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목사님이 로이드존스와 에드워즈의 성령신학에 대해서 비판하였습니다. 로이드존스의 성령신학을 오순절 신학과 같다고 했고, 로이드존스가 요단강에서 예수님이 사람처럼 성령을 받았다고 한 부분을 특히 많이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 세상에 나올 수 없는 부흥의 사람인 조나단 에드워즈도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성령을 받았다고 이해한 것이 잘못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서철원 박사님의 최근 교의신학을 보니 내용이 똑 같던데요. 서철원 박사님도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성령세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메시야가 되었다고 합니다.

 

답변>
서 박사님은 오순절 운동가들과 신사도 운동가들이 말하는 관점의 성령세례를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받았다고 하실 분이 결코 아닙니다. 서철원 박사님의 신학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무슨 의도로 그런 표현을 사용했는지, 잘 이해하면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서 박사님은 요단강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음의 두 가지 일이 일어났다고 가르치는 분입니다. 

1)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가
2)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임직식 차원의 성령의 세례(기름부음)

 

세례 받으심으로 죄의 전가를 받으심

서철원 박사님은 예수님의 요단강 세례 때, 우리의 죄가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법적으로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가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서 박사님의 설명을 직접 보시기 바랍니다.

“구속주로서 인류의 죄를 속량하셔야 하므로 인류의 죄과를 전가 받아야 했다 (고후 5:21). 이 죄의 전가가 법적으로 세례 받을 때 이루어졌다 (마 3:15-16). 그는 의인이고 무죄자이므로 죄를 회개할 필요가 없었지만, 세례 받으므로 자기를 죄인들과 일치시켜 세상 죄과를 전바 받았다 (마 3:13-16).

그러므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선포되었다 (요 1:29.36). 주 예수가 세례 받음이 죄과를 전가 받는 계시였다 (고후 5:21; 히 9:26; 롬 6:10). 그가 세례를 받으므로 죄과를 전가 받았다. 죄의 전가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이루어졌다. 전가 받은 죄가 때문에 저주받은 자로 죽게 되었다 (신 21:23; 갈 3:13; 행 5:30, 10:39).” (서철원,「서철원 박사의 교의신학 5」(쿰란, 2018), 102)

“세례 요한의 증거를 종합해 볼 때,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주로서 세상 죄를 전가 받은 시기가 세례 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의 전가는 그리스도를 죄인으로 만들지 않는다. 죄의 전가는 법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Ibid., 158)

 

메시야, 하나님 나라의 왕 임직식 차원의 성령세례

구약 시대에는 왕, 제사장, 선지자 직분에 취임하는 사람에게 감람유를 바르며 임직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때 붓는 기름은 성령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요단강의 성령의 임하심은 능력의 차원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령이 더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왕, 선지자, 제사장의 3중 직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이심을 성부, 성령이 함께 선포하신 사건이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구약의 왕, 제사장 취임식에서 부어졌던 감람유가 상징하였던 성령이 요단강에 임하시여 친히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임직식을 이끄시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서 박사님의 책에서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성령세례(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표현하는 문장들을 모두 모아보았습니다. 얼핏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개인적으로 메시로서의 능력을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얻는 차원의 성령세례, 즉 오순절 운동가들이 말하는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면, 모든 내용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취임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는 왕, 제사장, 선지자 삼중 직임을 지닌 그리스도로 세워졌다. 더욱 정확하게는 제사장적 왕으로 세워졌다. 메시아 곧 구속주는 왕으로 출생하셨다 (마 2:2-6; 눅 1:33; 사 9:6-7, 32:1; 계 12:5). 그러므로 그는 왕으로 임직되어야 했다. 임직이 성령세례 받음이요, 더 정확하게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마 3:17; 막 1:11; 눅 3:21-22)는 선언이다.” (Ibid., 102)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아 메시아 곧 이스라엘의 왕으로 임명되었다 (행 17:7; 마 1:9-11; 눅 3:21-22).” (Ibid., 106-107)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아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임명되었다 (막 1:10-11; 마 3:16-17; 눅 3:21-22). 성령세례에 의해 메시아로 임직되고 왕으로 선언되어 하나님 나라를 설립해야 했다.” (Ibid., 110)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아 대제사상이 되었다 (히 9:11-15; 10:12).” (Ibid., 111)

“주 예수가 요단강에서 세례 받아 구주 곧 그리스도로 세워지고, 성령세례 받아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세워졌다.” (Ibid., 126)

“주 예수는 성령세례 받아 메시아로서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임직되고 선포되었다.” (Ibid., 159)

“그가 이사야 61장 1,2절을 읽고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눅 4:17-18), ‘이 글이 너희 귀에 응하였으니라’ (눅 4:21)고 하여 자기가 요단강에서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임을 정식으로 인정하고 선언하였다.” (Ibid., 159)

서 박사님의 예수님의 요단강 성령세례를 언급하는 모든 문장들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메시야 임직식으로 연결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과 메시야로 임직하는 것과 무관하게 기술되는 예수님의 요단강 성령세례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에드워즈와 로이드존스의 요단강 성령세례

서철원 박사님의 신학에서 이미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가 능력을 더 얻는 차원에서 성령세례를 또 받는다는 사상, 그리고 그 이론의 원조 모델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목되는 오순절 신학은 결코 설 자리가 결코 없습니다. 제가 에드워즈와 로이드존스의 성령 신학을 강하게 비판했던 것은 그들이 구원받은 성도가 능력을 더 얻는 차원에서 성령세례를 받아한다는 이론과 동일 선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요단강 성령세례 사건을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에드워즈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이미 성령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 사역의 서두에서 기도함으로서 성령을 더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다음은 에드워즈의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기도하여 성령을 받으셨다.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라고 누가복음 3장 21,22절에 나온다.”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 2, 964. George M. Marsden, Jonathan Edwards: A Life (New Haven,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3), 144.)

에드워즈의 성령과 부흥의 신학을 그대로 따랐던 로이드존스도 예수님에게 능력을 주는 성령세례가 요단강에서 예수님에게 임했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능력을 주는 성령세례를 추가적으로 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 시 한번 말하면 주님이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그분에게 임하셨다. 바로 그때 주님은 메시아적 사역과 구원사역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으셨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 개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마틴 로이드존스, 「하나님의 자녀: 요한일서 강해 1-3장」(임성철 역)(서울: 생명의말씀사, 2010), 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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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 박사는 서울대학,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원(Th.M), 화란의 자유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다. 화란의 자유대학에서 칼 발트의 신학을 지지하는 지도교수 베인호프와 다른 발트의 제자 신학자들과의 토론에서 칼 발트의 신학의 부당성을 증명하였다. 발트의 사상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논문 '그리스도 창조-중보자직'을 관철하여 박사학위를 얻었고, 이 논문이 독일 튀빙겐대학이 선정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 논문 100편에 수록되어 한국 교회의 위상을 드높였다. 총신대 신대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 십년 동안 목회자들을 길러내는 교수사역에 헌신하다 영예롭게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연구하시며 <바른믿음>의 신학자문 역을 맡아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