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균 교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은 후대에 와서 ‘그리스도의 의’를 어떻게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는가에 대한 조직신학적 연구에서 발전됐습니다. 차츰 조직신학에서는 능동순종과 수동순종으로 자리 잡았지만, 오히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시대는 이 부분에 대한 표현이 논쟁 중이었기 때문에 신조도 ‘순종’, ‘죽으심’, ‘희생제사’, ‘만족’ 정도로 고백하였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의 의에 대해서 능동순종과 수동순종으로 더 구체화해서 나누고 싶어 했던 학자들이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전체를 포괄하는 형태로 그저 ‘순종’이라고만 표현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다음의 세 개의 입장을 가진 3파 정도가 있습니다. 첫째, 수동적 순종으로 모든 것을 담고자 했던 입장입니다. 둘째,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구체적으로 나누고자 했던 입장입니다. 셋째, 둘 다 포괄하는 형태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입장인데, ‘순종’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입장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불만족으로 존 오웬을 중심으로 회중교회 측에서 새로 고백한 ‘사보이선언’의 10장에서는 능동순종과 수동순종으로 명확히 구분했습니다.

“모든 율법에 대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전가함으로써”(by imputing Christ’s active obedience to the whole law, and passive obedience)

그러나 웨민은 이미 이런 논쟁의 위험성과 어려움을 인지하여 그리스도의 의와 관련된 순종 개념을 조금 여유롭게 정리하였습니다. 8장 5항에서 그리스도의 속죄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주 예수께서는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단번에 자신을 하나님에게 드리신 그의 완전한 순종과 자신의 희생제사에 의해 그의 아버지의 공의를 충분히 만족케 하셨다”(by his perfect obedience, and sacrifice of himself).

11장 1항의 칭의 부분에서는 “그리스도의 순종과 만족을 그들에게 전가시킴으로써”(but by imputing the obedience and satisfaction of Christ unto them)라고 하였고, 3항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순종과 죽으심으로 말미암아”(by his obedience and death)라고 복합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따라서 서철원 박사님의 십자가를 초점으로 수동적 순종을 좀 더 강조하는 조직신학적 표현은 이미 웨민시대에도 있었던 주장이기에 이해할만한 것이고, 사보이선언 이후 주류 조직신학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두 부분으로 표현한 것도 충분히 수용되는 것이지, 이것을 가지고 지나치게 싸울 문제가 아닙니다. 모두 예수님의 의의 전가를 통해서 이신칭의를 얻는다는 것은 함께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다음의 구체적 내용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웨민은 정말 훌륭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바로 이런 신학적 논쟁 때문에 항상 성경해석의 규범은 공교회적 신조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내용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각자의 풍성한 해석으로 서로 존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이하로 내려가면 비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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