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돈 교수 책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서평 4-2


박영돈 교수의 책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4장에 대한 두 번째 서평이다. 

박영돈 교수 방언주장 3>
방언이 계시적인 은사이므로 계시의 완성과 함께 중지되었다는 은사중지론은 틀린 신학

“필자는 아주 보수적인 교회에서 자랐고 오랫동안 보수 신학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필자의 박사 학위 논문을 지도한 교수는 바로 워필드를 뒤이어 은사중지론을 철통같이 고수했던 개핀 교수였다.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은사중지론이 필자를 설득하지는 못했다.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신빙성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말씀의 능력이 신학적인 전통을 세뇌하는 마력에서부터 필자를 자유하게 한 것이다.”(172 페이지)

“(워필드, 개핀의 은사중지론이 틀렸다고 말하면서)우리는 신학적인 전통이나 경험이라는 전제에 의해 휘둘리기를 거부하고 성경 자체가 무엇이라고 말하는지를 들으려는 진지한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172 페이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성경의 어디에도 방언이 사라졌다는 확실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 방언은 계시의 방편으로서 성경적인 계시가 종결됨과 더불어 사라졌다는 주장은 성경적인 지지 기반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173 페이지)


자신이 선 자리를 파괴하는 박영돈 교수

벤저민 B. 워필드(Benjamin Breckinridge Warfield, 1851~ 1921)는 네덜란드의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와 함께 세계 3대 칼빈주의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신학자이다. 워필드는 성경의 권위를 확립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남긴 위대한 개혁신학자이다. 리챠드 개핀(Richard Gaffin, 약 82세)은 29세의 젊은 나이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교수가 되어 일생 동안 개혁신학을 가르치신 위대한 신학자이다.

박영돈 교수가 이 두 사람의 신학을 부정하면서 자신이 보수신학을 추구한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과연 박영돈 교수의 박사논문의 주제는 무엇이었기에 개핀 교수가 통과시켜주었을까? 개핀 교수의 신학의 핵심을 수용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개핀의 지도를 받아 박사학위를 얻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자신의 스승을 속이지 않았다면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개핀 교수의 가르침을 수용하지 않고 박사학위를 속임수로 얻었으면서 오히려 '다행스럽게도 말씀의 능력이 신학적인 전통을 세뇌하는 마력'으로부터 자신이 자유해지는 은혜를 누렸다고 하니, 이제는 웨민 신학교도 믿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만 것처럼 보인다.  

박영돈 교수가 개혁신학을 가르치는 고려신학대학원의 조직신학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조직신학(성령론)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이다. 박영돈 교수는  웨민신학교에서 개핀 교수의 지도하에 박사학위를 얻었으므로 고신의 조직신학 교수가 될 수 있었다. 고신의 조직신학 교수가 되었으므로 고신의 교수직을 배경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인기와 명예를 누리었다. 박영돈 교수가 현재 누리고 있는 사회적 자신들은 미국의 웨민신학교에서 조직신학 성령론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영돈 교수의 책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속에 모호하고 위험한 내용이 많아도 사람들이 무조건 좋게 생각하고 읽어주어 베스트 셀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저자가 고신의 조직신학 교수이고, 미국의 웨민신학교에서 조직신학 성령론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박영돈 교수는 자신에게 박사 학위를 준 바로 그 학교의 신학전통을 거부했고, 자신에게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한 스승의 신학사상도 수용하지 않는 부정직한 사람이었다. 일반적으로 자신을 지도하는 스승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스스로 그 학교를 떠난다. 그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박영돈 교수는 교묘하게 행동하였던 모양이다. 가장 이름이 난 장로교 신학교의 간판을 얻으려고, 특히 그 유명한 개핀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박사학위를 얻었다는 허명을 간직하려고 끝까지 모호한 태도를 보였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웨민에서 개핀 교수의 지도하에  성령론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박영돈 교수는 이후 그것을 배경으로 이후 한국에서 출세가도를 달렸다. 유명한 웨민신학교 박사학위 간판을 달고 마치 자신이 정통 장로교 신학자가 되는 것처럼 행세하였다. 최고의 장로교 신학교인 웨민과 그 학교의 최고의 교수 가챠드 개핀의 지도를 받았다고 자랑하니 사람들이 속았던 것이다. 실제로 박영돈 교수는 웨민과 개핀 교수가 가장 경계하는 위험한 사상을 한국 교회에 전파하면서 그 대가로 성공을 누렸다. 박영돈 교수와 유사한 사람이 총신에도 있었다. 지금 대구에서 목회하는 권성수 교수이다. 그도 웨민신학교에서 리챠드 개핀 교수의 지도를 받아 박사학위를 했으나 성령론에서 웨민과 스승 개핀 교수의 사상과는 매우 다른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벤저민 B. 워필드(Benjamin Breckinridge Warfield, 1851~ 1921)


은사중지론이란?

‘은사중지론’이라는 신학은 모든 성령의 은사가 중지되었다는 신학이 아니다. 일반 독자들은 이것을 모르므로 마치 모든 은사가 중지되었다는 주장으로 믿고 무조건 거부하려고 한다. 개혁신학의 중심에 있는 은사중지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보내신 최종적 구원계시임을 증거하는데 사용된 특별한 은사들이 중지되었다는 사상이다.

신약의 그리스도의 교회가 출범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라는 진리가 강력하게 증거되어야만 했다. 일반적은 전도의 방법으로는 어려웠으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특별한 방법으로 사도들과 제자들의 전도에 직접 관여하시고 도우셨다. 유대교의 살인적인 핍박을 당하면서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시어 각종 병으로 시달리는 자, 소경으로 태어난 자, 앉은뱅이로 태어난 자, 심지어 이미 죽은 사람까지도 살리시는 기적을 일으키셨다.

이러한 일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워자이심을 증거하는 특별계시 이적이었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일들이 자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임을 증거하는 특별계시 이적임을 미리 설명해 주셨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7)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눅 7:19-22)

개혁신학의 핵심인 은사중지론은 이렇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구원자라는 특별계시를 선포하는 이적을 일으키는 은사가 성경 66권과 교회설립이 완성된 후 종결되었다는 신학이론이다. 실제로 성경시대 이후 그 어떤 탁월한 교회지도자도 사도들의 시대에 나타났던 그런 이적을 일으키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차원에서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으나, 신약 교회를 설립하였던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을 통해 나타났던 특별한 이적들이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고 할 증거는 아직 어디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예언과 은사중지론

또한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사람들에게 성령의 감동을 주심으로 나타난 특별계시의 말씀인 예언도 종결되었다. 구약 시대에는 모세, 예례미야 등의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이 주어졌고, 신약시대에는 사도들과 소수의 사도적인 사람들을 통해 예언이 임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성령의 감동하심'을 주시어 특별계시를 받아서 전하게 하셨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사도들 외에도 예언하였던 사람들이 초대교회에 한시적으로 일했다. 아볼로와 빌립의 딸들과 같은 선지자(예언 은사자)들을 통해서 종종 특별계시가 주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신약의 선지자들은 성령의 조명으로 신구약 계시를 그리스도 중심으로 더 먼저 이해하여 아직 알지 못한 다른 신자들에게 가르치는 교사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이 깨달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예언, 즉 가르치는 말을 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당시 예언의 은사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권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롬 12:6)


방언과 은사중지론

예언 외에도 하나님은 방언의 은사를 통해 직접 설교하시기도 했다. 예언이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을 통해 받는 자들에게 익숙한 언어와 글로 주어진 것에 반해 방언은 받는 자들에게 생소한 이방인들의 외국어로 주어졌다는 점에서 달랐다. 하나님이 직접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하시므로 회개하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게 만든 성경의 방언이 유대인들에게 생소한 이방인들의 외국어로 주어졌다는 사실은 당시 상황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지는 일이었다.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고전 14: 21,22)

바울의 이 말은 이사야 28장의 내용을 간접적으로 인용하는 내용이다. 계속 불순종하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생소한 언어를 구사하는 바벨론 군대를 보내시어 심판하시겠다고 예언하신 내용이 신약의 방언은사를 설명하는데 그대로 인용되었다. 과연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낯설고 생소한 이방인들의 외국어로 친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하시는 방언의 은사는 곧 불순종하는 유대인들이 버려졌다는 심판선고와 같았다. 반대로 순종하는 이방인들이 하나님 백성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특별한 표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방인들의 언어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하시는 방언이 나타날 때, 유대인들은 두려웠으므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역사가 많이 나타났다.

이후 하나님이 이방인들의 언어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하는 성경의 방언의 은사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한 몸을 이루어 교회를 세우게 되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국 성경의 방언의 은사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하나 되는 신약의 교회를 탄생시키는데 필요했던 한시적인 특별계시와 관련된 은사였던 것이다. 

이후 곧 성경 66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도 완성되었으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하나님께서 친히 설교하시는 방언은사도 더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한 몸을 이루는 신약의 교회도 설립되었으므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유대인들이 버리시고 복음에 순종하는 이방인들이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음을 보이는 방언의 은사가 더 있을 필요도 없어졌다. 그래서 성경시대 이후 방언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리챠드 개핀(Richard Gaffin, 약 82세)


방언은 불신 유대인들을 향한 심판의 표적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고전 14:22)

현대의 방언파 은사주의자들은 위 말씀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교회에 안 다니는 이웃집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교회 안다니는 이웃집 사람들 앞에서 현대의 거짓 방언을 아무리 부지런히 해도 그들이 믿고 교회에 나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비웃음을 당하는 일들만 일어난다. 근본적으로 이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여 나오는 해석이다. 여기서 말하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완악한 유대인들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 이방인의 언어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친히 설교하시는 방언의 은사가 자신들에 대한 준엄한 영적인 심판선고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아듣는 말로 주어지는 예언은 이미 믿는 사람들에 큰 유익을 주시는 말씀이었다.


방언과 교회사

성경의 방언이 이방인의 언어로 하나님이 친히 복음을 설교하시는 특별한 은사였다는 사실이 성경시대 이후에 활동했던 오리겐, 어거스틴의 저술에서 나타난다. 오리겐과 어거스틴 등의 저명한 초대교회의 선생들은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성경의 방언이 지금은 나타나지 않는다”라고 기록했다. 성경의 방언은 성경시대 이후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계속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종교개혁 시대에도 방언 문제는 전혀 논란이 되지도 않았다. 성경의 방언이 나타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칼빈과 루터 등에게 정신병자로 여겨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통 교회사에서 전혀 나타나지도 않았고 논란되지도 않았던 방언이 이단들이 일으킨 1906년의 ‘아주사 거짓 부흥’을 통해 다시 등장했다. 이미 성령받고 구원을 얻은 성도에게 제 2의 축복으로서 다가오는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 무한리필되는 성령재세례의 증거로서 방언이 임한다는 이단사상이 등장했다. 그러한 이단사상이 오순절 운동(순복음 교단)의 신앙의 핵심이 되었고, 이후의 은사주의, 빈야드 운동, 신사도운동 등으로 계속 확산되고 있다.


웨민 신앙고백서와 은사중지론

개혁신학의 핵심인 은사중지론은 매우 성경적이고 정상적인 신학이다. 이것을 부정하면 반드시 사이비 신앙으로 빠지게 된다.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웨민 신학교에서 박사를 받았고, 고신에서 조직신학 학과장을 하고 있는 박영돈 교수라도 절대 예외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고 구세주이심을 설명하는 특별계시와 관련된 은사들은 성경 66권으로 완성되고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 1:1,2)

성경은 최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특별계시가 종결되었음을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다. 이 사실은 성경 66권과 함께 특별계시를 전하고 드러내는데 사용된 모든 은사가 함께 종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별계시를 전하거나 특별계시를 보충하는 말씀의 은사와 이적들이 다 사라졌다는 것이다.

“주께서는 여러 시대에 여러 방식들로 자신을 계시(啓示)하시고 그의 교회에게 그의 뜻을 선언하기를 기뻐하셨고, 후에는 그 진리를 더 잘 보존하고 전파하시기 위해, 또 육신의 죄성과 사탄과 세상의 악의(惡意)에 대항하여 교회를 더 굳게 세우시고 위로하시기 위해 그 계시하신 내용을 온전하게 기록되게 하셨다. 이것이 성경을 가장 필요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그의 뜻을 계시하시던 이전의 방식들이 지금 중지되었기 때문이다.”(웨민신앙고백서 1-1)

그래서 장로교 신앙의 조상들은 후손들이 올바른 믿음의 길로 가도록 이러한 내용의 신앙고백서를 만들어서 우리들에게 전해주었다. 이전까지 여러 방식으로 계시를 주시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심으로 모든 계시를 완성하시었다. 그래서 계시를 드러내는데 사용되었던 특별한 은사들, 즉 예언, 방언(통변), 은성, 환상, 현현, 특별이적 등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선언하였다.

이것이 개혁주의 장로교 신학의 핵심이다. 모든 장로교 목사들과 장로들은 임직시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가르침을 성경에 준하는 것으로 믿고 가르치겠느뇨?"라는 질문을 공적으로 받은 후 반드시 그리하겠다고 공적으로 선언하는 것을 확인하고 안수를 주고 있다. 웨민 신앙고백서를 부정하면 장로교회에서는 목사, 장로가 될 수가 없다.


장로교 신학의 근간을 부정하는 박영돈 교수

그런데 개혁주의 교단의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학과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영돈 교수는 바로 이와 같은이 중대한 장로교 신학의 핵심을 부정한다. 

“필자는 아주 보수적인 교회에서 자랐고 오랫동안 보수 신학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필자의 박사 학위 논문을 지도한 교수는 바로 워필드를 뒤이어 은사중지론을 철통같이 고수했던 개핀 교수였다.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은사중지론이 필자를 설득하지는 못했다.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신빙성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말씀의 능력이 신학적인 전통을 세뇌하는 마력에서부터 필자를 자유하게 한 것이다.”(박영돈,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172 페이지)

박영돈 교수가 은사중지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곧 지금도 예언이 있다고 가르친다는 것이고, 지금도 방언이 있다고 가르친다는 것이고, 지금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특별한 이적이 일어난다고 가르친다는 것이고, 환상이나 음성, 또는 성령이 마음에 직통으로 심어주는 인상이나 이미지도 믿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영돈 교수의 책 <일그러진 성령의 얼국>에서 그러한 내용이 나타나고 있다. 다음은 박영돈 교수가 지금도 성령이 직통으로 주시는 예언의 싸인, 즉 현대 은사주의의 예언 사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보여주는 내용이다. 박영돈 교수는 현대 은사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성령이 주시는 예언이 지금도 있으니 잘 분별하여 해석해야 한다고 한다.

“성령이 떠오르게 하신 인상과 메시지는 인간이 잘못 이해하고 해석하여 잘못 전달 수 있었다. 그렇기에 바울은 철저한 검증과 분별을 명한 것이다.”(박영돈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36 페이지)

“그래서 바울은 한 사람의 말만 듣지 말고 두세 사람이 예언하게 하고, 다른 이들은 그 말을 분별하라고 했다(고전 14:29). 이 말은 예언의 진정성을 검증해 보고 잘 분별하여 참과 거짓을 가려내라는 말이다. 그들의 예언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성경의 말씀에 의해 항상 점검받아야 했다. 그러므로 성령 말씀보다 열등한 권위를 가진 것이었다.”(박영돈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36 페이지)

다음은 박영돈 교수가 자신의 책에서 현대 은사주의자들처럼 현대의 방언 기도를 고린도 교회에서 나타난 기도하는 비밀언어(하늘언어)의 방언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고린도교회에 나타났던 방언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계시와는 정반대로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인데, 어떻게 인간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계시가 될 수 있었겠는가?”(박영돈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154 페이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방언은 고린도전서에 기록된 방언의 유형에 가깝다. 고린도전서 12-14장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이 방언의 특성은 특정한 지방의 언어나 외국어가 아니라 우리의 영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종의 신비한 언어라는 점이다. 통역이 없으면 다른 사람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방언을 하는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바울은 방언으로만 기도하면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전 14:14)라고 하였다.”(박영돈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175 페이지)

다음은 박영돈 교수가 현대의 은사주의자들처럼 성령의 치유를 일으키는 전문적인 치유집회를 시도할 수 있고, 마땅히 그리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내용이다.

“잘못된 은사 운동에 대응하는 더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은 초자연적인 은사를 모두 부정함으로써 건전하게 은사 추구를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 성장을 위해 건전하게 은사를 활용할 수 있는 성경적인 지침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치유집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비판과 정죄로 일관하기보다 성경적인 치유 신학을 정립하고 바람직한 치유 사역의 모델을 제시해 주는 것이 더 긍정적으로 문제를 대처하는 방안이다.”(박영돈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103 페이지)

“보수교회는 초자연적 은사와 기적은 초대교회에만 한정되어다는 신학적인 전통에 갇혀 오랫동안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고정된 신학의 틀에 맞추어 성경을 해석해 왔다. 카이퍼와 워필드 같은 대신학자들의 권위가 실린 이런 견해는 마치 전통의 상징인 양 보수 교회를 지배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자의적이고 성경 어디에도 지지를 받지 못한다. 초자연적인 은사가 계시나 사도적 권위와 연관된 것이기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는 성경이 참으로 그렇게 말하는지를 냉철하게 살펴보기보다 오히려 워필드 같은 학자의 견개를 무분별하게 답습한 것이다.”(박영돈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102 페이지)

“그동안 보수 교회는 신학적인 편견과 교만으로 성령의 역사하심과 그 능력의 나타남을 심대하게 방해해 온 것이 아닌지 깊이 자성해야 한다.”(박영돈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102 페이지)  

 

박영돈 교수의 신학은 개혁신학의 가장 중요한 문서인 웨민 신앙고백서와 길을 달리하고 있다. 이 사실은 박영돈 교수가 개혁신앙을 발전시키고 계승하여 우리에게 전해 준 역사적 인물들, 즉 칼빈, 청교도들, 존 오웬, 찰스 스펄전, 조나단 에드워즈 ... 등의 위대한 개혁주의 신앙의 스승들의 가르침을 부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예장 고신의 신앙과 신학과도 일치하지 않는 다른 신학을 발전시켰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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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