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와그너가 주장하는 제3의 물결시대의 예언의 은사에 대한 주장이 거짓임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초대 교회의 예언 은사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이다. 성경에 당시 예언했다고 나오는 아볼로, 빌립 집사의 딸들 ... 등의 선지자들이 전했던 예언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면 된다. 그러면 신사도 운동 시대, 즉 제 3의 물결과 함께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직통으로 받아내는 예언의 은사가 다시 나타난다는 피터 와그너의 주장이 허구임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초대 교회의 예언의 은사에 대해 저명한 학자들이 주장하는 다음과 같은 두 가기 관점을 있다. 초대교회의 예언의 은사가 성경 수준의 계시를 전했다는 주장첫째, 초대교회 당시의 선지자들의 예언도 성경에 기록된 구약의 선지자들과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성령이 “그의 뜻대로” 교회에 은사를 나누어 주신다는 것과 은사를 주시는 목적이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 와서 성령의 은사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쓰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설명한다.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3장을 ‘사랑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은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바울이 한참 은사 이야기를 하다가 잠깐 쉬어가는 마당(고전13장)에서 사랑 타령을 한 판 벌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고린도전서 13장은 독립적으로도 훌륭한 사랑의 찬가일 수는 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3장을 바울의 의도대로 읽으려면, 고린도전서
20세기 초인 1906년 4월 어느 날, 아프리카계 미국인 설교자 윌리암 시머(William J. Seymour, 1870-1922)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아주사 가, 312번지의 한 낡은 교회 건물에서 ‘사도적 신앙 선교회’(Apostolic Faith Mission)를 설립하였다. 그는 감리교 감독교회의 목사였던 찰스 폭스 파함(Charles Fox Parham, 1879-1929)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었는데, 그로부터 약 2년이 지나는 사이 그 거리에 큰 부흥이 일어났고, 그 부흥의 특징은 ‘방언’(실재하는 언어, 외국어가 아닌 소위 통역 불가능한 소리로서의 소위 ‘날랄라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었다.이 운동은 ‘오순절주의’(오순절 운동, Pentecostalism)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이 용어
창세기 2:18-19를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혼자 거하는 아담을 위해 돕는 베필을 만드실 때 생겼던 일을 기록하고 있다. 흙으로 각종 들짐승들과 새들을 만드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카라’) 보시려고 그들을 아담 앞으로 인도해 오셨다. 아담은 그 하나 하나에 이름을 붙여 줬는데 그것이 그들의 이름이 되었다. 인간은 이렇게 처음부터 언어를 사용할 줄 알았던 존재다(호모 로쿠엔스, Homo loquens). 즉 ‘의미있는 소리’로 만들어진 단어와 문장을 사용할 줄 알았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현생 인류는 바벨탑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한 언어(‘싸파’)를 사용했다.창세기 11:1-9에는 온지면에 흩어져 땅을 개발하며 살라는 하나님의 문화명령(the cultural mandate)에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예언을 받아서 말한다는 사람들은 자신의 예언으로 말미암은 부작용과 혼란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그들에게도 매우 좋은 논리와 피할 수 있는 구실이 있다. 구약의 선지자, 신약의 사도들을 통하여 주신 예언은 100% 정확하고 절대적이나, 신약의 예언의 은사를 통해 오는 예언에는 부정확과 오류가 언제나 있다고 한다. 예언하는 사람들은 현대의 예언이 자주 틀린 것이 오히려 성경적이라며서 이렇게 말한다. “예언에 대해서 그렇게 예민할 필요가 없어요. 초대교회의 선지자들 때부터 예언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어요. 그래서 바울 사도가 예언을 무턱대로 다 믿지 말고 잘 분별하라고 하지 않았나요?”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주시는 예언이라면 우리는 마땅히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만일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4-11절에서 설명한 성령의 은사들을 곧바로 12절-27절에서 몸의 지체 비유로 다시 설명한다. 바울이 몸의 지체 비유를 동원하는 까닭은 영적으로 어린아이 같은 고린도 교회의 이해력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바울이 몸의 지체 비유를 통해 성령의 은사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2-13).몸은 하나지만 몸의 지체들은 눈, 코, 입, 손, 발 등 다양하다. 그런데 몸의 다양한 지체들은 다 한 몸에 붙어 있다. 이렇게 몸과 지체
교회사의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 성령의 능력과 역사하심을 가장 많이 체험한 사람을 들라면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대각성 운동을 이끌었던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 1703-1758) 목사를 말한다. 에드워드 목사는 교부시대를 대표하는 성 어거스틴과 종교개혁을 완수한 존 칼빈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탁월한 신학적 지성을 가졌다고 평가되고, 동시에 그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성령의 역사하심을 더 많이 체험하였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그러나 조나단 에드워드의 신학에서 이미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다시 능력을 주시는 성령의 임재가 또 일어난다는 사상이나, 안수를 통해 성령의 역사를 유도할 수 있다는 가르침과 그런 체험은 조금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는 안수하여 성령의 임재를 만들어 내려고 조금 도
성경은 오직 두 종류의 예언을 말하고 있다. 하나는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통해 주어진 예언이다. 또 하나는 신약 시대의 초기에 잠시 활동했던 예언자(선지자)들의 예언이다. 이 두 종류의 예언들의 성격을 규명하면 지금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 예언의 은사를 가졌다는 사람의 거짓 부롱하고 지어내는 예언이라는 것들과 특히 제3의 물결과 함께 신약 초기에 활동했던 예언자들의 예언의 은사가 부활하였다는 피터 와그너의 주장이 그릇되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구약 선지자와 신약 사도들을 통해 주어진 예언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가장 우선적으로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통하여 주신 계시의 말씀, 즉 성경의 내용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예언이라는 말을 들으면 장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4-7).바울은 4-6절에서 다양한 은사와 직임에 관여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바울이 여기서 삼위 하나님을 차례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고린도 교회에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르치려는 의도라기보다는 중복을 피하려는 문학적 습관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바울이 여기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이유는 7절에서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함으로써, 성령이 “그의 뜻대로”(11절) 교회에 은사를 주시는 목적이 교회의 유익에 있음을
피터 와그너는 제 3의 물결 시대가 도래하면서 ‘예언’(prophecy) 다시 부활하였다고 한다. 자신도 처음 신학을 공부했을 때에는 성경의 예언의 은사가 오늘 날의 설교와 기능이 비슷했던 것으로 이해하였으나 훗날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여주시는 예언이 따로 있고, 지금도 예언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피터 와그너는 자신이 예언의 은사에 대하여 어떻게 다른 이해를 가지게 되었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신약의 정경은 확정되었고, 하나님은 그 안에서 인간에게 하시고자 원하시는 모든 말씀을 다 하셨다. 우리가 할 일은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이 말씀하는 내용을 오늘 날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다. 나는 이전까지 예언에 관하여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이러한 신학의 가르침을 받고서 복음을 전하
현대의 옹알거리는 거짓방언 옹호자(이하 ‘방옹자’)들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집중적으로 기술한 그 문제의 방언이 정상적인 기독교의 방언이었으나 신자들에 의해 남용되고 오용됨으로 인해 문제를 야기했을 뿐이라고 한다. 바울은 그 당시의 고린도 교회를 더럽혔던 그 방언을 성령으로부터 나타난 기독교의 정상적인 은사였다고 보았고, 또한 바울이 적극적으로 그 방언을 권장했다고 주장한다.만약 극렬한 방옹자들과 많은 현대 교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린도 교회의 그 방언이 성령이 주시는 기독교의 방언이었다면 아마도 바울은 다른 문제들과 비슷한 비중을 할애하여 방언 문제를 다루었거나 어쩌면 더 가볍게 다루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울이 고전 14장에서 이야기하는 그 방언이 정상적인 성령의 은사였다면 그것
방옹자(거짓방언을 옹호하는 자)들은 방언기도가 초대 교회를 부흥시킨 원동력이었다고 믿는다.1) 따라서 이들은 방언이 예루살렘 초대 교회 안에 풍성하게 있었으며, 그 후에도 부흥하는 교회 안에서 끊임없이 나타났다고 주장한다.2) 이들은 방언기도가 있는 곳에서는 교회가 부흥하고, 방언기도를 반대하거나 없는 곳에서는 교회가 쇠퇴한다고 주장하면서, 더 나아가 방언을 반대하는 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라고 위협까지 하고 있다.3)방옹자들의 이런 주장은 사실일까? 방언 현상이 기록된 있었던 사도행전의 본문들을 직접 살펴보면서 이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살펴보자. 1. 사도행전 2:4-7절보혜사 성령이 임하셨던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서 주의 제자들은 본토 유대인들에게는 아람어로, 천하각국으로부터
베드로와 120여명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고 있었을 때, 성령은 세 가지 특이한 현상을 동반하면서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임하셨다. 성령이 그들 위에 처음 임하셨을 때 동반된 세 가지 특이한 현상들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한 것’과 ‘그들이 다른 언어(방언)들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성령은 왜 이런 현상들을 동반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임하신 것일까?첫 번째 현상인 ‘바람 같은 소리’는 오시는 분이 성령이심을 제자들에게 알리는 청각적인 신호(sign)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곳에 있던 제자들은 아무도 성령을 경험한 자가 없었다. 따라서 영이신 성령이 아무런 신호 없이 조용히 오셨다면 그 누구도 성령의 오심을 눈치
오늘 날의 여러 종교에서 나타나는 옹알거리는 소리현상이 성경의 방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의 여러 종류의 말씀을 임으로 동원하여 자기들의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이 전에 그 대부분의 사례를 살펴보았는데, 두 가지가 빠졌다. 오늘 두 가지를 더 살펴보고자 한다. (거짓 방언현상을 위해 악용되는 성경 말씀들에 대해 더 알고자 원하는 분들은 아래에 표시된 관련기사를 보기 바란다.) A. ‘새 방언을 말하며’(막 16:17)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마가복음의 끝 부분에서 오늘 날의 옹알거리는 소리현상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주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믿는 자들에게서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
우연히 인터넷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았다. 사랑의 교회를 개척하여 크게 성장시키시고, 오정현 목사를 후임자로 세우고 원로목사가 되셨던 옥한흠 목사님이 나오는 사진이었다. 옥한흠 목사님이 겸손하게 앉아서 안수기도를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릭 워렌(Rick Warren) 목사와 다른 외국인 목사들, 그리고 오정현 목사가 그에게 손을 얹고 기도한다. 이 사진의 장면은 릭 원렌 목사가 한국을 방문하여 대형집회를 인도하였던 2006년에 일어난것 같다.릭 워렌 목사 등은 옥한흠 목사의 어깨에다 손을 올리고 기도했다. 이런 모양의 기도를 꼭 안수기도라고 해야 하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그 명칭이 무엇이건,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 받는 사람의 몸에 손을 올리고 기도한다는 것은 무슨 의
한국에서 전쟁이 난다고 예언하여 소란을 일으킨 홍혜선이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왔다. 한국을 떠나는 마지막 날 인천국제공항에서 홍혜선은 어떤 사람과 인터뷰하였고, 또 그 자리에서 방언이랍시고 주절거렸고, 그것을 스스로 통역한답시고 그럴싸하게 요란을 떨면서 또 예언하였다. 그녀는 대한민국의 모든 성도들과 교회들을 향하여 전쟁에 관한 최후 메시지를 전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 자리에서 홍혜선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그녀의 거짓 사상을 퍼뜨리는데 협력하였던 남자가 그 모습을 촬영하여 인터넷에 올린 것으로 보이는 영상이 돌고 있다. 첫 번째 27분 분량의 영상은 인천국제공항 로비에서 어떤 남자가 홍혜선에게 질문하고 홍혜선이 답하는 내용이었다. 인터뷰를 시도하는 남자는 홍혜선에게 그 동안 한국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예언은 그리스도인들과 불신자들 모두에게 언제나 많은 관심을 받는다. 예언은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항상 악영향을 미쳤다. 데이비드 오워라하는 아프리카 흑인 예언자가 한국에 와서 회개하지 않으면 전쟁이 터진다고 예언했을 때, 온 나라의 교회들이 요동하였다. 그 때문에 전체 사회적인 불안감이 고조되자 공영방송의 뉴스에서도 그 내용이 언급될 정도였다. 수년 전에 미국 뉴욕의 한 대형교회에서는 담임 목사가 아이합이라는 곳의 예언자들게서 일반 목회자의 차원을 넘어서는 ‘사도적인 지도자’로 부르셨다는 예언을 받았었다. 그 사실을 수요 예배시간에 모인 성도들에게 공개적으로 말함으로 인해 그 교회가 소용돌이이 빠지게 되었고, 미국의 전체 한인 교회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잊을만하면 또 다른 예
(중략) ... 요한복음에서 기술되는 이 장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음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갸룟 유다가 예수님을 넘기기 위해 빌라도의 로마군병들과 대제사장의 하인들을 데리고 게세마네 동산으로 왔습니다. 로마 군병 하나가 누가 나사렛 예수인지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이 다치지 않게 하시려고 스스로 그들이 원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고 밝히셨습니다.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우리 성경에는 “내로라!”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들이 잡기를 원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심을 밝히는 모습은 너무나도 당당했습니다. 조금도 두려움이 떨으셨거나, 조금도 위축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군인들에게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밝히시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
성경의 방언의 대상은 사람성경의 방언의 주체는 하나님이었고 방언의 대상은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방언을 통하여 사람에게 메시지를 주셨다. 그러나 오늘 날의 방언이라고 주장되는 소리현상은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여 시행되고 있다. 방언을 한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기도 시간에 그 소리현상을 써먹는다. 이점에 있어서 오늘 날의 방언이라고 주장되는 소리와 성경의 방언은 매우 다르다.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최초의 방언은 성령의 강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방언을 발하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방언에 대한 어떤 난해한 부분은 마치 사람의 영혼이 방언을 말하는 주체인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을 보면 사람의 영혼이 방언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역사로
요즘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방언이라고 칭하는 소리현상은 성경의 방언과 너무나도 다르다. 오늘 날의 정체불명의 소리현상을 천사의 언어, 기도의 언어, 영혼의 언어, 영적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예찬하는 주장을 지지해주는 성경의 말씀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 명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는 난해구절들이 도용되고 있을 뿐이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동일한 현상이 타종교인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 다니면서 그런 소리를 지속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그 소리현상과 타종교에서 나타나는 그것의 차이를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자신에게서 나타나는 소리는 성령의 방언이고 이상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소리는 귀신의 장난이라고 막연하게 여길 뿐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나쁜 불륜’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