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웅 교수의 작품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론」은 한국 학생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귀한 책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에드워즈의 약점을 간과하거나 지적하지 못한 부분도 있으나 이것으로 이상웅 교수의 작품을 폄하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이 세상에 완전한 책은 하나님이 지으신 성경뿐이다. 에드워즈에 대해 관심이 있는 목회자들, 특히 총신의 동문들과 후배들은 이상웅 교수의 작품을 발판으로 삼아 더욱 더 도약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미 이상웅 교수의 책을 중심으로 에드워즈의 성화 사상을 살펴보았다. 에드워즈의 성화 신학의 근본 바탕은 칼빈주의 신학이다. 그러나 에드워즈가 성령의 특별한 역사와 체험을 성화와 연결시켰고, 특히 입신 등의 신비한 현상들을 경험한 자기 부인 사라를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성화의 모델이라고 가르쳤다. 그 때문에 오늘 날 에드워즈의 부흥이 정통교회뿐 아니라 신비주의-이단들도 동시에 사모하는 부흥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신비주의-이단들도 존경하는 에드워즈의 어떤 부분을 우리가 철저하게 비판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정통과 이단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사탄이 에드워즈를 통해 정통 신앙을 훼방하는 술책이다. 필자는 신사도운동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은 이상한 행위가 비판 받으면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대각성을 공부해 보십시오. 성령의 역사가 귀신의 역사처럼 나타나기도 합니다. 자신의 편협한 신학과 교리로 성령의 역사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열매를 보고 판단하셔야 합니다!”

‘대부흥’, ‘대추수’를 자주 입에 담는 이단들의 허황된 부흥 이론의 근거와 모델은 안타깝게도 에드워즈의 대각성이다. 그런데 이단들은 에드워즈의 부흥의 열매가 실제로 어떠했는지에 대해 바로 알려는 마음이 없어 보인다. 단지 자신들의 거짓 신앙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에드워즈의 부흥을 이용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통 교회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에드워즈의 부흥에서 나타난 1)아주사 거짓부흥의 요소, 2)오순절 운동부흥의 요소, 3)은사주의 부흥운동의 요소, 4)빈야드 부흥운동의 요소, 5)신사도 부흥운동의 요소와 유사한 것들을 철저하게 거르고 비판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이단들이 우리가 에드워즈의 이상한 부분을 자기들처럼 인정하고 좋아하는 줄로 착각하고 슬그머니 함께 묻어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참 부흥과 거짓 부흥의 차이

필자는 사도행전의 참 부흥과 이후 역사 속에서 일어난 마귀의 거짓 부흥의 차이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1. 사도행전의 참 부흥에서는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선포하는 이적들이 일어났고, 그 결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나 역사 속의 많은 거짓 부흥운동은 대부분 이미 신앙고백하는 사람들 속에서 큰 의미없는 특이한 현상들이 많이 일어난 이상한 축제였다. 이미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령의 더 부어짐'을 경험한다는 무질서한 현상들이 많이 일어났다.

2. 사도행전의 참 부흥에서는 부흥으로 인해 교회가 파괴는 현상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교회가 더욱 더 말씀으로 견고해졌다. 그러나 이후 역사 속의 거짓 부흥에서는 부흥이 일어나면서 동시에 교회를 파괴하는 특징을 보였다.

3. 사도행전의 참 부흥은 세상에도 거룩한 영향을 미쳐 하나님이 불신자들에게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 되게하였다. 그러나 이후 역사 속에서 일어난 거짓 부흥들은 세상의 교육, 정치, 노예제도, 도덕, 범죄, 술집 추방 등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가장 중요한 교회와 하나님에 대한 세상의 경외심을 일으키지 못했다.

 

에드워즈 부흥과 사도행전 부흥

이 세 가지 거짓 부흥의 특징과 에드워즈의 부흥의 특징을 비교해 보자.

1. 에드워즈의 부흥에서도 성령의 이적(?)들은 이미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많이 일어났다. 1742년 1월, 사라의 입신과 많은 사람들이 특이한 체험을 하게 만든 외부 강사 사무엘 뷰엘(Samuel Buell)이 설교하고 간 후 에드워즈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뷰엘의 사역이 엄청난 결실을 맺었다. 사람들은 크게 감동을 받았고 집회에 참석했던 다수의 사람들 울부짖었고, 그리고 집회가 끝난 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계속 집회 장소를 떠나지 않았다 ... 온 도시에 밤, 낮으로 지속되는 놀라운 흥분(commotion, 소동)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부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주로(principally) 이미 믿는 신앙고백자들 사이에서 일어났다.”1)

이 때는 대각성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던 때이다. 이 내용은 대각성 비판자가 쓴 글이 아니고, 핵심 주도자이고 최고 옹호자였던 에드워즈 본인이 쓴 글이다. 그 점을 감아하고 읽어야 한다. 목회자 후보생 뷰엘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감동받아 울부짖었고, 밤, 낮으로 놀라운 소동이 일어났다고 하였다. 대체 무슨 일이었을까? 바로 그때 사라가 수요일 아침, 수요일 오후, 목요일 아침에 연속 세 번이나 입신하는 일이 일어났다는 점을 생각하면, 에드워즈의 ‘밤, 낮으로 일어난 놀라운 흥분’이라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에드워즈는 사라의 황홀한 입신 체험에 대해 일체 거부감이 없었고, 오히려 기뻐하며 감사하였다. 그런데 사라의 입신 등의 신비현상 체험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유사한 그런 종류의 체험들은 노스햄프턴 교회와 그 도시에 무슨 영적인 유익을 주었는가? 사라는 계시를 받는 여선지자였었는가? 아니면 사라가 완고한 불신자였으므로 예수 믿게하시려고 하나님이 그런 특별한 이적을 행하신 것인가? 혹시 사라가 다른 여전도회 회원들 가운데서 더 높은 영적인 권위를 행사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의미와 유익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일들은 주로(principally) 이미 믿는 신앙고백자들 사이에서 일어났다.”(에드워즈)

그런데 에드워즈는 그런 일들이 이미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많이 일어났다고 했다. 바로 이런 점이 역사 속에서 벌어진 많은 거짓 부흥운동들의 특징과 유사하다. 

 

2. 에드워즈의 부흥은 기존의 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세우기보다, 기존의 교회를 파괴하고 혼란에 빠지게 만드는 부작용을 많이 동반했다. 탁월한 에드워즈 전기 작가 이안 머레이(Iyan H. Murray)는 대각성 직후 1742-43년의 뉴잉글랜드 교회들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목회자들이 통제되지 않는 광신주의 성향을 제어하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에드워즈의 친한 친구 데이비드 홀(David Hall)목사의 교회에는 98명의 새 신자들이 몰려왔으나, 그가 거짓된 불(wild-fire)을 통제하려고 시도하자 그들 대부분이 다시 떠나버렸다.”2)

에드워즈의 부흥이 정말 그렇게 위대한 성령의 부흥이었다면, 그 어디에서도 이런 나쁜 일들에 대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이런 나쁜 이야기가 너무 많다. 이안 머레이의 또 다른 이야기를 보자.

“노스 스토닝턴(North Stoninton)에서 목회하면서 에드워즈와 함께 대각성 운동을 이끌었던 죠셉 피쉬(Joseph Fish) 목사에게 일어난 일은 더욱 더 심각했다. 격렬한 흥분(violent agitations), 울부짖음(outcries), 무아지경(ecstasies), 환상(visions), 최면(trances, 입신), 내면의 계시(inward impressions) 등에 집착하는 신자들이 갑자기 그의 교회로 몰려왔다. 피쉬 목사는 그 사람들이 자신들의 체험을 진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고 착각하고 있고, 결국 그들이 그것과 함께 망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그가 이 문제에 대해 설교하기 시작하자 거짓된 불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던 그 사람들 대부분이 다시 교회를 떠나버렸다. 피쉬 목사는 큰 슬픔과 탄식 가운데 점점 시들어가는 교회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3)

“1742-43년 사이에 일어난 교회 파괴(교회 분열) 현상은 매우 흔한 일이었고, 특히 동부 코넥티컷에서 더욱 더 심각했다. 그 결과 거의 100개 정도의 갈라져 나온 교회들이 생겨났다.”4)

사도행전의 부흥의 이야기에서는 부흥으로 인해 교회가 망가지는 현상을 조금도 찾을 수 없다. 교회를 망가뜨리면서 새로운 부흥을 일으키는 에드워즈 부흥의 성령이 정말 성령이었을까? 에드워즈와 대각성 옹호자들은 사도행전의 부흥에서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고 하며 의심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부흥이 일어날 때, 인간적인 욕심으로 성령을 속이고 모욕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심판을 받은 이야기는 있어도 부흥을 주도하는 성령에 의해 교회가 망가졌다는 이야기는 사도행전에 없다. 한쪽에서는 성령이 교회를 세우고, 또 한쪽에는 마귀의 영들이 교회들을 망가뜨리는 일도 함께 일어났다는 내용이 사도행전에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부흥이 끝나갈 무렵에 이런 나쁜 일들이 생겼고 에드워즈가 부흥운동을 시작할 때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사실과 다르다. 1741년 10월 21일, 엘리저 휠룩(Eleazer Wheelock)은 코넥티컷의 발런타운에서 열린 한 부흥집회에 참석한 후 자신의 일기에 다음과 기록했다.

“이 도시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그 어떤 곳보다 사탄의 발자국이 많다. 어떤 사람들의 열성은 너무 지나치다.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환상, 계시, 그리고 상상으로부터 나온 강력한 암시(impression)에 대해 많은 말들을 한다.”5)

오죽 이상한 일들이 많았으면 대각성 집회 속에 '사탄의 발자국'이 많다고 했을까? 그 동안 에드워즈를 연구하여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된 분들이 에드워즈의 이런 부분에 대해 분명하게 지적하고 비판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지식과 명성이 더 높아지려면 가능한 에드워즈를 하늘에까지 올려놓아야 더 좋기 때문이었을까?

“에드워즈 부흥의 이런 부분은 정통 교회의 입장에서는 인정하지 못합니다!”

에드워즈 연구자들이 앞장서서 이렇게 분명하게 선을 긋지 않고, 대신에 학회, 출판, 강의, 논문, 세미나 등 여러 모양으로 자나 깨나, 밤이나 낮이나 에드워즈를 칭송하기만 하였다. 그래서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에드워즈를 좋아하는 이단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손을 내밀고 있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에드워즈를 우리도 너무 너무 좋아한다! 거짓 방언하는 은사주의 개신교 사람들과 은사주의 천주교인들이 종교일치운동을 시작했던 것처럼, 우리도 에드워즈를 통해 하나가 되어보면 어떨까?”

 

3. 사도행전의 참 부흥은 불신 사회에도 거룩한 영향을 크게 미쳤다. 그러면 에드워즈의 부흥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사회, 경제, 도덕, 철학, 정치, 교육 ... 너무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지금 전 세계의 불신자들이 에드워즈를 거의 성인이나 또는 하나님의 복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으로 여기고 배우려고 한다. 불신자들이 보고 있는 다음의 영상을 보라!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과 역사에 대한 일반적인 영향이 아니다. 지금 신천지 이만희도 나름 큰 영향을 한국 사회에 미치고 있다. 정치에도, 경제에도, 도덕에도, 가정들에게도 ... 이런 분야에 대한 영향보다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구원 얻게 만드는 거룩한 영향을 미쳐야 참된 부흥일 것이다. 하나님과 복음이 에드워즈의 부흥을 통해 얼마나 세상에 아름답게 전파되었을까? 또 다른 대표적인 에드워즈 전기 작가 조지 마스덴이 에드워즈의 대각성이 끝나고 몇 년 되었을 때의 상황에 대해 기술한 내용을 보자!

“특별히 뉴잉글랜드의 교회의 상황은 완전히 바닥을 치고 있었다. 대각성 운동에 대한 격렬한 논쟁은 교회들을 분열시켰다. 사람들은 목회자들을 존경하지 않고 경멸했다. 신자들에 대한 교회의 신앙훈련은 무너졌다. 거짓된 신자들(광신자들)은 사탄이 만들어 낸 거짓된 속임수들에 열광하였다. 사람들은 참된 경건한 신앙을 멸시하였다. 모든 종류의 사악한 죄악들이 최고조에 이르렀다.”6)

 

앞서간 에드워즈 연구자들은 에드워즈의 부흥의 문제점들, 즉 이단성 시비거리들을 날카롭게 지적했어야만 했다. 그랬으면 에드워즈가 큰 영웅이 되어도 예수 그리스도가 손해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에드워즈 연구로 명성을 떨친 많은 분들은 계속 에드워즈 칭송에만 열중하였다. 지금도 이단들이 좋아하는 에드워즈의 이상한 특징들을 지적하지 않는다. "그때는 부흥이 일어나면 대게 그랬어!"라며 가벼이 넘어가 버린다. 사탄의 장난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었던 일들을 어찌 그리 가벼이 여기는 것인지 ... 그래서 에드워즈를 매개로 정통과 이단이 화합하는 장이 열리고 있다. 그 일을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한 원조는 로이드존스이다. 로이드존스가 어떻게 에드워즈로 이단과 정통의 경계선을 허물었는지 다음에 살펴보자!

 

--- 미주 ---

1)The Works of Jonathan Edwards(1.lix). Iain H. Murray, Jonathan Edwards: A new Biography (Calisle, PA: The Banner of Truth Trust, 1996), 194.

2)Murray, 220.

3)Ibid, 220.

4)Ibid.

5)Ibid., 217.

6) George M. Marsden, Jonathan Edwards: A Life (New Haven,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3),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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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