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성령의 역사로 중생한 신자에게 다른 성령의 세례가 더 남아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지목되는 성경의 또 다른 내용은 사도행전 19장이다. 사도행전 19장의 에베소 교회의 설립에 관한 내용에서 신자에게 반복되는 성령세례 이론의 근거가 발견된다고 한다. 그들은 아볼로에 의해 신앙을 가지게 된 에베소 사람들에게 구원이 임했으나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후에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여 그들에게 성령의 세례를 있었는지 확인하였다. 그들에게 성령의 세례가 일어나지 않았음이 확인되자 사울 사도가 안수하여 성령세례를 주었다는 것이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행 19: 6)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도 성령세례를 더 사모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로이드 존스는 과연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해석했을까? 안타깝게 로이드 존스도 오순절 은사주의자들과 동일한 관점을 취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기 전에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미 에베소에 있었으나 능력을 주는 성령세례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로이드 존스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그들은 참 신자, 하나님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사도행전 19:6에 보면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라고 나옵니다. 여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 신자이면서도 아직 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절대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사상 위의 에베소교회

로이드 존스의 에베소서 19장 해석은 그릇되었다. 바울 사도의 안수에 의해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성령세례가 임하였다는 주장은 틀렸다. 아볼로의 전도로 에베소에 이미 구원받은 신자들이 있었다는 로이드 존스의 성경 해석은 오류이다.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였을 때, 그곳에는 구원받은 사람이 없었고, 성령을 받은 사람도 없었다고 해석해야 옳다. 다음의 성경 말씀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행 18:24,25)

아볼로는 많은 학문을 배운 지성인이었으나 그의 신앙은 세례 요한이 전파했던 내용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세례 요한이 가르친 내용을 요약하면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시는 구원자가 곧 오시니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세속적인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이 곧 보내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요한은 광야에서 사람들이 듣도록 외쳤다. 세례(침례) 요한은 바로 그 일을 하도록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마지막 구약의 선지자였다. 

세례 요한의 사상만 알았던 아볼로가 개척한 신앙 공동체에는 구원받은 사람이 탄생할 수가 없었다. 성령받은 사람도 있을 수 없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 백성되게 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더불어 일하시기 때문이다. 성령이 임하시는 근거는 십자가의 피의 제사의 효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받으므로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여 주시기 때문이다. 그 외에 성령이 인간에게 임하실 수 있는 다른 이유는 없다.

아볼로를 통해 세례 요한의 가르침을 받은 에베소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영적 상태에 머무르고 있었을 때, 사도 바울에게서 신앙을 배운 브리스기라와 아굴라 부부가 에베소에 도착하였다. 이 부부를 통해 아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복음에 대해서 정확하게 배우게 되었다. 아볼로는 브리스기라와 아굴라 부부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운 후 더 이상 에베소에 머물지 않고 아가야로 떠났다. 이후 아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각처에서 훌륭하게 전하였다(행18:27,28).

아볼로가 고린도로 이동하여 전도할 때,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했다. 바울은 아볼로가 전도한 그곳의 사람들이 온전한 복음을 배우지 못했음을 직감했던 것 같다. 바울은 즉시 에베소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는지 확인하였다.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행 19:1,2)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행 19:3)

사도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이 단지 세례 요한의 사상만을 배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즉시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가르쳤다. 바울에 의해서 비로소 에베소에 진정한 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아볼로에게서 세례 요한의 사상을 배워 세례 요한의 물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이 바울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받았다.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행19:5)

에베소 사람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미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음 의미한다. 성령이 먼저 임하시어, 즉 성령의 세례를 통해 믿음을 주시고 중생을 일으키시지 않았다면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신앙이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으니라.”(고전 12:3)
 

바울 사도가 안수하게 된 이유

그런데 이미 성령을 받은 신자들에게 바울은 왜 안수를 하였을까? 바울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시어 방언, 예언이 나타났다는 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옳을까? 정말 성령받은 사람들에게 바울이 안수하여 또 성령을 받게했을까? 바울에게는 방언이나 예언의 은사를 나누어 주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던 것일까? 이 내용은 정말 오순절 은사운동가들의 주장의 근거가 되는 것인가?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만일 바울이 안수하여 신자들에게 방언과 예언을 동반하는 성령을 또 받게했다면, 왜 다른 선교지에서는 성령을 더 받게하는 안수를 하지 않았을까? 바울이 이미 성령을 받은 에베소의 신자들에게 안수를 하여 성령의 역사를 일으켜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해석해야 한다. 

이 내용을 해석하는 방식으로 다음의 두 가지가 제시되고 있다. 첫째, 이방인들의 도시 에베소에도 하나님의 교회가 탄생되었음을 하나님께서 교회 설립자인 사도 바울을 통하여 확증하셨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안수할 때에 성령이 임하였다고 기록되었으나, 사실은 교회가 세워지는데 필요한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났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신자들에게 안수하자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자녀 되었음을 알리는 방언과 복음을 설명하는 예언이 주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즉, 하나님께서 이방인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음을 확증하는 차원에서 바울이 안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약간의 약점이 있다. 바울이 다른 이방인들의 도시에서 교회를 설립할 때에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 바울은 그 어디에서도 방언, 예언 등의 은사를 일으키는 성령을 부르기 위해 안수를 하지 않았고, 바울의 가르침 어디에도 그런 사상이없다. 그러므로 이 방식으로 에베소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안수를 해석하는 것은 완전하지 못하다.

둘째, 당시까지 존재했던 세례 요한의 사상을 따르는 신앙운동의 종결을 선언하는 의미의 안수를 했다고 보는 견해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만 교회를 세운다는 사실을 공식화하는 의미의 안수였다고 보는 견해이다. 정확히 언제까지였는지 알 수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증거하였던 세례 요한의 신학사상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공존했던 과도기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교회설립자인 사도 바울이 세례 요한의 가르침위에 세워진 에베소 공동체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다시 안수하여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만 하나님 백성을 일으킨다는 진리를 확증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이 견해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바울이 세례 요한의 영향 하에 공동체가 형성된 에베소에서만 다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후 안수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안수와 더불어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심으로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만 교회가 세워짐을 확증하셨다. 다른 어느 이방인 도시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다. 바울 사도가 에베소의 새 신자들에게 안수하여 성령의 역사를 일으킨 것은 세례 요한의 시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대로 완전하게 전환되었음을 공식화하려는 의도였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어떠한 경우에도 사도행전 19장의 에베소 교회의 사례가 성령이 반복적으로 임한다는 오순절 성령세례 이론의 근거는 아니다. 로이드 존스가 에베소서 19장의 내용이 오순절 신학자들과 같이 성령의 반복적 임재의 증거 내용이라고 가르친 것은 오류였다. 이 때문에 오순절 성령운동가들이 로이드 존스의 글과 이름을 함부로 언급하고 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