지에서 칭의 개념의 이해1. 창조경륜창조주 하나님은 창조 시 창조경륜을 가지셨다. 경륜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가지시거나 백성을 회복하려고 하실 때 다른 위격들과 협의하심을 말한다.창조경륜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가지시고 그 백성 가운데 거하시며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로 하신 의논을 말한다.2. 창조경륜의 시행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자기의 백성으로 삼아 창조주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도록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심은 하나님의 존재방식과 사역의
기독교 신앙과 근대 과학이 역사 속에서 본격적으로 대면한 중요한 장면은 아마 다음의 세 가지 사건을 꼽을 수 있겠다. (1) 우주에 대한 용감한 사색(?)으로 화형 당한 브루너(Giordano Bruno, 1548-1600)의 순교와 (2) 교황청과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 사이의 갈등 그리고 (3) 1860년 있었던 과학의 진보를 위한 영국 연합회(British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의 옥스퍼드 회의에서 일어난 윌버포스(S. Wilberforce, 1805-1873)와 토마
칼 라아너가 로마교회신학을 완전히 현대화하였다.라아너는 그의 신학의 출발점을 교회 교리 특히 기독론 교리에 두지 않는다. 그런 교리들은 지금 현대인들에게 낡아서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러면 철학에 기반하여 신학을 전개할 수도 없다고 한다. 철학도 완전히 파편화되었고 완전한 인간이해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또 성경의 본문에 근거해서 신학할 수도 없다고 한다. 그렇게 신학하는 것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낡은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라아너는 그의 신학의 출발점을 인간의 세속적 자기 이해로 삼
근대 과학의 등장인류 역사 속에 파편적인 과학적 사고가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날 진정한 근대과학은 16세기에 본격적으로 서양에서 그 출발을 알렸다. 16세기 유럽은 걸출한 인물과 학자들이 배출된 시대였다.대륙에서는 먼저 15C 태어나 16C 주로 활약한 종교 쪽의 코페르니쿠스(1473-1543)와 마르틴 루터(1483-1546) 그리고 16C 태어나 활동한 요한 칼빈(1509-1564)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가 태어났고 독일에서는 천문학자 케플러(1571-1630), 16세기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은사운동은 성령세례뿐 아니라, 성령의 은사, 특히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를 강조한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 영 분별, 방언들, 방언 통역 등을 말한다(고전 12:8-10).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목적사도시대에 주신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성경 역사에서 기적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한 수단이었다. 이와 같이 사도시대에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전달과 확증을 위한 것이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이상에서 제시한 진술서에 나타난 로마교회 신학은 바티칸 이후의 신학이 아니다. 전통적인 신학을 말하고 그것을 자기들의 신학인 양 제시하였다. 그러나 WEA를 대표하여 로마교회와 연합내지 재통합을 위해서 개신교의 신학을 제시한 사람들은 로마교회의 대표들이 제시한 신학이 바티칸 이후의 신학이 아님을 논박하지 않았다.이 장에서는 지금 로마교회의 신학이 어디에 와 있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제2 바티칸공회의가 만천하에 밝힌 결정들중에 가장 두드러지고 세계종교통합을 기초 놓기 위해서 결정한 종교다원주의 교리에 관해서 제시하고자 한다.종교다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