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양호 선교사 (KPM소속)"꿩 잡는 게 매”라는 말은 스포츠 경기장에서 코치들에게 일상화된 말이다. 그 경기에서 “지느냐 이기느냐” 가 그 코치나 선수의 운명을 결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직 이기기 위해 어떤 때는 나이도 속이고, 어떤 때는 금지된 약물을 복용하기도하고, 경기규칙을 어기고 심판과 뒷거래를 하여 짜고 치는 고스톱 등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여 이기려고 한다. 가장 공정하고 엄격해야 할 올림픽위원회의 비리는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면서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라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한다.그러면 천국을 향해 경주하는 곳에 모인 교회는 어떠할까? 신앙의 경기는 질이 아주 다른 차원이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그 욕망을 배제하느냐? 못하느냐? 얼마만큼 배제하느냐? 얼마만큼 낮아지느
교리가 어떤 것인지는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교리가 없는 곳의 모습을 살펴보겠다. 성경적 신학과 교리가 빠진 곳에서 무엇이 설교되고 있는가? 인간 중심, 나의 잘됨이 설교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군중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들려주는 설교가 판을 치게 된다."나는 성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고단한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정죄하는 설교를 하면 절망입니다 ... 신앙에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소망이 넘치는 삶의 태도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분명한 사명을 바탕으로 일관성 있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왔습니다. 설교를 통해 성도들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꿈을 꾸고,
현재 한굮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말할 때 ‘죽음(십자가)와 부활’이라고 단순하게 규정하는 모습을 본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총제이다. 카알 발트는 은혜의 선택을 복음의 총화라고 했다 (CD., II/2, 3ff). 복음은 죄사함 그리고 하나님과 화해이다. 성자 하나님께서 영원한 구원 경륜(pactum salutis)를 이루는 중보자로서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시며 중보하시며 마지막 날에 심판하시고 영원한 중보자로서 택자에게 영원한 경배와 찬양을 받으신다.‘오순절’을 강조하며 체계화한 것이 오순절주의이다. 오순절주의는 성경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종교체험에서 시작해서 사도행전 2장 등에서 등장하는 방언을 붙여서 체계화했다. 자기 경험이 성경에 기록되
신학자들은 신학을 진행할 때 반드시 개념화, 신학화한 단어를 사용한다. 김세윤도 가르치는 선생이기 때문에 개념화가 나름 되어 있다. 그 개념을 잘 이해하면서 자기 개념을 확립하는 것이 학도의 자세이다. 반면 서철원 박사도 선생이기 때문에 개념화가 되어 있다. 서양 신학자자들의 개념은 잘 이해하기 어렵지만 한국 신학자들의 개념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서철원 박사나 김세윤의 신학 개념도 저술과 강연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비교할 수 있다. 전편에서는 두 신학자의 신학 여정에 대해서 비교했고, 이번에는 두 신학자의 ‘의(義)’ 개념에 대해 제시하려고 한다.첫째, 서철원 박사는 ‘의(義)’를 ‘하나님 앞에서 생존권’이라고 한다. 김세윤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라고 한다. 칭
한국 교회의 질서와 규범의 혼란이 증폭되고 있다. 2015년에 여성안수를 시행하는 백석과 여성안수를 시행하지 않는 대신이 연합을 이루었다. 어떤 신학 논의도 없이 여성안수를 시행하는 교단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리고 합신 교단은 두날새선교회에 대한 신학적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봉합하는 애미한 행동을 보여주었다. 또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에서 다락방과 평강제일교회에 대하여 주요 교단들의 결정에 반하는 일을 자행했다.2016년 그러한 혼돈이 더 증폭되고 있다. 통합 교단에서는 2015년에 평강제일교회 고 박윤식에 대한 사상 검증에서 이단을 재확인했다. 그런데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사면위원회(위원장 김규 목사)가 구성되었고, 인터콥, 다락방, 김풍일, 한국(지방)교회, 안식교, 로앤처지(법과 교회)
약20년 전 선교사 초기에 남아공에서 예수영화를 통해 초중고 학교를 순회하며 약420여회 복음을 전하였다. 어느날 아침 이미 약속된 한 초등학교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출발을 하였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예고 없는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열악한 시골학교라 교실 칸막이를 뜯고, 책상을 모두 밖으로 들어내고 걸상을 다 채운 후, 까만 비닐로 유리창을 다 막고 스크린을 설치한다. 마지막으로 발전기를 돌려 영화를 상영하게 되는데 비가 계속 온다면 문제가 커진다. 차를 몰면서 좀 불평스런 말로 소리질러 기도했다.“하나님! 오늘 이 학교는 특별히 믿음 좋은 교장이 학부형들까지 다 초대하여 멋진 복음 잔치를 준비하고 있는데 비가 오면 어떻해요? 엘리야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셨지요? 이 정선교사가 엘리야만
자살하면 구원이 취소되는가?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구원은 얻는다는 것이 영생 보장보험이 약속되어 있는 말씀이다.(요3;16) 구원 받은 자의 자살 행위가 구원의 변수가 될 수 있는가 없는가라는 행위 구원을 테스트하는 문제는 접근자체가 오류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거짓 신자의 자살이든 뭐든 그 믿음이 거짓이기 때문에 구원과의 관계를 언급할 필요조차 없고 전제 자체가 이미 “구원 받은자” 거듭난자 라고 단정을 하는 시각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에 다른 이론의 여지 또한 없다. “성도가 자살해도 구원 전선에는 이상이 없다. 아니다 이상이 있다.” 아직도 팽팽한 접전이 진행 중이다.I. 성도가 자살해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견해신원하 교수(고신신대원,윤리학)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예수님의 동생 유다는 아주 다급하게 편지를 쓴다."...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유 1:3)상황이 긴박했으므로 간단한 인사 이후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유 1:4)평화로운 초대교회에 이단들이 침투한 것이다. 이들도 역시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무리라고 속였다."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 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자동차 블랙박스는 시동이 켜짐과 동시에 차량 안에서 대화하는 내용과 차 앞 유리 쪽 영상이 모두 찍힌다. 주행 중뿐 아니라 주차 중일 때의 영상도 녹화되고, 차 밖으로 나가는 모습 등도 저장된다. 요즘은 블랙박스가 배우자 외도의 핵심 증인으로 외도 탐정 및 이혼 법정의 강력한 증인 역할도 하고 보험사기, 피해 차량 블랙박스에 녹화된 고의 충돌 장면. 차량용 주행영상기록기, 일명 블랙박스가 도로 위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감시자 역할을 한다. 교통사고 현장에선 실제 목격자의 증언보다 휠씬 더 강력한 충실한 목격자의 역할을 한단다.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블랙박스를 설치하셨다. 그것이 바로 양심이다. 하나님이 디자인한 양심은 죄에 대한 경고 시스템이다. 양심은 언제 어디서나 의와 불의에 대한 자동감지를 하
플라톤은 에서 인간이 일생 동안 지하 동굴에 묶여 있어 어둠밖에 모른다고 상상한다. 사람들은 벽에 나타난 그림자들이 현실이라고 믿는다. 만일 한 죄수가 동굴에서 풀려나와 햇빛 아래로 나온다면 엄청난 고통에 시달릴 거라 한다. 그는 강렬한 빛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그저 익숙한 어둠을 갈망한다. 그러나 그의 눈은 결국 빛에 적응한다. 그는 현실의 광대함, 혼란에 직면한다.그러나 그는 동굴로 돌아가면 경멸당한다. 그는 예전과 달리 어둠 속에서 보지 못한다. 동굴 속 사람들은 그를 조롱하고, 그처럼 장님이 되지 않기 위해 햇빛을 보지 않기로 다짐한다. 플라톤은 환락의 힘, 정신을 혼란시키는 감각의 힘, 이성을 말살하는 감정의 힘을 두려워했다. 개화된 자들이나 엘리트 계급이 동굴 벽에 비
90년대 후반 서점의 한쪽 구석에서 1984년 3판 발행된 로이드 존스의 산상설교집 下권을 집어 들었다. 책은 누렇게 되어 있었으며 먼지는 푹 쌓여 있었다. 사랑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온다고 하더니, 이 낡은 책은 예상치도 못하게 마틴 로이드 존스와의 뜨거운 사랑에 빠지게 하였다.그때부터 몇 년에 걸쳐 로이드 존스의 책의 대부분을 모았으며 밤낮으로 읽었다. 로이드 존스로부터 시작된 영적 탐험은 시간을 거슬러 계속되었다. 조나단 에드워즈, 조지 휫필드 등을 만나며 아마존과 같은 드넓은 강가에서 한동안 절망과 소망, 두려움과 기쁨을 오가며 머물렀다.그들을 따라 오르자 이제 더 좁아진 칼빈을 만났고, 그 깊이에 무릎을 꿇었다. 도무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그의 통찰력과 성경 앞에서의 진지함은 성경을
마지막으로 이 모든 교리적 실천적 주장과 함의들이 모두 성경에서 나왔다는 것을 아주 자명하게 하면서도 이것을 현저하게 밖으로 드러내 놓고 논의하고 있지 않음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특유의 강함과 부드러움을 드러내는 것이다.내용으로 보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못지않게 오늘 우리에게는 성경에 있는 것만이 하나님의 특별 계시이고, 따라서 요한계시록까지 신약의 계시(啓示)가 다 주어지고 난 후에는 더 이상의 새로운 계시(啓示)는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를 아주 명백하게 천명한다.아마 한 세기 후의 개신교회(1647)는 좀 더 분명하게 이를 분명히 천명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강한 표현은 다음과 같다:“하나님께서 자
교인 중에 어느 분께서 '어느 목사님'의 설교가 어떤지 좀 평가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들어보니 '율법폐기론'의 전형적인 패턴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간략하고 쉽게 율법폐기와 청교도 개혁주의의 차이를 구별해 드렸습니다. 이 글은 제게 질문하신뿐 아니라, 우리 교인들이 같이 공유해야할 것 같아 올립니다. 율법과 복음 사이의 구분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해 유명한 믿음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율법과 복음을 구분하는 비결을 잘 아는 사람은 누구든 우두머리가 되고 성경 박사로 불릴 것이다”(마틴 루터)“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한 무지는 기독교를 부패시켰고, 여전히 부패시키고 있는 오용의 핵심이다”(테오도루스 베자)그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른 것에 비해 권징 문제에 대해서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83문-85문까지 비교적 자세하게 논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읽어 보면 성경을 따라서 그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잘 드러내어 우리가 말하는 강함과 부드러움의 전형적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이것이 과연 무슨 뜻인지 잘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83-85문답을 그대로 인용하는 일로부터 시작해 보자:(제 83 문)(천국의) 열쇠의 직임(職任)(The Office of the Keys)이란 무엇입니까?(답) 거룩한 복음의 선포와 교회의 권징(勸懲)입니다. 이 둘로써 천국이 신자(信者)들에게는 열려지고, 불신자(不信者)들에게는 닫히는 것입니다.(제 84 문) 어떻게 천국이 거룩한 복
개혁주의 목사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숙제 중 하나가 개혁신앙과 교리체계를 평신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유인즉 현대의 교회는 감정적인 것을 참된 신앙으로 둔갑시켜 조금이라도 어려운 이론과 체계에 관심을 기울이기는커녕 오히려 그러한 이성적인 것을 참된 신앙(?)을 방해하는 것쯤으로 치부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비해 개혁신앙은 차분히 이론을 공부해야 하며, 그 양 또한 방대하고 깊기 때문에 감각적인 현대교인들에게 이 좋은 것을 전달할 도구가 마땅치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모처럼 개혁주의 노선에 들어선 사역자들은 방대한 개혁신학 책과 청교도 책을 보며 그것을 충분히 소화하기는커녕 읽기 조차 힘겹다는 것을 곧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정이철 목사의 는 참으로
겉으로 보기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어떤 한 문답을 선택 문제에 대해 할애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마치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는 듯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선택에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없으니, 첫째는 선택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교회가 무엇인지와 관련해서 “거룩한 공교회”(the Holy Catholic Church)에 대해서 당신이 믿는 바는 무엇입니까?”라고 묻고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것이다:(답) "나는 세상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의 온 인류 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그의 성령과 말씀을 통해서, 참된 신앙의 연합 가운데 있는 선택된 공동체를 당신님을 위하여 영생을 하도록 모으시고, 보호하시며, 보존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성찬에 대해서 진술할 때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루터파의 입장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아니한다. 그리고 성찬에 대한 적극적 진술에서도 명확히 개신교적 입장 가운데서 어떤 쪽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그래서 오랫동안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성찬론이 칼빈적인가? 쯔빙글리적인가? 불링거적인가? 멜랑흐톤적인가? 아니면 그것들 중 일부를 결합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를 논의한 학자들은 이 중의 어느 하나의 명칭으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성찬론을 규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그래서 평생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연구하고, 모으고, 널리 논의하는 일에 헌신 했던 화란의 ‘빌렘 베르붐’교수는 팔리티네이트 공국의 다양한 신앙 고백적 흐름들의 ‘최대
1562년에 준비되어서 1563년 1월 19일에 공식적으로 출판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 내용을 잘 살피면 아주 강한 개혁신앙의 선언이다. 그러나 이 교리문답의 내용을 찬찬히 읽어 본 거의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듯이 이 문답은 매우 부드럽게 진술되어 있고, 기본적으로 아주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고, 이를 읽는 사람들은 작성자들의 의도대로 진정한 기독교적 위로를 받게 된다.이런 두 가지 상반되어 보이는 듯한 성격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큰 특성이라고 여겨서 이 논문에서는 이 요리문답의 강함과 부드러움을 여러 측면에서 드러내어 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들의 신학함과 기독교적 삶에 주는 함의를 이끌어 내고자 한다.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선언의 역사적 배경먼저 하이델베르크 요
19년전 SIM선교사들과 케이프타운의 무슬림지역을 돌며 약 1년간 무슬림 전도 공부를 하며 집중 전도를 한 적이 있었다. 무슬림들은 자기 집에 무슬림 마크를 붙여놓기 때문에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세 아이를 둔 샤피아라는 여인은 가난하고 아주 외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다른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다 그러듯이 남편은 이따금씩 와서 잠만 자고갈 뿐 가정에 대한 책임을 잘 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매주 과일, 쌍화차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들고 가서 교제를 하다가 3개월쯤 지나면서 복음을 제시하였다. 뜻밖에 이 여인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증표로 전도자가 주는 성경을 받았다. 계속 양육을 하는 단계에서 예수 믿는 사실이 가족과 이웃에게 알려져 그녀는 그 공동체에서 추방되었고, 믿음이 약해서 예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