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춘천한마음교회의 김성로 목사의 비성경적인 부활복음을 옹호하는 평신도 이단연구가 이인규 씨는 "십자가와 부활 모두가 구속적인 사건"이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자신의 그릇된 신학적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이인규 씨의 이런 주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었다. 왜냐하면 ‘구속’, ‘구속적’, ‘구속사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십자가를 ‘구속적 사건’이라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뭔가 석연치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구속적 사건’이라는 말은 ‘구속과 관련된 사건’, ‘구속을 준비하는 과정의 사건’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의 ‘구속’ 그 자체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홀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구원을 단번에 완전하게 이루
종교개혁은 이신칭의 교리를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으로 정하였다. 이신칭의 교리만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교회로 만들었고 만든다. 루터교회는 이신칭의 교리를 시작한 교회이므로 이신칭의 교리에 전적으로 부착한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이신칭의를 불변의 교리로 받지만 성화를 강조하는 자리로 진보하였다. 성화강조에서 율법이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으로 세워졌다.그런데 성경적인 성화법은 제시하지 못하고 성화를 강조하였다. 단지 옛사람을 죽이면 새사람이 살아나고, 새사람을 살리면 옛사람이 죽는다고 칼빈이 가르쳤다. 이 가르침을 17세기 영국의 청교도들이 그대로 반복하였다. 그리하여 죤 오우언도 그대로 반복할 뿐이었다. 그렇게 성화를 강조하여도 성화를 이루는 법 곧 옛사람을 죽이는 법 혹은 죄의 욕망을 억제하고 소산시키
개혁교회는 언약사상을 체계화해서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신학의 요목으로 설정하고 있다. 17세기 언약사상이 체계화될 때 루터교회와 카돌릭 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언약사상은 오직 개혁신학의 요체로 남게 되었다.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이 은혜언약을 공식화하였다. 그리고 은혜로 구원얻는 하나님의 섭리에 반해서 구약 백성들은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사상을 체계화하였다. 신약백성은 율법을 지키는 일 없이 그냥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구원 얻도록 은혜언약을 세우셨으니 참으로 은혜로 알고 감사하였다.그러나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은 칼빈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에 의해서 공식화되었다. 칼빈은 언약에 대해서 말은 많이 하였지만, 언약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를 한
하나님은 모든 일을 주권적으로 하신다. 하나님 홀로 창조사역을 하셨다. 무한한 지혜와 권능으로 작정대로 모든 창조를 하나님 단독으로 이루셨다. 유대교에서 말하는 천사들로 물질세계를 만드셨다는 이론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는 성립할 수가 없다.또 하나님은 구원사역도 홀로 이루셨다. 하나님은 첫 인류의 범죄 당시부터 구원 작정을 알리셨다. 그리고 그 작정대로 인류를 회복하여 다시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서 객관적인 구원을 온전히 성취하셨다.그러나 하나님은 객관적인 구원만 주권적으로 이루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적용하여 실제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도 주권적으로 하신다. 사람이 자격을 갖추므로 사람이 구원을 내 것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범죄한 인간들은 결코 구원에 합당한 자격을 갖출
총신대학원 신대원장을 지낸 조직신학자이자 독일 튀빙겐대학이 선정한 20세기 신학자 100인에 선정되기도 한 서철원 박사는 종교개혁 497주년을 기념해 뉴스파워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 교회는 개혁주의신학과 개혁신앙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철원 박사는 6일 뉴스파워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하고, 불트만의 편집비평학과 칼 바르트의 신학, 로마교회의 신학, 교황 프란치스코의 주장과 프리메이슨 가입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서 박사는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 ‘여자는 잠잠하라’는 내용이 포함된 것을 후기에 편집하면서 추가된 것이라며 정경으로 보지 않는 주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성경의 권위가 훼손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일부 신학자들 중에는 고린도전서 14장 34절부터 3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