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는 사사기 6장을 통해 기드온이 역사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의 수탈과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하여 낸 영웅입니다. 특히 기드온은 불과 300명으로 셀 수 없이 많고 강대한 미디안의 군대를 궤멸시킨 것으로 유명한 영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이전에 메소보다미아로부터 압제를 당하였을 때 갈렙의 아우 웃니엘을 통해 구원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 모압으로부터 또 압제 당할 때에는 에훗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그 후 가나안으로부터 또 다시 압제를 받을 때에는 여선지자 드보라와 바락을 통해 구원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후에 미디안으로부터 이스라엘이 압제 당할 때 하나님이 크게 쓰신 사람이 기드온입니다.

웃니엘이 등장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3:7)라고 하였습니다. 에훗이 등장하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3:12)라고 했습니다. 여선지자가 드보라가 등장하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매”(4:1)라고 하였습니다. 기드온이 등장하기 전에 또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으므로”(6:1)

타락과 범죄가 없었다면 하나님의 특별한 구원도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경배하는 백성을 가지고 싶으시어, 처음의 사람 아담을 이미 구원 받고 믿음 안에서 영구히 사는 사람으로 지으셨습니다.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의 용도는 아담이 그 열매나 가지 또는 뿌리를 캐내어 남비에 넣어 삶거나 고아서 국물을 매일 마심으로 생명이 연장되게 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아담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으셨고, 아담이 하나님 백성으로서 믿음 안에서 살면 영원히 살고 죽지 않을 것이라는 언약의 상징이었습니다.

아담이 타락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아담이 생명나무를 범하지 못하게 막으신 것은 생명나무 그 자체에 영생의 힘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날의 성찬식은 성당이 가르치는 것처럼 영생을 주는 수단이 아니고, 믿는 자에게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 영생이 주어졌음을 확인하여 믿음을 강화시키는 은혜의 방편입니다. 그런데 영생을 탐내는 어떤 악한 자들이 교회에 난입하여 떡과 포도주를 강탈하여 먹고 마시는 무지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자기의 범죄를 더하여 장래의 심판이 더 가중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그런 죄를 더 범하지 못하게 막으신 것입니다.

만일 아담이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저주 받을 일이 없었고, 그리스도가 오시어 대신 피 흘리시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은혜와 감격만 말할 것이 아니라, 범죄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까지 함께 받았던 아담이 하나님을 계속 섬겼다면 창조의 자연적 상태에서 지금까지 죽지 않고 생육하고 번성하면서 살았을 놀라운 은혜에 대해서도 생각해고 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내기시기 위해 대신 피 흘리셔야만 하신 이유도 분명해지지 않습니다.

웃니엘, 에훗, 드보라와 바락, 기드온을 통해 놀라운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대해서만 말하지만 말고, 그 이전에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먼저 짚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3:7)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3:12)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매”(4:1)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으므로”(6:1)

범죄와 다른 신을 섬기는 배교가 먼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우리 나라로 말하자면) 북한, 중공, 일본, 러시아로부터 침략과 압제를 받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범죄하지 않는 자기 백성에게 그런 고통스러운 일을 베푸시지 않습니다. 욥과 같은 경우는 지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순수히 마귀가 참소하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의로움과 신실하심을 온 천하에 드러내시기 위해 욥처럼 100% 억울한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 일은 우리들에게 거의 없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우리가 뿌린 죄의 씨가 자라서 고난을 당합니다.

이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우리처럼 죄를 이기는 풍성한 능력을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신의 힘과 의지로 죄와 싸우고 믿음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권세에 복종하여 율법을 따라 살면서 범죄하지 않도록 자기를 지켜야 했던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그들의 마음이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죄에 물들었고, 단 하루도 죄를 씻고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해가 뜨면 죄의 유혹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였고, 해가 지면 죄의 달콤함을 먹고 마셔야만 했습니다.

타락한 죄인으로 태어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가 그처럼 암울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이해하고 다 아셨습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들의 마음에서 죄의 물을 빼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겔 11:19)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사람의 마음에서 죄의 물이 빠지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렇게 심각한 죄인으로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바로 이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자기의 흠 없으신 피를 하나님께 죄의 배상으로 드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흠 없으신 그리스도의 피를 받으시고 만족하시었고, 우리의 죄가 없어졌다고 선언하심으로 죽으신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죄 용서 받은 자기의 백성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기를 요청하셨습니다. 성령을 자기의 이름으로, 자기를 대신하여 우리에게 보내주시기를 요청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약의 성령은 구약의 성령과 달리 십자가에 달리시어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성령은 또 십자가에서 죄로 인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의 또 다른 얼굴로 오셨습니다.

성령이 오심은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권세가 오심입니다. 십자가의 피의 능력과 함께 우리에게 오신 성령은 구약 시대와 달리 죄용서 받은 우리 속에 영구히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백성들이 반복했던 다음과 같은 일들을 하지 반복하지 않고, 얼마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영원히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3:7)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3:12)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매”(4:1)

그냥 성령이 우리 속에 거하심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이 우리를 지배하시게 만들어야 합니다. 구약의 방식으로 죄와 싸우려 말고, 신약의 방식으로 죄와 싸워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의 지배하심으로 죄를 이기는 것입니다. 성령은 오직 복음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돕기 위해 오신 하나님입니다.

그 동안 마귀의 속임수에 빠져 방언기도를 하느니, 기름부음을 받느니 ... 하면서 성령을 거역하고 모욕하는 일을 우리는 많이 했습니다. 거짓된 영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성령의 역사라고 얼마나 많이 주장하고 전도했었는지 생각하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우리를 그냥 두신 것이 너무도 큰 은혜입니다. 성령은 택하신 자에게 이미 내주하시면서(기름부음), 복음을 전파되게 하고, 택하신 자가 복음을 믿게 하고, 구원 받은 성도가 복음대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권세로 우리에게 오셨으므로 성령이 역사하시면 죄의 욕망이 죽습니다. 율법으로 죄를 대하면 죄의 기운이 전혀 감소되지 않고 잠시 수면 아래로 억눌려질 뿐이나, 성령의 지배하심으로 죄를 대하면 죄의 힘이 무너집니다. 성령이 십자가의 권세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입으로 찾는다고 성령의 지배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은 예수와 복음(말씀)의 영으로 오셨습니다. 말씀을 배울 때, 말씀을 사랑할 때, 말씀을 실천할 때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여 우리의 심령을 지배하십니다. 성령이 우리를 지배하면 우리가 죄의 욕망을 떨치고 거룩하고 성화되는 삶으로 갈 수 있습니다. 항우장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율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됩니다. 말씀대로 살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로 됩니다.

죄를 이기기를 원하면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거짓 말씀이 아닌 진정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성공을 위해 자기도 모르게 성경을 이용하지 않고 참으로 성경의 지배를 받는 설교자가 우리에게 복을 가져다 주는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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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