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중파 청교도의 후예들이 신대륙에 세운 회중교회는 원죄와 그리스도의 구원의 방식 등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부분에서 성경과 다른 종교 체계를 만들었다. 성경은 흙으로 지어진 피조물 아담에게 분에 넘치게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했고, 하나님을 대리하는 피조세계를 다스리는 지상의 왕이 되게 하시는 등의 모든 은혜와 은사에 부족함이 없게 하셨음에도 하나님 섬김을 싫어하고 반역한 것이 인류의 대표 아담의 원죄라고 한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창 3:5)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호 6:7)

그러나 신대륙의 회중교회는 그들의 조상들의 가르침을 따라 태초에 하나님과 아담이 영생을 위한 의무와 조건을 설정하고 상호간에 언약했다고 하였다. 영생을 위한 조건으로서 십계명 준수하기로 하나님과 언약한 아담이 약속을 파기하고 거부한 불순종이 원죄라고 한다.
 

“행위언약은 완전 순종을 조건으로 만들어진 언약이고, 이 조건은 윤리법으로 표현된다. 윤리법은 인간에게 그의 본질과 행동에서 완전한 순종을 명령하는 하나님 말씀의 부분이고, 그 외에는 어떤 것도 금한다 ...(중략)  율법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순종을 요구하는 법과 그리고 순종과 결합되어 있는 조건이다. 그 조건인 율법을 완성하는 자들에게는 영생이고, 율법을 범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죽음이다. 십계명은 율법의 축소판이요 행위언약이다.” (윌리엄 퍼킨스, 회중파 청교도의 아버지, 1558-1602)

회중교회의 아버지 윌리엄 퍼킨스가 태초에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영생을 위한 조건으로 십계명을 중심으로 하는 율법을 지키기로 약속하였고, 아담이 그 약속에 신실하지 못한 것이 원죄라고 했다. 그의 후배들 모두 기독교와 상관이 없는 원죄사상을 가지고 회중교회를 세웠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원죄를 없었던 것으로 만드시는 종교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아담과 아담 안에서 원죄를 범한 자기 백성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속죄의 피로 하나님께 배상하였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피를 적용하여 죄책과 형벌을 제거하심이 곧 영생에 필요한 ‘하나님의 의’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그러나 이미 원죄신앙에서 성경을 떠난 회중파 청교도는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비성경적인 원죄 사상에 맞는 그리스도를 만들었다. 그리스도가 단지 피를 흘려서 구원을 주실 것이라면 성육신하시고 일찍 죽으셨어도 문제없으나, 오래 사시다 죽으신 이유는 아담이 지키지 못한 모든 십계명 등의 율법을 다 지키셔서 십자가의 피 흘림으로는 불가능한 '하나님의 의'를 얻으셨다고 가르쳤다. 회중파 청교도의 비성경적인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 사상이다. 회중파 청교도의 최고의 신학자로 평가되는 존 오웬도 동일한 비성경적인 구원론을 가르쳤다.
 

“완전히 의로운 그리스도는 그의 적극적인 순종이 없어도 죄를 위한 희생 제물과 화목 제물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므로 그가 적극적인 순종의 삶을 산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중략)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그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되지 않는다면,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모든 법에 순종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훨씬 일찍 죽었어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데 충분했다. (존 오웬)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피의 배상으로만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었다면, 더 일찍 죽으셨을 것이나 오래사시다 죽으신 이유가 따로 있다는 주장이다.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에 대한 벌이 해결될 수는 있으나, 영생에 누리기 위해 필요한 하나님의 의, 즉 칭의는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시기 위해 일찍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지 않고 길게 살면서 아담이 지키지 못한 십계명과 모든 율법을 모두 지키셔야 했다는 의미이다. 비성경적인 회중파 청교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 교리이다.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이 오직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우리에게 의와 사죄를 주셨다고 선포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갈 6:1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믿음고백을 통하여 구원을 일으키는 방법에 대해서도 회중파 청교도는 성경에서 벗어났다. 청교도는 반드시 복음전파 이전에 율법의 저주를 경험시켜야 하고, 두려워 떨고 각성된 상태에서 스스로 구원을 주시는 은혜의 수단(예배, 기도, 성경 공부, 율법 준수, 철저한 회개 등)을 활용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회심을 고대하고 준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신약 성경과 사도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믿음을 전파하였다. 사도 바울은 구약의 율법, 선지자들의 글도 함께 동원하여 그리스도를 효과적으로 증거하였다. 그리하면 성령께서 사람에게 믿음을 일으키시어 구원하였다.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행 28:23)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회중파 청교도, 즉 미국을 통해 우리에게 들어온 청교도 신앙이라고 불리우는  사상이 성경과 그리스도를 왜곡한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왕좌를 차지하였고, 가장 거룩한 모습으로 위장되었으므로 똑똑한 사람들이 더 먼저 미혹되어 최고의 엘리트 신학을 소유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고 있다.

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유명한 신학의 대가들이 왜 이것을 지적하지 않았을까? 그릇된 가르침이 잉글랜드의 왕당파와의 내전에서 고전하고 있던 잉글랜드 의회파가 스코틀랜드 장로파 청교도와 체결한 ‘엄숙동맹’(1634년)의 결과로 탄생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까지 삽입되어 있다. 엄숙동맹에서 합의한 대로 잉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에 하나의 장로교회를 세우기 위해 회중파 청교도, 장로파 청교도와 다른 종파들이 다 참여하여 만들어 낸 것이 웨민고백서이다. 

웨민고백서 작성을 위해 4년 동안 천명 이상의 뛰어난 학자들이 천 번 이상의 모임을 가졌던 이유는 네 나라의 종교를 하나의 장로교회로 통일하기 위해 모든 청교도 종파들의 신학을 고루 반영하는 신앙고백서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내막을 모르고 처음부터 장로교 신앙고백서로 만들어졌고, 그 많은 학자들이 장로교회의 신앙을 표현하는 완전한 문서를 작성하려고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회합하였다고 배웠다.

왜 회중교회의 사상을 장로교회에서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신대륙의 초기 역사에 있다. 1636년에 설립된 하바드와 1701년에 설립된 예일은 회중파 청교도들의 신학교였다. 신대륙의 초기의 이민자들 대부분은 회중파 청교도들이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장로교 신자들의 이민은 170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다. 신대륙에서 최초의 장로교회의 노회는 1705년에 세워졌고, 1720년부터 장로교인들의 이민이 증가하였다. 

신대륙에서 급증하는 장로교회를 위해 스코틀랜드-아일랜드에서 목회자를 파송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하바드와 예일에서 회중파 청교도 신학을 공부한 회중교회 목회자를 장로교회들이 청빙하였다. 그 경우의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예일에서 공부한 후 뉴욕 남부의 엘리자베스타운에 있는 장로교회를 담임한 조나단 디킨즈(Jonathon dickinson, 1688-1747) 목사이다. 훗날 그의 집에서 미국 장로교 신학의 요람이라고 여겨지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전신 프린스턴 대학(뉴저지 대학, 1747년)이 시작되었다. 회중파 신학을 공부하고 장로교회 담임으로 청빙된 사람이 장로교회의 역사와 신학에서 중요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미국에서 장로교 신학과 회중교회 신학이 처음부터 혼합되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장로교회의 역사와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초기의 또 다른 인물은 윌리엄 테넌트(William Tennent, 1673–1746)이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장로교회의 신앙을 배운 그는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스코치-아이리시(Scotch-Irish) 사람들이 세운 장로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그가 1726년 필라델피아 북쪽의 네샤미니 크릭(Neshaminy Creek)에 통나무로 오두막을 짓고 신학교를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미국에 세워진 최초의 장로교 신학교였다. 이 학교에서 그의 네 아들을 포함하여 여러 명의 장로교회 목회자들이 배출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탁월했던 사람은 에드워즈와 같은 해에 태어난 윌리엄 테너트의 첫째 아들 길버트 테넌트(Gibert Tennent, 1703-1764)였다. 길버트 테넌트는 1740년대의 대각성 당시 에드워즈와 휫필드와 교제하면서 크게 활동하였다. 당시 신대륙에서는 교회 정치와 제도에 대한 차이가 있을 뿐 회중교회와 장로교회 사이에 신학적인 차이가 거의 없다고 인식되었던 것이다.

에드워즈의 대각성에 대한 심각한 논쟁이 일어났고 결국 하바드와 예일은 에드워즈와 대각성 옹호자들과 갈라섰다. 그래서 하바드와 예일 외에 또 하나의 신학교가 세워졌다. 처음에는 그 명칭이 뉴저지 대학이었는데, 나중에 현재의 프린스턴 대학으로 개칭했다. 회중파 신학교인 예일에서 공부한 후 장로교회 목사가 된 조나단 디킨즈의 집의 거실에서 첫 수업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길버트 테넌트 목사와 미국 최초의 장로교 신학교였던 ‘통나무 대학’도 처음부터 합류하여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처음부터 미국에서는 회중파 신학과 장로교 신학이 혼합되었던 것이다. 1929년 프린스턴에서 갈라져 나온 필라델피아의 웨민신학교의 학자들은 자유주의 신학에만 관심을 두었지, 이미 장로교회의 피과 살이 되어 버린 회중파 신학 요소에 대해서는 자각하지 못했다. 이후 미국의 거의 모든 교단들의 신학이 그렇게 발전되었고, 미국 신학의 최대 소비국인 한국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되었다.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해결은 불가능하다. 해결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하고 힘들고 복잡하다. 수 백 년 동안에 걸처 이 구도가 굳어졌고, 대부분 이 바탕에서 학위를 받고 업적을 이루었다. 이 구도가 흔들리는 것은 많은 인생들을 허물어 뜨리는 쓰나미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하나님이나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을 또 죽일 것이다. 성경대로 되어가는 것을 보고 외로이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8)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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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