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이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 교리에 대해 잘 정리되었다면서, 합신의 김병훈 교수의 글을 보내주셨다. (http://repress.kr/3719/)(크릭하면 이동). 김병훈 교수 글을 함께 읽으면서 <바른믿음> 독자들과 함께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 교리에 대해 한 번 더 살펴보고자 한다.
 

1. 웨민고백서 8장 5항에 대한 김병훈 교수의 해석

김병훈 교수의 핵심 주장은 웨민고백서 8장 5항에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 교리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웨민고백 8장 5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또한 영원하신 성령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께 단번에 자신을 드리신 희생제사로 말미암아, 그의 아버지의 공의를 완전히 만족시키셨다.” (WCF, 8-5)

김병훈 교수는 WCF 8장 5항의 ‘완전한 순종’을 그리스도의 율법준수하심으로, ‘희생제사’를 십자가의 죽으심이라고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이란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히 만족시키기 위하여 그가 율법에 순종한 일과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일을 말합니다.” (김병훈 교수)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 교리를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그리스도가 율법준수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 백성의 권리(의)를 얻어주었다는 것이 진리라면, 분명히 성경에 그것을 암시하는 계시의 말씀이 한 줄이라도 있을 것이니 찾아서 보여 주라!”

신.구약 성경에서 그렇게 가르치는 내용이 단 한 줄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자 ‘율법준수’를 반드시 모세의 율법과 계명에 대한 준수로 한정하지 않고,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참되게 경배하는 진실한 마음으로 완전한 삶을 살았음을 의미한다고 내용을 조금 바꾸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김병훈 교수는 우리에게 하나님 백성의 권리이며 자격(의)를 선물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계획적으로, 필연적으로, 의무적으로 모세의 율법과 계명들을 철저하고 완전하게 준수했다고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전히 순종하셨음을 말하는 것은 그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피할 수가 없는 자연적 의미에서의 율법에 대한 순종을 하였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김병훈 교수)

필자는 웨민고백서의 이 부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1) 웨민고백의 ‘완전한 순종’이 하나님 백성의 권리(의) 획득을 위한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를 뜻한다고 누가 못 박았는가? 2) 혹 그것이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를 뜻한다면, 과연 누가 그런 내용을 웨민고백서에 집어 넣었는가?

1646년에 작성된 웨민고백서는 영국국교회로부터 ‘청교도’로 비하되었던 다양한 종교개혁 세력들이 함께 모여서 작성한 신앙고백서이다. 그 과정이 길었는데, 처음의 취지와는 달리 후반부에 스코틀랜드의 군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의 청교도(종교개혁 교회들)의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로 부각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웨민고백서의 내용이 다양한 종교개혁 종파들(청교도)의 각양 각색의 특성들이 고루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필자는 이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지금까지 웨민고백서가 처음부터 오직 장로교-개혁신학만의 신앙고백서로 작성었다고 오해하였다.

스코틀랜드의 장로교-청교도(언약도), 잉글랜드의 장로교-청교도 지도자들은 제네바에서 활동하던 칼빈에게서 직접 배웠다. 1560년에 작성된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는 칼빈에게서 직접 배운 존 낙스의 주도로 <기독교강요>의 요약판이라 할 정도로 칼빈의 중교개혁 신학에 충실하였다. 잉글랜드 장로교-청교도의 초기 지도자 토마스 카트라이트(Thomas Cartwright, 1535-1603)도 칼빈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인물이었다. 라은성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 (중략) 토마스 카트라이트가 ‘장로교주의’ 단어를 만든 사람입니다. 장로교라는 말을 만든 사람은 토마스 카트라이트입니다. 토마스 카트라이트가 장로교주의라는 것을 만들 때,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을까요? 그게 바로 칼빈이지요. 칼빈이 제네바에서 목회하면서 장로법원(consistory)을 만들잖아요? consistory를 통해서 이 분(카트라이트)이 장로교주의라는 단어를 만들었어요. 칼빈은 만들지 않았어요. 장로교라는 말과 개혁신학이라는 말을 구분해야 합니다 ...(중략).” (라은성 교수)

그러나 잉글랜드의 회중교-청교도의 신학은 처음부터 칼빈의 가르침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한국 교회뿐 아니라 세계 교회의 개혁신학자들이 지금까지 이 사실을 중시하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의 이런 신학적 혼란이 초래되었다고 생각된다.

회중교-청교도는 처음부터 바울의 가르침과는 다른 기조에서 율법을 강조하였다. 최근 서서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청교도 교회들의 회심준비론’도 회중교-청교도의 초기 중요 인물인 윌리암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의 제자 윌리암 에임즈(William Ames, 1576-1633)가 이어서 발전시켰다. 그리고 훗날 뉴잉글랜드의 회중교-청교도들에 의해 만개하였고, 이후 서서히 수그러들었는데 최근 미국의 청교도 신학교 조엘 비키 교수 등이 다시 일으키고 있다.

처음부터 장로교-청교도와는 다른 신학적 특성을 가졌던 회중교-청교도는 당시 '범 청교도 진영'을 아우르는 용도로 작성된 웨민고백서(1646)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곧 자신들만의 ‘사보이선언’(Savoy declaration, 1658년)을 존 오웬(John Owen, 1616-1683)이 주도하여 작성하였다. 그것은 장로교-청교도와 신앙의 길을 같이하지 못한다는 표시였다고 할 수 있다. 회중교-청교도들의 태도는 1560년에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기초로 신앙고백서를 작성했으나, 그것까지 포기하고 웨민고백서를 전적으로 수용하였던 스코틀랜드의 장로교-청교도들과는 매우 대조되었다.

웨민고백서 작성을 위한 수년 동안의 준비 모임이 진행되고 있을 때, 잉글랜드의 정치의 중심에 서서 국가를 이끌었던 사람은 올리버 크롬웰이라는 회중교-청교도 교인이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고, 회중교-청교도의 신학을 대표하는 존 오웬을 그의 군대의 종교자문위원으로 청빙하여 늘 함께 하였다. 웨민고백서 작성 과정에 미친 회중교-청교도의 영향이 결코 작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웨민고백서에 있는 칼빈의 정통 개혁신학과 다른 내용을 대할 때, 우리는 바로 이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 동안 이런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너무나도 심각한 실책이었다고 강조하고 싶다.
 

2. 예수의 율법준수의 목적은 하나님 백성의 권리 획득(의의 획득)

김병훈 교수는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미가 단지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완전하게 대속하시려는 흠 없는 제물로서의 자격을 준비하는 차원이 아니었다고 특별히 강조했다. 김 교수는 ‘율법의 의’를 획득하여 우리에게 전가하려는 특수한 목적 하에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준수하였다고 다음과 강조했다.

“그리스도의 율법의 순종이 필요한가에 관련한 토론의 초점은 그리스도께서 대리속죄를 위한 희생제물로서 무흠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과 관련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김병훈 교수)

“그리스도의 율법의 순종과 관련하여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그리스도의 율법의 순종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순종으로 얻으신 ‘율법의 의’와 ‘영생의 권리’가 죄인들에게 전가하여 주시는 데에 그 의미가 있음을 기억해 두는 일입니다.” (김병훈 교수)

일반적으로 벌코프도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 사상에 대해 열러 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벌코프는 김병훈 교수처럼 그리스도의 율법준수가 완전한 대속 제물이 되기 위한 준비의 차원을 넘어 ‘율법의 의’와 ‘영생의 권리’를 획득, 전가하려고 하신 일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벌코프의 말을 보자.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그의 수동적 순종이 하나님께 받음직하게 되도록, 곧 하나님의 열납 대상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필요했다 ... 그리스도가 능동적 순종을 하시지 않았다면, 그의 인성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요구에 미달되었을 것이며, 그는 타인을 위해 속죄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벌코프, 조직신학, 621)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의 말씀이다.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여 ‘율법의 의’와 ‘영생의 권리’를 획득하여 죄인들에게 전가한다는 가르침이 없다. 죄인에게 칭의와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주시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이 율법준수로부터 비롯되었다면, 분명히 성경 66권 어디에 단 한 줄이라도 그것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한 직후 아담과 그의 후손들을 회복하여 다시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구세주의 율법준수 계획이 들어있지 않았다. 성경은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시어 피 흘리심으로 죄인들의 죄를 배상하시는 방식으로 구원을 이루신다고 예언하였다. 성경 어디에도 피조물이 되신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준수를 통해 아담과 그의 후손들에게 ‘영생의 권리’와 ‘율법의 의’를 전가한다고 예언한 내용이 없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들을 보자! 다음의 말씀들이 과연 구세주가 율법준수를 통해 죄인들에게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는 권리와 자격(의)을 만들어 주신다는 예언인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5)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 창 3:21)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5,6)

구약의 메시야 사역에 대한 예언은 오직 사람이 되신 구세주가 자기의 피의 희생 제사를 통하여 죄의 배상을 이루심으로 하나님 백성의 의를 주신다고 예언하였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아담과 에덴동산이 하나님의 성전이었던 것처럼, 구세주를 통해 구원받은 성도들과 교회를 성전으로 삼으신다고 예언하였다. 다음의 선지자들의 예언들이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를 통해 이루어졌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를 통해 이루어졌는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31:33)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겔 11:19)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 36:26)

그리고 신약 성경 어디에도 성도의 의와 구원이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로 말미암았다는 가르침이 없다.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그리스도 십자가에 대한 최고의 권위 있는 해설자 바울은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과 죄의 용서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으로부터 나온다고 가르쳤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2:2)

김병훈 교수가 성경의 말씀을 안다면, 어떻게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여 우리에게 영생의 권리와 하나님 백성의 자격을 선물하였다고 가르치고 주장할 수 있을까? 하물며 목회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수이시면서 ... 개혁신학의 기초를 놓은 칼빈의 <기독교강요> 어디에도 김 교수와 같은 사상이 나오지 않는다.

 

 

3. 예수도 율법준수 안했으면 영생의 권리를 상실했다!

그리스도가 능동적 순종으로 의를 획득, 전가했다는 신학에는 신성모독적이고 이단적인 사실이 내포되어 있다. 이 점에 대해 서철원 박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그리스도는 자기의 의를 얻기 위해 율법준수를 이루신 것이 아니다. 의는 생존권을 뜻하는데 그리스도가 율법을 다 지켜서 의를 획득했다고 하면 그를 죄인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서철원 박사, 「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115)

평소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 교리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던 예장 합신의 노승수 목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여 큰 문제를 일으켰다.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그리스도 자신 역시 구원되어야 하는 존재로서 그가 이루신 율법에 대한 온전한 순종, 곧 행위언약에 대한 성취인 것이죠.” (노승수 목사, 강남성도교회 싸이트, 2017.12.15. 그리고 노승수 목사의 페이스 북, 2017년 12월 14일)

“이 때 칭의란 바로 그리스도 속죄를 그리스도가 이루신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 (노승수 목사의 페이스 북, 2019년 2월 2일)

노승수 목사는 이 같이 주장하다 필자로부터 이단적인 사상이라고 지적받자 다른 것을 핑계 삼고 필자를 인천의 한 경찰서에 고소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그 주장이 표현의 오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이후 다른 신학자들의 글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고 또 다시 주장하였고, 나중에는 총신의 강웅산 교수의 책에도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칭의를 얻었다는 내용이 있다면서 자신의 기존 주장을 또 다시 고집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더욱 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합신의 조직신학 김병훈 교수의 글에서도 똑 같은 내용이 발견되었다. 김병훈 교수는 율법을 지키시지 못했다면 그리스도 자신도 영생을 위한 권리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율법에 불순종하는 일을 행하신다면 속죄를 위한 희생제물의 자격을 상실하게 될 것은 분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러한 일이 있게 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대리속죄를 위한 희생제물로서의 자격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영생의 권리도 상실하게 되고 맙니다.” (김병훈 교수)

대체 왜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야만 그리스도 자신의 영생의 권리를 얻는다는 것인가? 필자는 지금까지 많은 이단들을 보았으나, 예수께서 율법을 지켜서 자신의 영생의 권리를 얻었다고 주장하는 이단은 본 적이 없다. 예수께서 죽으신 이유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기 위함이고, 예수께서 부활하심은 우리의 의가 되시기 위함이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4:25)

예수 믿는 믿음에서 구원이 나오는 것인데, 예수에 대한 저런 믿음을 가져도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칼빈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반대하여 생명과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그리스도께로 주입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구원받은 분이 아니라 바로 구원 자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존 칼빈, 기독교강요, 1.13.11)

“롬바드(Lombard)와 스콜라학자들(the Schoolmen)처럼 그리스도가 자신을 위해 어떤 공적을 쌓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 대체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자신을 위해 자신을 위해 필요한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 지상에 내려오셔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존 칼빈, 기독교강요, 2.17.6)
 


서철원 박사는 그리스도가 율법준수하신 공적 때문에 부활하신 것이 아니고, 죄 없으신 자로서 우리를 대신하여 죗값을 지불하였으므로, 죽음이 물러가므로 부활하시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무죄자로서 인류를 대신하여 죽어 죗값을 지불하므로, 죄의 세력이 괴멸되어 죽음이 물러가므로 주 예수가 부활하였다. 죄 때문에 죄에 대하여 죽으므로 죽음을 폐하고 생명을 들여왔다. 죄의 세력이 괴멸되므로 죄가 더 이상 죽음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죄를 제거하였다 (골 1:4).” (서철원 박사, 「교의신학전집 5: 그리스도론」,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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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