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나님의 자녀 됨의 권세를 누려야 한다는 비성경적 가르침이 유행하고 있다. 소위 '장자권회복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여 많은 교회들의 호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왜 이렇게 한국교회에서는 조금만 부흥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그것이 성경적 근거보다는 오히려 이방종교에 가까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점을 직시하지 않고 실용성만을 절대화시켜서 도입하는지 데이빗 웰스의 표현대로 한국교회는 '신학실종'(No Place for Truth)상태에 빠져 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의 권세를 누려야 한다는 가르침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교회 내에서 유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르침의 뿌리는 기독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미국의 유명한 성공학 강사였던 나폴레온 힐의 가르침을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한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다. 노만빈센트 필의 가르침은 로버트 슐러와 조엘 오스틴으로 계승되었다. 한국교회에서는 조용기 목사의 삼박자축복과 4차원의 영성을 통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위에 언급된 분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목소리만 다를 뿐 내용 면에서는 별반 차이가 발견되지 않는다. 유명 성공학 강사의 가르침이 기독교의 가르침으로 둔갑되어 많은 성도들에게 기독교의 본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복음으로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위의 내용들을 더 알기 원한다면 「기막힌 속임수」(워렌스미스 저/스데반 황 역)와 「긍정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저/전미영 역)을 추천한다).

하나님의 자녀 됨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선포, 믿음, 긍정적인 사고와 말 등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물론 이런 용어들은 성경에서도 발견되지만 성경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선포하고, 믿음을 갖고, 긍정적인 사고와 말을 했어도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그 책임은 믿음 부족, 기도 부족, 헌신과 충성의 부족으로 결국 본인에게 돌아오게 되므로 설교자는 그 책임을 면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체면까지 지켜 드릴 수 있는 기막힌(?) 구조를 갖고 있는 가르침이다. 강조할수록 듣는 자들의 마음 속에는 강한 확신과 희망을 갖게 하지만, 극히 일부 성공한 사람들의 경우를 일반화시켜서 모두가 그렇게 성공할 수 있다고 부추기니 어찌 가혹한 희망고문이 아니겠는가?

몇 년 전 소천하신 온누리교회의 하용조 목사님은 “자녀 됨의 축복”이라는 설교에서 성경에 기록된 복음의 능력과 축복들을 믿음으로 선포하면 이뤄지는 것이 자녀 됨의 특권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이 비밀을 깨닫고 나서 하루에 100번에서 1,000번까지 “내 병은 치유되었다.”고 믿음으로 선포했다고 한다. 믿음으로 선포하다보면 성령님의 놀라운 기름 부으심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간증하면서 “은혜라는 자물쇠에 믿음의 열쇠를 돌리면 놀라운 은혜와 축복들을 받을 수 있다.”고 설교했다. 그러나 그는 1,000번까지 선포하면서 놀라운 성령의 기름부음(?)을 경험했다고 하지만 그 기름부음(?)은 안타깝게도 그의 병을 고치지는 못했다.

과연 성경이 말하는 자녀 됨의 권세가 이런 것일까? 성경이 말하는 자녀 됨의 권세는 이런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계시며 공급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주님을 신뢰하고 이런 것들을 구할 것이 아니라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의 대속죽음으로 구원한 자녀들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 것을 명령하신 것이다. 전장에서 싸우는 군인들에게 보급품은 충분히 공급해 줄 테니까 싸움만 열심히 하라는 것과 똑같다. 전장에서 싸우는 군인이 보급품 걱정에 싸움에는 손을 놓고 있으면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국교회에서는 보급품 걱정에 싸움에는 관심도 없이 밤낮 간구하는 것을 믿음이요 충성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어찌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님은 약속을 주시면서, 그 약속에 근거하여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명령하셨거늘, 이방인들처럼 주께서 필요한 때에 공급해 주실 것을 얻겠다고 믿음으로 선포하며 떼쓰는 것이야말로 주님의 선하심, 그 자녀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려는 아버지를 믿지 못하는 불신과 불순종이 아닌가? 육신의 부모도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굳이 구하지 않아도 미리 다 준비해 놓고, 필요한 시점이 되면 어련히 알아서 준다. 자녀의 선포나 부모에 대한 헌신과 충성의 정도와 상관없이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그렇게 한다.

그런데 하늘의 새와 들의 꽃과 풀도 먹이시고 입히시는 주님께서 구하거나 선포하지 않았다고, 믿음이 부족하거나 헌신과 충성이 부족하다고 주시지 않으실까? 이것이야말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한낱 이방종교의 신으로 격하시키는 신성모독이요, 기독교를 율법종교로 전락시키는 미련한 짓이다. 성경이 정의하는 믿음은 주님을 신뢰하고 맡기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염원의 성취를 믿음으로 착각하여 자녀 됨의 권세를 누려야 한다고 오해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 됨의 권세가 무엇일까? 성경이 정의하는 인간의 문제는 생명의 근원되신 주님께 나오지 못하게 만든 죄에 있다. 결코 가난, 질병이나 인생의 고통이 아니다. 주님은 이런 세속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본성으로는 주님께 나갈 수 없었는데, 성자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아버지와 막혔던 담을 허무시고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내주하시며 우리를 구원의 완성, 성화의 완성까지 인도하여 주신다.

요1:12,13절은 이 자녀 됨은 혈통이나 사람의 뜻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난 것(Born of God),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임을 증거해 준다. 롬 8장은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에게 양자의 영, 성령이 그들 안에 계셔서 육신의 본성을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성령으로 육신의 본성을 죽이고 성령의 인도를 따른다고 교훈하고 있다. 이 성령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는 영이시다(롬8:16). 바울은 롬8:17,18절에서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교훈함으로서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은 결코 세속적인 영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로서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반드시 고난도 받아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그 영광은 모든 피조물들이 고대하는 것으로서, 만유의 회복과 함께 주어질 영광으로 하나님의 자녀들도 속으로 탄식하면서 이 영광의 날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 만나는 모든 고난을 기쁨으로 인내하게 만드는 것이다.

로마서 8:26,27은 성령께서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할 때 탄식하시면서 간구하신다고 했다.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기도가 어떻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성령 하나님의 간구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으로 응답될 것이다(28절). 성화의 완성에 이르는 것도 자녀된 자들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에 의하여 완성된다(롬8:29-31). 롬 8:35-39에서는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음을 반복적으로 확신가운데 교훈하였다. 누구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으며, 구원의 완성까지 보장된 우리의 구원을 취소할 수가 없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됨의 권세다.

혈통과 행위로 자녀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자녀가 되었고, 세상의 고난을 피하기 보다는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이 땅의 고난을 소망가운데 견디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 구원의 완성, 성화의 완성에 이르는 것도 육신의 본성을 갖고 있는 우리의 노력에 달려 있기 보다는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보장하는 영광스러운 하나님 자녀 됨의 권세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비록 늘 죄로 치우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우리의 구원의 완성까지 이르도록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다시 죄에 대항할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 우리의 구원의 완성까지 보장해주신 자녀 됨의 권세에 감사하며 주님의 자녀답게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하여 더욱 힘쓰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놀라운 자녀 됨의 권세, 우리의 구원의 완성까지 보장해주신 아버지의 놀라운 은혜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자녀 됨의 권세를 부패한 육신의 본성을 만족시켜 주기 위하여 율법주의와 이방종교적 가르침으로 격하시키는 다른 복음이 언제쯤 근절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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