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남 목사(한국개혁신학연구원 총무)2021년 합동교단에서 WEA공청회를 3차에 걸쳐 진행하였다. 시간이 흘러 다시 그때를 되돌아 보면 왜 합동교단이 WEA에 대한 공청회를 진행했는지 처음에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충분히 그 의도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들의 인식, 즉 WEA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빈약하였다는 것이다. 만약 WEA에 관한 공청회가 없었다면 우리 합동교단은 WEA를 아주 좋은 친구로 여겨 동반자의 길을 가자고 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합동교단에서는 이미 세계교회교류협력위원회
임진남 목사(한국개혁신학연구원 총무)요즘 우리는 알든지 모르든지 ‘다수가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것이 정의가 되어 버린 세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세상에서 아주 빠르게 나타나는 사상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사회 법규에 대한 이해도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이 교회 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가르치신 규율들이 다 사라지고 있고 교단 헌법과 예배모범은 이미 상실되었다. 특히 예배 가운데 이러한 모습들은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고
우리 교단의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WEA에 대하여 별 관심도 없고 잘 모른다. 104회 합동 교단 총회에서 WEA와 교류를 금하는 헌의안이 상정되었을 때 교류금지 찬성이 아닌 반대 결의가 되었다. 사실 2020년 총회 당시 대다수의 총대들은 WEA가 어떤 단체인지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거의 전혀 없는 상태에서 결의하였다. 그러나 이미 총신의 일부 교수들이 2016년부터 총신 신학대학원에서 발간하는 신학지남에 WEA에 대한 교류를 긍정적으로 해야 한다는 소논문을 기재하고 있었고 이것을 찬성하는 일부 목사들의 주장대로 총회결의가
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의 사변적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가 능동적 순종을 통해 율법의 의를 획득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가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아주 비성경적인 주장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을 때, 그 율법으로 사람을 의롭게 하거나 구원을 받는 방법을 제공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사도 바울이 증거하기 때문이다.이것에 대하여 칼빈도 갈라디아 강해설교에서 자세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약속은 적절하지 않으며 구원을 받는데 부분적인 도움밖에 주지 못한다고 잘못 생각하지 않게
우병훈 교수는 능동순종과 루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16세기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신 3:21, 요 1:6, 갈 4:5, 갈 3:13에 대한 설명에서, 때로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이 칭의의 근거가 된다고 볼 때도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구분하여 각각이 우리를 위한 순종의 행위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1535년에 출간된 대(大) 의 갈 4:5에 대한 설명에서 루터는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에서 행하신 능동적 순종이 신자들의 공로가 된다고 분명히 주장하고 있다
종교개혁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킨 로마교회는 자신들의 교리를 확증시키기 위해 성경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그리고 상황적으로 적용시켰다. 이에 칼빈은 이들의 가증스러운 행위들을 미친개들, 아니면 협잡꾼들로 비난하였다.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 신학의 현장에서 같은 행위들이 자행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을 능.수동적으로 나눈 것이 마치 성경적이며, 전통적 개혁주의신학처럼 주장하는 것이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능.수동적인 순종이 (성경에서 말하는) 개혁주의 전통의 가르침인가?최근에 온라인에서 강의한 교수들
현대교회는 신앙과 신학이 다르다. 신학은 교수들의 연구물들이라고 하여 학문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는 어떤 이교도들의 자료들, 또는 우상숭배자들의 저술도 기꺼이 수납하고 함께 손을 잡는다. 이제 이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복음전도를 위해서는 무당과 함께 노래하고 굿을 하는 것도 이제는 아주 자연스러운 연합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거짓과 우상숭배를 단 한 번도 용납하신 적이 없다. WCC와 WEA에 대하여 반대하는 일부 한국교회와 목사들은 여전히 고리타분하고 막혀있는 보수골통들로 손가락질을 당하고
-한국개혁신학연구원 총무 임진남목사먼저, 능동순종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고 하는,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모든 조문들을 다 지켜 율법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었다고 하는 이 가르침은 눈을 씻고 성경을 찾아보아도 단 한 구절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능동순종이 작금에 논의되는 이유는 행위언약 때문이다. 그러나 행위언약이 성경에서 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행위언약을 주장하는 것은 마치 교회회의가 무오한 것처럼 그렇게 여기는 아주 못된 처사가 아닐 수가 없다. 칼빈은 공교회의 의회조차도 완전하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코로나19 전염병에 대한 국가적 방역에 성도는 순종해야 한다. 왜냐하면 작금의 문제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리석고 무식한 자들은 성도가 국가의 법에 순종해야 한다고 하면, 마치 교회가 국가에 종속되는 것으로 이해한다.그러나 이러한 무지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야기되는 것이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치하는 일을 이중적 통치개념으로 가르치고 있다. 먼저 영적인 통치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영적 관할권(spiritual jurisdiction
죄인이 의롭게 되는 것에 대하여 성경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증거하고 있다. 하지만 중세 스콜라 신학은 칭의에 대하여 믿음으로 시작하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구원의 시작이기에 믿음 이후에 선한 행위가 계속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콜라 신학의 영향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칭의에 대한 논쟁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칭의가 무엇인지 우리는 성경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증해야 한다.먼저 인간은 그 어떤 행위로 의로운 신분을 얻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위로 의롭다고 하는 자가 있는가
창2:9에 대하여 칼빈의 창세기 주석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에덴에서 살게 하셨고, 에덴에서 아담은 자신의 힘으로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살 것을 명령하셨다. 우리는 보통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평안히 일을 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었다고 여기고 있지만 칼빈은 에덴에서 아담은 일을 하는 존재였기에 타락이후에 주어진 노동의 고통이 아닌 무죄한 상태에서 일하는 노동에 대한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칼뱅 작품선집 4권- 박건택). 이렇게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지은 아담이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 수 있도
2018년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 총회는 정이철 목사에게 이단 사상이 없다는 것을 밝혔으나 그는 너무 과격하다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평가는 과연 정당한 것인가? 그레샴 메이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하여 그리고 그리스도의 기적에 대한 복음서의 내용을 한낱 신화에 비유한 슈트라우스의 라는 책을 평가하면서 그는 정말로 과격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과격한 사람이라고 하는 평가를 진리를 왜곡시키는 사람들에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오늘날 현대교회는 진리를 왜곡시키는 자들보다는 진리를
복음서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독특한 것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중에 부모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데리고 나올 때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주님 당신에게 나오는 것을 허락하시고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이 갈 수 있다고 말씀하여 주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는 주님의 이 가르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한다.현대 신학 가운데 실용주의 신학은 어린 아이들이 갖고 있는 믿음은 지식적이지 않고 단지 상대방에 대한 신뢰에 그 바탕을 둔다고 가르친다. 물론 너무 어린 아이는 여전히 부모의 손길에 모든 것을 의지해야 한다. 하지만 어린 아이가 자신의 지각을 가
최근 우리는 개혁신학에 대한 상반된 논의를 대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신학의 정당성을 해명하고, 바른 신학이라고 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당사자 간의 토론과 대화의 모습은 사라지고 개인의 페이스북에서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는 아주 저질스러운 모습들을 본다.사실 필자는 정이철 목사와 노승수 목사의 신학적 견해의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중간에서 서로 화해권면을 시도하였다. 우선 정이철 목사에게 노승수 목사에 대한 기사를 내려줄 것을 부탁하였고, 정이철 목사는 좋은 의도로 받아주었다.그런데 노승수 목사에 대한 기사가 내려가자마자 노 목사는 개인 페이스 북에서 정이철 목사가 기사를 내린 것에 대하여 조롱과 조소를 하면서 법적조치를 계속한다고 자신의 팔로워들에게 말한 것을 어떤 분이 캡쳐하여 보내주었다
개혁주의 신학자 존 그레샴 메이천은 오늘날 현대교회가 신비주의와 은사주의로 기울어진 것은 신앙에 대하여 반지성적인 영향이라고 보고 있다. 현대 기독교의 신앙을 반지성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정확히 지적인 것을 무시하지 않기 때문이다.기독교가 지성적이라고 하는 것을 비판하는 자들은 예를 들면, 예수님 당시나 초대교회 당시 삼위일체라고 하는 교리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은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그런 용어들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하는 자들이 얼마나 무식하고 기독교에 대하여 단 한 번도 바르게 배우려고 하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 오는 자들에게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는가?예수님은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다고 하는 자들에게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맞는 교회를 찾고 있다. 교회를 다니다가 마음에 맞지 않으면 교회를 쉽게 떠나 다른 교회로 옮긴다. 이 때 한 결 같이 말한다. “그동안 교회를 다녔는데 우리가정과 맞지 않는 교회라고 여겨 교회를 옮기기로 했습니다”고 한다. 사실 자신과 맞지 않는 교회라고 해서 교회를 옮기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목사와의 갈등, 아니면 성도들 간의 문제, 또는 당사자 자신이 부도덕한 모습을 보여 더 이상 교회를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교회를 찾는다. 최근에 교회를 떠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는 더 좋은 시설과 환경이 마련된 교회를 찾아 떠나는 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가는 자들은 아주 비본질적인 것을 가지고 마치 자신들이
필자는 우리 교단(예장 합동)의 김성곤 목사의 두날개 프로그램에 심각한 이단성이 있는지의 여부를 총회가 판단하여 달라는 헌의안을 발의하는데 앞장선 사람이다. 두날개 헌의안을 노회를 통해 총회에 상정하게 된 이유는 김성곤 목사의 두날개의 신학 사상이 매우 위험스러워보였기 때문이다.김성곤 목사와 두날개 관련자들은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합동 총회와 이대위는 가급적 심각한 문제가 없다면 합동에 소속한 김성곤 목사에게 큰 손해가 없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단성이 없다면 우리 합동 총회의 이대위가 이유없이 김성곤 목사와 두날개를 훼방할 이유가 없으므로, 김성곤 목사와 두날개 관련자들은 편안한 맘으로 기다리면 될 것으로 생각된다.그런데 (현)총회장 전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회에서 강조되는 것은 성경의 법이다. 특히 율법은 그리스도인들이 당연히 배우고 순종해야 하는 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사도들과 교부들 그리고 개혁신학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는 복음과 율법이 교회에서 선포되어지고 가르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교회는 복음만을 강조하고 있든지 아니면 율법만을 강조하고 있다. 복음과 율법이 균형적으로 선포되고 가르쳐지는 교회를 찾아보기가 드물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한 가지 더 중요한 하나님의 법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성경에서 일반은총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의 빛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법이다.사도 바울은 이것을 이방인들 안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였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방인들에게 보이셨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하나
의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개혁신학을 설명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는 임진남 목사가 요한계시록을 설명하는 책을 출판했다. 임진남 목사가 성도들에게 전했던 37회의 계시록 강해설교를 중심으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과 신학적인 방향성은 서철원 박사의 추천사에 잘 드러나 있다. 서철원 박사의 추천사로 임진남 목사의 책에 대한 소개를 대신한다."한국교회가 요한계시록 강해 설교에 집중했던 시기는 일제 식민지 지배 아래서 고난 받을 때와 광복 후 가난하여 어려움을 당할 때였다. 이때 계시록 강해 설교의 중심점은 주님이 재림하셔서 천년 왕국을 세우시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방 불신자들을 지배하고 가난을 벗어나서 넘치는 풍요 속에서 오래 살며 온갖 행복을 누리는 것이었다.이런 설교로써 교회는 고난받는
대한예수교 장로교 합동측은 제83회 총회에서 사순절이 비성경적이므로 사순절을 지키지 말 것을 결의하였다. 왜 합동교단은 사순절을 비성경적이라고 하였는가?먼저 사순절이란 부활절 전날 밤까지 40일간 이어지는 로마교회가 정한 예수님의 수난 기간을 기념하는 행사절기이다. 로마교회는 성도들로 하여금 금식을 권장하고 음식을 제한하는 것을 기념하였다. 그러나 고난주간 특히 마지막 금요일에는 완전히 고기를 먹는 것을 금했지만 이것을 위해 사육제를 하고 고기를 많이 먹은 후에 점차로 고기 먹는 양을 줄여 갔다. 사실 고기를 먹는 것을 금하기 위해 고난주간 마지막 금요일을 이렇게 금식하는 것으로 정했지만 오히려 사육제는 고기를 많이 먹기 위해 만들어진 날로 변질 된 것이다.이러한 비성경적인 절기를 종교개혁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