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섭 교수의 <개혁주의 전가교리>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이유는 하나이다. 비성경적인 청교도 사상이 최고의 엘리트 개혁신학이라고 포장되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고, 하루 속히 바로 잡아야 우리 모두의 신앙이 살기 때문이다. 오늘은 신호섭 교수의 책 2부 2장의 존 오웬(John Owen, 1616-1683)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신 교수가 가장 먼저 인용한 오웬의 말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의가 그리스도의 순종 안에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의 순종이 마치 우리의 소유인 것처럼 우리에게 전가된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로운 자들로 간주된다.”(존 오웬의 말/ 신 교수의 책 86 페이지)

위 오웬의 말 속의 두 가지는 맞고 한 가지는 틀리다. 1)‘우리에게 전가된’, ‘의로운 자들로 간주된다’라는 오웬의 표현은 맞는 말이다. 천주교는 세례를 통해 의가 주입되어 실제로 의인이 된다고 가르쳤다(친다). 사도 바울과 종교개혁자 칼빈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운 자로 여겨지는 칭의, 즉 오웬처럼 ‘의로운 자들로 간주’되는 칭의를 가르쳤다.

2)‘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는 오웬의 표현도 옳다. 실제로 의로워져서 의인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과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니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받는다. 오웬은 믿음 안에서만 얻어지는 법정적 칭의를 말하였다. 3)‘우리의 의가 그리스도의 순종 안에 있기 때문에’라는 오웬의 말은 틀리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순종을 뜻하는 말이라면 옳으나, 오웬이 강조한 것은 그리스도가 율법에 순종하신 삶으로 의를 얻고 전가했다는 것이다. 오웬의 다른 책에는 이 사상이 더욱 분명하게 나온다.

 


“완전히 의로운 그리스도는 그의 (율법에 대한) 적극적인 순종이 없어도 죄를 위한 희생 제물과 화목 제물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므로 그가 적극적인 순종의 삶을 산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그 (율법에 대한 적극적)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되지 않는다면,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모든 법에 순종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훨씬 일찍 죽었어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데 충분했다.” (John Owen, 성도와 하나님과의 교제, 151)

오웬은 그리스도가 모세의 계명들에 순종하여 얻으신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고 믿었다. 계명들을 다 지키시지 않고 그냥 십자가로 향하셨으면, 우리에게 죄 용서는 있었겠으나 천국에 가게 만드는 의는 없었다는 것이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눅 2:28-30)

성경은 오웬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시므온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아직 걸음마도 하지 못하시는 상태였다. 모세의 계명들에 순종하시기는커녕 스스로 발걸음도 떼지 못하시는 때였으나, 성령의 감동을 입은 선지자 시므온은 구원자로 오신 완전히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분을 보았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기뻐하였다. 우리에게 전가하실 의를 획득하기 위해 모세의 계명들을 지킬 시간을 가지셨다는 오웬의 말이 묘한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간파하지 못하는 독자들은 그리스도의 행적을 보여주는 사복음서를 읽기 바란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천국복음 전파’, ‘십자로 더 가까이’ 두 가지로 요약된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 9:35)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눅 9:22)


우리의 의에 관해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은 무엇이라 가르쳤는가? 그들은 모두 성육신하여 오신 그리스도가 자신을 주심이 우리의 의라고 가르쳤다.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6)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딛 2:14)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하늘과 땅 아래서 오웬처럼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의 의가 아니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율법준수가 우리의 의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오직 청교도들이다. 청교도 신학자 코르넬리우스 프롱크의 말을 보자.


“죄인은 자신의 대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히 순종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그 죄인에게 전가됩니다.”(프롱크, 도르트신조강해, 236)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한 모든 계명에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자신의 죄의 짐을 느끼는 죄인들에게 기쁜 소식입니다.”(프롱크, 도르트신조강해, 268)

“복음은 죄인에게 회개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어떻게 회개가 일어납니까? 그때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금 우리 마음에 새겨 주시고, 우리는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것이 당신이 구원받았는지 아닌지를 아는 방법입니다.”(프롱크, 264)
 

신 교수는 오웬의 칭의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웬은 여기서 이중적 전가(double imputation)의 필요성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오웬이 말하는 이중적 전가란 ‘죄의 무전가’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이다.”(신호섭 교수, 86 페이지)

필자는 처음에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에게로,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도 전가된다는 차원에서 이중적 전가라는 말을 사용하는 줄 알았다. 그리스도의 율법의 의와 십자가의 공로, 두 개가 전가된다는 의미인 것을 청교도 신학을 연구하면서 알았다. 이중적 전가 사상은 완전히 비성경적이다.

“오웬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를 위해 모든 율법과 계명에 온전히 순종하셨다. 오웬은 이런 특별한 의미에서 볼 때 단순한 죄의 사면은 우리의 칭의를 위한 완전한 요소일 수 없다고 보았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인 의가 필요하다 ... 죄인이 의롭게 되려면, 이 적극적인 의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권리를 취득해야 한다.”(신호섭 교수, 86 페이지)

신 교수는 죄의 사면이 칭의를 위한 핵심적 요소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죄의 사면과 더불어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칭의를 얻는다는 차원에서 한 말이면 100점이다. 그러나 신 교수는 언제나 ‘죄의 사면’ 외에 그리스도가 적극적으로 ‘율법을 지켜서 얻은 의’가 더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다른 복음이 아닐 수 없다.
 

신 교수는 또 오웬의 다음의 말을 인용했다.

“우리의 죄책을 제거하는 것, 우리의 더러운 넝마를 제거하는 것,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위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죄의 사면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합당한 열매이다. 그러나 그것 이상의 것, 즉 영원한 생명을 얻을 권리에 상응하는 의가 요구된다. 이것은 ‘의복의 교환’이라고 불린다. 성경은 이사야 61장 10절에서 이것을 가르켜 ‘구원의 옷’과 ‘의의 옷’이라고 칭한다. 죄의 사면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이루어지듯이, 이 옷은 오직 그리스도의 순종만으로 우리의 것이 된다.”(존 오웬의 말/신 교수의 책 87 페이지)

오웬은 언제나 그리스도가 죽음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책임, 즉 지옥형벌을 제거했고, 그리스도가 모세의 계명들을 준수하여 의, 즉 천국에 갈 자격을 얻었다고 한다. 구약 이사야 61장 10절에 이미 이러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수동적 순종 개념이 나타나있다고 했다.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10)

그러나 이사야의 이 예언은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오시어 자기 백성에게 완전한 구원을 주신다는 의미일 뿐이다. ‘구원의 옷’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수동순종)를 의미하고, ‘의의 겉옷’이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능동순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메시야로 인해 주어지는 구원의 풍성함을 뜻하는 내용이라고 보아야 옳다. 그러나 신 교수는 이런 내용을 바로 잡기는커녕 오히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율법에 순종하셨다.”(87 페이지)라고 동조하였다.


신 교수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칼빈이 그랬던 것처럼, 오웬도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을 매우 강조했다. 따라서 오웬 역시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는 칭의 교리에 관한 한, 종교개혁자들과 같은 노선을 취하는 것이 분명하다.”(신호섭 교수, 89 페이지)

그러나 바울의 칭의 신학을 회복시킨 종교개혁자 칼빈의 칭의론과 청교도 황태자 오웬의 칭의론은 다르다. 신 교수 자신이 앞에서 인용한 칼빈의 말 속에 이미 답이 있었다. 칼빈은 우리에게 전가된 의는 처음부터 그리스도 안에 존재한 본질이었고, 그가 친히 피로서 죄를 사하고 우리를 자신에게로 받아주심으로 의의 전가가 이루어졌다고 했다.

“의가 그리스도 안에 본질로서 존재하는데 바로 이 그리스도께 본질로 속한 의가 우리에게로 전가된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칼빈의 로마서 주석/신 교수의 책 68 페이지)

“믿음의 의는 죄의 사면과 무조건적 받아 주심에 있으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두 가지를 모두 받는다.”(칼빈의 고린도전서 1:30절 주석/신 교수의 책 70페이지)

 

맺는 말

신 교수가 오웬의 칭의론을 극도로 칭송하는 것은 단지 능동순종 거짓 신학 하나를 두둔하는 선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기독교의 성육신의 목적과 신비를 부정하는 것과 직접 연관되는 심각한 사안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죄로 인해 잃어버린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성육신을 택하셨다. 친히 죄를 없애시고 우리에게 의를 주시기 위해 완전히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사람이 되어 오시었다.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6)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눅 2:28-30)

그러나 오웬의 주장에 의하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모세의 계명을 준수하기 전에는 우리의 의 의가 되지 못했다. 오웬의 신학에 의하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설령 십자가에 달려 죽어도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가 되지 못했다. 그러니 칭의 신학에서 오웬은 기독교와 유사한 종교를 구성한 것이다. 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인가? 왜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심으로만 우리에게 의를 전가할 수 있었는가? 그 원리에 관한 서철원 박사의 설명을 보자.


“인간이 자기의 힘으로 죄과를 속량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본성을 입으시고, 인간이 범한 죄과 때문에 받을 형벌 곧 죽음을 감당하시므로 죄 값을 갚아 하나님의 법 곧 의를 세우기로 하셨다.”(서철원, 그리스도론, 53)

“남자의 개입 없이 성령이 마리아의 피에서 하나의 인성을 그리스도의 인성으로 수태시부터 조성하셨다 ... 죄가 전혀 없는 인간 예수가 탄생하셨다. 죄과의 전달도 전혀 없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전혀 없으므로 완전한 의인이요 죄의 오염이 완전히 배제되어 완전히 거룩한 사람으로 출생하셨다.”(서철원, 그리스도론, 67)

“성령은 형성한 인성을 로고스의 위격에 연합시켰다. 출생 때 연합시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완전한 인성의 형성시까지 역사하셔서 완전히 연합되게 하셨다. 신적 인격에 연합됨이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이다. 이처럼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의 인성이 형성된 것을 말한다.”(서철원, 그리스도론, 67)

“바울은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출생함을 하늘의 인격으로 출생함이라고 표현하였다(고전 15:47,48). 하나님 곧 그리스도가 그의 인격에 인성을 연합시켰다. 그래서 두 본성이다. 이 두 본성 곧 신성과 인성이 그리스도의 한 인격에 연합되었으로 각 본성은 자기의 특성을 유지한다. 두 본성이 혼합없이, 변화없이, 분열없이, 분리없이 그리스도의 인격에서 연합되었다.”(서철원, 그리스도론,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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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