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는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그는 이슬람의 과격한 군사적 행동으로 공포에 떨기도 했지만, 그들의 경건한 삶은 당시 기독교인들의 삶 속에서 찾기 힘든 면이라 감탄하기도 했고, 때로는 패륜적이고 방탕한 결혼제도에 경악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루터는 이런 행위들의 근원을 꾸란에서 찾았다. 루터는 1542년 즉, 라틴어역 꾸란의 전편을 다 읽기 전까지는, 꾸란에 대해 믿을 수 있는 자료가 부족했다. 그에게는 겨우 1300년경에 나온 리콜도의 『사라센족의 법에 대한 논박』과 1461년에 나온 쿠자누스(Nicolaus Cusanus, 1401-1464)의 『꾸란의 감별』정도였다.

루터는 이것마저도 꾸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두 작품은 이슬람의 부정적인 모습만 편파적으로 부각시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저작들을 순진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슬람에 대해 겁을 먹고, 증오하게 하고, 꾸란에 대한 반발을 일으키며, 오히려 이슬람을 반박하지 못하게 하는 무능력의 산물로 취급했다.

그래서 루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슬람과 꾸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꾸란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싶었고, 이 책의 해악(害惡)을 누구나 알도록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꾸란에 대해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절실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루터의 손에는 정보가 부족했다. 그는 이 상황을 1530년에 쓴 『터키의 종교와 관습들에 관한 글의 서문』에 붙인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제까지 나는 무슬림의 종교와 관습을 무척 알고 싶어 했는데, 꾸란에 대한 일부 논박과 니콜라스의 쿠자누스의 『꾸란의 감별』 외에는 제공된 것이 없었다.”

루터는 1542년 전까지 꾸란의 전편을 읽지 않았고, 무슬림을 직접 대면한 바도 없으며, 꾸란의 변증서 몇 권 정도만 읽었을 뿐이었다. 그는 꾸란에 대한 자료의 빈곤으로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한계에 부딪쳤다. 이로 인해 루터는 리콜도와 쿠자누스의 견해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오히려 꾸란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킴으로 마치 꾸란을 칭찬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했다. 그는 이슬람의 도덕성을 높이 평가했었다. 심지어 터키인들과 3일만 함께 지내도 개종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면서, 이슬람의 의식, 예절, 생활의 진지함과 철저함은 기독교인들이나 수도사, 수녀, 성직자들보다 더 낫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루터의 꾸란 이해가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그는 먼저 지난 날 자신의 꾸란에 대한 무지를 인정했고, 기독교의 꾸란 변증서 내용들을 동의했으며, 이슬람과 꾸란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더 강경한 대응으로 맞섰다. 꾸란에 대한 루터의 이해는 1542년 이전과 이후로 구분 지을 수 있다.
 

1. 반사회성(1542년 이전)

루터는 꾸란을 통해 기독교와 이슬람을 종교적으로 비교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루터는 꾸란을 논박하려면 신앙의 내용으로 접근해야 하며, 기독교를 외적인 선행과 의식으로 이루어진 이슬람과는 근본적으로 달리 보았다. 오히려 루터는 이슬람의 꾸란이 세 가지 영역에서 반사회적임을 주장하며, 파괴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종교적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무함마드를 높임으로 그리스도의 왕국을 파괴한다.

꾸란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지 않으며, 구원자라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다. 꾸란은 오히려 무함마드를 높이고 있다. 꾸란에서는 무함마드에 대한 믿음을 세상에 전해야 할 뿐 아니라, 세상이 이것을 거부할 때에는 칼로 징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것을 볼 때 꾸란은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꾸란은 그리스도를 거절함으로써 삼위일체 및 성례와 같은 모든 기독교의 교리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직 무함마드의 행위 교리와 칼에 대한 교리만을 인정하고 있다. 루터는 요한복음 8장 44절을 해석하면서 무함마드는 거짓 영에 사로잡힌 자이며, 그의 악마가 꾸란을 통해 영혼들을 죽이고 있으며, 기독교 신앙을 혼란시킨다고 했다.

둘째, 정치적 영역에서 꾸란은 세속 정부를 파괴한다.

무함마드는 통치가 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꾸란은 칼이 가장 영예로운 사역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루터는 터키 왕국을 살인자, 혹은 강도라고 비판했다. 루터는 꾸란이 강도와 살인을 장려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무슬림의 정부는 평화를 장려하기보다는 세속적인 질서를 무너뜨렸다. 루터는 요한복음 8장 44절을 해석하면서 투르크인들은 인간의 몸을 죽이기 위해서 칼을 잡았고, 그들의 신앙은 설교와 기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칼과 살육에 의해 발전된다고 역설했다. 루터는 이슬람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려는 열광주의자들, 혹은 이단으로 이해하였다.

셋째, 도덕적 영역에서 꾸란은 일부다처제를 허용하여 결혼 제도를 파괴한다.

꾸란은 남자가 원하는 대로 여자를 취하게 할 뿐만 아니라 원하는 대로 버릴 수도 있고, 팔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것은 결혼이 아니며,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루터는 꾸란이 세 가지 규범을 따라 무슬림을 다스린다고 보았으며, 당시 그와 논쟁했던 대적들을 무슬림과 동일시하기도 했는데, 세속의 통치권을 인정하지 않았던 뮌처(Thomas Müntzer, 1489- 1525)주의자들뿐 아니라 행위를 통한 구원을 주장하고, 결혼을 무가치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교황주의자들이 이에 속하였다.
 

2. 사탄의 작품 (1542년 이후)

루터는 비로소 1542년 금식일을 맞아 라틴어역 꾸란 전편을 읽었다. 이후에 그는 이전의 태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슬람과 꾸란에 대해 강경 대응했다. 루터는 꾸란을 직접 읽음으로써 꾸란에 대해 크게 실망하였고, 종교적 단점이 아닌 신학적 문제점으로 대응했다. 루터는 꾸란을 사탄의 작품으로 단정지었다. 사탄이 무함마드를 교사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그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헬라클레이오스 황제 시대에 한 인간이 나타났는데, 그는 악마이며, 사탄의 첫째 아들이고, 진리와 그리스도교 교회에 대적했다. 그의 이름은 무함마드였다. 그는 거짓말쟁이자 모든 거짓의 아버지로서, 거짓과 불의로 가득 찬 율법을 만들었는데, 마치 신의 입에서 말해진 것처럼 꾸민 그 책을 그는 꾸란이라고 이름 붙였다.”

루터는 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꾸란의 내용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꾸란은 조작되고 거짓이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루터는 이 글에서 꾸란에 대한 심각한 실망을 토로했다. 그는 꾸란의 근원을 따져서 비판했다. 꾸란의 출처와 저자를 명확히 알 수 없음으로 거짓 그 자체로 밖에 볼 수 없었다.

그는 이 책에서 이슬람의 혼인법과 천국에 대한 관능적인 상징의 비판을 극대화시켰다. 이 책의 핵심은 이슬람의 교리에 대한 신학적 반박이다. 그들은 성자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령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영생에 침묵하고 있다. 루터는 꾸란의 내적인 모순과, 성경과 대조하여 나타난 모순들을 부각시켰다. 그의 의도는 사탄과 공모자가 아닌 이상, 꾸란의 교리를 받아들일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루터는 꾸란을 연구함으로 그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꾸란은 선하고 정결한 덕목을 강조함으로써 이슬람의 폭력성을 교묘하게 감추려는 것은 마치 광명한 천사로 나타나서 기독교인들을 신앙으로부터 이탈시키려는 사단의 계략과 동일하다도 보았다. 그의 꾸란 이해 목적은 이슬람에게 기독교 개종과 선교를 요구하기보다는 기독교인들을 교육하고자 하는 데 우선순위가 있었다. 즉, 무슬림과 실제로 접하면서 터키와 싸웠던 사람들이나 혹은 포로가 된 사람들이 꾸란에 대해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위해서였다. 루터는 그리스도들이 꾸란을 읽음으로 이슬람에 개종되는 것을 기우(杞憂)라고 여기고, 도리어 허황되고 신성모독적인 꾸란을 읽음으로써 믿음과 복음의 진리를 더욱 견고히 할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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