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전 세계교회와 다른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개혁주의 교회들이 적을 거라 본다. 즉 무엇이 다른 신앙고백인가하면 ‘사도신조’에서 전 세계교회에서 유일하게 내용 중 삭제된 부분이 있는데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신조에서 삭제된 내용이 무엇인가하면 “음부에 내려가셨으며(descendit ad inferna)”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중요한 신학적 표현이기에 칼뱅은 자신의 기독교강요(2권 16장 8절)에서 다음과 같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옥 강하를 빠뜨려서는 안 된다. 이것은 구속을 실현하기 위해서 적지 않게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고대 저술가들의 글을 보면, 사도신조에 있는 이 어귀가 교회에서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 않은 때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교리의 요점을 설명할 때에는 이 어귀를 보존해야 한다. 매우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귀중하고 유용한 신비가 거기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일부의 고대 저술가들은 이 어귀를 생력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어귀는 얼마 후에 삽입되었고, 교회 내에서 즉시 통용되지 못하고 점진적으로 관례가 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표현이 모든 경건자의 공통된 신념을 반영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교부들 가운데는 그리스도의 지옥 강하를 말하지 않은 사람이 한 명도 없고, 다만 해석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누가 언제 이 문구를 삽입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도리어 이 신조에 대해서 주목할 점은, 거기 우리의 믿음의 전체가 모든 세부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포함되었으며,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에서 오지 않은 것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 이 조문을 신조에 넣는데 대해서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이 신조가 우리의 구속 전체를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가는 곧 명백하게 될 것이다. 즉, 이 신조를 제거한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의 혜택은 많이 상실될 것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이 신조에 아무 새로운 말이 없고, 그리스도의 매장에 대해서 이미 말한 것을 반복하며, '지옥'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자주 '무덤'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말의 뜻에 대해서 그들이 하는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한다. '지옥'은 '무덤'으로 해석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러나 두 가지 이유가 그들의 의견에 반대하며, 나를 그들에게 찬성하지 않도록 설복한다. 그 자체로서 전연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일을 분명하고 쉬운 말로 표명한 다음에, 그것을 밝히기보다 도리어 모호하게 만드는 말로 되풀이 하는 것은 얼마나 부주의한 짓이었겠는가! 같은 문맥에서 같은 일을 위해서 두 가지 표현이 사용될 때에는 후자는 전자의 설명일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장사한바 되셨다'는 것이 '그가 지옥으로 내려가셨다'는 뜻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어떤 종류의 설명이 될 것인가? 

둘째로, 우리 믿음의 중요한 점들을 적절하고도 가장 간결하게 요약할 글에 이런 쓸데없는 반복 문구가 잠입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이 문제를 신중하게 고려한 사람이라면 곧 내게 찬성하리라는 것을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처럼 중요한 내용인데 어떻게 해서 한국교회의 사도신조는 삭제가 된 것이라는 질문에 답은 초기 한국에 들어 온 장로교회 선교사들에게 책임이 있다. 즉 1894년의 언더우드 선교사와 1905년의 장로교회선교사협의회에서 번역한 사도신조는 지금의 삭제된 내용이 있었지만 1908년에 감리교회와 연합하여 낸 ‘합동찬송가’에서 삭제가 되었는데, 당시 감리교회가 이 내용에 대한 반대 입장(웨슬리가 1784년 감리교도들을 위한 사도신조를 작성하면서 ‘음부’를 생략)을 수용하여 삭제한 것은 매우 큰 실수였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 온 천주교회와 성공회 그리고 루터교회는 사도신조의 이 내용(“음부에 내려가셨으며”)을 사용하고 있으며 개혁주의 교리문답서로 가장 중요하고 칼뱅도 인정한 ‘하이델베르크교리문답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44문: “음부에 내려가셨으며”라는 말이 왜 덧붙여져 있습니까?

답: 내가 큰 고통과 중대한 시험을 당할 때에도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지옥의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셨음을 확신하고 거기에서 풍성한 위로를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분은 그의 모든 고난을 통하여 특히 십자가에서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아픔과 공포와 지옥의 고통을 친히 당하심으로써 나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에게 ‘위로의 소망’의 가르침인데 안타깝게도 이 내용에 부정적인 자들은 “음부에 내려가셨으며”는 주후 390년의 양식부터 최초로 사용이 된 것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사도신조에 이 내용을 ‘추가’하여 사용하게 하신 ‘섭리’를 바르게 알아야 하고, 칼뱅의 지적대로 ‘구속에 대하여 바른 이해’를 통하여 신앙적으로 ‘유익(fructus)’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개역개정판 성경과 찬송가 합본에 실린 새 번역 사도신조에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와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의 중간에 “음부에 내려가셨으며”가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매우 안타깝게도 없다.

그런데 바람직하게도 예장고신(고려신학대학원 교수진이 연구하고 61회 총회에서 결정, 2011년)의 헌법 책의 부록에서 새번역 사도신조가 분명하게 들어가 있고 다음과 같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분의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오니,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고,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음부에 내려가셨으며, 사흘 만에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고, 하늘에 오르셨고,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는데, 거기로부터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나는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사죄와 육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전 세계교회에서 유일하게 사도신조에서 삭제된 “음부에 내려가셨으며(He descended into hell)”를 예장고신 교단처럼 반드시 복원(復原)이 되어야 할 사명이 있다.

그래서 전 세계교회와 동일한 신앙고백의 사도신조 사용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장 우선적으로 칼뱅의 말대로 “하나님의 교회는 교리교육이 없이는 유지”가 될 수 가 없기에 칼뱅도 인정하고 최고의 개혁주의 교리교육서인 ‘하이델베르크교리문답’으로 가르쳐 신앙의 유익을 줘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개혁주의 예배학적 이해로 볼 때에 눈을 감고하는 기도 형식으로 하는 사도신조의 신앙고백이 절대 아니고 칼뱅의 예배순서에서 한 것처럼 사도신조를 ‘노래’로 부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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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옥 목사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개혁신학연구원, Knox Theological Seminary(D.Min.), Grace Theological Seminary(D.Miss.Pro.)에서 공부하였고, <성찬식을 어떻게 행할 것인가?> 등 6권의 저서와 1권의 공저를 출판하였다. 전, 개신대학원대학교 강사였고, 현재는 경북 영주의 바른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바른성경아카데미(RBA) 원장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올바른 개혁주의 신앙을 위해 실천하려고 연구하는 실천신학자이고, 또한 장례지도사로서 지역 사회를 섬기고 있다. potentia-dei@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