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고, 마비되고, 진동하고, 환상보고, 입신하는 괴이한 성령의 부흥을 일으키는 유명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첫째는 성령받고 거듭난 신자에게 이후 성령재세례(기름부음)가 이어진다는 주장을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구원받은 후에 임하는 성령의 기름부음(성령세례)의 원조를 예수 그리스도로 지목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직전 요단강에서 성령을 더 받는 기름부음(성령세례)을 받은 후 성령의 권능을 행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의 말씀이 예수께서 땅에서 능력의 성령을 받는 장면, 즉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는 장면이라고 주장한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마 3:16)

놀랍고 심각한 사실은 불건전하고 괴이한 성령의 현상을 일으키거나, 그런 일들을 신학적으로 강력하게 지지하는 사람들 모두 예수가 요단강에서 부흥의 능력을 동반하는 성령세례(기름부음)을 받았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예수께서도 오순절 운동파들의 성령재세례, 또는 신사도 운동파들의 성령의 기름부음 현상과 같은 체험을 했다고 주장하는지 살펴보자.

 

1. 윌리엄 세이모어의 아주사 거짓 부흥

아주사 부흥(the Azusa street Revival, 1906)을 일으켜서 비성경적인 성령세례 사상을 온 세상에 전파한 오순절 운동의 선구자 윌리엄 세이모어(William Seymour, 1870-1922)도 예수 그리스도가 요단강에서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우리 주님은 요단강에서 성령의 권능을 받으신 후 성령의 능력과 함께 갈릴리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곳으로부터 주님의 명성이 주변의 모든 곳으로 전파되었습니다.”1)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도 사역과 이적을 위해 자신에게 능력을 주는 성령을 구하였다면, 오늘 날 우리 보통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령세례가 얼마나 더 절실하게 필요하겠습니까?”2)

“회당에서 전파하신 이 설교는 주님이 요단강에서 성령세례 받으신 후 첫 번째 하신 설교입니다.”3)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성령으로 충만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에서 주님의 성화된 인성 위에 성령세례가 임하였습니다.”4)

이와 같이 예수께서도 성령을 더 받는 체험을 통하여 능력을 얻었으니, 우리 일반인들도 성령재세례를 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세이모어의 야주사 거짓 부흥을 통해 쓰러짐, 영서, 성령춤, 거짓 방언, 몸의 진동 등의 현상들이 나타났다. 세이모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분리하여 신성은 성령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으나 인성은 메시야 사역을 위해 능력을 주는 성령세례를 받아야 했다고 보았다. 예수의 인성과 신성이 완전하게 연합되시어 한 인격을 이루었다는 가장 중요한 신학의 진리를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2. 기름부음 전도사 손기철

한국 교회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성령의 기름부음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손기철 장로이다. 손기철 장로의 기름부음 이론도 예수 그리스도에서부터 시작된다. 손기철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직전 요단강에서 성령의 능력을 얻는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자신의 대표작「기름부으심」에서 다음과 주장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후부터 공생애를 시작하였으며, 우리는 그때부터 그 분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단지 물세례만 받은 것이 아니라 물 위로 올라오실 때 성령세례를 받았고, 그 결과로 기름부으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이고, 히브리어로는 ‘메이야’이며, 그 뜻은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입니다 ...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충만하셨고, 뒤이어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예수께서는 기름부음을 받으신 후 권능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가르치심에 권세가 있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선포하시고, 권능으로 기사와 표적을 일으키신 것도 바로 기름부으심이 임했기 때문입니다.”5)

손기철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심각해 보인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성령을 받은 후부터 그리스도가 되셨고, 그때 기름부음을 받았으므로 이후 표적을 동반하는 권세있는 가르침을 전파하게 되었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성령 사상을 가진 손기철 장로를 통하여서도 쓰러짐, 환상, 입신 등의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3.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

로이드존스를 비롯한 많은 신학자들이 부흥을 ‘하나님이 성령을 더 부어주심’이라고 정의하였다. 부흥이 하나님이 성령을 더 부어주심이라고 정의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한 사람은 1차 대각성을 주도한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이다. 에드워즈는 뉴잉글랜드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더 부어주시기를 위해 늘 기도하였고, 실제로 성령이 더 부어지는 코넥티컷 계곡의 부흥(Connecticut Valley Revival, 1734-35년)과 1차 대각성(the First Great Awakening, 1734-35년)을 일으켰다. 에드워즈도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성령의 능력을 얻는 기름부음을 받으셨다고 다음과 같이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기도하여 성령을 받으셨다.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라고 누가복음 3장 21,22절에 나온다.”6)

또한 에드워즈는 자신의 작품 「구속사」(A History of The work of Redemption)에서 오순절 운동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요단강 세례가 메시야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성령세례 사건이라고만 말하지만, 에드워즈는 예수 그리스도의 요단강 세례를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메시야 사역 취임식’으로 설명하면서 동시에 능력을 얻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는 사건으로 설명했다.

“그리스도의 세례는, 말하자면, 엄숙한 취임식으로서,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는 공생애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엄숙한 가시적인 방법으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 위에 임했고...”7)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을 더 받는 신약의 성령의 기름부음(성령재세례)의 원조로 보고, 그 같은 성령의 더 부어주심을 일평생 추구하며 부흥을 일으켰던 에드워즈를 통하여서도 환상, 쓰러짐, 몸의 마비, 입신 등의 괴이한 현상들이 많이 나타났다. 에드워즈가 직접 남긴 기록을 보자.

"It was a very prequent thing to see an house full of outcries, faintings, and convulsions(격련, 진동, 괴이한 웃음이 터지는 것) and such like , both with distress, and also with admiration and joy."8)(괴이하게 울부짖고, 실신(입신)하고, 몸이 진동하는 현상과 고뇌와 극도의 행복감이 교차하는 등의 현상이 온 집안에 가득 찬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었다.)

"It was pretty open, so that there were some that were so affected, and their bodieds so overcome, that they could not go home, but were obliged to stay all night at the house where they were."9) (성령(?)에 의해 몸이 압도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일이 흔했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집으로 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밤을 보내야만 하는 일들이 있었다.)

비교적 에드워즈의 부흥운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기술하는 이안 머레이는 대각성의 뒤 끝이 다음과 같았다고 기술하였다.

“노스 스토닝턴(North Stoninton)에서 목회하면서 에드워즈와 함께 대각성 운동을 이끌었던 죠셉 피쉬(Joseph Fish) 목사에게 일어난 일은 더욱 더 심각했다. 격렬한 흥분(violent agitations), 울부짖음(outcries), 무아지경(ecstasies), 환상(visions), 최면(trances, 입신), 내면의 계시(inward impressions) 등에 집착하는 신자들이 갑자기 그의 교회로 몰려왔다. 피쉬 목사는 그 사람들이 자신들의 체험을 진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고 착각하고 있고, 결국 그들이 그것과 함께 망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그가 이 문제에 대해 설교하기 시작하자 거짓된 불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던 그 사람들 대부분이 다시 교회를 떠나버렸다. 피쉬 목사는 큰 슬픔과 탄식 가운데 점점 시들어가는 교회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10)

“1742-43년 사이에 일어난 교회 파괴(교회 분열) 현상은 매우 흔한 일이었고, 특히 동부 코넥티컷에서 더욱 더 심각했다. 그 결과 거의 100개 정도의 갈라져 나온 교회들이 생겨났다.”11)

 

 

4. 로이드존스의 부흥신학

청교도 개혁신학을 잘 설명하고 전파하여 전 세계의 많은 목회자들에게 큰 유익을 끼친 로이드존스(David Martyn Lloyd-Jones, 1899 ~ 1981)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단강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시어 공생애 사역에 필요한 능력을 얻으셨다고 주장했다. 로이드존스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다 시 한번 말하면 주님이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그분에게 임하셨다. 바로 그때 주님은 메시아적 사역과 구원사역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으셨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 개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12)

로이드존스는 청교도 개혁신학에 관하여 많이 소개하였으나, 동시에 에드워즈의 ‘성령의 더 부어주심이 부흥’이라는 에드워즈의 그릇된 사상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오순절 파들의 성령재세례 사상과 요즘 신사도 파들의 성령의 기름부음 사상과 동일한 성령론을 주장하여 세계화시켰다. 특히 그런 성령론의 원조 모델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목하여 건전한 교회의 성령신학을 초토화시키는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그는 성령이 더 부어지는 부흥이 임하면 에드워즈의 대각성과 현대의 신사도 집회에서 나타나는 괴이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부흥의 시기에는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격렬히 반응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일정 유형의 사람들이 다른 유형의 사람들보다 더 격렬히 반응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 너무 강렬한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신체에 까지 그 영향이 나타납니다 ... 부흥이 일어나면 히스테리에 빠지는 이들, 실제로 리스테리에 빠지는 이들이 생깁니다. 또 다른 신체적인 현상을 나타내는 이들도 있습니다 ... 강력한 영적 능력이 임할 때 어떤 몸에는 이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13)

“이런 현상을 흥미롭게 여기거나 깜짝 놀랄 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지적해 드리고 싶은 점은, 이 영광이 사람의 신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굉장한 것임을 하나님이 친히 알려주셨다는 것입니다.”14)

에드워즈의 2차 부흥 초반에 특히 청소년들에게 괴이한 신체적인 현상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로이드존스가 그대로 수용하여 성령과 부흥의 공식 이론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성령의 임재로 멀쩡했던 사람들이 정신을 잃고 진동하고 몸이 마비되는 일은 일어났다는 말씀이 없다. 이런 일들이 악신의 역사라고 정직하게 진단하고 말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이단의 거짓 부흥과 맞서 싸울 것인지 생각해 보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 위로 임하신 것이 메시야 사역을 위한 능력을 얻는 성령세례 또는 기름부음을 받는 것이었을까?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신 예수께서는 신성으로는 완전한 하나님이셨고 인성으로는 완전한 인간이셨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부, 성령은 같은 신적 본성을 공유하시는 한 하나님이시다. 성부, 성자, 성령은 분리되지 않고 상호내주하시는 한 하나님이시므로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을 더 받는다는 것은 허용할 수 없는 발상이다. 왜냐하면 성자께서 성령을 받으시고자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을 통해 성령세례 또는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성부, 성령과 같은 신적 본성을 공유하시고 영원히 분리되지 않으시는 성자 하나님을 분리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은 성령과 분리되지 않는 같은 본성의 하나님이시지만, 예수의 인성은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었으므로 메시야 사역을 위하여 성령을 받을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고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완전하게 연합되어 하나님으로서 한 인격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완전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완전하게 연합하여 하나님으로서의 한 인격을 가지셨다.

그러므로 예수의 신성은 성령과 떨어지지 않는 분이라서 성령을 받을 필요가 없었을지라도, 인성은 메시야의 공생애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성령을 받아야만 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성육신 안에서 완전히 연합되시어 한 인격을 가지셨음이 부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드워즈와 로이드존스가 예수께서 메시야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능력을 얻으시기 위해 요단강에서 성령세례 또는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가르친 것은 큰 오류였다. 그리고 성령을 왜곡하여 이단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었다. 

 

성육신 자와 죄인들의 신앙 여정

하나님의 성육신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 여정과 우리 보통의 죄인들의 신앙 여정을 동일시하는 실수로부터 이러한 오류가 나온 것이다. 우리는 아담의 범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은 상태로 태어났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죄와 무관하신 분이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거듭났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무관하시니 거듭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 받고 성령을 받았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성령을 담지하고 출생하셨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 기도하고 회개하여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시종일관 성령충만하셨고, 회개가 필요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우리 죄인들이 성령을 받는 것처럼 예수께서도 출생 이후에 성령을 받으신 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오류이고 더 크고 무서운 이단사상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보다 더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셨을까? 예수께서는 자신이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백성들을 죄에서 건질 사명을 주신 성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고자, 그리고 땅의 자기 제자들을 아버지에게 맡기고 부탁하시고자 기도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늘 기도에 힘쓰시면서 기도의 본을 보이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해야할 첫 아담의 실패를 회복하여 아담으로 말미암아 저주 받은 자기 백성들을 회복시켜야 할 제 2의 아담으로서 온전한 신앙의 모습을 보이신 것이다. 첫 아담은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너무도 좋은 환경을 주셨음에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반역하였다.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는 그 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시종일관 하나님을 경외하시며 범사에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셨다. 하나님 백성의 대표로서 완전하시고 아무 흠이 없는 신앙의 삶을 사셨다.

 

성령의 반복적인 부어주심의 부흥을 주도한 조나단 에드워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적용하시어 구약의 돌 성전을 대체하는 신령한 성전을 구축하시기 위해 임하신 성령의 강림을 2,000년 만에 다시 거짓되게 반복시키는 오순절 부흥을 시작한 윌리엄 세이모어의 아주사 부흥, 그리고 에드워즈의 비성경적인 성령 사상을 그대로 답습하여 '성령을 더 부어주는 부흥' 사상을 세계화시킨 로이드존스 등의 가르침은 정통신학(개혁신학)의 성령론에 큰 위해를 미쳤다.

예수 그리스도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던 것은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해결해야 할 자기 백성들의 죄를 하나님의 속죄의 제물이 될 자신에게 전가시키시는 행위로 보는 것이 옳고, 동시에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시는 지상의 성자에게 오시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져내시는 복된 사역의 시작하게 됨을 함께 기뻐하신 것으로 보아야 옳다.

에드워즈의 1차 대각성, 그리고 이후의 2차 대각성, 아주사 부흥, 오순절 운동, 빈야드 운동, 신사도 운동 등 ‘성령의 더 부어주심’을 사모하면서 결과적으로 성령의 반복적세례(기름부음)을 추구했던 부흥에서 괴상한 신체적인 현상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이론의 원조 모델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지목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미주 ---

1) Roberts Liardon, The Azusa Atreet Revival (Shippensburg, PA: Destiny Image, 2006), 127.

2) Ibid.

3) Ibid.

4) Ibid., 128.

5) 손기철, 「기름부으심」(규장, 부흥과개혁사, 2008), 18-19.

6)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 2, 964. George M. Marsden, Jonathan Edwards: A Life (New Haven,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3), 144.

7) 조나단 에드워즈, 「구속사」 (에드워즈 전집 3권, 김귀탁 역) (부흥과개혁사, 2007), 410.

8) 에드워즈가 Thomas Prince에게 1741년 6월 9일에 보낸 편지. George M. Marsden, Jonathan Edwards: A Life (New Haven,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3), 217.

9) Ibid.

10)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1.lix). Iain H. Murray, Jonathan Edwards: A new Biography (Calisle, PA: The Banner of Truth Trust, 1996), 222.

11) Ibid.

12) 마틴 로이드존스, 「하나님의 자녀: 요한일서 강해 1-3장」(임성철 역)(서울: 생명의말씀사, 2010), 393.

13) 마틴 로이드 존스, <부흥>(서울: 복있는 사람, 2012), 270-271.

14) Ibid., 404.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