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가 사람들을 크게 미혹하는 거짓 교리들 중 하나는 보혜사 사상이다. 보혜사는 정통 교회의 신앙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의 대표 이단 교주 이만희 씨와 한국 교회의 대표 목회자 이찬수 목사(분당우리교회, 예장 합동)의 보혜사에 대한 가르침을 비교해 보려고 한다. 성령에 대한 이찬수 목사의 설교 한편을 들었으므로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한국의 대표 이단 이만희 교주가 왜곡하는 ‘보혜사’는 신약 성경에서만 네 번 나온다. 예수께서 네 번 보혜사를 언급하셨는데, 각각에 들어있는 중요한 의미들을 요약해 보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1)최초의 보혜사는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떠나신 후 오실 성령을 ‘다른 보혜사’라고 하셨다. 그리스도 자신이 최초의 보혜사였던 것이다.

2)보혜사라는 말은 자기 백성과 친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오직 삼위일체의 하나님, 즉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그 외의 다른 하나님은 없다. 보혜사는 삼위 하나님 외의 또 다른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친히 함께 거하심을 표현하는 말이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1)성령이 두 번째 보혜사이다. 성령은 성부 하나님의 결정으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상에 오셨다. 성령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셨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대신하고, 그리스도와 동일시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효력을 신자들에게 적용하신다는 뜻이다.

2)성령이 오신 목적은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성경)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고, 적용하고, 실천하게 만드시는 것이다. 성령은 기록된 성경 말씀에 없는 새로운 계시의 말씀을 절대로 주장하지 않는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 15:26)

1)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그리스도(성자)께서 성부 하나님께 요청하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셨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를 해결하셨음을 아버지께 고하셨고, 성령을 자기의 이름으로 지상에 보내시도록 요청하셨다. 우리가 성령을 받게 된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때문이다. 성령은 우리의 노력, 기도, 소원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십자가의 피의 공로를 덧입는 것이 곧 성령을 받는 길이다.

2)성령은 진리의 성령이다. 성령께서는 이미 주어진 진리의 말씀(신.구약 66권)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시며 일하신다. 성경 66권 밖으로 넘어가는 성령은 그 즉시 귀신으로 규정된다.

3)진리의 영으로 오신 성령의 핵심 사역은 그리스도 전파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전도하여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신다. 성령은 오직 그리스도만 높이시고 자기를 높이지 않는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1)최초의 보혜사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로 오셨으므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셨다. 다른 보혜사로 오신 성령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고 영원히 하나님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신이 떠나고 난 후 성령이 오시는 것이 우리에게 더 유익하다고 말씀하셨다.

2)여기서도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신 후 성령을 보내신다고 했다. 성령은 단순히 우리에게 필요한 신앙생활의 힘으로 오신 것이 아니다. 십자가의 피 제사로 구속을 완성하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자기가 이룬 구속을 덧입히기 위해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셨다.
 

이상의 짧은 내용이 기독교의 성령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내용이다. 여기에서 벗어나서 성령을 말하는 자들은 모두 거짓 선생이다. 이제 신천지 교주 이만희 씨가 보혜사 성령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는지 그가 쓴 책을 통해 살펴보자.

“보혜사와 ‘다른 보혜사’는 누구이며 어떻게 다른가? 보혜사는 예수님이고(요일 2:1), 다른 보혜사는 예수님께서 보내시겠다고 하셨으니(요 14:16-17, 26) 예수님과는 다른 존재이다.” (이만희, 천지창조, 415)

이만희 교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른 보혜사를 보낸다고 했으니, 신약의 성령 보혜사는 최초의 보혜사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존재라고 하였다. 일면 맞으면서도 틀리다. 이는 스스로를 보혜사와 연관시키려는 속셈이다. 신약의 성령(보혜사)은 최초의 보혜사 그리스도가 승천하신 후 자신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에 근거하여 성부에게 성령을 자기의 이름으로 지상에 보내시라 요청하여 오셨다.

원래 성령은 성자와 영원 전부터 함께 하셨고, 언제나 분리되지 않으신다. 특히 성령은 마리아의 몸으로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창조하셨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안에 처음부터 내주하셨다. 그리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자기를 대신하도록 성령을 자기의 이름으로 지상에 보내시도록 아버지께 요청하셨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령은 늘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된다. 성령 받는 것이 예수 받는 것이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이 곧 예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다. 신약 성경은 성령을 ‘주의 영’(행 5:9, 8:39)이라고 말하고, ‘예수의 영’(행 16:7)이라고 말한다.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행 3:20)

심지어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성령을 보내시는 것을 예수를 보낸다고도 한다. 그래서 많은 경우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셨다”라고 표현한다. 신천지 총회장 이만희 교주가 보혜사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을 그 반열에 끼워 넣기 위한 속임수이다.

“보냄을 받은 보혜사 성령은 이 땅에서 역사할 한 사람(목자)을 택하게 된다. 보혜사 성령이 함께하는 이 목자가 신약 성경에 약속한 목자이며 이 땅의 보혜사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곧 보혜사 성령에게서 보고 들은 바를 가르치고 대언하며, 성도를 은혜로 보호한다(계10장).”(이만희, 천지창조, 417)

이만희 교주의 신약의 성령이 지상의 특별한 한 사람을 택하신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가르침이 없다. 이만희는 택하심을 받은 그 사람을 ‘약속한 사람(목자)’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거기에 끼워 맞춘다. 그러나 성령은 모든 교회들 안에, 모든 참 성도들 안에 공히 임하시어 역사하신다. 성령이 특별하게 택한 ‘약속의 사람’이라는 것은 성경에 없는 거짓 주장이다.

이만희 교주의 ‘약속한 사람(목자)’이 성령으로부터 직접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는 주장도 거짓이다. 누군가 새로운 계시, 성경에 없는 특별계시를 직통으로 얻는다는 것인데, 이만희 교주는 자신이 그 사람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이단들이 동일하게 성령이 자신에게 직접 계시를 주신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문선명, 박태선, 정명석 등이 그런 자들이고, 외국에서는 대부분의 오순절 운동 부흥사들이 그런 주장을 했고, 피터 와그너를 비롯한 신사도 운동가들도 같은 주장을 한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하나님의 계시는 이미 성경 66권으로 종결되었다(히 1:1,2). 더 이상 필요한 계시는 없다. 우리 주변에서 방언을 통역하여 전하고, 예언을 받아서 전하는 남녀들이 이만희 교주와 아주 다르다고 할 수 없다. 성령으로부터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듣고 예언을 받는다는 모든 사람들은 성령으로부터 듣고 본 것은 전한다는 이만희의 형제들이거나 사촌들이다.

신약의 성령은 누구에게도 새로운 계시의 말씀을 직통으로 주시지 않는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통해 주시어 기록된 성경의 말씀들을 가르치고 적용하게 하신다. 누구라도 성경 66권 밖에서 일하는 성령을 만나고 있으면 접신한 자이다. 우리 주변에 성경 말씀을 더 잘 가르치는 목회자들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들은 성령이 특별히 택하시어 직접 말씀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성경 66권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하여 가르치는 은사를 받았다. 

“재림 때 예수님께서 보내겠다고 약속하신 ‘다른 보혜사’ 곧 진리의 성령도 공중을 날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직접 외치지는 않는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육체를 들어 역사하시듯, 진리의 성령 보혜사도 약속의 목자 안에 거하며 말씀을 대언하게 한다(요 14:16-17, 계 19:9-10, 계 22:8-9, 16).”(이만희, 천지창조, 419)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신 신약의 성령은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의 효력을 입은 모든 신자들은 안에 공히 내주하신다. 신약의 성령은 모든 신자들과 교회들을 성경의 말씀으로 가르치신다. 이만희 교주 같이 특별하게 택하심 받은 ‘약속한 사람(목자)’ 안에만 내주하면서 새로운 특별계시의 말을 받아서 전하는 ‘대언자’를 세우지 않는다. 이전에 회개하지 않으면 한국에 전쟁이 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다닌 홍 아무개 여성이 자신을 성령의 대언자라고 주장했었는데, 이만희 교주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만희를 따르는 인구가 20만이 족히 넘는다고 하니 신기하다.

“신천지에서 말하는 성령은 정통교회에서 말하는 삼위일체의 한 위(位)가 되시는 성령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죄를 지은 그 천사장과 함께한 영들(계 9:14-16)을 악령이라고 한다 ... 그리고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영들은 악령과 구별하기 위해 성령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범죄한 천사들이 출현한 이후 영계는 성령의 세계와 악령의 세계로 나누어지게 되었다.”(이만희, 천지창조, 51)

천사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성령이 아니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이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과 모든 동식물을 만드신 창조의 하나님이시다. 천사들과 타락한 천사들은 피조물이다. 성령은 성부, 성자 하나님과 권능과 영광이 동일하신 하나님이시고, 동시에 성부와 성자와 언제나 구별되는 하나님이시다. 성부, 성자, 성령은 언제나 영원히 함께 계시고 동시에 결코 서로 혼합되거나 섞이지 않으신다. 이와 같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천사들이 성령이라는 이 씨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은 너무 간단하다.

이만희 교주의 보혜사 성령론과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의 보혜사 성령론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필자는 이만희에게 잡아 먹힌 20만이 넘는 국민들(신천지 사람들)을 양산한 사람들이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이라고 본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이만희 교주가 먹을 밥을 삶았고, 삶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목회자인 이찬수 목사(분당우리교회)의 보혜사 성령에 대한 가르침이 어떠한지 보았다. 이찬수 목사의 설교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만나셨습니까?”(2017년 2월)를 들었다. 이찬수 목사의 이 설교 영상을 지금까지 138,400명이 들은 것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우리 목회자들이 성령에 대하여 설교할 때,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되는 내용이 있다. 우리에게 오신 성령을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에 대한 반역죄를 자기의 피로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시키는 것이다. 아담의 반역죄가 있기 전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성전이었다. 하나님이 아담이 있는 에덴동산에 직접 납시어 아담을 만나셨다. 에덴동산이 성전이었던 것이다. 아담의 몸과 영혼도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었다. 루터는 아담에게 삼위일체의 내주가 있었다고 했고, 칼빈은 아담이 영으로 충만했다고 하였다. 서철원 박사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 언약 체결 후 인류가 하나님 백성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임재하시되 성령으로 임재하셨다(창 6:3). 칼빈은 같은 정신에서 창 1:27을 주석하여 아담은 영의 충만함을 소유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루터교회 신학은 첫 인류가 그들의 순정성 상태에서 삼위일체의 내주를 가졌다고 가르친다. 물론 루터교회 신학에는 언약 사상이 없으므로 언약 체결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되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삼위일체의 내주를 가쳤다고 가르쳤다.”(성령신학, 84)

아담이 범죄하고 하나님께 반역하자 아담과 에덴동산의 하나님이 임재는 철거되었다. 죄인이 되어 저주받은 아담에게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임재를 거두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창세기 6:3절,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라는 말씀이 그것을 말해준다.

신약의 신자에게 성령이 오셨다는 것은 아담의 범죄 이전의 상태가 회복되어진다는 의미이다. 죄가 있기 전에 아담과 하나님이 친밀하게 동거하였던 것처럼,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신약의 신자와 하나님의 동거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우리 목회자들은 성령에 대해 설교할 때, 반드시 이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이 사실을 빼고 성령을 이야기하면, 신자들에게 왜곡된 성령 이미지가 형성된다. 하나님과 동거 개념이 없이 성도들이 성령을 사모하고 좋아하게 만들면, 사람들은 성령을 어려운 일들을 만나서도 신앙을 이어가도록 돕는 신앙충전기, 고된 세상 살이하는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잡이 정도로 인식하게 된다.

때로는 신명나는 신앙 생활이 되게 거짓 방언이나 환상이나 음성을 주는 이상한 성령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이미 이찬수 목사는 그런 내용이 가득한 김요한의 나쁜 책 <지렁이의 기도>, 예장 합동 이대위가 다시는 김요한 대표가 그런 내용을 말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경고함으로 비교적 가벼이 마무리한 책을 다음과 같이 성도들에게 추천하였다.  
 

“기도는 실제이며 그 실제는 우리의 생생한 삶이다. 기도는 학문과 논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며 그 분과 대화하며 소통하는 시간이다. 저자는 이런 기도의 생생함을 강도하고 있다 ... 저자가 말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감격을 맛보고 기쁨의 기도를 드리기 원하는 모든 분들게 이 책을 추천한다.”(이찬수 목사의 <지렁이의 기도> 추천사)

이찬수 목사의 “주님이 약속의 성령을 만났셨습니까?”라는 제목의 설교를 들었을 때, 아쉬움이 느껴졌다. 이찬수 목사의 설교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보혜사(성령)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진리를 정확하게 집어서 가르치지 못하므로 이만희 교주의 입으로 들어간 20만이 넘는 불쌍한 사람들이 탄생되는 것과 아주 무관한 설교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이 약속의 성령을 만났습니까?”라는 설교 제목도 이상하다. 우리가 성령을 만나는 것인가? 지금 성령은 지으신 모든 피조물이 있는 곳 어디에나 계시면서 창조 세계를 다스리고 관리하신다. 불신자들의 모든 말과 행동도 언제나 성령의 눈과 귀 앞에 있다. 그래서 불신자들도 많이 악을 행하여 하나님의 저울을 채우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이다. 

불신자들은 성령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성령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그리스도의 구속(십자가)을 적용하시는 분으로, 또 다른 예수로 영구히 오셨다. 하나님이 은혜로 예수 믿는 순간 영구적으로 오셨다. 그러므로 “약속하신 성령을 만났습니까?”라고 제목을 뽑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우리에게 성령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시는 분으로서 영구히 오셨기 때문이다. 

성령의 오심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과 같아진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 때문이다. 성부, 성자, 성령은 영원 전부터 함께 계시고, 영원히 떨어지거나 분리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성령이 있는 곳에 언제나 성부와 성자가 하신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 속으로 임재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구약의 사람들은 ‘여호와의 사자’만 보아도 그날 죽을 것으로 알고 근심했다. 그런데 구약에서 여호와라고 자신을 소개하신 하나님이 영구히 우리와 함께하신다. 이것이 성령이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의 의미이다.

성령에 대한 설교에서 이런 중요한 진리가 선포되어야 한다. 왜 이런 은혜를 누리게 되었는지 설명해야 한다. 하나님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우리에게는 없었으므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친히 죄 없는 사람으로 오시었다. 그리고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하셨다. 우리의 반역죄가 사하여 졌으므로 성령이 오시어서 철거되었던 에덴동산의 성전이 다시 우리 속으로 회복되게 하셨다.

성령의 오심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근거한다. 그리스도가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지 않았으면, 우리가 성령을 받을 근거가 없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어 자기의 피로 우리의 반역죄를 사하셨고, 용서받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임하시어 다시 우리와 동거생활을 시작하신 것이다. 구약성경은 처음부터 이것을 예언하였고 목표하였다.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은 후 성령이 임하시는 모습을 구약의 선지자들은 수 없이 예언하였다.  그래서 신약은 성령을 '약속된 성령'이라고 한다. 구약이 약속한 성령에 대한 예언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11:19,20)

이찬수 목사가 성령에 대해 틀린 설교를 했다는 것이 아니다. 신약의 성령에 대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가르침을 신자들에게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신자들은 신약의 성령을 교회를 활성화시키는 분, 신자들에게 신앙의 힘을 공급하는 분 이상의 이해를 얻지 못한다. 그러면 신자들은 성령을 더 받기 위해 기도를 더 하고, 성령을 많이 소유한 자들에게 찾아가 안수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성령에 대해 설교를 하려면,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받은 우리와 하나님이 친히 동거생활 시작하시려고 오셨음을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이 신앙에 힘을 주는 하나님의 밧데리, 가정과 교회와 개인의 상처를 치유하는 치유의 영 정도로 이해된다. 성령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의 집'이 되었음을 알게 해야한다. 성령을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받고,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사람의 노력, 회개, 정성은 성령을 받는 것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음을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이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로 단 한번의 지상강림으로 완전하게 오셨고, 믿는 개인들이 성령을 받는 것도 처음 믿을 때의 한번으로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일임을 신자들이 알게 해야 한다. 이 중요한 내용이 빠지면, 우리의 성령에 대한 설교도 어쩌면 이만희 같은 자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밥을 삶는데 이용될 수 있다. 특히 성령에 대한 감정을 부추기고, 감성을 고조시키는 설교들은 특히 위험하다.

목회자들이 성령에 대해 바른 설교를 하면, 비록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신자들은 오늘 날의 방언, 환상, 예언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성령이 그리스도의 피를 적용하시려고 왔고, 그리스도가 이미 주신 완전한 성경의 말씀들을 깨닫고 적용시키려고 오셨음을 알기 때문이다. 방언, 예언, 환상 등은 성령이 직접 메시지를 주시는 수단들이었다. 그런 일들은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을 때 성령이 하신 일들이다. 성경이 완성된 후 성령은 더 이상 방언, 예언, 환상을 일으키시지 않으신다. 이후로 그런 일들 하는 자들은 모두 크고 작은 이단들이었다.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모든 교회에 너무 많아 말도 못하게 되었다.  

이찬수 목사의 성령에 대한 설교를 들어보니, 성령에 대해 부분적으로 옳은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내용이 없었다. 그러면 대표 이단 이만희의 보혜사 신학과 완전하게 다르다고 할 수 없다. 성령에 대해 가장 중요한 내용을 신자들에게 전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옳은 내용들을 말하면서 특별하게 성령에 대한 감성을 고조시키면 더 위험하다.

20만이 넘는 이만희의 밥을 삶은 사람들은 바로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이다. 우리 모두가 반성하자는 차원에서 지금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설교를 하는 이찬수 목사의 성령에 대한 설교 한 편을 듣고 이 말을 한다. 이찬수 목사가 평소 다른 설교에서 성령에 대한 핵심을 잘 가르쳤다면, 용서를 바란다. 누구라도 그 내용을 알려주면, 이 글을 내리거나 수정하겠다. 또한 누구나 이 글에 대한 이견이 있다면, 이찬수 목사의 위의 설교를 다 듣고 난후 의견을 남겨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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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