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에 갔을 때, 이승구 교수님을 잠시 뵈었다. 이승구 교수님은 늘 바쁘게 살아가시는 분이고, 일 년에 한번 한국을 방문하여 여러 번의 세미나를 열고 가족을 만나는 나도 너무도 바빴다. 그래서 늦은 매우 시간에 번개팅하듯이 잠시 뵈었는데, 감사하게도 두 권의 책을 선물하여 주셨다. 그 중의 한 권은 오늘 아침부터 읽기 시작한 <처음 만나는 루터>(유병훈 교수 저, IVP, 2017)이다.

사실 나는 루터에 대해서 의외로 잘 모른다. 아세아연신대에서 TH.M 할 때, 원종천 교수님이 가르치신 “루터세미나” 과목을 공부하기는 했으나, 다 잊어 버렸다. 칼빈에 비해 성경연구가 조금 부족(덜 성숙?)했으나 종교개혁의 포문을 연 위대한 선각자였다는 정도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잘 읽어보려고 마음먹고 읽기를 시작했다.

이 책의 42페이지 무렵에서 교회음악에 대한 루터의 관점이 조금 설명된다. 교회음악에 대한 루터의 신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루터는 찬송이 하나님의 말씀을 돕는 방편이라고 여겼다. 올바른 찬송은 찬송을 부르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듣도록 돕는다고 보았다. 찬송은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돕는 기능, 즉 말씀을 섬기는 종속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2)루터는 찬송 속에 고유한 영적인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찬송이 말씀을 따라 형성된 경건을 더욱 더 강화시킨다고 보았다. 찬송이 사람의 내면에서 하나님의 신령한 즐거움과 기쁨을 형성하는 독특한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3)루터는 음악을 하나님의 최상의 선물로 보았다. 교회음악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 즉 설교와 깊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4)루터는 교회음악을 예수 그리스도와 깊이 연관지어서 이해하였다. 시편 전체를 그리스도에 대한 노래라고 이해하였다. 루터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빛이 스며들게 만드는 방법의 하나로 교회음악을 생각하고 이해하였다. 실제로 루터가 작사하고 작곡한 음악들은 종교개혁을 촉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우병훈 교수의 신작(IVP, 2017)

현대교회의 음악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일단 사람들이 노래 부르기를 너무 좋아하니 여기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뮤조건 불리한 위치에 설 수 밖에 없다. 여지없이 이런 말을 하면서 덤비고 반박한다. 

“다윗도 춤을 추면서 찬양했습니다”
“손뼉을 치면서 모든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음악이 사람의 행동과 정신을 지배하고, 특히 귀신을 접하게 만드는 영성훈련에도 음악이 잘 활용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분명한 사실이다. 음악이 귀신을 접하는 영성훈련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속인들의 신내림 굿을 견학하기 바란다. 거기에도 나름 패턴을 갖춘 음악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의 음악이 접신을 유도하는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 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는 사람이 하나님을 더욱 신령하게 예배하도록 돕는 음악에 대해서 눈을 떠야 한다. 아무 노래나 막 부르지 말고, 엄선하여 예배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인식하여야 한다. 지금 많은 교회들이 노래방 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냥 유행을 따라서 노래를 막 부르고 있다.

마땅히 교회에서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목적 하에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게도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 노래방 예배를 진행하는 교회들이 부르는 대부분의 노래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신령하게 예배하는데 최선의 목적을 두고 있다고 보기가 어렵다. 그 목적보다는 사람의 감정을 고양시키는데 더 우선적인 효과를 산출하고 있다.

매우 점잖하고 고상하게, 그러나 교회음악의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노래를 부르면서 사람들의 감정을 지배하고 흔드는 가장 대표적이고 앞서가는 곳이 서초동 사랑의 교회라고 생각된다. 오정현 목사는 우리들과 달리 너무 노래를 잘 하고 좋아하므로 너무나 위험스럽게 노래방 목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중이다.

위 영상을 보고 무엇이 문제이지? 라는 생각이 드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굳이 한 말씀을 드린다면, 교회가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끼치는 주된 방법이 무엇인가? 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선포될 때, 성령이 더불어 역사하시므로 신자들에게서 회개와 변화와 성장이 일어나는 것이 성경적 기독교이다. 대단한 노래로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가르침은 성경에도, 교회사에도 없는 내용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방법이 말씀, 성례, 기도라고 모든 목사들이 신학교에서 배웠다. 찬송(노래)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방편이 아니고 받은 은혜를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표현하는 신자들의 반응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정현 목사가 인도하는 저런 노래방 목회는 이미 정도를 넘어섰다. 저런 노래방 목회는 돈이 없고, 노래와 악기를 잘 다루는 사람이 없으면 할 수도 없다. 언제 하나님이 돈과 재능을 갖춘 사람이 없으면 할 수도 없는 비범한 찬양(노래)를 통해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는가? 성경에 없는 현대기독교, 즉 복음을 떠나 타락해 버린 거짓 교회의 노래방 목회일 뿐인 것이다. 오정현 목사의 노래방 목회는 그 문제점을 분별하기 어렵지만, 다음의 영상에서 나타나는 노래하는 장면들은 비교적 분별하기가 쉽다.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 ... 이 찬송은 신실하게 예배드리고 있는 많은 교회들에게서 애용되고 있는 노래이다. 이 찬송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신령하게 예배하고 기도하는데 도움되는 정서와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나치게 들뜨고 흥분되게 하므로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고 명철한 마음으로 받도록 돕기는커녕 그 반대로 해를 당하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이 노래를 부르는 음악적인 방식(박자 또는 비트, 악기)이 사람이 하나님을 신령하게 예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고 반대로 해가되기 때문이다. 이런 노래 방식은 '접신하는 영성'이 풍성하게 나타나는 교회에서나 매우 적합한 노래이다.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곳이라면, 틀림없이 이단시비가 진즉에 일어났거나 앞으로 일어날 곳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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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