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예배와 집회에 ‘열성’을 가지기에 주일의 새벽기도회부터 시작해서 평일의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구역모임 등으로 정말 공적 모임이 많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종교적 현상이 바람직한가를 반성하고 무엇보다도 개혁주의(칼빈주의) 관점에서 우선적으로 주일에 행하는 예배의 순서에서 각 교파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특징이 반영되고 있느냐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개혁주의 교회들은 담임목사의 생각으로 ‘예배순서’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주의 교회들이 추구해 온 예배순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개혁주의 예배순서의 필수는 ‘8가지’이고, 시작은 예배의 부름, 참회의 기도, 시편찬송, 성경봉독 후 설교(성경봉독 후에 성가대의 찬양은 안되고 사실상 16세기 교회개혁을 통해서 성가대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고 회중찬송이 중요 그러므로 오늘날 개신교회들이 행하는 성가대는 사실상 비본질), 설교 후 주님의기도, 주님의기도 다음에 신앙고백(사도신조), 성찬식(매주 또는 매월 한번), 아론의 축도(바울의 축도가 아닌 루터와 칼뱅이 행한 민 6:24–26)이다.

그런데 이 8가지 중에서 오늘날에 시편 찬송만을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기에 칼뱅이 사용한 ‘시편찬송가’에 들어 있던 찬송가 1장인 ‘만복의 근원 하나님’을 봉헌찬송으로 다같이 일어나 부르면 좋을 것으로 제안한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교회가 행하는 주일 예배 시간의 다양성으로 예를 들어 1부, 2부, 3부, 4부, 5부 등으로 행하는데 과연 이러한 행동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감사, 경배, 존귀가 되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겠느냐를 묻는다면 절대 아닌 이유는 간단하게 ‘신본주의’가 아닌 사실상 인간의 편리성만을 추구하는 ‘인본주의’이고 이러한 ‘극장식 예배’를 벗어나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고자 한다면 중대형교회를 만들 필요도 없고 사실상 개혁주의 교회론은 1개의 교회는 1명의 담임목사만을 추구하고 목회학에서 목사 1명이 관계할 수 있는 전체 신자를 100명으로 가르친다(12월에 ‘교회’에 대해서 논할 때 작은교회 추구가 개혁주의라는 사실).

그리고 더불어 생각해 볼 문제는 중대형교회에는 부목사(사실상 이 표현도 신학적 문제가 있어 바람직한 표현은 ‘동사목사’이고 역사신학자 김영재는 한국교회도 1960년대 이전에는 이 용어를 사용)가 있는데, 담임목사는 자신은 주일예배의 설교자로만 인식하여 부목사가 설교하는 주일예배를 참석하지 않는 것은 예배에 대한 불경건한 자세의 문제(“설교자이기 전에 반드시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이고 더 나아가서 대형교회 목사들이 자신이 행한 오전 설교를 녹화하여 주일예배의 오후에 보여주는 것인 사탄적 행위이고 이러한 현실을 분별하지 못하는 신자들도 어리석게도 거짓교회에 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세대별로 나누어 행하는 아동부(주일학교), 중고등부, 청년부, 대예배 등을 하나의 예배로 통일하여 ‘간세대 예배’를 행하는 것이 국내 예배학자들의 주장만이 아니라 사실상 개혁주의에서도 강조하는 바람직한 예배이고 무엇보다도 개혁주의 교회들이 반드시 행해야 하는 것은 예배 후에 세대별로 ‘교리교육(하이델베르크교리문답은 52주로 된 교리교육서로 개혁주의 최고의 작품)’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교회의 다수가 명절에 행하는 ‘추도예배’는 분명하게 인본주의라는 사실을 필자가 쓴 글을 검색하여 읽을 수 있고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특히 청교도주의를 추구하는 목사들이 강조하는 ‘가정예배’의 문제로 과연 예배가 공적이지 않고 사적으로 가능한 것인가를 본다면 역사적으로 중세교회에서도 부자들이 주치의처럼 신부를 두어 자신의 가정을 위해서 사적 미사(가정예배)를 행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행동은 사실상 교회의 4가지 특징 중 하나인 공교회로 ‘보편성(Catholic)’을 파괴하는 것이다. 즉 예배는 절대로 사적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공적이기에 목사가 집례를 하고 신자들이 모여 행하는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세운 영적인 질서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적 예배가 아닌 공적 예배를 중시하기에 학연, 지연, 혈연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여 예배하는 것이고 기념, 입학 및 졸업, 개강, 관혼상제, 주일이 아닌 평일에는 ‘예배’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 것을 국내 예배학자들이 제안하고 대신에 모임 또는 기도회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설교’가 사실상 ‘성례전’이라는 올바른 인식으로 목사만이 행해야 하는 것이 옳고 주일 외에는 ‘설교(Preaching)’가 아니라 ‘선언(Proclamation)’이라는 예배학적 이해를 알고 가르치고 주일 외에는 목사가 아닌 검증된 교역자들도 상황에 따라서는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교회가 안타깝게도 일년의 목회계획 중에 행하는 인본적 절기들에 대해서 신학적 반성을 하여 어린이주일, 어버이주일 그리고 심지어 어떤 교회들은 스승의주일(교사주일), 가정의주일도 만들어 지키는데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진실로 회개해야 하는 이유는 예배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앙생활에서 ‘감사’는 매우 중요한 가치이며 원동력이지만 개인적인 상황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성탄절과 부활절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으로 충분한대도 사실상 교회 제정을 위한 신년감사주일(연초에 감사라는 명분은 좋지만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교회 절기가 우선), 맥추감사주일(구약의 절기로 계시의 점진성을 훼손), 추수감사주일(미국식 사대주의이고 농부가 없는 도시교회는 사실상 해당이 되지 않고 농부는 개인적으로 감사 표현하는 것이 신앙적 자세), 송구영신예배(샤머니즘적 배경에서 나온 예배)도 인본적 절기들로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을 사실상 인간이 영광을 추구한 부패하고 타락한 중세교회의 각종 절기들하고 비슷한 행위이고 이러한 절기의 강조는 결국은 ‘복음신앙’이 아닌 ‘율법신앙’과 ‘번영신앙’을 만들어 교회를 병들게 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개혁주의 교회들은 정신을 차리고 그리스도 중심의 기본적 교회력(대림, 성탄, 주현, 사순, 부활절이고 사순절은 중세교회식의 부패하고 타락한 절기가 아니라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으로 성주간이 중심)을 행하고 초기교회와 교부들 그리고 루터와 칼뱅이 강조하고 추구한 ‘성찬식’을 자주 행하여 ‘바른 예배’를 행하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칼뱅의 주장대로 성찬식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악마의 농간’).

그래서 다시 강조하지만 개혁주의 교회들은 ‘바른 교회’가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바른 설교(그리스도 중심)’와 더불어 ‘성찬식’을 위해서도 ‘교리교육’으로 바르게 가르치고 자주 행하여 의식적인 주일 예배를 넘어서 삶의 예배가 되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드려야 할 것이다(S.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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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옥 목사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개혁신학연구원, Knox Theological Seminary(D.Min.), Grace Theological Seminary(D.Miss.Pro.)에서 공부하였고, <성찬식을 어떻게 행할 것인가?> 등 6권의 저서와 1권의 공저를 출판하였다. 전, 개신대학원대학교 강사였고, 현재는 경북 영주의 바른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바른성경아카데미(RBA) 원장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올바른 개혁주의 신앙을 위해 실천하려고 연구하는 실천신학자이고, 또한 장례지도사로서 지역 사회를 섬기고 있다. potentia-dei@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