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믿음의 한 독자에 의해 코르넬리스 프롱크 교수의 율법 이해가 바울의 율법 이해와 완전히 상충되고, 심하게 말하여 바울에 의해 프롱크 교수가 이단으로 정죄되고 있다고 제기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졌으므로 급히 복음서를 제외한 신약 성경의 율법에 관한 모든 말씀들을 살펴보았다.

과연 기독교의 율법에는 구원에 필요한 의를 얻게하는 기능이 본래 있었는지 각자가 살펴보기 바란다.
 

1. 아브라함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롬 4:2,3)

아브라함 때에는 아직 율법이 없었으나, 바울은 아브라함이 무슨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을 얻었다고 한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인 것을 감안하면, 하나님 앞에서의 의는 처음부터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율법이나 무슨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 로마서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롬 2:13)

바울은 율법을 듣기만 하는 사람보다는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얻는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의가 구원을 주는 의인가? 아니면 입으로면 율법을 말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행하는 사람이 더 귀하다는 뜻인가?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롬 3:19)

바울은 율법의 기능이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고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3:28)

바울은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지 못하고 오직 믿음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롬 4:15)

바울은 율법이 죄인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하는 기능을 한다고 한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롬 5:13)

바울은 율법이 죄임을 모르고 사는 죄인들에게 죄를 깨닫게 한다고 한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롬 5:20)

바울은 율법이 옴으로서 죄가 더 분명해진다고 하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 크게 드러난다고 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롬 7:7)

바울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를 확실하게 알게 된다고 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 10:4)

바울은 우리에게 의가 되어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요구대로 죽으셨다고 한다. ‘율법의 마침’은 그리스도께서 율법대로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심이다.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롬 10:5)

바울은 모세가 율법을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산다고 했다고 한다. 과연 모세를 율법을 행함으로 의를 얻고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던 사람인가? 만일 모세가 진정 율법을 행함으로 의를 얻는다고 믿은 사람이었다면, 구약의 율법과 제사 등이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그림자였다는 성경해석의 대전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리고 이 문장의 전후를 종합하면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하심을 얻는다는 의미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3. 갈라디아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갈 2:16)

바울은 율법을 지킴으로 의를 얻지 못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를 얻는다고 분명하게 선언하였다.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 2:21)

바울은 율법을 행하여 의를 얻을 수 있었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괜히 죽으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갈 3:11)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통하여 그 누구도 의를 얻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3)

바울은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셨다고 했다. 율법의 기능은 죄인을 저주하여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의 필요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갈 3:19)

바울은 범죄가 발생하고 난 후 범죄를 지적하기 위해 율법이 왔다고 하였다.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갈 3:21)

바울은 율법을 통해 의를 얻는 길이 있었다면 한 두 명이라고 율법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고 하였고, 그리스도가 꼭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 3:23,24)

바울은 율법이 그리스도 앞으로 죄인들을 인도하는 기능을 했고, 그리스도가 등장한 이후에는 제 기능을 다하였다고 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 5:4)

바울은 율법을 통하어 의를 얻으려 시도하는 자들은 이미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들이라고 선포하였다.
 

4. 에베소서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엡 2:15)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서 율법의 효력이 다하게 만들었다고 하였다.
 

5. 빌립보서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빌 3:9)

바울은 자신이 바리새파 출신으로서 누구보다 율법을 많이 행하였던 사람이나 자신이 얻은 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의라고 말했다.
 

6. 히브리서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히 10:1)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의 율법이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지시하는 것에 불과했고, 율법으로서는 온전체되는 은혜를 얻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7. 야보고서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약 2:10,11)

야고보는 율법으로 의를 얻으려면 모든 율법 조항들에 대해 완전해야 한다고 했다. 단 하나의 율법에라도 걸리면 안 된다고 했다. 율법의 의를 얻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이상으로 살펴본 것처럼, 신약 성경에 나오는 율법에 대한 모든 말씀들 절대 다수는 율법이 죄인에게 하나님 앞에서 필요한 의를 얻게하는 것이 아니고,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목적으로 주어졌다고 한다. 율법의 의를 말하는 두 구절의 의미가 명확하지 못하기는 하지만, 율법을 행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칭찬하신다는 의미이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의 의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프롱크 교수가 구약의 율법이 구원을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고, 부족한 인간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자 그리스도께서 대신 율법을 지켜주심이 곧 우리에게 복음이고,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의 전가로 인해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가르치는 것은 기독교의 율법에 대한 심각한 왜곡의 요소가 있다고 비판받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율법과 구원에 대한 프롱크 교수의 주장을 아래에 소개한다.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된 프로크 교수의 대표작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그것은 율법이 마음에 새겨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프롱크, 도르트신조 강해, 257)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율법을 마음에 새겨주셨습니다.” (Ibid., 257)

“아담은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킬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때 율법은 사람의 친구였습니다. 아담은 율법을 바라볼 때 자신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사랑했습니다.” (Ibid., 262)

“율법은 조건적인 구원을 약속합니다. 오직 율법에 완전히 순종할 때만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은 아담이 행위언약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 그러나 아무도 하나님의 율법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타락한 상태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프롱크, 259)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시내산에서의 율법조차도 이스라엘에게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 율법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차이는 돌판에 새기셨다는 것입니다.” (Ibid., 258)

“복음은 죄인에게 회개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어떻게 회개가 일어납니까? 그때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금 우리 마음에 새겨 주시고, 우리는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것이 당신이 구원받았는지 아닌지를 아는 방법입니다.” (Ibid., 264)

“죄인은 자신의 대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히 순종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그 죄인에게 전가됩니다.” (Ibid., 236)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위해 주님의 모든 계명에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자신의 죄의 짐을 느끼는 죄인들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프롱크, 268)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