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수 목사가 벌코프의 조직신학 책의 내용을 자주 인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벌코프의 책을 펼치면 노 목사의 주장과 같은 내용이 줄줄이 쏟아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벌코프의 책을 펼쳐보니, 노승수 목사의 주장과 반대되는 내용이 많이 나타났다. 그리고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 교리를 강력하게 저지하는 서철원 박사님의 주장과 비슷한 내용들도 벌코프의 책에서도 많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이 참에 서철원 박사님과 벌코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해 보았다. 
 

서철원 박사


1. 원죄 해석의 차이

서철원 박사는 아담의 원죄의 본질을 단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위반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아담이 처음부터 영생하는 자로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이 경외하고 찬송해야 하나님 백성으로 지어졌다고 본다. 그러나 아담이 유혹을 당하여 더 이상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싫어하는 마음에 포로되었고, 결국 하나님 섬기를 중단하기로 작정한 것이 아담의 원죄의 본질이라고 해석한다. 

서철원 박사는 아담이 뱀의 유혹을 좋아하여 선악과를 범한 것은 단지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백성의 위치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같은 존재, 즉 하나님을 대리하는 지상의 왕이 아닌 하나님과 맞먹는 '하나님 같은 존재'가 되고자 의도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인류의 원죄는 하나님 밑에서 왕 되는 것을 거부하고 직접 하나님같이 되려는 데서 성립한다.”(서철원,「서철원 박사의 교의신학 5:그리스도론」(쿰란, 2018), 163.)

첫 인류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므로 곧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므로 죄인이 되어 생존권을 박탈당하여 죽게 되었다(창 2:17).”(Ibid., 166)

벌코프는 적극적인 영생을 가지지 못하고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 있던 아담에게 하나님 백성의 완전한 신분과 영광스러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조건으로 선악과를 범하지 말라는 계명이 주어졌다고 본다. 만일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고 유혹을 이겼다면 가변적이고 임시적인 존재의 상태의 아담이 영구적인 복락과 영생의 상태로 격상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는 순종할 경우에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보장을 받았다.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로운 베려에 의거하여 일정한 조건적인 권리를 획득했다(했을 것이다). 이 계약에 근거하여 아담은 자신과 자신의 후손들을 위하여 순종의 방법을 통한 영생을 얻었다(얻었을 것이다).”(벌코프 ,「조직신학」(권수경, 이상원 역)(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7), 427.)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주의 말씀은 아담이 먹는 것을 억제했다면 죽지 않고 죽음의 가능성을 넘어서 끌어올림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 여기서 주어진 약속은 최고 상태에까지 발전된 영구적인 복락과 영광이다. 사실상 아담은 적극적인 거룩한 상태로 창조되었으며, 죽음의 법칙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불멸하는 존재이다(였다). 그러나 그는 이제 겨우 자신의 삶의 과정을 시작하는 단계에 있었을 뿐이다. 그는 그를 위하여 예비된 최고의 특권을 아직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있었다).”(벌코프, 427)

서철원 박사에 의하면 하나님 백성이었고 영생을 소유했던 아담이 하나님 백성으로 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죄악된 욕망을 추구했으므로 저주받은 것이다. 벌코프에 의하면 아직 완전한 영생을 소유하지 못한 아담이 영생을 위한 계명을 준수하지 못하여 영원히 죽게 된 것이다. 
 

2. 아담의 실패를 복구하는 방법

서철원 박사는 그리스도가 아담의 원죄를 해결하신 방법은 피 흘릴 수 있는 인성으로 성육신하시어 아담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심이라고 본다. 언약을 파기하여 저주를 받고 죄과로 오염된 아담과 그 후손들 속에서는 죄를 해결할 사람이 나올 수 없으므로, 성자 하나님이 죄 없는 인성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고, 친히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심으로 죄 값을 지불하심으로 타락한 자들을 죄 없는 것처럼 만들었다고 본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과정의 중요한 개념인 ‘율법의 성취(완성)’에 대해 서철원 박사는 그리스도가 모든 율법 조항을 일일이 찾아서 지키심으로 율법을 완성했다고 설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율법수여자이신 그리스도 자신이 죄인들을 향한 율법의 요구, 즉 죄 값을 갚으라는 율법의 명령대로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십자가에 내어 놓으심으로 죄인들이 율법준수의 의무로부터 벗어나게 하심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본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은 완전한 지킴을 요구한다. 그러나 범죄한 인류는 아무도 율법을 요구대로 지킬 수 없다. 그러므로 율법수여자가 율법의 요구 곧 율법을 범하므로 온 죄 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다 이루셨다. 곧 피 흘려 죄 값을 갚으므로 율법준수의 의무에서 사람들을 해방하셨다.”(서철원, 166)

“그리스도가 율법의 수여자로서 율법의 요구를 총족시켜 율법의 속박에서 백성들을 해방하셨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성하신 것은 율법의 요구를 충족하므로 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는 율법의 속박에서 사람들을 해방하기 위해서 하신 것이다(마 5:17-20, 11:28-30). 이렇게 하여 율법준수의 요구가 더 이상 타당하지 않게 되었다.”(Ibid)

“그리스도는 율법을 다 지키므로 의를 얻어 그것을 우리에게 전가하신 것이 아니다. 율법의 요구 곧 범죄하므로 그 죄 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따라 피 흘림으로 죄 값을 갚아 용서를 가져오셨다 ... 그 면에서 율법을 완성한 것이다.”(Ibid., 147)
 

루이스 벌코프(1873-1957)


벌코프는 서철원 박사와 달리 그리스도가 실제로 모든 율법을 지키는 것에 더 강조점을 두었다.

“만일 그가 율법의 원초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단지 죄 값만 치르셨다면, 그는 인간의 타락 전 아담의 입장에 처하게 하셨을 것이며, 인간은 여전히 순종으로서 영생을 얻어야 하는 문제에 직면했을 것이다.”(벌코프, 622)

두 사람의 차이의 원인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서 박사는 원죄의 본질을 아담이 하나님 섬기기를 거부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타락 후 율법의 정죄를 받은 아담과 그의 후손들을 대신하여 그리스도께서 죄 값을 치르는 것을 중시한 결과이다. 그러나 벌코프는 아담이 영생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은 것을 원죄의 본질로 이해하였으므로 그리스도가 아담이 실패한 계명 준수를 회복하는 것에 더 강조점을 둔 결과이다.
 

3. 능동적-수동적 순종으로 분리하는 것에 대해

두 사람은 공히 그리스도의 순종을 능동적, 수동적 순종을 날카롭게 구분하는 것을 반대한다. 서철원 박사는 그리스도께서 항상 하나님의 뜻에 즐거이 순종하셨고, 심지어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아가시는 일도 스스로 결정했음 강조한다. 서 박사는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순종을 수동적(피동적) 순종이라고 정의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한다.

“그리스도는 친히 죽음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하므로 많은 인류를 살리셨다. 그는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아담의 불순종을 속상하여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만들었다(롬 5:17-19). 그의 순종으러 말미암아 사람들이 사망에서 돌이켜 생명 곧 영생에 이르렀다(롬 5:21). 하나님의 뜻을 순종함이 의이기 때문이다.”(서철원, 165)

“예수는 제 2 아담 곧 새 인류의 조상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였으므로, 첫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온 죽음을 폐하여 그의 의로 많은 인류를 살게 하였다.”(Ibid.)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순종하여(빌 2:8) 속죄를 이루셨다. 하나님의 법이 정한 대로 죄 값을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셨다.”(Ibid., 167)

놀랍게도 벌코프도 서철원 박사와 같이 능동적, 수동적 순종이라고 불리울지라도 그리스도의 순종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통례상 능동적, 수동적 순종으로 구별된다. 그러나 양자를 구분함에 있어서 분명하게 알 것은 양자는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양자는 구세주의 일생의 모든 시기마다 동반적으로 나타난다. 양자는 부단히 상호침투하고 있다 ... 그리스도의 능동적이고 수종적인 순종은 유기체적 전체의 상호 보완적인 부분들로 간주되어야 한다”(벌코프, 620.)
 

4.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에 대해

서철원 박사의 그리스도의 자발적인 율법에 대한 순종, 즉 능동적 순종의 의가 전가되었다는 사상에 대해 가장 강력하고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전통적 신학에서 예수의 율법준수를 능동적 순종(obedientia activa), 십자가의 죽음을 피동적 순종(obedientia passiva)이라고 한 구분과 가르침은 전적으로 잘못되었다. 그리스도가 율법준수로 의를 획득하여 우리에게 전가한 것이 아니고, 피 흘려 죄 값을 다 치르므로 죄용서를 이루신 것이 의이다. 이 의를 받아 우리가 영생하게 되었다.”(서철원, 167.)

“전통적 신학이 제시하는 능동적 순종과 피동적 순종은 전적으로 그릇된 사변적 산물이다 ... 이런 것은 성경에 맞지 않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전혀 맞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다 지키므로 의를 얻어 그것을 우리에게 전가하신 것이 아니다. 율법의 요구 곧 범죄하므로 그 죄 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따라 피 흘림으로 죄 값을 갚아 용서를 가져오셨다 ... 그 면에서 율법을 완성한 것이다.”(Ibid., 147)

놀랍게도 벌코프의 가르침 속에서도 능동적 순종의 의에 전가에 대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서철원 박사와 벌코프는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신학을 전개하였다. 서 박사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대로 죽으심이 율법의 완성(성취)라고 보고 있으나, 벌코프는 그리스도가 실제로 율법을 지키신 것에 강조를 두었다.

그렇다고 벌코프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를 인정한 것은 전혀 아니다. 벌코프는 그리스도의 율법순종의 의미를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시게 만드는 중요한 요건이라고 보았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그의 수동적 순종이 하나님께 받음직하게 되도록, 곧 하나님의 열납 대상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필요했다 ... 그리스도가 능동적 순종을 하시지 않았다면, 그의 인성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요구에 미달되었을 것이며, 그는 타인을 위해 속죄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벌코프,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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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