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 이야기 1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swards, 1703~1758)에 대한 이야기를 틈틈이 써 보려고 한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1차 대각성 운동(The First Great Awakening)의 중심인물이다. 너무나 중요한 일을 이끌었던 유명한 인물이니 연구해 보면 얻을 것이 많을 것이다.

요즘 한국교회의 화두는 부흥이다. 한국교회가 성장의 한계점에 도달한지 오래되었다. 정체상태에서 머물고 있는 한국교회가 쇠퇴하고 있는 징조들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부흥에 대한 향수가 강하게 일어나고 있고, 부흥의 원리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더 뜨거워지고 있다.

2차 대각성의 중심 인물 찰스 피니(Charles G. Finney, 1792-1875)는 원죄의 효력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의 의미를 부정하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칭의에 대해서 부정하는 등의 심각한 이단성을 가졌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찰스 피니를 중심으로 진행된 2차 대각성의 의미를 신뢰할 수가 없다. 찰스 피니는 부흥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산물이라고 보지 않았다. 부흥을 일으키는 적합한 수단들을 인간이 적절하게 활용하면 부흥이 일어났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더욱 더 찰스 피니의 부흥운동을 신뢰할 수가 없다. 찰스 피니는 부흥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부흥은 기적도 아니고 기적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적절한 수단들을 적용함으로 발생하는 다른 어떤 효과들처럼, 부흥은 순수하게 합법적인 수단들을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서 얻어지는 철학적인 결과이다.”1)

“나는 부흥이 적절한 수단들을 바르게 사용함으로서 얻어지는 결과라고 믿는다. 부흥을 일으키기 위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수단들은 반드시 부흥을 일으키는 자연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2)

자연히 조나단 에드워즈를 중심으로 일어난 1차 대각성 운동에 대해 더욱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조나단 에드워즈라는 한 인물에 대한 많은 연구 작업이 활발하게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에드워즈가 어거스틴과 칼빈의 신학 작업을 조합하여 집대성한 탁월한 지성의 소유자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성령에 대한 경험과 부흥에 관하여서는 에드워는 절대지존의 자리에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독교 2,000년 역사 속의 그 어떤 유명한 인물도 성령의 역사와 부흥에 관해서는 에드워즈를 능가할 수가 없다고도 한다. 

대체 에드워즈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우리는 에드워즈를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해야 그를 좀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을까? 이미 우리에게 알려진 에워즈에 대한 많은 내용들은 과연 정확한 사실들일까?

이안 머레이(Iain H. Murray, 1931- )가 쓴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을 다루는 책 <Jonathan Edwards: A New Biography>의 서문을 보니 지금까지 적어도 16명 이상의 전문가들이 에드워즈의 생애, 목회, 사상을 기술하고 설명하는 전문적인 책들과 논문들을 썼다.
 

이안 머레이(1931 ~ )

에드워즈에 대하여 최초의 책을 쓴 사람은 사무엘 홉킨스(Samuel Hopkins, 1721-1803)이다. 그는 에드워즈와 동시대의 사람이었고, 에드워즈의 집을 방문하여 여러 날 동안 머물면서 교제하기도 했다. 홉킨슨는 에드워즈에 대해 자신이 목격하고 아는 사실들을 엮여서 1765년에 <Life and Character of the Late Reverend Jonathan Edwards>를 출판했다. 그러나 이 책은 에드워즈에 대한 중요한 내용들을 잘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분량이 너무 적어 에드워즈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을 전달하기 못하는 아쉬움이 있는 작품이었다.3)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을 다루는 두 번째 책 <Life of President Edwards>이 에드워즈의 증손자 스리노 드와이트 에드워즈( Sereno Edwards Dwight, 1786-1850)에 의해 1829년에 출판되었다. 아무래도 이 책의 저자가 에드워즈의 증손자였으므로 에드워즈에 대한 더 많은 자료를 담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이후 계속 나타난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과 생애를 기술하는 많은 책들의 기본적인 흐름과 내용들이 대부분 이 책에 의존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4)

어떤 사람이 에드워즈의 신앙과 사상을 격찬하는 내용의 책을 출판하면, 그 후에 또 어떤 사람이 그 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지금까지 총 16명의 전기 작가들과 신학자들이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책들과 논물들을 출판했다. 가장 먼저 나온 책은 사무엘 홉킨스이 에드워즈가 죽고 7년이 지난 1765년에 출판한 <Life and Character of the Late Reverend Jonathan Edwards>이고, 가장 최근에 나오는 책은 조지 마스댄(George M. Marsden)이 2003년에 출판한 <Jonathan Edwards. A Life>이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 신학이 후대의 교회사가들과 신학자들에게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에드워즈의 신학과 사상을 평가하는 후대의 전문가들의 의견과 입장은 말 그대로 극과극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남긴 에드워즈에 대한 극찬하는 말들에 대해서는 우리들이 이미 잘 알고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소개하지 않는다. 대신 에드워즈의 사상과 신학을 평가절하하면서 악평하는 몇 사람의 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윌리엄 엘러리 체닝(William Ellery Channing)은 철저한 칼빈주의자였던 에드워즈의 신학과 사상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칼빈주의는 이미 정오를 지나 기울어져가는 태양과 같고, 다시는 떠오르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5)

올리버 웬델 홈름즈(Oliver Wemdell Holmes)도 에드워즈의 사상을 평가절하는 차원에서 “만일 에드워즈가 몇 백 년 후에 태어나서 더 많은 자유의 공기를 마시면서 살았다면, 그가 이전 시대의 미개하고 야만적인 주장들을 설교를 통해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6)

올라 윈슬로(Ola Winslow)도 에드워즈의 신앙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에드워즈는 낡아빠진 구식 신학체계에 갇힌 죄수였고, 그의 정신적 결박은 비극적 동정심(a tragic pity)을 유발한다.”라고 말했다.7)

패리 밀러(Perry Miller)도 “에드워즈의 인생은 비극이었다 ... 자신의 그릇된 신앙 때문에 에드워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미쳤다.”라고 평가했다.8)

허버트 슈나이더(Herbert W. Schneider)도 “에드워즈의 탁월한 철학적 인싸이트(insight)는 그의 그릇된 신앙으로 인해 망해버렸다. 에드워즈는 청교도 신앙의 원리를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무익한 일이지를 알지 못했다.”라며 에드워드의 부흥과 신앙 사상을 악평했다.9)

그 동안 우리는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칭찬과 숭배 일색의 말들에 대해서만 익숙하게 들었다. 동시에 너무도 많은 전문가들이 에드워즈를 악평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몰았다. 우리가 존경하는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악평하고 조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에드워즈를 한 없이 존경하고, 또한 왜 수 많은 사람들이 에드워즈를 미워하고 극렬하게 싫어하고 있을까?

그 해답은 오직 한 가지일 것이다. 에드워즈를 평가하는 각 사람의 신앙이 원인이다. 에드워즈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에드워즈가 글을 통해 신앙을 더 배우고자 노력하며 그를 칭찬한다. 그러나 에드워즈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가 남긴 글을 지극히 싫어하고 그의 신앙과 사상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대한 부흥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과 멸시를 당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 6:26)

 

--- 각주 ---

1)Charles G. Finney, Lectures On Revival (Dickinson, ND: RevivalPress.net, 2016), p.9.
2)앞의 글.
3)Isian H. Murry, Jonathan Edwards: A New Biography (Edinburgh: Banner of Truth Trust, 1996)의 “Introduction: On Understanding Edwards”
4)앞의 글.
5)앞의 글.
6)앞의 글.
7)앞의 글.
8)앞의 글.
9)앞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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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