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욱 목사 건에 관해 놓치고 있는 중요한 사실 하나

313년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기까지 핍박받았던 기독교를 지켜온 변증가들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오리겐(Origen), 라틴교회의 터툴리안(Tertullian)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이들의 변증사역은 네로의 박해(64년)로부터 거의 300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이방인들이 기독교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오해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황제의 권위와 국가 질서를 파괴하는 불순한 시민들이라는 오해,
둘째, 그리스도인 형제와 자매들이 서로를 위하고 봉사하는 것을 그들끼리 먹고 마시며, 극도로 문란한 파티를 즐기며, 어둠 속에서 근친상간까지도 이루어진다는 오해,
셋째, 기독교인들이 아기 예수라고 하기도 하면서 그를 기념한다는 이상한 식사를 나눈다는 소문, 예수의 살과 피를 나눠 먹고 마신다는 이상한 말, 그래서 아기가 들어있는 커다란 빵을 그리스도인들이 잘라서 먹는다고 오해했습니다.

그 당시의 변증가들은 이런 것들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특히 기독교야 말로 이방 종교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도덕성과, 사랑과, 순결에 있어 충만한 종교라고 변증하였습니다. 왜 기독교인들은 다른 이방인들에 비해 도덕적 순결성이 탁월했을까요? 다른 철학과 종교는 도덕적 순결성을 개인들의 수련과, 결심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하였던 반면, 성경에서는 그와 같은 본질적인 유혹들이 개인의 노력과 결단에서가 아니라 오직 성령에 의해서만 제거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우리의 도덕적인 올바름이 성령을 따라 살아갈 때, 성령의 임재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하다는 것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합니다. 성령을 따라 사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의 욕망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므로, 여러분의 욕망대로 살 수 없게 합니다 ... 육체가 하는 일은 분명합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음란과.”(갈 5:16~19.쉬운성경)

인생에서 가장 떨치기 어려운 유혹인 음행과 더러움과 음란은 인간의 노력이나 치료나 수행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임재 하에서만 그것이 떠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에서는 이방인들에 비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도덕적 순결성을 유지했던 것입니다.

좀 더 심각하고 본질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음행과 음란은 거듭나지 않는 자들은 결코 이겨낼 수 없습니다. 오직 거듭난 그리스도인만 이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나지 않는 자들은 아무리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 입건, 정숙한 여인으로 모습으로 앉아 있건, 여전히 모두 음란한 사람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도덕적 순결, 특별히 음행은 오직 교회만이 본질적으로 치유할 수 있습니다. 음란을 치유해서가 아니라, 중생의 경험을 통하여 음욕이 사라지게 해야 하는 것이기에 교회 외의 다른 기관에서는 음란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2012년 대한민국 교회는 공개적으로 죄에 대해 아무것도 못한다고 스스로 선언했습니다. 전병욱 목사가 목회를 하면서 오랫동안 성추행 했던 것이 들통 났습니다. 어찌 통탄할 노릇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또 늑대가 얼마든지 양의 가면을 쓸 수 있는 것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사람 속은 모른다 하지 않습니까? 성 중독자라도 목사 짓을 못하지는 않습니다. 다 속이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전국 교회가 여기에 충격을 받고 있을 때, 필자는 그런 이유로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와는 전혀 다른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병욱 목사에게 전별금 13억을 줬다는데, 그것도 그 교회 사정이니까 누가 왈가불가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삼일교회 당회의 결정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병욱 목사에게 ‘성 중독 치료비 1억 원 지급’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결정 속에 잠복해 있는 중대 한 뜻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치료 못하니, 세상의 기관으로 가서 치료 받으라!”

이게 교회의 최종 리더십인 당회에서 내려야할 사항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성령께서 역사하는데 왜 성 중독을 치료하지 못할까요? 교회는 더 이상 심각한 중독 증세들을 치유할 수 없는 무능한 곳이라고 천명한 것입니다. 더욱이 가장 충격적이면서, 동시에 한국교회의 암담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은 ‘삼일교회 당회의 그 작태’를 대한민국 교회의 누구도 꼬집어서 책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은 누군가 했을지언정 노회, 총회, 또는 어느 단체에서는 이 일을 언급한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특히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사건을 다루는 신문사들이나, 끝까지 파헤치겠다고 하는 일단의 무리들 중에서 삼일교회 당회의 배도행위의 심각성을 눈치 첸 사람이 없다는 것은 무얼 의미합니까? 모두가 삼일교회 당회가 결정했던 일을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한국 교회의 실정입니다.

어떻게 이게 교회일 수 있습니까? 성령의 강력한 임재가 있는 곳에서 저런 죄들이 함께 있을 수 있습니까?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이여! 당신들은 성령의 역사가 무엇인지나 아시고 계십니까? 아니 성령의 활동을 믿기는 하는 것입니까?

왜 한국교회가 ‘삼일교회 당회’의 그 결정에 대해 놀라지 않았을까요? 성령의 역사도 모르며, 거듭남도 모르며, 그러므로 구원의 경험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음행과 음란을 분명히 거듭나지 못한 육체의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구원과 관련된 중대한 일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갈 5:21 쉬운성경)

성범죄를 저지른 자, 일반 교인, 당회 ... 모두가 성령의 역사를 모르는 것은 매 일반입니다. 그러므로 삼일교회 당회의 결정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며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사건’에 연일 관심을 보이는 모든 교수와 목사는 부끄러운 줄 아셔야 합니다.

필자가 기독교 전문가(교수와 목사)는 더 이상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사건에 신경 쓰지 말고, 더 예리한 눈으로 신학적, 교리적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건은 굳이 기독교 전문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행위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은 ‘사상’입니다. 이단은 ‘성추행이나 거짓을 일삼기’에 이단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올바른 교리 즉, 사상이 성경과 다르기 때문에 이단입니다. 교회사를 더럽힌 자들은 ‘성추행’한 자들이 아니라 ‘이단 사상’을 가진 자들이라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추행은 본질이 아니고 열매일 뿐이며, 이들의 사상이 거듭나지 못한 것이 뿌리입니다. 이단사상은 결코 우리를 ‘구원의 도’로 이끌지 못하기에 치명적인 것입니다. 이미 사상이 세속으로 기울어져 더 이상 성경적 사고를 진행하기 어려워하는 목사들이 성 추행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보다 몇 배나 더 위험합니다.

▲ 지난 5월에 열린 전병욱 목사 사건에 관한 여성들의 토론회 장면. 한겨레 신문(http://well.hani.co.kr/105801)에서 캡쳐

‘전병욱 목사의 사건’을 바라보는 보수주의 목사들, 진보주의 목사들, 오순절 주의 목사들, 세상의 일반 신문들, 심지어 신천지의 천지일보와 통일교의 세계일보 ... 모두가 똑 같다는 것을 이제라도 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언제까지 정의로운 척 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정의롭고 결연한 의지의 얼굴로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사건’을 다루고, 또한 한국교회의 미래를 안타까워하며 토론하는 이들을 보면 “너는 안 그러느냐?”라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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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운 목사는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을 중심으로 탁월하게 가르치는 뛰어난 교육목회 전문가이다. 정대운 목사는 “객관화(진리)의 주관화(신앙)를 추구합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교육목회 철학을 표현하기 좋아한다. 세종대, 개신대학원대학교(M.Div),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에서 공부했고, 현재 계속해서 국제신학대학원대학(석,박사 통합과정)에서 연구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원 교수(교회사)로 사역하고 있고, 고양시의 삼송제일교회의 담임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