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에 비성경적인 청교도 회심준비론을 전파하는 마르투스 출판사 정성우 목사 측이 정이철 목사에 대하여 반박하는 글 "청교도 회심준비론을 이단이라고 공격하는 이에게(첫번재 변증)"에 대한 정이철 목사의 반박의 글이다.) 

“둘째, 청교도 준비교리는 구원의 서정 가운데 중생 전의 과정, 즉 율법의 기능을 말한다. 리처드 멀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각각의 역사를 구분했는데 그 가운데 청교도 준비교리인 ‘준비적 은혜’의 역사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의 무능력을 자각함으로써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율법을 통한 회심을 9 in위한 준비이다.”(정성우 목사, 마르투스 공동대표)

정성우 목사 측의 청교도 회심준비론을 옹호하는 위 내용에서도 심각한 오류가 나타난다. 청교도 회심준비론이 강조하는 것은 구원의 서정 가운데 중생 전 과정의 율법의 기능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구원이 서정이 다음과 같이 이해되고 있다. 1)소명, 2)중생, 3)회심, 4)신앙, 5)칭의, 6)양자, 7)성화, 8)견인.

그런데 중생 전 과정의 율법의 기능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성령이 중생을 일으키시도록 율법이 먼저 일한다는 것인데, 과연 신약 성경과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중생을 위해 일하는 율법에 대한 주장의 근거를 찾을 수 있을까? 신약 성경에서 중생이 일어나기 위해 율법이 먼저 일하게 한다는 사상을 조금도 찾을 수가 없다.

신약성경은 중생이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말씀전파(그리스도의 복음)와 성령의 사역이라고 설명한다. 성경의 사례들을 살펴보자. 예수님의 십자가 옆의 강도는 대체 무슨 율법을 배워서 예수 믿고 중생에 이르게 되었는가? 12년 동안 혈루병으로 신음하다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믿음으로 병도 고침 받고 더불어서 영혼의 구원까지 얻은 그 불쌍한 여인은 그 이전에 대체 무슨 율법을 배우고 실천하면서 중생을 준비하였는가?

역사적으로 율법은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음에 이르도록 준비하는 특별계시의 일환으로 주어졌다. 그 차원에서 사도 바울은 율법을 몽학선생이라고 하였다. 청교도 회심준비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점을 단순하게 제시한다. 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 먼저 율법이 왔으므로 지금도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율법의 저주와 심판에 먼저 묶여서 절망하는 상황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불성설이다. 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 율법이 먼저 와서 그리스도를 준비해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구원의 복음을 완성해 내신 역사적 순서가 그렇다는 것이다. 신약 시대의 모든 개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보다 율법이 먼저 적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율법이 먼저 와서 사람을 죄 아래 가두었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사람이 구원 얻을 길이 없음을 고하여 깨닫게 하였다. 그것으로 구원에 관한 율법은 제 기능과 역할을 다 한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시고 난 후 구원을 얻기 위해 먼저 사람이 율법을 경험하고 율법에 묶여야 한다는 주장은 모든 인류가 시간을 이동하여 구약 종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과 같다. 율법 아래서 예수 믿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망령된 주장이다.

신약의 사도들의 가르침과 그들이 보인 본을 통해 상고하면 답은 분명하다. 사람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율법 선포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이다. 만일 칼빈이라도 그리스도의 복음선포보다 먼저 구약의 율법을 선포하여야 한다고 가르쳤다면, 그 역시 성경을 몰랐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칼빈은 신약시대를 살면서도 구약과 신약의 유기적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성경의 진리를 억눌렀던 천주교로부터 성경을 구하여 낸 종교개혁을 추진했던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의 글에서 구약의 율법의 기능과 그리스도의 복음과 구원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인위적으로 청교도 회심준비론에게 끼워 맞추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한국 교회는 중세의 종교개혁 시대를 거울로 삼지 말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방인들의 세계로 곧 바로 전파되었던 사도행전과 신약시대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의 율법을 먼저 선포하여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준비하게 만든다는 개념을 전혀 가지지 않았다. 사도들은 곧 바로 그리스도의 생애, 죽으심, 부활을 전파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였다. 문론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구약의 율법도 동원하고 이용하였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행 20:21)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행 28:23)

신약의 사도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생애, 죽으심, 부활을 전하였다. 결코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의 율법을 먼저 전하여 사람을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 세우기 위한 준비를 시도하지 않았다. 시간과 기회를 얻기만 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했지, 구약의 율법을 전하여 복음을 준비시키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전 4:2)

신약의 사도들과 제자들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복음(말씀)을 전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회개하고 예수 믿고 구원받은 신자들이 나타났고, 그래서 각 처에 교회가 세워졌다. 청교도 준비론 주장과 달리 사람이 죄를 깨닫는 것은 율법의 정죄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회개와 겸손은 오직 말씀과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는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지 율법의 저주와 하나님의 심판을 전해야 사람이 죄를 깨닫고 겸손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역사가 임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전하면 오히려 마음이 더 강퍅해지고 사나워질 뿐이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눅 5:8)

어부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고 겸손하게 그 분 앞에 엎드렸다.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원보혜사이신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에 베드로는 즉시 자신의 죄인됨을 알고 겸손해졌다. 그때 누가 베드로에게 저주의 율법과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선포했었는가?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눅 24:32)

낙심하여 고향으로 가던 제자들에게도 그리스도께서 말씀과 은혜를 베푸시자 마음이 성령으로 뜨거워지는 역사가 일어났다고 성경은 말한다. 신약시대에 율법을 먼저 전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주장이다. 율법은 단지 그리스도를 준비하기 위해 왔던 것이고, 율법이 목표하였던 그리스도가 이미 오시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율법이 목표하였던 그리스도를 바로 증거하면 되는 것이다. 정성우 목사와 마르투스 측은 다시 우리를 구약의 유대교로 끌고 가려는 것인가? 어리석은 변론을 이제라도 그만 두기 바란다.

“리처드 멀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각각의 역사를 구분했는데 그 가운데 청교도 준비교리인 ‘준비적 은혜’의 역사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의 무능력을 자각함으로써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율법을 통한 회심을 위한 준비이다.”(정성우 목사)

정성우 목사가 인용한 칼빈세미나리 교수였던 리차드 멀러의 말도 정말 바보 같은 소리이다. 신약 성경 어디에도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무능을 자각하기 위해 복음과 성령에 의존하지 않고 구약의 율법에 의존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없다. 율법을 먹고 마시어 그리스도를 향하도록 준비된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 보기를 바란다. 바보들이 같은 바보 계열의 선생의 말을 우상시하는 어리석음이다. 대체 바울이 누구를 율법을 통하여 회심을 준비시켰는가? 대체 베드로가 누구를 율법으로 준비시켜 예수 믿게 하였는가? 정성우 목사와 마르투스 측은 조엘 비키나 리차드 멀러 같은 어리석은 선생들을 버리고 서철원 박사와 같은 성령의 지혜가 넘치는 분을 선생으로 모시기 바란다.

"그리스도가 오신 후 율법은 구원의 길로서 폐지되었다. 이제 구원의 길은 예수 믿는 것뿐이다. 더 이상 구원의 길에 율법이 개입하지 않는다. 회개하고 예수 믿는 믿음은 복음의 선포로만 이루어지고 율법이 예비 과정으로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믿음에 율법준수를 병행하였다. 바로 이 방식으로 그들이 완전히 구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바울은 이 구원의 방식에 한사코 반대하였고, 복음의 선포와 그것을 믿는 믿음만으로 구원이 충분하고 완전하다는 것을 밝혔다.

율법은 본래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율법은 시민생활에 악의 행함을 제재할 뿐이고, 구원에 이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율법의 길에는 절망과 멸망뿐이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이다 ... 율법이 몽학선생으로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다는 것은 사람이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또 율법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가 와서 구원을 이루어 줄 것을 열망하게 하므로 그 임무를 다한 것이다."(서철원, 교의신학전집 1: 신학서론, 1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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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