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프레임 박사의 개혁신앙이란 무엇인가?(1)

존 프레임 박사

내가 1961년 학생으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처음 왔을 때, 대다수 학생들은 대체로 개혁신앙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학생들 중 많은 수가 칼빈주의 계통의 학교나 대학에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었고, 심지어 더 많은 학생들이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개혁파의 요리문답과 신앙고백을 공부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그런 학생들이 입학하는 경우는 드물다.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비개혁신학 배경에서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입학했고, 심지어 최근에 회심을 경험하고 신학교에 들어오기도 했다. 개혁신앙 배경 출신의 학생들이라고 하여 요리문답을 아주 잘 아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웨스트민스터신학교 학생들은 처음 학교에 들어왔을 때 이 학교의 교리적 입장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 학생들은 웨스트민스터신학교가 성경의 권위와 성경무오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복음주의 기독교의 근본교리들을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그들은 우리가 탁월한 학문성을 가지고 이 교리들을 설명하고 변호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러나 상당수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가 개혁주의 신앙이라는 분명한 역사적 교리적 전통을 고수하는 고백주의적 신학교육 기관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나는 이 모든 학생들을 이 신학교에서 만나 매우 행복하다. 나는 우리의 표준적 신앙고백과 거리가 멀던 학생들도 웨스트민스터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기쁘다. 그러나 그들의 등장으로 인해 신학교의 교리적 입장에 관한 상당히 기본적인 수준의 몇 가지 가르침을 분명히 제시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학생들의 신학교 생활 초창기에 개혁주의 신앙을 소개하여 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 개혁주의 신앙은 여기 웨스트민스터에서의 모든 가르침을 더욱 역동적으로 만들어주고 지도해 줄 것이다. 학생들은 개혁주의 신앙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 논문을 쓰는 목적도 여기 있다.

내가 또한 개혁신앙에 대한 서론을 제공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신학교 수업을 시작할 때 여러분은 전체 개혁신학 전통 안에 상당한 다양성이 있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극단적 칼빈주의’(hyper Calvinism)
‘신정주의’(theonomy)
‘율법폐기주의’(antinomianism)
‘전제주의’(pre-suppositionalism)
‘증거주의’(evidentialism)
‘조망주의’(perspectivalism)
‘전통주의’(traditionalism)

여러분 들은 이와 같이 우리 자신을 지칭하고 서로를 지칭하는 여러 명칭들에 대해 배울 것이다. 누가 ‘참으로 개혁주의자’인지, 누가 중요하지 않고 누가 더 중요한지, 그리고 누가 ‘참으로 성경적’인지 결정하는 것은 늘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여러분에게 개혁신앙 전통 안에서 내가 어디 서 있는지 보여주고, 이 같은 미로 가운데서 여러분의 길을 찾을 수 있는 데 필요한 약간의 가이드를 제시하려고 한다.

본고는 개혁신앙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이기보다는 ‘서론’에 지나지 않는다. 심도 있는 분석은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교과과정 전체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개진하는 교리적 논점들은 여러분들의 조직신학과 변증학 과목에서 더 많이 논의될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의 학업에서 신학교 시절 초창기에 개혁주의 신앙에 대한 전반적인 개관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이 논고와 함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 또한 대륙의 유럽 개혁교회의 세 개의 공동 칼빈주의 신앙고백서(three forms of unity), 곧 벨직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그리고 도르트신조를 읽을 것을 권한다. 이들 신앙고백은 개혁주의의 교리적 입장을 철저하고 정확하고 집약적으로 담고 있는 훌륭한 개요이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은 모든 시대를 초월하여 가장 위대한 경건 작품 가운데 하나다. 나는 또한 코넬리우스 반틸의 신앙변호(The Defense of the Faith)에 있는 개혁신학 입문개요에서 여러분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실질적인 교리적 문제로 들어가기에 앞서 다음 질문을 던져보겠다.

“왜 우리는 성경 외에 어떤 신앙고백을 살펴야 하는가?”

이것은 좋은 질문이다. 내 마음 같아서는, 신조들이나 또는 그런 신조들을 따르는 교파가 필요 없으면 좋겠다. 교파는 언제나 어느 정도 죄의 결과이고, 분파주의 정신의 산물이다. 누군가 내게 어느 소속이냐고 물을 때, 그냥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의 신앙적 입장들(my religious beliefs)에 대해 물으면, 그냥 ‘성경’이라고 말하면 좋겠다.

불행하게도,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단순한 대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늘날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하며, 심지어 실제로 그리스도의 왕국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면서도 성경을 믿는 신앙인들(Bible-believers)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자유주의자들, 문화주의자들, 그리고 뉴에이지 혼합주의자들이 너무도 만연하고 있다.

여러분이 이웃을 교회에 초청하기 위해 그를 방문할 때, 그 이웃은 여러분이 무엇을 믿는지 알 권리가 있다. 만약 여러분이 그에게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고 성경을 믿는다고 말한다면, 그는 더 나아가 “당신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을 권리가 있다. 그것은 어떤 신조와 신앙고백으로 대답하겠느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신조는 단순히 성경의 가르침에 관한 개인 또는 교회의 신앙의 요약이다. 그리고 그러한 요약이 틀림없이 교인들과 질문자들의 편의를 위한 기록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신앙고백문은 성경이 아니다. 그리고 신앙고백서는 무오하거나 궁극적인 표준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사실, 나는 교회에서 신조를 개정하는 것이 가능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교인들(교회 회원)과 직분자들이 신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신조는 실질적으로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갖는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목회자가 신조의 세부적인 사항에 반대하여 가르치는 것조차 결코 허용하지 않는 ‘엄격한’ 신조절대복종 견해는 자칫 교회의 정통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러한 견해는 성경의 권위와 충족성을 전복시키는 행위이므로, 실질적으로 교회의 정통주의를 전복시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신조절대복종 견해 하에서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교회를 개혁할 자유를 얻지 못한다.

그러나 신조들 자체는 교회와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심지어 웨스트민스터 같은 신학교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다. 왜냐하면 신학교들도 역시 후원자들과 학생들, 그리고 입학 희망자들에게 신학교 교과과정에서 어떤 종류의 교리를 가르치는지 말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개혁신앙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놀라운 발견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자기가 개혁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처음으로 성경의 의미를 진짜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증언하는 말을 들었다. 다른 신학 형식들에는 수많은 종류의 인위적인 성경주해가 있다.

예를 들어, 타당성 없게 절(節)을 나누는 시도, ‘난해 구절’을 이성적으로 바꾸어 설명하려는 시도, 성경 이외의 틀을 본문에 끼워 맞추려는 시도 등이다.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저자(인간 저자와 신적 저자)의 의도에 맞게 성경을 매우 자연스럽게 취한다. 다른 신학 체계와 마찬가지로 개혁신학 체계 안에서도 물론 많은 난제들이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개혁주의의 가르침 하에서 성경을 읽기 시작할 때 성경을 이해하고 확신하는 데 있어서 엄청난 진전을 경험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대단한 권능으로 말씀하고 그들에게 거룩함을 향한 위대한 동기를 부여한다.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개혁주의 접근을 반대한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는 학생들에게 그들이 학교에 등록할 때나 학교를 졸업할 때 개혁신앙의 확신을 갖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자신의 지성을 직접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험으로는, 비개혁주의 전통에서 온 웨스트민스터신학교 학생들이 개혁주의 접근방식을 가질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제공 받으면, 대체로 그 신학을 수용하게 된다.

웨스트민스터에서의 지난 35년간의 교수 세월 동안, 내가 알기로는 아르미니안주의 입장을 취한 졸업생들의 수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에 불과했다. 그것은 학교가 신학생들에게 개혁신학의 교리적 입장을 따르도록 강요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교수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피하려고 할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여러분들이 개혁주의 신학을 접하고 그것을 비개혁주의 신학과 비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려고 한다. 여러분이 그 연구를 마칠 즈음이면 우리가 개혁신앙 안에서 기뻐하는 것과 똑같이 여러분도 기뻐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존 프레임 박사(리폼드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전 웨스트민스터신학교 교수)

최덕성 교수의 리포르만다(크릭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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