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정이철 목사를 깨닫게 하겠다고 <바른믿음>의 독자마당에 글을 올리는 청교도 신학 추종자가 오늘 올린 장문의 글이다. 청교도 신학 추종자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내용이므로 전체 독자들과 함께 나누기로 했다. 그리고 청교도 신학 추종자들에게 어떤 맹점이 있는지, 이 분이 오늘 올린 글을 정리해 보았다. )

제가 여기에 올린 몇 편의 글은 정 목사님의 생각을 깨우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대놓고 반대하는 글을 올리면, 읽지도 않고 지우거나 무시해 버리실 것이 뻔하니, 제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이 글도 아마 금방 지우시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어는 보시고 지워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개혁주의 역사에서 행위 언약과 능동 순종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곳에 몇 편의 글을 올렸습니다. 역사 속의 개혁교회는 행위 언약과 능동 순종 교리를 다 받아들였습니다. 칼빈 뿐이겠습니까? 베자의 글에도, 존 낙스의 글에도, 제롬 장키우스의 글에도 나타납니다. 다 칼빈한테 직접 배운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칼빈의 사상에 벌써 그런 개념들이 나타났다는 윌리엄 커닝햄의 말을 넉넉히 증명하는 것입니다. 다만 목사님이 외면하실 뿐입니다.

역사적 개혁신학을 반대해서 목사님이 얻으시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목사님은 지금 역사적 개혁교회 전체와 싸우시는 중입니다. 왜 이런 무모한 싸움을 하십니까? 잉글랜드의 청교도들과 스코틀랜드 장로교도들과 네덜란드의 개혁교도들을 다 이단으로 몰아세우시겠습니까? 사실은 목사님이 이단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목사님은 틀림없이 지금 마음속에 어느 정도 거리낌을 느끼실 것입니다. 목사님은 당초에 회중교도들만 이 교리들을 주장한다고 생각하셨고, 그래서 회중교도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마 차츰 공부를 해가실수록, 회중교도만이 아니라 종교개혁자들부터 장로교회와 개혁교회 사람들도 다 이 교리를 믿는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셨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멈추십시오. 처음에는 무지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목사님 스스로도 보시지 않습니까? 칼빈의 글에서도 행위 언약과 능동 순종 교리가 나타난다는 것을 어렴풋이 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칼빈을 이은 개혁교회 전체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대륙, 북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 한국에서도, 개혁교회라고 하는 교회들은 전부 이 교리를 믿는다는 것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도 왜 멈추지 않으십니까? 정말 이단이 되기로 작정하셨습니까? 어리석은 짓을 그만 두십시오.

사실을 외면한다고, 사실이 거짓이 되지는 않습니다. 목사님은 그저 외면하고 계실 뿐입니다. 수많은 증거를 그저 외면하실 뿐입니다. 눈을 뜨십시오. 정신을 차리십시오. 왜 멸망하는 길로 가십니까? 왜 바리새인의 길을 가십니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이 말씀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회개하십시오. 아직도 기회가 있습니다. 바울도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까? 목사님도 회개하시면, 목사님의 그 열심을 주께서 더 귀하게 쓰실 것입니다. 왜 마귀의 종 노릇을 하려고 하십니까? 왜 고생길을 자초하십니까? 주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시듯, 목사님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목사님은 지금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는 주님의 이 말씀처럼, 우리 신앙의 선조들을 다 이단으로 몰아세우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착각하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주님의 말씀처럼, 그것은 목사님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목사님, 아직은 회개할 기회가 있습니다. 제발 지금이라도 멈추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베드로의 이 말씀과 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 2:21). 정말 이렇게 되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기지 마십시오. 제발 두려워 떠십시오. 앞으로는 이런 경고의 목소리조차 듣기 힘드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돌이키십시오.

제가 무엇을 얻으려고 이런 글을 쓰겠습니까? 제가 여기서 추종자를 만들겠습니까, 뭘 하겠습니까? 제가 이런 글을 올려서 받을 것이라고는, 목사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비난뿐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목사님의 영혼을 위해 올리는 글이라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싸이트 이름처럼, 그리스도를 바로 믿는 길만이 참 생명의 길이요 평안의 길입니다. 하지만 목사님의 믿음은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그 왜곡된 사상과 거짓된 생각을 버리시고, 주님 안에서 참 생명과 평안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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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에 힘들여서 길 글을 올리시느라 수고하셨다. 자신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하지 못하는 자세는 비겁하고 부끄러운 태도이고, 진리를 토론하는 일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충고드리고 싶다. 종교개혁자들은 자신의 이름, 얼굴, 생명과 모든 인생을 걸고 진리를 수호하였다. 지금 필자도 그리하고 있다. 진리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왜 지렁이처럼 음침한 곳에 숨어서 키보드나 두들기며 진리에 어울리지 않게 행동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오늘의 긴 글 어디에서도 능동순종, 즉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 의를 얻어 전가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성경의 말씀이 단 하나도 제시되지 않았다. 이전에 칼빈이 어떤 주석에서 능동순종을 의미하는 말을 했다고 제시하는 것을 보았다. 칼빈의 신학을 대표하는 <기독교강요>에는 늘 정반대의 말들만 나온다. 그리고 칼빈이 아담이 어찌 했으면 ‘영생을 얻었을 것이다’라고 했다는 내용도 소개하던데, 태초에 아담에게 영생이 없었다는 의미로 한 말이었을까? 아담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겼으면 하나님이 주신 영생을 계속 누렸을 것이라는 의미로 한 말로 보아야 한다. 칼빈의 원죄 해석에서 시종일관 나타나는 의미가 그것이다. 한 문장으로 전체를 왜곡하는 것이 이단의 성향들중 하나이다. 

혹시 칼빈이 자주 오락가락 했다면 칼빈도 버리는 것이 맞다. 그리고 성경을 붙들어야 할 것이다. 성경 어디에도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어야만 구원을 얻는데, 사람이 못하니 그리스도가 대신 하려고 성육신했다는 가르침이 없다. 성경에서 성육신의 목적과 의를 얻는 방법을 그렇게 제시하는 내용 한 줄만 찾아오면, 필자는 그 동안 청교도 신학에 대하여 올린 모든 글을 내릴 것이다.

오늘 글을 남긴 사람을 '추종자'라고 호칭하겠다. 추종자가 오늘 남긴 글에서 나타나는 안타까운 점들을 요약해 보겠다. 추종자의 글에서 청교도 신학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성경의 말씀을 보지 못했다. 여전히 앵무새 같이 역사적으로 누가 청교도였고, 누가 행위언약-능동순종을 믿었고 ... 이런 말들뿐이다. 청교도 신학에 대한 확신의 감정들이 철철 흘러넘치는 내용들인데, 이단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다. ‘추종자’의 말들을 보자!

“저는 개혁주의 역사에서 행위 언약과 능동 순종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곳에 몇 편의 글을 올렸습니다.”(추종자)

천주교가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때 소수의 종교개혁자들을 향하여 천주교 신부들이 했던 말과 너무 유사하다. 그러나 성경에 행위언약-능동순종을 지지하는 내용이 없으므로 결과는 같을 수 밖에 없다.

“윌리엄 커닝햄의 책에서 보듯이, 칼빈의 글에도 이 교리들이 다 나타납니다. 또 여러 사람이 칼빈의 글을 직접 인용해 그 사실을 증명했습니다.”(추종자)

나는 추종자께서 좋은 뜻으로 윌리엄 커닝햄의 책을 소개해 준 줄 알았다. 그래서 그 책을 구입하기까지 했다. 윌리엄 커닝햄도 능동순종을 믿었으니 필자도 믿으라는 취지로 그랬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필자는 윌리엄 커닝햄의 책에서 능동순종의 근거가 칼빈의 책에는 없음을 알았다. 커닝햄은 그 책 404 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It is to be trace rather to the more minute and subtle speculations to which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was afterwards subjected; and thought the distinction is quite in accordance with the analogy of faith, and maybe of use in aiding the formation of distinct and definite conception”(William Cunningham, The Reformers and the Theology of the Reformatiom (Carlisle, PA: The Canner of Truth Trust, 1979), 404.)

(우리의 죄 용서의 근거가 되는 수동적 의 개념과 우리가 하나님께로 받아드려지는 능동적 의 개념은 칼빈의 책들을 통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칭의 교리의 뒤를 따르는 더 섬세하고 구체적인 사변(사색)으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한 구분이 지극히 합당한 신앙적 유추라고 믿었고, 명확하고 분명한 개념 형성을 돕기 위해 유용할 수 있었다.)

커닝햄은 능동순종 사상이 칼빈의 책에서 기원된 것이 아니고 칭의교리를 세우는 과정에서 수반된 그 시대 신학자들의 사색과 사변에서 기원되었다고 했다. 즉 성경과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에 나온 것이 아니고 인간의 사변이라는 것이다. 사변에서 나온 것은 권위있는 교리가 되지 못한다. 교리는 오직 성경에 근거할 때 권위를 가진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알아본 귀신도 능동순종 교리를 얕보는 것이다. 혹시 내가 커닝햄의 글 번역을 잘못했는지 추종자께서 다시 보기 바란다. 커닝햄은 훗날 칼빈이 능동순종 개념을 접했다면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건 자기의 생각이다. 

“베자의 글에도, 존 낙스의 글에도, 제롬 장키우스의 글에도 나타납니다. 다 칼빈한테 직접 배운 사람들입니다.”(추종자)

칼빈이 가르치지 않은 신학이 베자로부터 시작되어 엉뚱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 그 동안 필자가 강조한 내용들이다. 베자가 독일 루터교회 신학자의 책에서 영향 받아서 개혁교회 속으로 능동순종 사상을 도입했고,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그 사변신학으로 빠졌다고 이미 수 없이 말했다. 그런데 추종자는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거짓 신학을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는 이유 하나로 여전히 진리를 대적하고 있다. 전형적인 이단의 특징이다.  

“왜 이런 무모한 싸움을 하십니까? 잉글랜드의 청교도들과 스코틀랜드 장로교도들과 네덜란드의 개혁교도들을 다 이단으로 몰아세우시겠습니까? 사실은 목사님이 이단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추종자)

코로나 신종 바리러스는 어디에서 처음에 시작되었는가? 중국의 후베이 성의 우한이라는 곳이다. 그리고 지금 전 세계에 퍼졌다. 전 세계에 퍼졌다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서 동시에 생겨난 것인가? 행위언약-능동순종 거짓 교리는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의 조상 윌리엄 퍼킨스(1602년 사망)에 의해 등장한 거짓 신학이었다. 여기에 다른 의견이 있으면 말하라! 그때부터 이미 출판 활동이 활발했으므로 서서히 퍼졌고, 40년 후 웨민고백서가 탄생할 무렵에는 회중파는 물론이고 일부의 스코틀랜드 언약도(장로파 청교도)들 속에도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었다.

필자는 이것이 성경이 말하지 않는 사상이고, 칼빈이 가르치지도 않은 사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성경이 말하지 않으므로 천하가 다 주장한다고 해도 성경의 진리는 아니다. 회중파 청교도 조상 퍼킨스가 가르치면서 먼저 회중파 청교도의 신학이 되었고, 이루 다른 종파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것이 장로교 정통신학은 결코 아니다. 소위 말하는 후기 개혁주의 전통과 성경-칼빈의 신학은 다르다. 필자의 요지는 추종자와 같은 신학을 가진 사람들은 정당하게 따로 자신들의 종교를 만들라는 것이다. 왜 추종자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을 성경과 칼빈과 결부시키는가? 

“목사님은 틀림없이 지금 마음속에 어느 정도 거리낌을 느끼실 것입니다.”(추종자)

청교도만 추종하고 점쟁이 노릇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칼빈의 글에서도 행위 언약과 능동 순종 교리가 나타난다는 것을 어렴풋이 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칼빈을 이은 개혁교회 전체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대륙, 북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 한국에서도, 개혁교회라고 하는 교회들은 전부 이 교리를 믿는다는 것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도 왜 멈추지 않으십니까? 정말 이단이 되기로 작정하셨습니까?”(추종자)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신학과 청교도 신학은 다르다. 혹 칼빈이 자주 오락가락했다면, 칼빈에 대한 신뢰를 거두어야 한다. 그리고 성경으로만 돌아가야 한다. 성경에는 능동순종을 지지하는 말이 한 구절도 없다. 율법은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의 삶과 신앙의 가이드로, 구원 받은 사람의 여전한 죄를 지적하는 수단으로 왔다. 율법이 불신자가 구원을 위한 의를 얻는 수단으로 율법이 온 적이 없다. 그런 내용이 성경에 있으면 한 줄만 제시하라! 성경에서 벗어난 사람이 결국 이단으로 규명되는 것이지, 철저하게 성경에 의거하는 필자 같은 사람은 절대로 이단으로 몰리지 못한다.  

“눈을 뜨십시오. 정신을 차리십시오. 왜 멸망하는 길로 가십니까? 왜 바리새인의 길을 가십니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이 말씀이 두렵지 않으십니까?”(추종자)

성경에 한 구절도 나오지 않는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의 전가 등의 청교도 교리로 새로운 종교를 만드는 추종자님에게 해당되는 내용이다. 나는 성경대로 신앙을 지키려고 하니 해당사항이 없다.

“하지만 회개하십시오. 아직도 기회가 있습니다. 바울도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까? 목사님도 회개하시면, 목사님의 그 열심을 주께서 더 귀하게 쓰실 것입니다. 왜 마귀의 종 노릇을 하려고 하십니까? 왜 고생길을 자초하십니까?”(추종자)

청교도 추종자들이 다수이며 기득권 세력이고 나는 혼자이다. 공개적으로 나를 돕는 사람을 보았는가? 기득권 세력의 앞잡이였던 사울에게 나를 비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는다. 당시 사울은 대제사장 등의 주류세력의 후원을 받는 입장이었고, 지금 나는 혼자이다. 아무도 나와 함께 싸워주지 않고 있다. 삼국지 식으로 말하자면, 단기필마로 적의 백만대군 앞에 홀로 서있는 심정이다. 설마 나 한 사람의 목소리가 그렇게 무서워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인가? 나를 그런 정도의 힘을 가진 거인으로 보셨는가? 

“목사님은 지금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는 주님의 이 말씀처럼, 우리 신앙의 선조들을 다 이단으로 몰아세우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착각하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주님의 말씀처럼, 그것은 목사님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추종자)

내가 누구를 출회시키고 잡아서 죽인다는 것인가? 나는 혼자이다. 아무도 나를 공개적으로 돕지 않는다. 오히려 나와 함께 하면 손해보니 기존의 친했던 사람들도 나를 멀리하려고 한다. 나에게 무슨 힘이 있다고 이런 말을 하는가? 결국 내 말이 맞고, 내가 주장하는 신학을 중심으로 한국 교회가 다시 세워질 것이라고 믿는 것인가? 나는 혼자이고, 가진 것인 오직 성경과 성경에 근거한 양심이다. 그리고 칼빈의 <기독교강요>에서 배운 지식과 서철원 박사의 책들에서 배운 신학으로 청교도 신학과 싸우고 있다. 혼자인 내가 이단으로 몰려서 추방될 가능성이 높지, 나에게 비판받는 유명한 사람들이 그리 될 가능성은 없다.

“베드로의 이 말씀과 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 2:21). 정말 이렇게 되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기지 마십시오.”(추종자)

혼동하지 말라! 성경을 근거로 말하는 사람은 이단 아니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 전통과 많은 유명한 사람의 말에 근거하는 사변적인 신앙인들이 이단이다. 나의 거의 모든 글들의 핵심은 언제나 성경에 근거했다. 그리고 칼빈과 서철원 박사의 신학을 참고로 했다. 내가 이단으로 몰린다면, 성경도 이단이고 또한 칼빈과 서철원 박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청교도 추종자들처럼 사변에 빠지지 않으려고 늘 성경을 보았고, 칼빈과 서철원 박사의 신학을 참고했다. 나에게 충고 많이 했으니, 나도 추종자애게 충고하고 마친다.

"서산으로 인생의 해가 넘어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함께 성경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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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