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페스코에 대한 연구 논문이 몇 개 있다. 이윤석 박사는 “결정적 성화 개념에 대한 존 머레이와 존 페스코의 상반된 견해” (「한국개혁신학」 46권, 2015)에서 페스코의 머레이의 결정적 성화(definitive sanctification)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제시했다. 우병훈 박사는 “칼빈의 모세 언약 이해—존 페스코와 코넬리스 베네마의 논쟁에 비추어서” (「칼빈연구」 제13집(2016)에서 모세 언약에 대한 두 이해를 제시했다.

17세기 웨민고백(이하 WCF) 이후 끊임없이 칭의 논쟁은 안과 밖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능동적 칭의와 수동적 칭의, 모세 언약(율법) 이해는 개혁 신학 진영 안에서 펼쳐진 내용이고, 전가 교리 부정, 무율법주의, 이신칭의 부정 등은 밖에서 공격하는 것이다. 이신칭의 교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필자는 이신칭의 교리, 단번에 주신 구원의 도리를 굳게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제언한다 (롬 10:6, 히7:27, 벧전 1:18, 유 1:3). 그리고 예수의 피, 십자가 보혈의 죄 사함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흐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8)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는 즉 죄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2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브리서 10:19)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사도행전 2:38-39)

그럼에도 능동적 순종(The Imputation of Christ's Active Obedience, 이하 IAOC)에 대한 적지 않은 논쟁이 발생했다. 그에 대해서 페스코1)와 레담2)의 글을 비교하면서 간략한 이해를 제시한다.

첫째, 레담(Robert Letham)은 IAOC와 IPOC의 문구가 WCF에 없는 것에 대해서 결론하지 않았고, 완전한 순종(perfect obedience)이 있다고 제시했다(446-447쪽). 그리고 IAOC와 IPOC의 문구가 1658년 오웬과 토마스 굳윈이 주도한 ‘사보이 선언’에 포함된 것을 지적했다. 레담은 사보이 선언이 WCF의 부당성을 교정하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WCF 문서에는 없는 문구라고 제시했다 (448-452쪽).

그런데 페스코는 “웨스트민스터총회의 신학자들이 가대커, 트위스 등의 소수 견해를 수용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런 증거들을 감안했을 때, 표준문서가 IAOC를 단언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290쪽)라고 말했다. 바로 이 문장 때문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소수의 견해를 수용하지 않았는데, 소수가 주장한 문구가 WCF에 있는데, 페스코가 “IAOC를 단언한다”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페스코는 WCF가 IAOC를 단언한다고 제시한 근거를 설명해주어야 하는데, 그 근거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페스코는 구체적인 회의 과정을 제시해준다. IAOC 반대 의견은 소수이고, 찬성은 다수이고, 발언횟수도 많다(267, 279쪽). 그런데 다수이고 다수발언인데, 왜 WCF에 IAOC 문구가 기록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10년 뒤에 사보이선언을 작성해서 IAOC로 수정했을까? 그것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것이 좀 더 정확한 논지가 될 것이다.

페스코와 레담의 웨스트민스터 총회 상황을 보면, IAOC 문구는 WCF에 없다. 그럼에도 페스코는 WCF가 IAOC를 단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레담은 사보이선언은 WCF의 부당,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해서 작성된 것이라고 했다. 페스코는 총회 참석자들 다수가 IAOC 찬성자였기 때문에 IAOC를 단언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레담처럼 IAOC 문구가 빠진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 독자에게 정확한 역사 이해를 제언하는 것이다. 페스코가 IAOC를 존중하는 연구자라면, 오히려 자기 독단을 개입시킨 전개라고 평가할 수 있다.

둘째, 페스코는 두 가지 의에 대해서 정확하게 제시했다 (270, 285쪽). 페스코는 WCF 1647년 원본에 “그리스도의 순종, 그리고 죽음”에 콤마(,)가 있는데, 스코틀랜드 자유교회 번역에서 콤마를 제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콤마가 있는 WCF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분리했다고 주장했다 (285쪽).

피틀리는 “그리스도의 이중적 순종”을 강조했는데, 그것은 피스카토르와 항론파 신학자가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의 전가만을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270-271쪽). 페스코, IAOC를 주장하는 부류는 그리스도의 이중적 순종, 두 가지의 의를 주장한다고 볼 수 있다.

피틀리 모든 순종이란 문구에 대해서 거부하며, 두 가지 순종에도 만족하지 않고, 죄에 대한 치료책을 삼중직으로 주장했다(287쪽). 원죄는 그리스도의 원의, 부작위의 죄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작위의 죄는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으로 치료된다고 주장했다(287쪽). 그래서 “모든 순종”이라는 문구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페스코는 피틀리의 주장을 제시했지만 그의 구체적인 이해를 제시하지 않았다. 죄의 치료책을 세 가지로 제시했는데 세 가지가 어떻게 다른 지에 대해서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IAOC를 주장하는 칭의 이해에서 몇 가지를 파악할 수 있다. 첫째, IAOC는 웨스트민스터 총회 과정에서 발생했다. 둘째, WCF에는 그 문구가 없다. 셋째, 페스코는 문구가 없지만 IAOC를 확언했다. 넷째, IAOC를 찬성하는 사람이 많았다. 다섯째, 레담은 WCF를 보완하기 위해서 사보이 선언을 작성했다. 결론적으로 IAOC를 찬성하는 사람이 많음에도 왜 그 문구가 기록되지 않았을까? WCF 작성에 신비를 주는 것 같다.

레담과 페스코의 제시는 명료한 제시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레담은 사실적시를 했고, 페스코는 IAOC의 정당성을 관철시키려는 자세로 했다고 보인다. 콤마가 있든지 없든지, WCF에는 IAOC 문구는 없다. “완전한 순종과 죽음”을 말하는 것이 WCF를 존중하는 것이다.

“완전한 순종과 죽음이라 쓰고 IAOC와 IPOC라고 읽는 것”은 독자의 자유이다. 그러나 IAOC가 알미니안과 무율법주의자를 배격했으니 정당하다거나, FV와 NPP를 배격하니 정당하다는 주장은 좋지 않다. 어떤 부당한 것을 배격했기 때문에 좋다는 것은 설득이 아니라 폭력이다. 자기가 주장하는 내용으로 자기 정당성을 주장해야 한다.

IAOC 논쟁은 16세기에서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시대에도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대전제에 합의해보자. 자기 표준 문서를 밝히는 것과 개신교의 대전제인 이신칭의를 확고하게 세우는 것이다.

-- 미주 --

1) <역사적, 신학적 맥락으로 읽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신윤수 역), (부흥과개혁사, 2018).

2)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역사 1> (권태경, 채천석 역), (개혁주의신학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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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