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빙크의 그리스도의 비하사역 2

바빙크는 종교개혁에서 확립한 그리스도의 대속 교리가 점차 신비적, 윤리적 혹은 도덕적 견해로 전환되었다고 우려하며,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대속 교리를 확고하게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빙크는 1800년대 프랑스와 스위스에서도 대속 교리가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신비적, 윤리적, 도덕적 견해로 전환되었다고 제시했다(439쪽). 대속 교리를 부정하는 측에서 죄의 속죄 교리가 복음의 한 요소가 아니라, 바울에 의해서 첨가되었다고 주장했다(440쪽). 그러나 바빙크는 예수의 대리적 고난과 죽음에 대한 고백을 강조했다(440쪽).

바빙크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신앙을 기독교 고백의 심장과 핵심으로 제시했다(441쪽). 바빙크는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공개적으로 고백했다고 주장했다(441쪽). 이것은 비밀 그리스도론(브레데의 Messianic Secret, 1901년)에 대한 정반대인 견해이다(바빙크의 개혁교의학 3권은 1898년 출판). “예수의 자기 이해(메시아 의식)”는 당시 학계에서 통용되던 신학 논란 주제로 볼 수 있다.

바빙크는 속죄 구도에 대한 혼돈이 발생한 이유를 ‘중보’라는 개념을 바르게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제언했다(442-443쪽). 바빙크는 중보라는 개념을 “그리스도는 두 진영 사이에 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으로 이 두 진영이다”(443쪽)라고 제시했다. 그런데 중보자직에 대해서 바르지 못한 이해가 발생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따른 중보자 개념”이다(443쪽). 바빙크는 “그들 모두는 그리스도가, 오직 인간인 한에 있어 중보자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이면 중보자가 아니라 성부와 동등한 존재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고 제시했다(443-444쪽).

그들은 또한 종교개혁자들보다 자기와 같이 주장하는 사람들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바빙크는 로마교회도 그리스도가 인성을 따른 중보자였음을 주장하면서도, 하나님과 인간 모두가 되어야 함을 주장했는데, 그리스도 구속 교리를 부정하는 부류들은 그 것 조차도 하지 않는 인성을 따른 중보자만 주장한다고 비평했다(444쪽).

바빙크는 그리스도 구속 교리를 부정하는 부류를 “그리스도 인성 중보자” 개념으로 정리한 것이다(445쪽). 그리고 그 주장은 성육신 이전에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의 부재라는 심각한 문제성을 유발시킨다고 제시했다(445쪽).

바빙크는 그리스도의 비하 부분에서 그리스도의 삼중직 사역을 제시했다. 먼저 선지자로 율법과 복음을 선포했고, 제사장으로 자비를, 왕으로 권세를 행사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시작을 죽음, 속죄제물을 제시했다. 바빙크는 삼중직에 대한 설명을 “왕이지만 칼로 다스리지 않고,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린다. 그는 선지자이지만 그의 말씀은 권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발생한다. 그는 제사장이지만 죽음을 통해 살고, 고난을 당함으로써 승리하고, 자신의 사랑을 통해 전능을 드러낸다”(449쪽)고 제시했다.

바빙크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전체가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라고 제시했다(450쪽). 영지주의자, 말시온은 구약과 신약을 대조시켰다. 그러나 기독교는 성부와 그리스도 사이의 대조가 없다. “그리스도가 말씀하는 것이 성부의 말씀이며, 그리스도가 행하는 것이 성부의 사역이다”(450쪽). 성부의 사랑이 선행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인 그리스도 안에서 그 사랑이 계시되었다(450쪽).

바빙크는 하나님의 의를 복음 안에서 예수 믿는 자들을 사죄하고 의롭다하는 것으로 제시했다(452쪽). 바빙크는 “그리스도는 오로지 하나님이 징벌하는 공의에 대한 계시였던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거부되어야 한다”고 제시했다(451쪽). 바빙크는 그리스도 인성 중보론에 대해서 배격하고 있다.

바빙크는 그러한 견해가 “성경이 제시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형벌을 설명하지 못한 것”이며, “그리스도를 속죄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바울의 말 역시 정면으로 모순”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바빙크는 그리스도의 율법 준수와 피의 사함, 화목제물을 제시했다(452쪽). 바빙크는 그리스도의 피의 화목제물을 제외하고 고난으로 세우려는 구도에 대해서 끊임없이 배격하고 있다.

바빙크는 [384]속죄없이 용서할 수 있는가?라는 논의를 전개한다(453쪽). 성육신과 속죄에 대해서 필연성으로 생각하지 않은 학자와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었다. 바빙크는 과격한 분류보다 중도적인 입장을 제언했다(453쪽). 그리고 바빙크는 성육신과 속죄의 목적을 죄인의 구원, 구원의 근원을 하나님으로 제언했다(454쪽). 그리고 죄를 증오하는 하나님께서 징벌 혹은 용서하시는데, 죄용서는 오직 속죄라는 것을 제시한다.

그리고 용서하는 사랑이라는 표현을 거부했다(455쪽). 하나님은 채권자이고, 채권에 대한 사면은 변호자의 인격과 속죄로 제시했다(456쪽). 그 속죄, 사면은 하나님의 공의를 파괴하지 않은데, 그 공의와 은혜가 함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계시되게 했다(456쪽). 도덕법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는 율법을 폐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게 위해서 왔다(456-457쪽). 성경에서 죄는 하나님의 공의로 정복될 수 있는데, 속죄 없이 용서란 존재하지 않는다(457쪽). 하나님이 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 죄를 징벌하셨다. 만일 의가 다른 방식으로 획득될 수 있다면, 그리스도는 헛되이 죽었던 것이다(457쪽).

바빙크는 소시누스파들이 속죄의 필연성을 강력하게 반대했다고 제시한다(458쪽). 우리는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3권, 47장 낮아지신 그리스도의 사역(그리스도의 비하)을 읽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강조하는 것은 속죄 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며, 속죄 교리를 거부하는 측의 주장에 대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바빙크의 독자는 바빙크가 반대하는 글을 바빙크의 사상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바빙크는 그리스도의 비하, 성육신에서 십자가, 무덤 전 과정을 구속 사역으로 보며, 십자가의 속죄제사로 죄사함으로 주장하고 있다. 소시누스파을 필두로 한 부류들은 속죄의 필연성을 거부하고(성육신의 원인)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속죄 교리를 약화 혹은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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