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 6:13)

주기도문의 여섯 번째 간구(The Sixth Petition)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이다. 이 간구의 위치는 우리의 청원(We-Petition) 마지막에 있다. 우리의 청원(We-Petition) 다섯 번째 청원에서 다루었던 용서의 간구는 지난 과거의 죄의 해결함을 위한 것이지만 시험에 들지 않기를 원하는 간구는 미래에 범할 수 있는 죄의 예방이고, 악에서 구하옵소서는 현재 당하고 있는 악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는 간구이다.

우리를 위하는 세 가지 간구 가운데 첫째 간구인 매일 양식(Daily Bread)은 육적인 것임에 대하여, 둘째 간구는 매일 용서(Daily Forgiveness)이고, 셋째 간구는 시험과 악으로부터 매일 보호(Daily Preservation)를 원하는 것이다. 마태와 누가의 두 주기도문을 비교해 보면 누가 복음에서 하나님에 관한 기원 중 셋째 기원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가 생략 되어 있다.

우리를 위한 간구에 있어서도 누가 복음은 셋째 간구의 하반절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가 생략 되어 있다. 즉 전자는 자율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는 반면, 후자는 타율적인 면이 보여진다. 죄 혹은 시험 (Temptation), 즉 악은 우리에게서 매일 제거 되어져야 하는 요소들 이다.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은 주기도문의 여섯째 기도에 우리가 무엇을 구하는가? 에 대하여 그 답을 이렇게 정의한다. "주기도문의 여섯째 기도는 곧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는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혹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아니하게 하시거나 시험을 당할 때에 보호하여 구하옵소서 하는 기도이다" 라고 했다.

 

이제 우리의 영혼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관관계를 밀접하게 가지고 있는 시험과 악에 관한 간구에 대해 더욱 구체적인 접근을 해 본다.

 

1) 주기도문의 넷째 간구와 다섯째 간구 사이, 또 다섯째 간구와 여섯째 간구 사이를 접속사 '그리고'(Kai; 카이)로 연결하고 있는데('그리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 다섯째 간구가 자율적인 것 즉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한 용서라면, 여섯째 간구는 타율적인 것 즉 외부로부터 오는 "시험이나 악"에 대한 간구라는 점에서 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매일 죄를 용서하심과 구원함에 대한 것이다. 매일 사단과 악에서 구원해 주십사는 간구는 자율적이든 타율적이든 인간을 구원함에 있어서 계속적이며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것 때문이다.

둘째 : 다섯째 간구는 구원의 서정(行定)에서 정의(Justification)의 소극적인 측면과 연결 된다면 여섯째 간구는 구원 서정에서 성화(Sanctification)에 관계된다. 이 두 가지는 구원 얻은 이후의 신자의 삶에서 결코 분리할 수 없고 매일 매일 계속 된다는 것을 구원의 서정에서 교리화 하여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 다섯째 간구는 죄의 유전성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구하는 간구이지만 여섯째 간구에서는 죄의 오염과 그 영향 아래 지배당하게 하는 시험과 악으로부터 하나님의 은혜, 힘, 권능으로 인하여 구원해 주시도록 간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2) 주기도문의 여섯째 청원에서 마태의 본문에 "다만" 이라는 번역을 헬라어 성경은 "알라"라는 접속사를 사용하여 서로 연결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태의 본문에 접속사 "알라"(αλλα)는 영어에서 그러나(but)이고, "메(μη)는 아니다(not)라는 단어를 취하여 영어의 구문서 not…but의 형식을 사용하여 여섯째 간구를 표현하고 있다.

헬라어 구문에서 알라(αλλα)는 문장의 절(Clause)이나, 전 문장의 경우에 있어서 앞에 나온 것과의 차이나 혹은 대조를 나타내는데 쓰는 반대적 의미의 불변사로서 "그러나"의 뜻을 가지고있다. 이것은 앞의 부정문에 이어서 긍정문을 이끌 때는 대조를 나타내면서 영어, 구문에 "not only…but also, … 뿐 아니라,……도 또한"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여섯째 청원의 전반절에서는 소극적으로, 후반절에서는 적극적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다만"은 "도리어", "그러나", "또한"의 의미도 포함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섯째 간구를 시험(유혹)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실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만 (또한, 도리어), 악에서 구하옵소서(승리하게 해주옵소서)라고 그 뜻을 더욱 구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소극적인 간구와 적극적인 간구가 한 간구 가운데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본다. 즉 우리는 본성적으로 연약하여 시험(유혹)에 쉽게 넘어질 수도 있고 거기에 빠졌을 때, 우리 스스로 헤어 나오기 어려울 경우,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 주시기를 요청하는 간구이다. 여기서 접속사 알라(αλλα)를 사용하여 연결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표현이고 두 조문을 한 기도로 생각 할 수도 있으나 각각 독립된 간구 (Petition)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누가의 주기도의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독립된 두 간구라는 표현도 동의할 수 있지만 두 조문을 한 간구(Petition)로 다루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3) 주기도문의 여섯 번째 청원과 신약성경 야고보서 1장 13절의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 하시고,친히 아무도 시험 하지 아니 하시느니라"(약 1 : 13)라는 말씀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야고보서 기자와 여섯 번째 청원의 표현과의 상관관계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야고보서 기자의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라는 기록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재삼 시험 하며"(시 78 : 41)라고 기록된 사실 간에 서로 모순되는 것이 없는 것처럼,"우리를 시험(Temptation)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주기도의 간구와, "친히 아무도 시험(Temptation) 하지 아니 하시느니라"(약 1 : 3 下) 라는 표현은 서로 자연스러운 접촉점을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아무도 시험하시지 아니 하시느니라"(약 1 : 13 下) 라고 기록된 것과 다르게 만일 "친히 아무라도 시험 하신다면" 그분의 성결성 또는 지선성(至善 性)은 무너지고 만다.

에덴의 아담과 하와의 타락의 경우에도 하나님 자신이 친히 범죄 하도록 유혹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친히 악으로 사람을 시험(Test) 하지 않으신다.〈이렇게 말씀 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試驗, Test)코자 하심이라. 요 6 : 6, 그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Test)하시려고… 창 22 : 1>. 하나님께서 하시는 시험(Test)과,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는 시험(Temptation)은 다르다.

(1) 하나님께서 하시는 시험의 출처는 하나님께로 오며, 마음 밖에서 오며, 하나님의 목적에서 승리하게 되며,신앙의 연단 혹은 단련("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 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 23 : 1)을 하시기 위함이다. 즉 우리를 더 유익한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경험하게 하시는 시 험이라고 간주 한다.

(2)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는 시험(유혹,Temptation)의 출처는 마귀에게로서 온 것이며,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사람의 욕심("오직…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 됨이니…" 약 1 : 14)에서 나며,패배 하기 쉽고, 유혹이라 할 수 있다. 즉 우리를 죄와 악에 빠지게 하기 위한 유혹(to solicit into evil)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도 시험(Temptation)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간구에서 나타나듯이,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우리와 공모 하는 일이 결코 없으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악의 유혹에 이끌리어 죄를 짓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람들은 죄 짓는 책임을 아담처럼 타인에게 전가 시키며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 3 : 12),자신의 타락한 본성("욕심이 잉태 한즉 죄를 낳고…" 약 1 : 15)을 부인 하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악의 유혹에 이끌리어 짓는 죄를 시험(Test) 즉 신앙 연단으로 수용할 수 없을 경우 비난의 화살을 하나님께 돌리므로 자신을 변명 하려고 한다. 그러나 변명의 자리에 계속하여 설 수 없음을 야고보 기자는 약 1 : 14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욕심에 끌려 비롯됨이니"라는 말씀으로 보여 주고 있다. 자신을 솔직히 드러낼 줄 아는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이 여섯 번째 청원을 진정으로 드리는 간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석원 목사는 부산 고신대, 총신 대학원, Heritage College(M.R.E., D.R.E), Luther Rice Seminary( D.Min 졸업), Westminster Seminary (D.Min 수료),에서 공부하였고, 서울 충현교회 부목사, 올랜도 충현 장로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하다 은퇴하였다. 국제 기도공동체 GPS Ministry,INC (Global Prayer Society)설립하였고, 주기도문 기도운동(LPG 24-365= Lord's Prayer Global) 설립자이기도 하다. [기도의 신학], [1달러의 기적 플러스], [주기도문은 내 삶의 축복이다]를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