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혁 교수의 '언약신학' 2장 : 윌리엄 퍼킨스 부분에 대한 다섯 번째 소감

안상혁 교수(합신, 교회사)의 저서 <언약신학>을 독서하는 이유는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들의 신앙이 기독교에 해를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의 청교도 개혁운동의 신학적 동력원 행위계약 사상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현저하게 훼손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글은 안 교수의 책 2장의 윌리엄 퍼킨스에 관한 부분에 대한 다섯 번째 소감이다.

“구원의 확신 교리는 퍼킨스의 언약 신학과 선택 교리의 심장부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황금사슬>(A Golden Chain)에서 퍼킨스는 (멀러가 옳게 관찰한 대로) 개혁파의 기본 교리들을 결국 구원의 확신 문제와 연관시킨다.”(안 교수의 말/ 114 페이지)

회중파 청교도 개혁운동의 조상 퍼킨스도 구원의 확신을 중시했다고 안 교수는 소개했다. 구원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문제이므로 청교도 신학의 아버지 퍼킨스도 구원의 확신에 대해 다루었던 것이다. 성경은 믿는 자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도록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9)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택하셨고, 은혜로 구원의 기초이신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셨고, 은혜로 의로우신 분으로서 죄를 짋어지고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어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구원을 주셨다고 가르친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한 일이 없다. 그래서 사람의 자격이 전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므로, 여전히 자격이 없을지라도 구원이 다시는 흔들리지 않음을 확신할 수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선택으로 말임암아 구원 받았으므로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게 된다.

그렇다면 회중파 청교도의 조상 퍼킨스는 구원의 확신에 관해 어떻게 접근했을까?

“하나님은 어떤 자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고 따라서 이들은 언약 안으로 들어오도록 허락되었다. 한편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을 거절하기로 작정하셨다. 이들은 언약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으며 따라서 영생으로부터 단절되었다.”(안 교수가 인용한 퍼킨스의 말/ 113 페이지)

퍼킨스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사람을 언약으로 초대하신다고 했다. 언약으로 초대된다는 것은 구원을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퍼킨스와 회중파 청교도의 언약 신학의 특징은 하나님과 사람의 쌍방성이다. 청교도 언약 신학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사람의 쌍방성이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선택과 불가항력적 은혜로 구원이 완성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개념이다. 사람이 자기의 몫을 수행하여 하나님과의 구원 언약을 완성한다는 주장이다.

비록 청교도들이 하나님의 선행된 은혜 때문에 사람이 자기의 몫(믿음과 회개)을 감당하게 된다고 말하므로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에 방점을 두는 것 같으나, 그런 신학적 주장은 이미 천주교의 ‘초기 도움의 은총’ 개념과 같은 것이고 더 나중에 등장한 웨슬리의 ‘선행은혜’ 개념과 다르지도 않다. 신인협력 구원을 가르치는 그런 류의 신학들은 의례히 하나님이 먼저 은혜를 주셨다고 가르치기는 해도, 사람이 믿음과 회개를 보이는 것을 더 중시하고 그것이 구원을 위한 사람의 공로라고 가르친다. 사람이 자기 몫(믿음과 회개)을 수행함으로 언약이 완성된다고 주장하는 퍼킨스와 회중파 청교도들의 신학도 그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청교도들은 이런 비성경적인 주장을 ‘언약의 쌍방성’이라고 멋있게 표현한다. 그러므로 퍼킨스가 구원의 확신을 중시했다고 해도 결코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의 확신을 가르칠 수가 없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성경은 택하심, 믿음과 중생, 성화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진행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퍼킨스의 언약 신학과 성경 이해에 의하면, 사람의 반응과 역할이 양념처럼 첨부되어야 위 로마서 8장 30절이 이루어진다. 계속해서 사람이 할 일을 해야 구원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것이다.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퍼킨스의 언약 신학과 죄와 무관한 출생으로 오신 의로우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값으로 피 흘리심으로 믿는 자에게 '죄용서'와 '칭의'를 단번에 주시어 영원한 구원을 보장하였다는 성경의 가르침으뉴가리가 매우 멀다.  퍼킨스의 가르침을 따르면 사람이 구원의 확신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린햄과 퍼킨스, 그리고 많은 회중파 청교도 목사들의 신자들은 이런 질문과 상담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린햄 목사님! 퍼킨스 목사님, 에임스 목사님! ... 나는 구원 받도록 예정되었을까?”

성경이 가르치는 단번에 영원한 구원을 주는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은혜 안에서 창세전에 택하심을 받은 자를, 은혜로 예수 믿게 하시고, 예수 믿는 은혜 안에서 칭의가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가 일평생 진행된다고 가르친다.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는 정확한 증거는 나의 예수 믿음이다. 얼마나 단순하고 명료한 진술인가! 성경적 예정 교리는 너무나 쉽고 단순하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택한 사람에게, 은혜를 따라 반드시 복음이 전해지고, 그 사람이 반드시 복음을 믿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가르침이 예정교리이다. 하나님은 택하신 사람이 예수 믿어 의를 얻도록 불가항력적 은혜를 베푸신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그린햄이나 퍼킨스의 설교를 들었던 그런 사람들처럼 목사에게 찾아가서 “내가 구원 받도록 예정된 사람일까요?”라는 한심한 말을 할 수가 없다. 예수 믿는 사람이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고, 복음을 듣고 믿는 자가 구원받도록 예정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칼빈도 이와 동일하게 가르쳤다.
 

“선택받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선택의 증거라고 인정한다. 그리고 선택받은 자들이 선택의 완성인 영광으로 들어갈 때까지, 칭의도 선택을 나타내는 한 표징이라고 생각한다.”(기독교강요, 3.22.7)

“부르심은 선택의 ‘증거’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롬 8:29).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롬 8:30). 이것은 그들을 후에 영화롭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주께서는 그들을 선택하실 때에 이미 자녀로 정하셨으나, 그들이 부르심을 받지 않으면, 그 위대한 복을 소유하지 못한다.”(기독교강요, 3.24.1)

안 교수가 소개하는 퍼킨스의 구원의 확신에 대한 애매한 가르침들을 보자. 성경의 가르침 안에서 그렇게 단순하고 쉬운 예정 교리가 퍼킨스에게는 복잡한 사변의 도가니로 변하여 버렸다.

“퍼킨스는 예정 교리의 바른 사용법을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즉 누구라도 예정 교리를 이용하여 결국 자신이 유기되었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못 박는다. ‘그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 혹은 다른 사람이 유기된 자라고 함부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안 교수의 말/ 115,116 페이지)

무엇을 어찌하면 성경의 예정 교리 때문에 자신이 영원히 유기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 또 무엇을 어찌해야 성경의 예정 교리 때문에 다른 사람이 유기되었다고 속단할 수도 있는 것일까? 성경은 예정된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와 믿고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친다.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 6:45)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구원을 얻기로 작정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반드시 믿어 구원을 얻는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왜 퍼킨스는 이처럼 쉽고 명료한 구원의 진리를 바르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인가? ‘예정교리의 바른 사용법’ ... 대체 이런 도가니에서 소 뼈를 삶는 듯한 이상한 소리를 왜 하는 것인가? 이런 사변적인 말들을 늘어놓은 이유는 그가 정녕 마귀의 영감을 받았기 때문일까?

퍼킨스는 구원에 관한 성경의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하였다. 성경적 구원론을 바로 배우지 못했으므로 구원 받도록 택하여진 사람이 구원의 쌍방적 언약으로 초대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쌍방적 언약으로 초대되어 구원을 위해 사람이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으니, 하나님의 초대에 사람이 반응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행위구원론 언약신학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천주교의 신입협력 구원론, 알미니안 신학의 복음적 협력구원론과 같은 구원론이 되고 말았다. 퍼킨스와 안 교수를 비롯한 청교도주의자들의 사상은 웨슬리안들과 천주교인들의 사상과 동일하다. 다음의 안 교수의 말을 보라. 

"회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퍼킨스에 따르면 (믿음과 마찬가지로) 회개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이러한 회개에 앞서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가 선행한다. ‘그 어느 누구도 회개를 자신의 힘에 의지하거나 자기의 힘으로 이행할 수 없다.’"(안 교수가 인용한 퍼킨스의 말/ 122 페이지)

청교도 운동 신학 속에 무서운 마귀의 모략이 있음을 우리들은 몰랐다.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은 인간의 공로가 중시되는 천주교의 신인협동구원론을 격파하고 성경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회복하였다. 칼빈은 오직 믿음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성경적 구원을 설명하는 예정 교리를 완성했다. 그런데 100년도 지나기 전에 퍼킨스와 청교도들에 의해 기독교가 다시 인간의 역할이 중시되는 구원론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그것을 청교도 히로뽕 맞은 사람들이 이렇게 자랑하고 있다.

‘청교도, 종교개혁을 개혁하는 이들’


종교개혁의 핵심이 무엇이기에 청교도들이 종교개혁을 다시 또 개혁했다는 것인가? 종교개혁의 핵심은 이신칭의이다. 오직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고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구원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의 공로가 1도 없다는 것이 종교개혁의 핵심이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용서의 또 다른 얼굴인 완전한 칭의를 얻는다는 것이 종교개혁의 이신칭의이다. 그런데 청교도 신학의 아버지 퍼킨스는 성경의 가르침과 종교개혁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교묘하게 비틀었다.

1)은혜로 구원 얻은 하나님 백성들에게 언약이 주어졌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언약을 통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영원히 보존하시고 영원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스스로 맹세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 언약을 통해 드러내셨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그러나 퍼킨스와 청교도들은 하나님께서 구원 얻을 사람들을 언약으로 초대하셨고, 언약 안에서 자기 몫을 감당하여 구원을 성취해야만 헀다면서 성경적 구원의 진리를 비틀었다. 이렇게 성경을 비틀어 대는 주장을 청교도 신학자들은 '언약의 쌍방성'이라고 미화하였다. 

2)하나님이 구원을 주시려고 택하신 사람에게 은혜을 따라 복음이 전해지고 은혜가 역사하여 택자에게 믿음이 일어남으로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종교개혁자 칼빈도 은혜 안에서 예정된 사람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그 사람이 은혜를 따라 믿어 구원에 이르고, 사람의 자격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이므로 신자는 구원의 확신과 담대함을 가질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퍼킨스와 청교도들은 목회는 구원에 대한 확신을 신자들에게 심어주지 못했다. 그들의 신자들은 “퍼킨스 목사님, 저는 구원 받도록 예정된 사람일까요?”라며 상담을 요청하기 일쑤였다. 그 이유는 칼빈의 개혁신학의 예정론, 즉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을 파괴하였기 때문이다. 그 대신 하나님의 선행된 은혜를 따라 사람이 자기의 몫(믿음, 회개)을 감당하여 구원 언약을 완성해야 한다는 천주교와 알미니안 신학의 구원론에 신자들의 영혼을 묶어 버렸다.

퍼킨스가 그런 신학을 도입한 이유는 엘리자베스 여왕-국교회 주교들의 권력에 대항하여 싸울 힘이 없었던 1580년대의 상황 때문이었다. 부득이 제도를 개혁하려는 시도에서 잉글랜드 국민들 각 자가 자기의 구원을 위해 분발하며 경건하게 살게 만드는 신학적 개혁운동으로 노선 변경이 일어나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칼빈의 개혁신학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그 대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반응(역할, 몫)이 협력하여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청교도 신학의 쌍방적 언약 개념을 도입했다.

 

맺는 말

누구든지 성경의 핵심을 비틀면 비성경적(이단적)이다. 특히 구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비틀면 백발백중 이단이다. 구원은 오직 죄와 무관한 출생으로 오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는 죄용서와 칭의를 통해 얻어진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9)

잉글랜드 회중파 청교도의 조상 퍼킨스는 구원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비틀었다. 성경대로 구원을 가르첬던 칼빈의 예정교리도 비틀었다. 그랬음에도 온 세상의 존경과 칭송을 넘치도록 받고 있으니, 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비성경적(이단, 이단적)이라고 비판을 받지는 않고 오히려 다음과 같은 멋있는 말로 존경과 칭송을 받고 있다.

‘청교도, 종교개혁을 개혁하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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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