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섭 교수의 '개혁주의 전가교리' 독서(12): 2부 2장의 퍼킨스 부분

신호섭 교수의 <개혁주의 전가교리>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이유는 하나이다. 비성경적인 청교도 사상이 최고의 엘리트 개혁신학이라고 포장되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고, 하루 속히 바로 잡아야 우리 모두의 신앙이 살기 때문이다. 오늘은 신호섭 교수의 책 2부 2장의 윌리엄 퍼킨스(Willam Perkins, 1558-1602)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신 교수가 인용한 퍼킨스의 말들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그동안 필자가 청교도 신학의 능동순종에 대해 강조했던 내용들을 간단히 정리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신 교수가 인용한 퍼킨스의 말들의 신학적 의미를 파악하는데 매우 필요하기 때문이다. 

1)한국 교회와 전 세계의 청교도 신학을 추구하는 목회자들이 심취해 있는 모든 사상들과 인물들은 대부분 당시 청교도 운동의 한 분파였던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와 관련되어 있다. 그들이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회중교회를 세웠고 조나단 에드워즈와 같은 청교도들을 배출했다. 

2)다른 청교도 분파들, 즉 스코틀랜도 언약도(장로파 청교도), 잉글랜드 장로파 청교도, 잉글랜드 침례파 청교도 인물들과 그들이 남긴 서적들은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 인물들과 그들의 서적들처럼 각광받지는 않는다.

3)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의 조상은 윌리엄 퍼킨스이고, 퍼킨스는 칼빈의 <기독교강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퍼킨스는 신학적으로 칼빈의 후계자 데오도르 베자에게서 영향받았으나, 베자는 칼빈의 신학을 잘 계승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4)(비교적 최근에 파악한 사실인데) 당시 청교도들의 출판 활동이 왕성하여 스코틀랜드 언약도(장로교 청교도)로서 웨민총회에 총대로 참석한 사무엘 러더포드 같은 사람에게도 능동순종 개념이 전파되었다. 그러나 능동순종 개념이 스코틀랜드 언약도들이 앞장서 발전시킨 것은 아니고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 인물들에 의해 확산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필자의 연구가 맞다면, 능동순종에 대해 깊이 연구한 신호섭 교수의 논문에서 회중파 청교도의 조상 퍼킨스의 신학이 능동순종 개념의 배경이라는 사실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신 교수도 같은 내용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클리포드는 존 오웬이 최초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뚜렷하게 구별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추정일 뿐이다. 왜냐하면 오웬보다 훨씬 이전 시대에 살았던 윌리엄 퍼킨스의 저술에서 이미 이런 개념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퍼킨스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죄인을 위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에 대한 이해를 추적할 수 있다 ... <황금사슬>(A Golden Chain)로 잘 알려진 퍼킨스의 작품은 언약을 주요 주제로 다루었으며,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의 전가에 관한 퍼킨스의 견해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 본질적 배경이 된다.”(89, 90 페이지)

신 교수는 퍼킨스가 <황금사슬>에서 기술한 언약 사상이 청교도 신학의 능동순종 개념의 배경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퍼킨스가 자신의 책에서 설명한 언약 사상은 우리가 웨민고백서에서 보게되는 ‘행위언약’(The Covenant of Work)이다. 행위언약을 본격적으로 입안하여 도입한 사람이 퍼킨스이므로 능동순종이 퍼킨스의 언약 사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곧 행위언약에서 능동순종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퍼킨스는 죄인의 칭의를 언약적 맥락에서 제시한다. 퍼킨스는 언약을 두 종류로 이해했는데, 곧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이다."(90 페이지) 

퍼킨스가 도입한 행위언약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영생을 위해 율법을 준수하라고 명했으나 아담이 거부하여 저주받았고,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든 인간이 동일한 행위언약의 저주 안에서 태어난다는 주장이다. 행위언약을 성경적 진리로 받으면 기독교의 성육신의 목적과 신비가 파괴된다. 죄로 죽은 우리를 다시 회복할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창조주 하나님이 친히 죄인을 구원하는 의가 되시려고 완전한 의인으로 성육신하셨다. 하나님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가 되게 하셨다.

그러나 행위언약은 창조주가 율법을 지켜 의를 얻으시기위해 사람이 되신 것으로 왜곡한다. 사람이 되신 창조주 하나님 그 분이 우리의 의가 아니고,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율법준수를 우리의 의라고 하는 것이다. 장로교 청교도들과 회중파 청교도들이 함께 작성한 ‘웨민고백’(WCF) 7, 19장에 퍼킨스가 설명한 행위언약이 그대로 기술되어 있다. 이 사실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눈을 떠야할 것인데, 아직도 웨민고백서의 내용들 100%가 모두 하나님이 직접 주신 성경과 같은 영원한 진리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신 교수는 능동순종의 기반이 되는 행위언약에 대한 퍼킨스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행위언약이란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맺어진 도덕법에 표현된 하나님의 언약이다 ... 율법을 모두 성취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다. 그러나 그것을 위반하여 범죄하는 자는 자에게는 영원한 사망이 주어진다.”(퍼킨스의 말/신 교수의 책 90 페이지)

성경 어디를 보면 영생을 위해 하나님이 아담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했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영원히 죽이신다는 경고가 나오는가? 그렇다면 하나님만 섬기라는 언약 안에서 아담을 창조했고, 아담이 하나님께 반역하지 않는 한 영원히 살 수 있었다는 칼빈과 모든 올바른 성경학자들의 성경 이해는 다 잘못된 것인가?
 

아담에게서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주지 않으셨을 때에 주께서는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하셨다(창 3:22).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아담이 잃어버린 불멸성을 그 과실이 회복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기독교강요, 4.14.12)

그러므로 아담이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여 벌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참으로 교만이 모든 악의 처음이었다는 어거스틴의 단정은 옳다. 사람이 자기의 처지에 만족하고 바른 한계를 넘으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태초의 상태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다.(기독교강요, 2.1.4)

그러나 그 후로 야심과 교만이 배은망덕과 함께 생겨났으니, 아담은 받은 것 이상을 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주신 그 위대하고 풍성한 은혜를 파렴치하게 경멸했기 때문이다. 흙의 아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도 또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지 않는 것을 사소한 일로 보았으니 이 얼마나 해괴하고 흉악한 태도였는가!(기독교강요, 2.1.4)

 

첫 인류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므로 곧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므로 죄인이 되어 생존권을 박탈당하여 죽게 되었다(창 2:17).(서철원, 그리스도론,166)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창조주를 하나님으로 섬겨야 할 존재인데 하나님을 반역하므로 영원한 멸망과 죽음에 종속하였다.(서철원, 그리스도론, 253)

첫 인류는 창조주 하나님을 반역하여(창 3:1-19) 하나님 백성 되기를 거부하므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창 2:17; 3:19).(서철원, 그리스도론, 264)

에덴동산에 있었던 ‘생명나무’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아담이 영생하기 위해 그 열매를 매일 따 먹고, 또한 그 나무의 가지나 잎을 따서 고아 먹어야 영생한다는 것이었나? 아담이 하나님이 주신 언약대로, 창조된 목적대로 하나님을 섬기면 영원히 살 것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의 표시가 생명나무였다. 아담이 영생을 위해 지키고 말고 할 율법이라는 것이 그때 어디에 있었는가? 선악과를 율법이라 할 수 있는가? 선악과를 먹음은 아담이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고 자기를 위해 살기로 작심한 것, 즉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겠다는 의사표시였다. 그래서 아담의 죄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호 6:7)이라고 성경은 설명한다.

선악과를 먹음이 영생얻기 위한 율법준수에 대한 거부였다면, 신 교수나 누가 다음의 질문들에 대답해 주기 바란다.

1)선악과는 그 속에 많은 율법 정보들을 담고 있는 최초의 영적 메모리 칩이었는가? 그래서 선악과를 먹음이 그 속의 모든 율법 조항들을 멸시한 것으로 인정되는 것인가?

2)율법준수에 실패하여 영생의 문턱도 구경 못하고 죽을 아담을 이미 아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스스로 기뻐하셨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가?

3)율법을 지키지 않아 아담이 저주 받았다는 것은 율법 제정과 아담 창조가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율법 조항들은 아담이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늘에 기록되었는가? 아담이 밟았던 땅에 기록되었는가? 

4)청교도들은 아담의 마음에 율법이 기록되었다고 하고, 이후의 사람들의 마음에도 율법이 기록되고 유전되었다고 한다. 그 근거가 로마서 2장 15절의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이방인들에 관하여 했던 바울의 그 말이 청교도 신학의 '아담의 마음에 기록된 영생의 율법'의 근거라면, 구원을 얻게 하는 특별계시가 아담 이후 전 인류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주장인가?

5)청교도들은 아담의 마음에 기록해 주신 율법이 십계명으로 돌판에 기록되어 주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우상들을 만들었고, 남의 아내들도 많았고, 아담이 복을 받기 위해 효도해야 할 부모도 있었다는 것인데, 이게 맞는 말인가?

6)성경은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롬 5:13)라고 함으로 아담의 원죄가 발생할 때에 율법이 없었음을 분명히 말한다. 왜 이런 내용이 성경에 나오는 것인가?

이런 모순이 발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퍼킨스가 도입하였고, 웨민고백서에도 삽입된 행위언약 개념이 성경을 훼손하는 거짓 사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위언약 개념에 수반되는 그리스도의 능동순종도 거짓 신학이다. 아담이 영생을 위해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은 성경과 무관한 전설이고, 그 전설에 수반된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개념은 더 심한 전설이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구원을 위해 성육신하실 그리스도만 믿게 하려고 주신 율법에 자기도 종속하고 순종하려고 성육신하신 적이 없다. 하나님은 단지 죄로 죽은 자기 백성을 다시 살리는 의가 되시고자,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죄와 무관한 완전히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다. 죄의 담을 십자가로 허물고 우리를 자신에게로 받아주셨고, 자기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셨다. 기독교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으신 후 우리에게 전가하셨다는 주장은 끼어들 자리는 없다. 있다면 설명해 보라!

신 교수는 또 이렇게 말했다.

“아담은 행위언약 아래 있었고, 그것을 성취하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둘째 아담으로서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육신의 몸을 취하여 이 땅에 오셨다. 그러므로 퍼킨스가 볼 때, 성육신은 죄인의 구원을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였다. 퍼킨스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직 우리를 위하여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셨다’라고 주장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 칭의와 구원에 관해 퍼킨스는 인간의 부패하고 타락한 상태로 볼 때 단순한 죄의 사면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신호섭 교수, 90-91)

신 교수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죄의 사면만으로 칭의가 불가하고 그리스도 밖에서 얻어지는 다른 적극적인 의가 더해져야 칭의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단지 칭의 신학 하나만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목적과 신비까지 무너뜨리는 심각한 주장이다. 창조주께서 죄로 죽은 백성을 살리고자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죄 없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성자께서 자신을 죄 없는 그 사람과 일치시킴으로 성육신이 이루어졌다. 창조주께서 완전히 무죄하시고 의로우시고 완전히 거룩한 사람으로 오시었다.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믿으면 영생의 자격이 되는 의를 충분히 얻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하셔야 할 일은 율법을 지켜서 의를 획득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담 안에서 우리가 범한 반역의 죄를 해결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친히 흠 없는 자기의 피로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배상하시었다. 우리를 죄 없는 사람처럼 만드시고, 우리를 자기에게로 받아주시어 자기의 완전한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게 하셨다.

신 교수와 청교도 신학 추종하는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답해 보기 바란다. 율법이 창조주 하나님보다 위에 있는가? 사람이 자기의 방법을 포기하고 오직 성육신하실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게 하려고 세우신 율법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위에 있는가? 신 교수와 청교도 신학자들은 결코 이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과 올바른 신학자들은 진즉 충분히 설명하였다. 

먼저 성경의 말씀을 보자.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6)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눅 2:28-30)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 2:1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칼빈이 어떻게 설명했는지 보자.

존 칼빈
존 칼빈

“사도행전 13장에 있는 바울의 설교에 이런 말이 있다.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 여기에 보면 죄의 용서를 말한 후에, 그에 대한 해석으로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말을 한다.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을 분명히 죄의 사면으로 해석하며, 의롭다함을 율법의 행위에서 분리시키고 있다.”(기독교강요, 3.11.3)

“의가 그리스도 안에 본질로서 존재하는데 바로 이 그리스도께 본질로 속한 의가 우리에게로 전가된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칼빈의 로마서 주석/신 교수의 책 68 페이지)

“믿음의 의는 죄의 사면과 무조건적 받아 주심에 있으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두 가지를 모두 받는다.”(칼빈의 고린도전서 1:30절 주석/신 교수의 책 70 페이지)


서철원 박사는 어떻게 설명했는지 보자.

서철원 박사
서철원 박사

“의롭다 하심은 예수 믿음에 근거해서 죄를 용서하여 무죄하다고 선언하심이다. 믿음고백에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이 온다. 칭의는 단지 주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고백에 대한 하나님의 무죄 선언이다. 따라서 법정적 선언이지 도덕적 칭의일 수 없다.”(서철원, 교의신학전집 5: 구원론, 29)

“의롭다 하심의 중요한 점은 바로 죄책을 제거하심이다. 죄책 혹은 죄과의 제거는 죄인을 의인으로 확정하는 것이다. 무죄하다고 선언하는 것은 죄에 대한 책임이 제거되었음을 뜻한다. 그래서 범죄하였지만 죄책이 제거되었으므로 죄에 대해서 책임질 일이 없어진다. 곧 완전한 의로 인정되는 것이다.”(서철원, 구원론, 124)

“전통적 신학이 제시하는 능동적 순종과 피동적 순종은 전적으로 그릇된 사변적 산물이다. 능동적 순종은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는 그리스도가 스스로 지켰으므로 능동적 순종이고 하나님의 작정을 따라 죽으셨으므로 십자가의 죽음은 피동적 순종이라고 구분하였다. 이런 것은 성경에 맞지 않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전혀 맞지 않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다 지키므로 의를 얻어 그것을 우리에게 전가하신 것이 아니다. 율법의 요구 곧 범죄하므로 그 죗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따라 피 흘림으로 죗값을 갚아 용서를 가져오셨다. 이 죗값을 갚아 용서를 이루신 것이 의이다. 이 의 곧 죄 용서를 우리에게 전가하신 것이다. 율법의 성취는 죗값을 갚으므로 율법을 성취해야 한다는 요구가 더 이상 없도록 한 것이다. 그 면에서 율법을 완성한 것이다.”(서철원, 그리스도론, 147)
 

신 교수는 퍼킨스의 성경적이지 못한 다음과 말들을 두 번이나 더 인용-옹호하면서 글을 마치었다.

“칭의는 두 가지 안에서 존재한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공로로 말미암는 죄의 사면이고, 둘째는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이다.”(퍼킨스의 말/신 교수의 책 92 페이지)

“그리스도와 그 분의 의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나타난 그분의 고난이다. 둘째는 율법을 성취하시는 데서 드러난 그 분의 순종이다.”(퍼킨스의 말/신 교수의 책 93 페이지)
 

맺는 말

신 교수의 회중파 청교도 조상 퍼킨스에 대한 연구에서 비성경적인 능동순종 개념을 비롯한 모든 회중파 청교도 신학들의 신학이 퍼킨스의 신학에서 출발되었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졌다. 웨민고백서에 들어있는 행위언약(7.19장) 사상도 회중파 청교도의 조상 퍼킨스의 그릇된 사상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웨민고백 19-1>
God gave Adam a law as a covenant of works. He required Adam and all his descendants to obey this law, individually, completely, perpetually, and in precise accordance with its provisions. God promised life for keeping it and threatened death for disobeying it, and he gave man the power and ability to keep it. (하나님은 아담에게 행위언약으로서의 한 법을 지키라 명하셨다. 하나님은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개인적으로, 완전하게, 영원하게 그리고 그 규정대로 정확하게 준수하도록 요구하셨다. 하나님은 그대로 지키는 경우에는 영생을 약속하였고 그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에는 죽일 것이라고 위협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대로 지킬 수 있는 능력과 힘도 주셨다.)

웨민고백 19-2>
After the fall this law continued to be a perfect rule of righteousness and was given, as such, by God on Mount Sinai in the Ten Commandments, written on two tablets. (타락이 발생한 후에도 그 법은 여전히 완전한 의의 표준으로 작용했고, 그리고 그 법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두 돌 판에 친히 기록하신 십계명의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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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