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중생인이 한다. 그러므로 중생한 이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한다. 또 중생한 지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고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제시한 진리를 문장으로 구성한다. 그리고 전체를 조직하고 체계화한다. 이 일이 신학작업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므로 인간은 들어야 한다. 그 들음이 바로 믿음이요, 그 말씀하신 분을 신뢰하는 것이다. 성경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이 계시를 들음으로 신학한다. 그러므로 사변적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고 듣는 말씀에서 사고한다.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그 믿음에 근거하여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사고한다. 그러므로 이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것을 주입하여 사고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듣는다. 내 이성이 신학 구성에 공헌하는 아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므로 듣고 그 말씀을 이해한다. 그리고 이해한 말씀을 내 말로 반복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내 신학적 사고를 결정하고 그 내용을 형성한다.

인간의 이성은 하나님의 계시 앞에서 종속적으로 선다. 계시는 하나님 자신의 계시이고, 말씀하심도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시므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인격 앞에 선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들음으로 순종하고 그 말씀에 의하여 산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이성이 규정되고 자기 능력과 한계가 설정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 변화되므로 처음 아담의 의식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하나님 지식체계와 상응해서 지식을 얻어 자기의 지식체계를 구성한다. 또 하나님의 지식체계에 의해 참 지식체계를 얻는다.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온 지식은 창조주 하나님 지식일 뿐만 아니라 구속주 하나님 지식이므로, 그 지식은 이성을 변화시키는 역사를 한다. 이성이 재생되고 활동 근거를 허락받는다. 그러므로 이성이 자연 사물들에 대해 활동할 때처럼 자기의 고유한 권리에 따라 지식활동을 할 수 없다. 사물 탐구의 경우도 사물의 성질과 법칙을 이성이 따르고 존중해야 법칙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물의 법칙과 성질들에 상반되는 해석을 주입하면 그 체계는 배척된다. 마찬가지로 신학할 때 이성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순종해야 한다. 계시가 주장하고 요구하는 대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 해석되어야 할 자는 이성이고, 계시가 이성에 의해 해석되고 그 타당성이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다.

이성이 계시의 도덕성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판단하는 자는 성경계시이고, 이성은 성경의 판정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이 믿음이고 진리를 아는 길이다. 진리를 알면 언제나 그 진리에 순종하고 믿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 진리를 아는 것은 순종과 믿음의 길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이성이 그 말씀에 의해 조명되어야 한다. 이성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고 그 말씀대로 진리를 이해하고 활동해야 한다.

이성이 계시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이성은 피조물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 이성의 능력과 한계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규정되고 설정된다. 이성은 하나님의 말씀의 신적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 이성이 계시에 의해 그 활동의 타당성이 판단 받고 제시 받는다.

이성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사고하는 것을 뜻한다. 곧 계시의 내용을 반복하고 그 계시에 의해 사고 작용이 이루어지고 계시의 내용을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상이므로 인간의 사상은 신적 사상을 따라서 사고하고 그것을 재생산해야 한다. 하나님이 생각하신 대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사상을 뒤따라 말해야 한다. 계시는 하나님의 생각과 그의 작정 그리고 창조 해석의 계시이므로 하나님의 해석과 사상에 우리의 사상을 맞추는 것이다.

신학적 사고 후에 그 사고가 바로 이루어져서 계시의 내용에 맞게 구성하고 생산되었는지는 계시에 대조해서 결정된다. 계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므로 우리의 신학적 사고는 계시에 의해 해석되어야 하고 해석 받은 대로 사고해야 한다.
 


신학적 사고는 하나님의 말씀에 함의된 내용들을 중심 사상에 의해 조명 받아 사고하여 풍성한 내용을 밝히는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까지 교회의 사고가 발굴해내지 못한 깊은 진리들을 담고 있다. 지성이 실재를 다 파악하지 못하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신학적 사고가 다 찾아내지 못한 풍성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또 시대마다 모든 진리가 동시에 자명하게 현시되고 이해된 것도 아니다. 교리사의 과정에서 밝혀지듯,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 교리에 이어 성령의 인격과 하나님 되심, 그리스도론의 교리들, 죄와 은혜의 문제, 구원에 이르는 길이 동시적으로 이해되고 개진된 것이 아니고 시대를 다라 이루어졌다. 또 삼위일체 내에서의 성령의 역할이 아직 분명하게 개진되지 못하였다.

성경의 중심 주제인 하나님의 나라도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논의되었다. 아직도 종말론의 문제, 교회 시대의 이스라엘의 지리, 사회정의, 교회와 시민정부와의 관련 등이 분명하게 규명되지 않았고 또 하나님 나라의 개진에 있어서 영들의 역할과 악의 기원 문제도 바르게 해명되지 못하였다.

성경에 함의된 내용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친다. 함의된 내용들을 발굴해내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밝혀 신앙의 길을 확실하게 세우는 것이 신학적 작업이다. 이것이 교의신학의 긴본 임무이다. 다른 신학과 분과도 동일한 임무를 갖는다.

이성은 계시의 자기 주장을 존중해야 하고, 이성의 판단과 법칙에 맞지 않다고 계시를 변용하여 자기의 합리성에 맟추??안 된다. 계시의 자기 증거에 이성이 순종하여 믿음으로 계시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 이것은 지성의 희생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성은 중생되어 계시에 의해 규정되고 또 본래의 자리로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유한한 능력은 그 범위를 넘어가는 것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수용한다. 계시의 자기주장을 존중하므로 자기 시대의 지배적인 사상 체계의 요구에 따라 계시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을 면하게 해준다. 본래 계시가 주장하는 증거에 거슬러서 시대정신에 맞추는 재해석은 계시의 본래 주장을 파괴하는 것이다. 우리의 신학적 작업은 신앙의 논리에 의해 전개되어야 한다. (서철원 박사, 교의신학전집 1: 신학서론, 108-112)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철원 박사는 서울대학,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원(Th.M), 화란의 자유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다. 화란의 자유대학에서 칼 발트의 신학을 지지하는 지도교수 베인호프와 다른 발트의 제자 신학자들과의 토론에서 칼 발트의 신학의 부당성을 증명하였다. 발트의 사상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논문 '그리스도 창조-중보자직'을 관철하여 박사학위를 얻었고, 이 논문이 독일 튀빙겐대학이 선정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 논문 100편에 수록되어 한국 교회의 위상을 드높였다. 총신대 신대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 십년 동안 목회자들을 길러내는 교수사역에 헌신하다 영예롭게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연구하시며 <바른믿음>의 신학자문 역을 맡아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