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즈와 오순절 운동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에드워즈의 신학과 사상에 대해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내려지는 결론은 에드워즈가 오순절 운동의 초기 조상이었다는 것이다. 오순절 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이루신 구속을 적용하는 성령이 오순절에 단회적으로 완전하게 부어졌다는 성경의 핵심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 대신 시대마다 또는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때마다 계속 하늘에서 성령이 부어지면서 부흥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개인에게도 처음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을 때 성령이 완전하게 부어졌음을 부정하고, 구원 이후에 반복적으로 성령이 부어진다고 오순절 신학은 주장한다. 

에드워즈도 성령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신자들과 교회에 적용하는 차원에서 사도행전의 오순절 날에 단회적으로 완전하게 부어졌음을 알지 못했다. 그 대신에 아담의 타락부터 종말의 때까지 시대마다 성령이 반복적으로 부어진다고 보았다. 성령이 특별하게 부어지는 때에 부흥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에드워즈에게는 개인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이 단회적으로 영속적으로 임하신다는 분명한 신학이 없었다. 그는 이미 구원받은 신자들과 목회자들에게도 성령이 더 부어지고, 이미 성령을 받은 신자들로 구성된 교회에도 성령이 더 부어지는 부흥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에드워즈는 오순절 운동의 조상이라는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대서양 양편에서 같은 해에 태어난 두 사람

웨슬리와 에드워즈는 1703년 대성양 양편에서 출생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대서양이 있었으나, 에드워즈의 부흥 신학을 소개하는 책들로 인해 두 사람은 연결되었다. 영국의 웨슬리는 제일 먼저 뉴잉글랜드의 1차 부흥(1734-35년, 코넥티컷 계곡의 부흥)을 소개하는 에드워즈의 책 놀라운 회심이야기」(1737년)을 접했다. 에드워즈의 1차 부흥을 소개하는 이 책을 통해 웨슬리는 에드워즈에게 깊이 매료되었고, 에드워즈의 부흥 신학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었다.

웨슬리는 에드워즈의 책 「놀라운 회심이야기」를 축약하여 자신이 직접 영국에서 출판하였다(1744). 에드워즈가 1741년에 출판한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도 축약하여 출판하였고(1744), 에드워즈가 1742년에 출판한 「균형잡힌 부흥론」도 축약하여 출판했다(1745). 웨슬리와 감리교 신자들이 제일 좋아했던 에드워즈의 책은「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이었는데, 이 책은 최소 46번이나 인쇄되었다.1)

웨슬리가 에드워즈를 매우 좋아했고, 웨슬리가 에드워즈의 책들을 영국에서 보급하는데 앞장섰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웨슬리에게서 시작되어 교회사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 어떤 사상이나 신학의 문제가 에드워즈로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웨슬리가 현대의 오순절 운동을 가능하게 만든 최초의 원인제공자였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웨슬리는 성령의 추가적인 임재를 가정하지 않고서 말할 수 없는 ‘완전성화’를 가르쳤다. 이미 성령을 받은 신자에게 특별하게 다시 임하는 성령의 역사를 가정하지 않고 말할 수 없는 완전성화를 웨슬리가 가르치면서 훗날의 오순절 운동의 추가되는 성령세례 신학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안다. 
 

개혁주의 구원론과 청교도의 구원론

에드워즈도 웨슬리와 감리교 목사들처럼 성화를 촉진하는 성령의 특별한 임재를 주장했다. 에드워즈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그 시대의 청교도들이 대부분 그랬다. 에드워즈를 포함하는 회중파 청교도들의 구원론의 특징은 종교개혁자들의 법정적 칭의와는 조금 달랐다. 그들은 종교개혁자들이 강조한 이신칭의 교리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신대륙의 에드워즈와 회중파 청교도들은 신자가 그리스도의 복음의 구원 단계로 진입하기 전 ‘영적각성’을 받아 구원을 열망하고, 죄와 영혼의 비참한 상태에 대해 낙망하면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사모하고 준비하고 구하는 과정을 반드시 먼저 거친다고 가르쳤다.

칼빈과 개혁주의자들의 신학에 의하면, 성령의 거듭남의 은혜를 받지 못한 불신자가 자신의 죄와 영혼의 비참함에 대해 깨닫고 구원을 갈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자신의 죄와 구원에 대해 아무런 감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추악한 죄성과 그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느낀다는 것은 그의 영혼이 이미 성령의 역사로 중생했기 때문이다. 개혁신학을 세운 칼빈과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에서는 분명히 그렇다.

에드워즈와 회중파 청교도들은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두려워하면서 구원을 염원하는 그 상태를 아직 구원받지 못한 ‘영적각성’의 단계로 보았다. 에드워즈는 자신의 부흥 운동을 통해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영적여정을 경험하였다고 설명했다. 에드워즈와 청교도 설교자들은 지옥의 고통과 하나님의 혹독한 심판에 대한 반복적인 설교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죄와 영혼의 비참함, 그리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상상하면서 두려워 떨게 만드는 경향이 강했다. 사람들을 영적각성의 단계로 인도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설교였다고 볼 수 있다. 

에드워즈와 청교도 설교자들의 그런 설교를 듣고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면서 울부짖는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 대각성 당시 신자들에게서 비정상적인 히스테리 증상이 많이 나타났던 것은 이러한 분위기와 연관되어 있었다. 이 과정 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의 복음이 강조되는 설교가 이어지면, 반대로 사람들에게서는 비정상적인 웃음과 희열을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에드워즈가 강조한 성령의 성화 체험

에드워즈와 회중파 청교도 목회자들은 영적각성의 단계를 지나 구원의 회심 단계로 들어갈 때, 그 사람을 성화되게 하고 죄를 이기게하는 '성령의 비범한 역사하심', 또는 '성령의 신적인 빛'이 비추어지는 특별한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것은 단순한 영적인 깨달음 수준을 능가하고 감각으로 체험되는 특별한 성령체험을 의미했다. 그 과정의 성령의 비범한 역사로 인해 이해하기 어려운 신체적인 현상들이 나타난다고 에드워즈는 강조했다.

에드워즈는 1차 부흥(1734-35년)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책 「놀라운 회심 이야기」에는 이 같은 에드워즈 자신과 당시 청교도들의 회심에 대한 신학이 절절하게 베여있다. 에드워즈는 1차 부흥 때 큰 은혜를 경험한 아비가일 허친슨이라는 여성에게서 일어난 영적 여정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그는 불과 1주일 정도 각성된 상태에 있다가 구원에 이른 회심의 명백한 증거를 드러냈습니다.”2)

에드워즈는 허친슨이라는 여성이 1주일 정도 영적각성의 상태에 머물다가 구원의 단계로 진입했다고 하였다.

“그는 자기를 회심에 이르게 할 만한 신앙 지식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독하려고 첫 장부터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목요일까지 계속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죄성, 특히 자기 본성의 죄악 됨과 자기 마음의 사악함을 크게 염려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번개의 번쩍임처럼 다가와서 그에게 다가와 극심한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읽던 부분을 덮고 신약 성경으로 가서 고뇌에 빠진 자기 영혼을 위해 어떤 위로를 발견하려 했습니다.”3)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아직 영혼이 살아나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영혼을 회심에 이르게 하려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은 마치 심장이 멎어 죽은 사람이 자신의 심장을 살려내려고 스스로 전기 충격기를 찾아서 가슴에 대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칼빈과 개혁주의자들에게서 전혀 받아드려질 수 없는 이런 이야기가 에드워즈를 포함한 회중파 청교도들의 구원론이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을 대항해서 죄를 범했다는 것 때문에 크게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 고뇌는 사흘 동안 점점 커졌습니다. 드디어 그는 자기 앞에 흑암의 어두움 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그의 전신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서리쳤습니다.”4)

영혼이 죽은 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다시 살아나서 감각을 되찾기 전에 이 같이 하나님의 진노를 느끼면서 공포에 떨거나, 자기의 영혼이 마귀의 흑암에 갇혔다는 사실을 느낄 수 없다. 마치 이미 죽은 사람이 자기의 몸이 관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며 슬퍼서 비명을 지르고, 자기 몸이 부패하지 않도록 차가운 냉동고에 들어가게 되었으므로 걱정한다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

아담의 타락 안에서 구원에 관한 영혼의 기능이 완전히 죽었음을 부정하는 알미니안 신학, 펠라기안 신학, 그리고 반펠라기안 신학으로 이런 주장을 펼친다면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절대적 주권을 강조하는 칼빈주의자인 에드워즈와 청교도들이 이런 구원론을 가르쳤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 날 밤 잠 자리에 들었을 때 그는 다음 날 아침 꼭 목사에게 가서 어떤 위로를 받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월요일 아침, 잠이 깨었을 때 그는 마음이 평안하고 고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놀랐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그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습니다.”5)

영적각성을 받은 죄인이 스스로의 판단과 의지와 노력으로 점점 구원의 고지에 근접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여성은 영적으로 괴로우니까 목사에게 찾아가서 복음의 위로를 받고 싶어 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이미 성령의 역사로 다시 살아난 영혼의 모습인가? 아직 살아나지 못한 죽은 영혼의 모습인가?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그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 많이 깨달았습니다. 때로는 특별한 속성을, 때로는 일반적 속성을 깨달았습니다 ...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진리와 완전하심의 영광에 대한 감각에 사로잡혀 마치 죽을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쉽게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가실 것 같았다는 것이었습니다 ... 누군가가 그에게 그 체험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다가 그 체험으로 말미암아 새삼스럽게 감동받아 기력이 다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데려다가 침대에 눕혀야 했습니다.6)

“한번은 그가 동생에게 자기는 여러 날 밤낮을 계속 감당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황홀하게 맛보면 즐겼다고 말했습니다.”8)

드디어 아비가일 허친슨이라는 여성이 영적각성의 과정을 넘어서 진정한 회심의 단계로 접어들었는데, 그때 성령의 특별한 임재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에드워즈가 신자들에게 강조하였던 ‘성령의 신적인 비추어주심’, 또는 ‘성령의 성화되게 하시는 역사하심’은 바로 이와 같은 감각적인 체험이다. 그것은 쉽게 말해서 영적각성을 받아서 구원을 열망하는 사람에게 성령의 특별하신 임재의 모습으로 찾아가 주시는 경험 즉 특별한 하나님 체험을 하는 것이다. 에드워즈와 청교도들은 그것을 진정한 회심의 단계로 진입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단계에 이르면 죽는 것도 두렵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을 갈망하게 된다는 간증이 이 당시에 많이 나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에드워즈의 부인 사라이다. 1742년 1월, 사라는 성령의 특별하신 임재를 경험하면서 이틀 사이에 세 번이나 입신으로 들어갔다. 그때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황홀경을 체험했고, 주변 사람들은 마치 그녀가 죽어가는 것 같아 근심했으나, 정작 본인은 그 상태에서 죽어 그리스도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에드워즈는 그와 같은 성령체험을 극히 사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정한 회심의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는 그와 같은 성령의 특별한 역사가 있다고 강조했다. 에드워즈 자신에게도 그러한 일이 있었다. 청년시절부터 묵상할 때 에드워즈에게는 종종 매우 신비적인 하나님 체험이 일어났다. 특별한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는 황홀경이나 특이한 감정을 종종 체험했다. 그래서 에드워즈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 ‘감정’을 특별히 중시했고, 감정이 신앙의 본질적 요소라고 강조했다.
 

에드워즈의 성령의 성화체험과 오순절 운동의 성령(재)세례

그 동안 간과하였던 중요한 사실을 이제 발견해야 한다. 처음으로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신자에게 성화와 거룩을 위해 성령이 특별하게 임재한다는 사상! 그리고 성령이 자신의 성품을 신자에게 전달해 준다는 특이한 성령체험! ... 이런 사상을 교회사에서 무엇이라고 하는가? 이미 성령을 받은 신자에게 또 성령이 임하신다는 성령(재)세례 사상, 즉 오순절 운동이다.

웨슬리의 완전성화로부터 시작한 성령(재)세례 사상은 1901년을 기점으로 크게 달라졌다. 그 이전에는 성화와 부흥을 성령(재)세례의 결과라고 보았었다. 웨슬리 이후 조셉 플레쳐와 웨슬리의 제자들, 찰스 피니, 1800년대 중반의 미국 감리교회들의 성결부흥, 케직 사경회, 그리고 무디와 토레이 등 1901년 이전의 성령(재)세례주의자들은 성화, 부흥, 봉사를 중시했다. 1901년부터 찰스 펄햄과 윌리엄 세이모어에 의해 성령(재)세례는 방언, 예언(계시), 부흥, 성화, 신부사상 등으로 발전했다.

에드워즈의 성화를 위한 성령의 특별한 체험은 어디에 해당할까? 성화와 부흥을 위해 성령(재)세례를 구하였던 1901년 이전의 성령(재)세례 이론의 토대를 깔았던 최초의 사람이 바로 에드워즈였다. 칼빈과 개혁주의자들의 신학이 중생한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을 에드워즈와 회중파 청교도들은 영혼이 중생하기 이전, 즉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영적각성’의 구원을 향한 준비단계라고 하였다. 그래서 성령(재)세례 사상에 해당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성령이 임하기 전에 스스로 죄를 깨닫고, 자기 영혼의 비참한 상태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깨닫고 근심할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에게 구원의 회심 체험이라면서 성령이 특별하게 또 임하여 회개하고, 울고, 실신시키고, 입신하게 하고 ... 이게 무엇인가? 오순절 운동 집회에서 수 없이 벌어지는 성령(재)세례 현상이다. 그리고 신사도 집회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는 기름부음의 모습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에드워즈의 영성이었다. 에드워즈가 이런 사람이었는데, 그 동안 우리는 까마득히 몰랐다. 에드워즈가 말하는 성령의 성화와 회심을 위한 특별한 역사하심을 가장 탁월하게 시연한 대표적인 사람은 에이미 맥퍼슨과 케더린 쿨만 등의 오순절 운동 여자부흥사들이었다. 그들은 예배를 인도하다가 성령이 임하면 입신하기로 유명했다. 1700년대 중반 뉴잉글랜드에서 그런 일을 누가 잘했었는가? 대각성 때의 최고의 여성 성령스타는 에드워즈의 부인 사라였다. 그리고 이전의 1차 부흥 때의 대표적 여성 성령스타는 아비가일 허친슨이었다.
 

1703년 대서양 양편에서 출생한 두 사람과 오순절 운동

1703년에 에드워즈와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태어난 웨슬리 두 사람은 오순절 운동의 공동조상이었다. 나만 이 사실을 발견한 줄 알았는데, 나보다 먼저 그 사실을 말한 사람을 보았다. 찰스 햄브릭스토우가 쓴 논문 “그리스도에 대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달콤한 내적 감각”을 보니, 이미 오순절 운동이 웨슬리와 에드워즈를 통하여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었다.

“존 웨슬리는 에드워즈보다 더 ‘성령의 증거’를 강조했고, 이는 웨슬리 신앙 체험 신학의 중심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성결운동과 20세기 전환기의 오순절 운동은 1734~1735년(에드워즈의 1차 부흥, 코넥티컷 부흥)과 1740~1742년(에드워즈의 2차 부흥, 대각성) 부흥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부흥주의를 전진시켰습니다.”8)

오순절 운동의 형성 과정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19세기 성경 부흥과 20세기의 오순절 운동이 에드워즈의 부흥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일어났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에드워즈의 부흥과 오순절 운동 부흥은 본질에 있어서 같다는 것이다.

 

--- 미주 ---

1)조나단 에드워즈, 「부흥론」(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7권, 고언 편집, 양낙홍 역)(부흥과 개혁사, 2005), 129.

2)Ibid., 250.

3)Ibid., 250-251.

4)Ibid., 251.

5)Ibid., 252.

6)Ibid., 254.

7)Ibid.

8)찰스 햄브릭스토우, “그리스도에 대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달콤한 내적 감각.” 「조나단 에드워즈의 유산」(장호익 역)(부흥과 개혁사, 2009),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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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