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본명 김성훈) 목사의 신비하고 놀라운 영언 이야기(1)

김삼 목사가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
김성훈 목사(가명 김삼)가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 김성훈 목사는 총신대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삼 목사가 운영하는 블로그 <진리와 사랑>에 게시되어 있는 영언(방언)에 대한 게시물들이 심각하니 개혁신학 관점에서 설명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으므로 김삼 목사의 영언 이론을 분석하는 시리즈는 글을 시작한다.)

김삼(본명 김성훈) 목사의 "방언은 왜 모든 신자를 위한 것인가?"(2007년 12월 1일)에 대한 소감이다. 김삼 목사는 방언을 ‘영언’이라고 한다. 김삼 목사는 자신의 ‘영언’이라는 용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주님은 분명히 믿는 이들에겐 누구나(!) 따르는 표징/징표의 하나로 영언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으로 악령을 내쫓는 사람들, 부지중 뱀을 집어들었거나 독극물을 마셨어도 예수 이름으로 해를 입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 예수 이름으로 손을 얹어 환자를 고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신자는 모두 예수 이름으로 영언을 하도록 돼 있는 것이다.”

김삼 목사는 성경의 방언을 영언, 즉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 통용되는 영적인 언어라고 본다. 그리고 영언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공히 임하는 보편적인 은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삼 목사의 영언에 대한 말들을 읽어보자. 

“독자는 구원받고 거듭난 신자인가? 그렇다면 주님의 약속 그대로 반드시 영언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주님이 모든 신자들에게 보장하신 약속이다. 지금 당장 무릎 꿇고 불신의 죄를 하나님께 자복하고, 예수 이름으로 입술을 열고 말을 하되, 결코 모국어를 해선 안 되고 (성령님이 이미 모든 신자들에게 내리신 언변 즉 utterance를 따라) 직접 곧장 영언으로 들어가야 한다. 내 자신이 믿음으로 입을 열어 혀를 굴려야 한다는 얘기다. 영언은 신자 누구나 하게 돼 있다. 강요가 아니라 위 말씀처럼 주님의 대 위임이다.”(김삼)

성경의 방언이 나타나게 하는 방법에 대한 김삼 목사의 주장은 매우 유치하다. 김삼 목사는 이렇게 주장했다. 

“입술을 열고 말을 하되, 결코 모국어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 곧장 영언으로 들어가야 한다”

말을 하려고 하되 모국어로 말하지 않아야 한다면, 무슨 말을 하라는 것인가? 김삼 목사 자신은 이상한 영언 귀신의 역사를 통해 그런 일이 가능한지 모르겠으나, 정상적 정신 상태에서 말을 하려고 하되 모국어로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곧장 영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김삼의 말은 참 해괴하다. 김삼 목사의 영언을 만들어 내는 방식과 저급한 신사도 파들이 방언을 끌어내는 방법은 무엇이 다를까?
 


“영언이 지금 왜 필요한가? 지금 내 영 속의 비밀을 하나님께 아뢰야 하기 때문이다(코a 14:2). 우리는 사도 파울 당시에만 영의 비밀을 아뢰야 했고, 지금은 영의 비밀을 아뢸 필요가 없다고 상상할 수 없다!”(김삼)

인간이 하나님께 비밀을 말해야 하기 때문에 영언이 필요하다는 것이 김삼 목사의 주장이다. 대체 하나님이 모르는 인간의 비밀이 있을까? 신비한 비밀의 언어로 하나님깨 알려드야 할 사람의 비밀이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칼의 숫자까지도 이미 아시고, 멀리서도 우리의 앉고 일어서는 것을 다 아신다고 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행한 일을 하나님은 이미 아셨다. 하나님이 김삼이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이미 다 아시고, 김삼 목사가 어제 밤에 한 일도 다 알고 계시고, 현재 김삼의 아음 속의 생각도 이미 다 아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무엇을 모르시기에 영언이라는 비밀의 언어로 하나님께 말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인지, 정말 김삼 목사의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 하나님께 사람의 비밀을 말할 때 사용되는 영언의 은사에 대한 말씀이 성경 어디에 있는가?

김삼 목사는 고린도후서 11장을 잘 읽어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고린도교회에 이미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거짓 사도'들과 '궤휼의 역군'들이 들어와서 ‘다른 영’을 전파하였다고 설명되어 있다. 거짓 영들의 부림을 받는 이단들로 인해 고린도교회에 '거짓 은사'들이 만연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단들이 침투하여 고린도교회를 심각하게 어지럽혔던 것이다. 그럼에도 고린도 신자들은 전혀 분별하지 못하였다. 분별하기는커녕 도리어 그들이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고 즐거이 수용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고린도에 들어온 이단들이 너희의 ‘빰을 칠지라도 용납’(20절)하고 있구나! ... 하면서 비웃듯이 책망하였다.

김삼 목사는 하나님이 모르는 사람의 비밀을 '영언'으로 하나님께 알려드린다는 사상이 사도 바울의 본래의 신학이었는지,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교회에 퍼뜨린 이단 사상이었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펴진 이단사상을 바로 잡는 과정에서 그들의 거짓 주장을 거론한 것으로 보아야 할 내용에 대한 이해가 없어 보인다. 

특히 김삼 목사는 다음을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하나님은 성경의 사람들과 친히 대화하셨다. 그때 하나님과 그 사람들이 어떤 언어로 대화를 하였는지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성경의 사람들이 지상에서 일상으로 사용하는 보통의 언어로 대화하셨다. 아브라함에게 말하실 때 아브라함이 이미 알고 사용하는 언어를 이용하셨다. 다메섹에서 사도 바울에게 찾아오실 때에도 사도 바울이 이미 알고 사용하는 보통의 일상 언어로 말씀하셨다.

김삼 목사는 한때 자신이 비판했던 이단들의 사이비 방언 사상을 그대로 차용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있다. 왜 그럴까? 그 자신이 이미 미혹의 영에게 단단히 붙들렸기 때문이 아닐까?

“모국어 기도는 아뢸 수 있는 범위와 제목들이 한정돼 있고 주변환경에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영언기도는 언제나 [심지어 속으로도] 할 수 있다. 걸어가면서도, 화장실에 가서도 하며, 심지어 누워서 잠을 자면서도 무의식 속에서 흘러나올 때가 있다. 24시간 전천후적으로 가능한 것이 영언기도다. 파울이 그랬다(코A 14:18).”(김삼)

김삼 목사의 위의 말도 우습다. 우리는 모국어로도 주변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고, 또한 주변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도 않고 기도할 수 있다. 반드시 입술과 혀를 움직여 소리를 내야만 기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다 아신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느 2:4)

훼파된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이국 땅에서 늘 기도하던 느헤미야에게 페르시야 왕에게 말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생겼다. 느혜미야는 무릎을 꿇고 소리를 내어 기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김삼 목사의 주장을 따르자면, 영언 외에는 느헤미야가 기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김삼 목사가 주장하는 영언이라는 것으로 기도하지 않았고, 늘 하던 대로 모국어를 이용하여 기도했다. 단지 소리를 내지 않고 마음으로 말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다 들으셨다.

김삼 목사는 화장실 등에서 기도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 영언이라고 매우 강하게 주장했다. 이상한 주장이다. 모국어로 생각하면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화장실에는 불가능한가? 왜 영언이라는 것을 받아야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우기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이 이상한 영언 귀신을 받았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않고, 남들도 다 자신과 같이 영언 귀신을 받아야 한다고 우기는 것이 아닐까?

“영언 기도는 내 영이 직접 하나님께 비밀을 고하므로 마귀가 결코 알아들을 수 없는 완전한 비밀 기도요, 절대 극비가 보장되는 완벽한 '모르스' 부호다. 그리고 지구 저편의 모르는 성도를 위해 나도 모르게 기도하게 되는 완전한 중재기도다. 음식의 해독을 제하거나 위험을 미리 경고 받아 예방하는 완전한 식사기도, 축사/감사의 기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물론, 완전한 찬양의 기도다! 위급할 때 의식적/무의식적인 영언기도를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들이 나를 도와 악령을 대적한다! 너무나 편리한 무기인 것이다.”(김삼)

김삼 목사는 영언 기도가 절대적 극비가 보장되는 완벽한 모르스 부호이고, 멀리 떨어진 다른 신자를 위한 ‘완전한 중재’ 기도라고 주장했다. 참으로 어이없고 난감하다. 첫째, 완전한 중재의 기도란 무엇인가?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위해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완전한 중재를 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김삼 목사가 이런 말도 함부로 하는 스타일이라면, 그의 신학과 보통의 이단 사이비들의 신학이 크게 다르고 할 수 있을까? 둘째, 영언기도가 극비의 보안이 유지되는 모르스 부호라는 김삼 목사의 주장은 성경의 어디에 근거한 이론인지 알 수가 없다. 김삼 목사는 참 재미있는 말을 잘하는 사람인 것 같다. 

김삼 목사는 다음의 영상을 보기 바란다. 이 영상의 간증자는 김삼 목사가 좋아아는 영언을 아주 잘하였던 사람이었는데, 그만 두었다고 한다. 이 분은 어떤 무속인을 만날 기회가 있었고, 영언을 시험하기 위해 계속으로 영언기도를 하면서 무속인을 대했다. 김삼 목사의 주장대로 영언의 뜻을 하나님 만이 알고 귀신을 모른다고 배웠기 때문이었다. 속으로 쉬지 않고 영언으로 기도하면서 무속인을 만났는데, 그 무속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신의 영언을 그대로 흉내내면서) 이거 네가 아까부터 말하고 있었던 것 맞지! 지금 엄청 몰려왔으니까 그만 하라!  그것은 귀신들을 부르는 소리이다!' ... 저는 너무 놀랬어요.  방언이라고 하는 은사를 받은 줄 알았는데, 그게 귀신들 불러 모으는 주문이래요!"

김삼 목사는 영언이 귀신도 해석 못하는 모르스 부호라고 하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설명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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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