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임재가 그리스도의 임재이다. 임재의 체험은 주 예수를 믿는다는 신앙 고백으로 이루어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 고백에 성령의 임재를 늘 감지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에 의해 우리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엡 3:17).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함이 바로 성령의 내주이다. 내주하는 성령의 역사로 우리가 주 예수를 계속해서 믿으며, 우리 속 사람이 능력을 입는다.

성령을 받음은 능력의 원천을 받음이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힘 입고 행사하는 길은 기도를 통해서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접근하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은 기도이다. 성령의 능력도 하나님의 은혜이므로 기도로만 활용할 수 있다. 칼빈이 가르친대로, “우리를 위해 하늘 아버지께 저장되어 있는 부요에 우리가 도달하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이다. 주의 복음에 의해 지목되었고 우리의 신앙이 응시한 보화들을 우리가 기도로 파낸다”(기독교강요, 3.20.2). 하나님게서 우리를 위해 쌓아 놓은 보화를 파내서 활용하는 길은 기도 뿐이다. 우리는 기도로 하늘 성소에 나아가서 그의 약속들을 경험하기 위해 직접 그에게 호소한다(기독교강요, 3.20.2). 우리는 기도하면 주의 모든 약속들이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한다.

성령의 능력은 우리에게 약속된 주의 은혜이다(행 1;8).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행사하는 길은 기도를 통해서이다. 기도만이 능력을 입는 길이다. 주 예수 자신이 이 진리를 분명히 하였다. 제자들은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그 이유를 물어 “우리가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아이까”할 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대답하므로(막9:28,29) 기도만이 능력을 행사는 길임을 분명히 하였다.

제자들은 귀신을 내어쫓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이미 받았었다(눅 9:1-6). 그러나 그들은 계속적으로 기도하지 않으므로 이미 주어진 권세를 활용할 수 없었다. 제자들은 주 예수를 가까이 모셨어도 기도하지 않으므로 능력과 권세를 행사할 수 없었다. 지금 그리스도인들도 성령을 보혜사로 모셨어도 기도하지 않으므로 성령의 능력을 힘입지 못하여 복음 전도를 하여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

성령은 종말론적 선물이어서 영원히 계속될 선물이지만(요 14:16), 성령의 은사와 능력은 임시적이어서 계속적으로 공급받아야 할 사항이다. 한번 능력을 입으면 계속적으로 전과 동일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처음 제자들의 경우처럼 기도를 통하여 능력을 계속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성령을 소멸하고(살전 5:19),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일들(엡 4:30)이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에 너무 많으므로, 성령의 능력도 간만의 조수와 같은 현상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성령의 능력과 체험과 그 행사는 기도를 통해서이다. 그리스도 자신이 끊임없는 기도 생활을 통항 큰 능력을 행사하였다(마 14:24, 막 1:35,46, 눅 6:12, 9:18, 28-29, 11:1, 18:11). 주 예수 자신이 기도로 능력과 권세를 행사하였으면, 그리스도인들도 능력에 이르고 그것을 행사하는 길은 기도 뿐이다.

성경에서 복음을 힘있게 전한 자들은 다 기도의 사람들이었다(살후 3:1).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 받은 후에도 능력있게 기도하였다(행 3:1). 성령 받았으므로 그들은 더욱 힘있게 기도하였다. 바울은 무시로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었다(살전 5:17. 살후 1:11). 그러므로 그 능력을 힘입어 로마 천지에 복음을 편만케 할 수 있었다.

또 자기의 옛 사람을 죽이고 승리한 그리스도인들도 다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아브라함은 큰 기도의 사람이었으므로(창 21:33) 자기 아들을 하나님 앞에 제사할 수 있었다. 능력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었다(약 5:13-18). 엘리야는 기도로 하늘의 문을 닫고 열 수 있었고(왕상 17:1-18, 46), 또 하늘에서 불을 내려 바알 신을 퇴치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늘을 닫고 또 비를 오게 할 수 있었다. 기도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능력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기도를 계속하면 죄지을 수 없고 거룩에 이루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됨으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능력을 베푸신다.

기도하되 자기를 죽이는 기도를 할 때 육의 생활 체계를 끊으므로 능력을 힘입는다. 세상적 필요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옛사람을 죽이는 기도를 해야 한다. 옛사람을 죽이는 기도는 세상과의 단절을 뜻한다. 즉 성화에 이른다. 기도의 역사는 마력이 아니므로 한 번의 능력 받음으로 계속해서 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계속적으로 기도하여 죄악을 떠남으로 능력을 힘입는다. 성화의 진행과 비례해서 능력을 더 크게 행사할 수 있다.

이것은 성화가 근거가 왜서 능력을 받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죄인을 듣지 않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를 들으심을 뜻한다(요 9:31). 죄를 반복하는 자를 하나님이 듣지 않으신다. 죄를 끊는 자, 거룩하게 되기를 위하여 자기를 죽이는 기도를 하는 자들이 들음을 받는다. 기도 자체가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들으시는 기도가 능력을 행하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9약 5:16)는 야고보의 가르침이다.

자기의 죄악을 내어놓는 기도는 하나님의 들음을 받아 능력을 입어 복음증거를 힘있게 하여 결실하고 죄와 싸워 승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한다. 기도 없이는 복음 증거가 열매를 맺지 못할 뿐 아니라 증거를 할 수도 없다. 성령세례를 위해서 기도할 것이 아니고 능력을 입기 위해 전력으로 기도해야 할 것이다.(성령신학(15장), 227-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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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 박사는 서울대학,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원(Th.M), 화란의 자유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다. 화란의 자유대학에서 칼 발트의 신학을 지지하는 지도교수 베인호프와 다른 발트의 제자 신학자들과의 토론에서 칼 발트의 신학의 부당성을 증명하였다. 발트의 사상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논문 '그리스도 창조-중보자직'을 관철하여 박사학위를 얻었고, 이 논문이 독일 튀빙겐대학이 선정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 논문 100편에 수록되어 한국 교회의 위상을 드높였다. 총신대 신대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 십년 동안 목회자들을 길러내는 교수사역에 헌신하다 영예롭게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연구하시며 <바른믿음>의 신학자문 역을 맡아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