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성 목사, "근본주의 장로교의 필요성"(1)

김효성 목사 / 합정동교회 담임


신약교회의 시대가 2천년을 지난 지금, 온 세계에서도 그러하지만, 특히 우리 나라에서 근본주의적 장로교회들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끼면서 나는 ‘근본주의적 장로교회’가 무엇이며 그것이 왜 필요한지 몇 마디 증거하고자 한다.
 

장로교회

우선, 장로교회가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해 보자. 장로교회는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가지고 있는 교회이다. 첫째는, 교회의 정치 혹은 운영 방식에 있어서의 대의(代議) 정치이며, 둘째는, 교리와 신학에 있어서의 개혁신학이다.
 

1. 대의정치

장로교회의 첫번째 주요한 원리인 대의(代議) 정치란, 교인들이 뽑은 대표자들(목사와 장로들)에 의해 교회가 운영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교인들의 영적 특권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비록 목사와 장로들의 특별한 직무와 권위를 인정하지만, 동시에 모든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들이며(벧전 2:5, 9) 따라서 교회의 중요한 일들에 참여하였음을 증거한다(행 1:15-26; 6:5-6; 14:23; 15:22).

감독정치와 다름. 장로교회의 정치는 감독교회의 정치 방식과 다르다. 감독교회는 교인들의 참정권을 인정치 않고 감독들만이 교회를 운영할 권한을 가진다고 본다. 그러나 장로교회는 비록 장로들이 교회의 감독이며 그들에게 양무리를 돌보는 직무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행 20:28) 일반 교인들도 교회 정치에 참여할 영적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회중정치와 다름. 장로교회의 정치는 회중교회의 정치 방식과도 다르다. 회중교회는 일반 교인들의 영적 특권은 매우 중시하지만, 목사와 장로들의 감독적 직무와 권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장로교회는, 모든 신자가 다 제사장으로서의 영적 특권을 가지고 있지만 목사와 장로들에게는 교회를 가르치고 다스리는 특별한 직무와 권위가 있다고 본다(요 21:15-17; 행 20:28; 벧전 5:1-4).

이와 같이, 장로교회는 성경이 모든 신자의 제사장적 특권과 목사와 장로들의 감독적 직무와 권위를 둘 다 가르치고 있다고 믿는다. 일반 성도들의 영적 특권도 중요하지만, 또한 목사와 장로들의 특별한 직무와 권위도 중요하다. 장로교회는 그 둘 중의 어느 것도 무시되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의 정치 혹은 운영 방식에 있어서 장로교회의 대의 정치 방식이 가장 성경적이라고 믿으며, 모든 교회들이 장로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2. 개혁신학

교리와 신학에 있어서, 장로교회는 개혁신학을 따른다. 개혁신학이란, 로마 카톨릭 교회와 루터파 교회와 알미니우스파 교회와 구별되는 사상 체계를 말한다.

로마 카톨릭 교회와 분리됨. ‘개혁신학’은 우선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항하여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의 원리들을 따른다. 개신교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 오직 은혜!, 만인제사장직!’ 등의 원리들을 강조했는데, 그것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구별되는 중요한 점들이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권위의 근거를 성경에 두지 않고 교회 자체와 교회의 우두머리인 교황에게 두었다. 또 로마 카톨릭 교회는 사람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복음 진리를 부정하였고 구원을 위해 성례들의 절대적 필요성을 주장했다. 또 교회와 신부들의 중보적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이 모든 주장들을 비성경적인 것이라고 배척하고, 오직 신구약 성경만이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는 것과, 사람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를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것과, 모든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적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 등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강조점들은 개혁신학의 기본적 원리들이다.

루터파 교회와 구별됨. 개혁신학은 또한 종교개혁 때로부터 루터파 신학과 구별되었다. 특히, 성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의 방식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그 둘은 서로 달랐다. 루터파 교회는 ‘이것은 내 몸이요, 이것은 내 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려고 했다. 즉 그 교회는 주의 몸과 피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성찬의 빵과 포도즙 안에, 곁에, 아래 임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혁파 교회는 주의 말씀이 비유적 표현이며 예수님의 몸과 피가 실제로 함께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의 영께서 성찬식에 함께하실 뿐이라고 보았다.

뿐만 아니라, 교리 체계에 있어서의 인간론적, 구원론적 강조나, 비록 약하지만 신인협력설적 경향, 그리고 성경이 명백히 정죄하지 않는 교회 전통과 의식의 보존 등도 루터파 교회가 개혁파 교회와 구별되는 점들이었다.

알미니우스파 교회와 구별됨. 개혁신학은 특히 17세기 개혁파 교회 안에서 일어난 알미니우스파와의 논쟁에서 그 특징이 더욱 분명하게 정립되었다. 알미니우스파의 다섯 가지 요점은 다음과 같다. (1) 조건적 예정. 하나님의 선택과 정죄는 사람의 신앙과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예지(豫知)에 근거한다. (2) 보편 속죄.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다. (3) 구원적 믿음.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구원적 믿음에 이를 수 없다. (4) 저항할 수 있는 은혜. 하나님의 은혜는 저항할 수 있다. (5) 견인(堅忍)의 불확실성. 하나님의 은혜는 상실될 수 있다.

이러한 알미니우스파 사상과 구별하여, 개혁교회는 도르트 회의에서 다섯 가지 요점을 선언하였다. 이 다섯 가지 요점들은 개혁신학의 중요한 내용이다.

1)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의 긍휼로 죄인들 가운데 일부를 선택하셨고 그 나머지를 그들의 죄 가운데 버려두셨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제한적 속죄.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자들’ 즉 만세 전에 선택된 자들을 위해 죽으셨다.
3) 사람의 전적인 부패와 무능력. 모든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되고 무능력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회개하고 믿을 수 없다. 4) 불가항력적 은혜. 성령의 구원하시는 은혜는 사람이 저항할 수 없다. 

5) 성도의 견인(堅忍).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끝까지 보존하신다.

개혁신학은 이와 같이 로마 카톨릭 교회와 분리됨으로써 그리고 루터파 교회와 알미니우스파와 구별됨으로써 그 중요한 특징들이 정립되었다. 우리는 이상에 열거된 개혁신학의 중요한 원리들을 성경적이라고 믿는다. 성경적 교리 체계는 개혁신학에서 가장 잘 정리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교회들이 개혁신학을 따르는 장로교회가 되기를 원한다.
 

근본주의

그러면 우리가 ‘근본주의적 장로교회’라는 말을 할 때, 근본주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늘날 근본주의라는 말은 말하는 이의 분별력이나 입장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근본주의는 역사적으로 정의될 때 성경적 입장이다.
 

1. 자유주의와의 투쟁

근본주의라는 입장 혹은 운동은 자유주의와의 투쟁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19세기 후반, 기독교회 안에는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영향으로 성경을 비평적으로 연구하는 풍조가 일어났다. 더욱이, 진화론과 유물론(唯物論)이 나타남으로 이 풍조는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의 전통적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소위 자유주의 신학이 발생하였고 성장하였다.

유럽에서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자유주의 신학은 온 세계에 영향을 미쳤고, 세계교회에 큰 역할을 했던 미국교회들도 마침내 20세기 초 자유주의화 되었다. 우리 나라에는 카나다 장로교회의 서고도(Scott) 선교사 같은 이를 통해 자유주의가 들어왔고, 김재준 박사 등이 자유주의 사상을 받아들였고 퍼뜨렸다.

성경적 기독교와 자유주의 신학의 차이점은 단순히 지엽적 문제들에 있지 않다. 자유주의 신학에 의하면, 기독교는 교리와 별개의 경험 혹은 생활이며, 교리는 기독교적 경험 혹은 생활을 한 시대의 사고 방식으로 표현한 하나의 상징적 표현에 불과하며 따라서 교리는 시대마다 변할 수 있고 또 변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기독교는 결코 교리와 별개의 어떤 경험이나 생활이 아니고, 교리에 근거한 생활 혹은 경험이며, 기독교 교리는 확실하고 불변적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이처럼 교리를 기독교의 본질적 요소로 보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자유로이 왜곡시키고 결국 부정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것은 곧 이단이다. 여기에 자유주의 신학의 심각한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 신학이라는 이름과 성경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학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 그것은 이단 사상인 것이다.

그러면,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적 예들을 몇 가지 들어보자.

첫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신빙성과 신적 권위성과 무오성(無誤性)을 부정한다. 예컨대, 자유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은 인물들이 후대의 신화적 산물들이든 아니든 무슨 문제가 되는가?”라고 질문했고, 또 말하기를, “구약과 신약의 성경 역사는 실상 전혀 역사가 아니고, 위에서 보면 일련의 자유로운 신적 행위들이며 아래서 보면 본질상 어떤 것을 이루려는 일련의 결실 없는 시도들이다”라고 하였다.

또 자유주의 신학자 씨 에취 다드는 말하기를, “[성경의] 외적 권위는 엄밀한 의미에서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 “우리가 계시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어느 것도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상대적이다. 아무 곳에서도 진리는 우리가 자존적, 외적 권위를 찾을 수 있는 순수하게 ‘객관적인’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둘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진노의 속성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씨 에취 다드는 말하기를, “하나님을 인격의 가장 높은 이상으로 생각하면서 비이성적인 진노의 격정을 그에게 돌리는 것은 전혀 논리일관하지 않다”고 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자 폴 틸리히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진노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신성과 그 무조건적 성격과 명백히 모순된다. 그러므로 그 개념은 재해석되든지 아니면 기독교 사상에서 완전히 포기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셋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이버는 말하기를, “영원이 시간 속에 들어온다는 개념은 지적으로 불합리하다”고 하였다. 또한 폴 틸리히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주장은 역설적(逆說的)이 아니라 부조리한(nonsensical) 말이다”라고 하였다.

넷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벌적 대속(代贖)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씨 에취 다드는 말하기를, “그러므로 유화(宥和, propitiation)라는 번역은 진노하신 하나님을 누그러뜨림을 의미하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으며, 이것이 비록 이교적 용법에는 맞을지라도 성경적 용법에는 생소하다”라고 하였다. 또한 라인홀드 니이버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교리는 많은 신학적 오류들로 인도하는데, 그 중에는 인간의 도덕 의식을 모욕하는 대리적 속죄의 이론들이 포함된다”고 말하였다.

다섯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성(歷史性)을 부정한다. 칼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역사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런 증거도 없고, 어떤 증거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것이 명백하다. . . . 실제로 성경 역사에 결정적 요소들인 창조 이야기와 및 다른 많은 이야기들과 공통적으로, 예수님의 부활 역사는 ‘사가(saga)’ 혹은 ‘전설’로 간주되고 묘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반대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확실히 역사로 생각될 수 있지만, 부활은 그렇지 않다."

자유주의 신학자 판넨베르크는 말하기를, “복음서들에 보도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들은 바울에 의해 언급되지 않았으며 강하게 전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속에서 그 자체의 역사적 알맹이를 거의 찾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여섯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을 부정한다. 칼 바르트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그것은 동일한 것인데--역사적 사건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또 라인홀드 니이버는, “기독교의 교리 중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보다 더 속임과 착각에로 인도한 교리는 없다”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신빙성과 신적 권위성과 무오성, 하나님의 진노의 속성,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형벌적 대속, 부활, 재림 등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이단이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교회의 2천년 역사상 찾아 볼 수 없었던 가장 무서운 이단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주의 재림 직전에 교회들이 하나님의 참된 진리에서 이탈하여 배교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데살로니가후서 2:2, “먼저 배도[배교]하는 일이 있고.”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출현과 온 세계에 퍼진 현상은 성경에 예언된 바가 그대로 성취되고 있는 것뿐이다.

근본주의는 19세기말과 20세기초 미국 교회 안에서 머리를 들기 시작했던 이러한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일어난 것이었다. 1910-1915년에 근본교리들(Fundamentals)이라는 12권으로 된 책자들이 약 300만부 무료로 배포되었다. 이 책자들의 내용은 주로 진화론과 비평적 성경연구방식에 대항하여 성경의 근본교리들을 변호하는 것들이었다.

1910년 미국 북장로교회 총회는 성경의 무오성(無誤性),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대속(代贖), 육체적 부활, 및 기적들의 사실성 등을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본질적인 내용이라고 선언하였다. 이 선언은 1916년, 1923년 총회에서 두 번이나 재확인되었다.

근본주의에 대해 많이 연구한 죠지 마스든은 “미국에서의 근본주의는 전투적으로 반(反)현대주의적인 복음주의적 개신교 운동으로 가장 잘 정의된다”고 표현하였다.

고(故) 박형룡 박사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근본주의는 별다른 것 아니라, 정통주의요 정통파 기독교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적, 정통적 신앙을 그대로 믿고 지키는 것, 즉 정통 신앙과 동일한 것이니만치, 이것은 곧 기독교 자체라고 단언하는 것이 가장 정당한 정의일 것이다. 근본주의는 기독교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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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성 목사는 연세대학교 철학과, 총신대학 신학연구원, 훼이스(Faith) 신학대학원(Th.M. in N.T. 미국 필라델피아), 밥 죤스(Bob Jones) 대학교 대학원 졸업(Ph.D. in Theology,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공부했다. 계약신학대학원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합정동교회(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담임목사이다. 신구약 성경을 주석하여 인터넷(http://www.oldfaith.net/01exposit.htm)을 통해 보급하여 많은 목회자들이 견실한 설교를 준비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신학자이다. J. G. 메이천, 『신약개론』을 비롯하여 많은 10권 이상의 외국 신학자들의 좋은 저서들을 번역하여 한국 교회에 보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