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장례에 있어서 전통적인 ‘매장’보다 ‘화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증가한 이유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한 몫을 하고 있다(2014년 3월 통계를 보면 77.3%).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정통적인 기독교 입장’에서는 어떻게 이해할 것이고 더 나아가서 개혁주의 교회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화장이 정통적 기독교 입장에서 볼 때에 전혀 성경적이지 않기 때문인데 구약학자 김정우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브라함 뿐 아니라, 모든 신앙의 선진들이 그들 열조의 묘실에 매장되었다. 매장 제도는 신약시대의 관습이기도 하였으며 여러 역사적인 문헌과 고고학적인 증거들을 살펴볼 때 초대 교회의 기독교인들은 비록 부활의 확신을 갖고 있었지만, 화장을 장례 형식으로 취한 적이 없었다.”

개혁주의 교회의 대표적인 화란개혁교회는 권고하기를 ‘매장’이고 죽산 박형룡 박사는 자신의 교의신학에서 ‘매장’을 선호하였다. 몇 년 전에 미국의 대표적 신칼빈주의자 존 파이퍼는 ‘화장’에 대해서 “기독교인은 화장을 멀리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죽은 자의 몸 역시 부활을 경험한다. 화장은 사악하고 파괴적인 정죄의 불꽃을 상징하며, 인간의 육체로 불로 태우는 것을 경멸의 상징이다. 불은 지옥, 고문과 관련있기에 우리의 삶을 불로 끝내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주장들은 결코 ‘간과’해서는 아니 되는데, 매우 안타깝게 국내에 나온 기독교 장례 관련 책들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다루는 책이 매우 적다.

그리고 목사들은 기독교 장례에 대한 신학적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이러한 현실에 고민을 하지 않고 세상에서 장례 방법으로 인기가 있는 ‘화장’을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고 있고, 심지어 한국은 ‘화장’을 할 때에 시신만 아니라 다른 재료들도 같이 태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하게 ‘화장’은 성경적, 역사적, 교의적, 목회적 관점에서 볼 때에 매우 잘못된 장례 방법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역사에서 다양한 장례 방법이 있었고 그 중에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매장’이 무시되고 줄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 역사적 배경에는 종교다원주의를 지향하고 반기독교적인 ‘프리메이슨’의 영향력이었다고 있다. 이전에 두란노의 <목회와 신학>에서 장례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보았다. 

“화장은 기독교 신앙을 반대하는 집단이 선호하였는데 실제로 1837년 처음으로 화장을 주장한 이탈리아 파두아의 브르에티 교수는 프리메이슨에 속해 있었고, 프리메이슨은 화장운동을 전개하여 각국 정부로부터 화장을 허락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후 드레스덴, 취리히, 런던, 파리 등지에서 이 운동이 조직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뻬르 라쉐즈에서는 1889년 장례의식의 자유권을 보장하는 법령이 발표되면서 화장장이 설치되었습니다.”(2015년 1월 확인)

이러한 충격적인 사실을 통해 기억해야 할 것은 프리메이슨이 장례 방법으로 ‘화장’을 주장하는 이유는 ‘기독교의 창조신앙을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즉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인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창 3:19)

이와 관련해서 기독교 교파 중 가장 보수적인 교파인 정교회는 ‘화장’을 절대 반대하며 ‘인간생명에 대한 입장’에서 “창조의 선한 기본적 행위를 깨닫고 있는 정교신앙은 인간육신은 인간의 근본성의 일부며 하느님 성령의 성전임을 확인하고, 죽은 사람이 부활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화장은 임의적인 불경이고,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우리에게 부여하신 것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매장을 통한 육신의 자연부폐 진행을 합당한 행위로 교회는 가르친다. 화장을 결정하면 성당에서의 장례식은 물론 가정집이나 기타 장소에서의 장례식을 금하고 있다. 더욱이 추도식도 허용이 않되며, 이는 제사때 사용되는 제밥에서의 “한 알의 밀” 과 임의로 파괴된 “육신”의 관계가 성립되지 못하기 때문에 금지된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정교회의 주장은 ‘창조신앙’으로 볼 때에 매우 타당한 것이다. 개혁주의 조직신학자 중에서 ‘성경적 인간’을 가르친 앤서니 후크마는 자신의 인간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몸의 부활은 성경의 종말론적 메시지의 핵심이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인간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과 헬라적 관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헬라 철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몸은 악하며 인간의 완전한 실존에 방해가 된다. 그래서 죽는 순간 몸은 분해되는 반면 영혼은 계속해서 살아간다. 여기에 몸의 부활에 대한 소망은 없다. 이와 반대로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몸과 영혼으로 창조하셨고 인간은 몸을 떠나서는 완전하지 않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육체적 부활은 모두 몸이 악한 것이 아니라 선한 것임을 입증한다.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므로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이들도 영화롭게 된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은 지금도 중간 상태 동안 잠정적인 행복을 누리지만 그들의 행복은 그들의 몸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할 때까지는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몸의 부활은 기독교 특유의 교리다.”

위의 후크마의 글을 통해서 생각해 볼 것은 인간은 몸과 영혼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구분이 되면서 통일체로서 ‘전인(totus homo)’이 성경적 인간 이해이기에 인간을 이분설(영과 육의 분리) 또는 삼분설(영과 육 그리고 혼으로 분리)로 이해한 헬라사상을 가진 헬라인들처럼 ‘화장’이 아니라 ‘매장’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하기를 장례에 있어서 “‘화장’이 무슨 문제인가?” 그리고 “화형으로 죽은 순교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으로 여기어 비본질적으로 여기고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그리스도인의 다시 살아남(rising)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를 생각해 보면 그들의 문제는 ‘영지주의’로 영만 추구하고 육을 무시하여 성적 타락을 하였는데 사도 바울은 편지에서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 3:16-17)라며 신자의 영만 아니라 육도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으로 헬라적 사고를 벗어나 히브리적 사고로 인간을 통일체로 가르쳤다.

그리고 문화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도우슨은 “한 시대의 기독교 문화의 정도를 판단해보는 척도는 그 시대 관혼상제가 얼마나 기독교적으로 변화되었는가”라 하였는데, 기독교 역사를 보면 이방종교와 사상에서 행했던 장례 방법인 ‘화장’을 행했던 유럽은 ‘매장’으로 변혁(transform)이 되었지만 19세기 프리메이슨에 의해서 기독교 문화를 가졌던 유럽이나 미국은 빠르게 ‘화장’으로 되고 한국도 비슷한 현상을 일어나 한국교회의 신자들도 잘못된 장례 방법을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개혁주의 교회의 목사라면 장례 방법으로 ‘화장’이 아닌 ‘매장’을 가르치고 실천해야 하고 기독교 윤리학자 이상원 교수의 주장대로 “매장은 성경이 인정하고 있는 유일한 장묘방식”으로 개혁주의 관점이고, 필자도 국가자격증인 ‘장례지도사(FD)’를 공부하면서 고민하고 연구하여 내린 결론은 매장이 성경적이고 예수님께도 행한 장례 방법이고, 초기교회 신자들도 행한 ‘매장’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른 기독교 장례 이해’에 전반적인 도움이 되는 책으로 필자의 <기독교 장례학>(데이, 2015)과 이상원 교수의 <기독교 장례문화>(대서, 2016)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만옥 목사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개혁신학연구원, Knox Theological Seminary(D.Min.), Grace Theological Seminary(D.Miss.Pro.)에서 공부하였고, <성찬식을 어떻게 행할 것인가?> 등 6권의 저서와 1권의 공저를 출판하였다. 전, 개신대학원대학교 강사였고, 현재는 경북 영주의 바른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바른성경아카데미(RBA) 원장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올바른 개혁주의 신앙을 위해 실천하려고 연구하는 실천신학자이고, 또한 장례지도사로서 지역 사회를 섬기고 있다. potentia-dei@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