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철원 박사
서철원 박사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verbun Dei)이므로 그 전하고자 하는 뜻을 분명히 (listincte) 한다. 따라서 성경은 자명성 (perspicuitas)을 가져 모든 독자들에게 그 전하고자 하는 뜻을 명료하고 (clare) 확실하게 (ceric) 드러낸다. 그러므로 성경은 문맥 가운데서 해석되어야 한다. 즉 성경은 성경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 성경은 자기 해석자이프로 (Scripture interpres sui ipsius est), 성경이 성경 해석의 최종 권위 (auctoritas finalis)이다

성경의 중심과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부분은 이 중심에 의해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예수그리스도가 신약의 중심일 뿐 아니라 구약의 목표 (scopus)이고 생명이며 성취이다. 그러므로 신구약 전체가 그리스도에 의해 해석되고 조명된다. 그리스도와 무관하게 해석되면 해석자의 주관에 의해 채색되고, 성경이 말하려는 본래의 뜻을 벗어나서 성경에 생소한 의미를 본문 (textus)에 주입하게 된다.

성경 해석은 성경 본문이 명백하게 주장하는 뜻에 순종해야 한다. 단어와 문장과 문맥이 말하는 뜻을 그대로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글자적 의미를 벗어나거나 새로운 의미를 문맥에 부가하면, 성경 본래의 뜻을 벗어나 새 해석이 되어 변용된 종교가 된다. 그러므로 성경 해석은 본문이 말하려고 하는 근본 뜻을 존중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성경 본문이 전하는 뜻을 변형시키지는 않는다. 문화적 배경은 성경본문이 발생된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 배경은 본문 해석의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현재 우리의 문화배경과 다르다고 해서 본문이 말하는 뜻을 우리의 상황에 맞추어 해석하면 안된다.

성경은 발생된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 배경은 성경 본문이 전하는 뜻을 변형시키지 않는다. 문화적 배경이 본문 해석의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현재 우리 문화와 다르다고 해서 본문이 말하는 뜻을 우리 상황에 맞추어 해석하면 안 된다. 성경은 인생의 근본문제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문화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의미를 전한다. 따라서 성경은 본문의 문맥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면 문화적 배경을 넘어서서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한다.

성경이 이성의 영원한 진리 (veritas aeterma rationis)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에서 계시된 구체적인 진리를 전한다. 그러나 성경은 일상 언어로 기록되었으므로 만민에게 동일한 말씀을 하고 있다. 시대 제약적인 부분은 시대 제약성 때문에 역사적 제한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본문들은 처음 청취자들과 독자들에게 국한한다. 그러므로 역사적 권위를 갖는다. 구약의 많은 본문은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으므로 지금의 성경 독자들에게 구속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곧 규범적 권위 lauctoritas normativa)를 행사하지 않는다.

성경은 일상적 언어로 명백하게 자기의 뜻을 전한다. 성경이 말하는 명백한 뜻을 현대의 문화적 상황에 맞추면 안 된다. 그것은 성경 본문의 자기 증거와는 다른 새로운 해석이고 문화의 주입이다. 고대교회와 중세교회는 당대의 문화에 의해 성경을 해석하므로 우화적 해석을 산출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필로 (Philo)의 성경 해석을 바른 해석의 전거 (典)로 받아들기도 하였다. 필로는 구약 오경을 플라톤 (Platon)의 철학과 합치하도록 하기 위해 우화적 해석을 도입하였다. 이 성경 해석법이 오리게네스 (Origenes)에 의해 교회의 성경 해석의 법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우화적 해석은 성경본문이 말하는 분명한 뜻을 감각적 뜻이라고 무시하고 심오한 뜻을 추구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의 뜻을 이탈하여 신령한 뜻 (sensus spiritualis)이라는 희랍철학적 의미만을 구하게 되었다. 루터의 말대로 하나님이 역사 안에서 구체적으로 일하시고 구체적 일상 언어로 지기 구원사역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문자적 의미와 보도를 떠나 허공 곧 이데아의 세계로 올라가므로 성경의 근본 뜻을 넘어가 버리게 되었다.

이 우화적 성경 해석은 종교개혁에 의해 배척되었다. 루터와 칼빈은 성경본문이 보도하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글자대로 받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간섭과 구원사역은 구체적인 역사 내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의미는 글자적인 의미를 바른 의미로 받고 역사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성경의 바른 의미는 글자가 문맥에서 뜻하는 대로 받아야 한다. 즉 문자적, 문법적 의미가 성경의 바른 뜻이고 바른 해석이다.

문자적 문법적 해석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해석에 도달하였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로 하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성취되어 인류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성경계시의 목표였다. 그리스도 이전의 성경계시는 다 그리스도를 목표하였다. 그리고 모든 계시가 그리스도에게 집중하여 그에게서 성취되고 구원의 완성으로 나가게 되었다. 따라서 신구약 성경의 중심과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종교개혁자들의 성경 해석은 그리스도 중심적이었다. 특히 칼빈에게 있어서 더욱 그러하였다. 죽게 하는 율법도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또 그에 의해 생명을 얻고 살려주는 역사를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성경의 중심이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가 구약의 목표이므로, 구약을 그리스도론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예표론을 발전시켰다. 이것은 종교개혁으로 시작된 구약 해석의 법이 아니라 바울이 처음 시작하였다. 그리스도가 반석으로서 이스라엘과 동행하였고,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생수를 마셨다(고전 10:4).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는 것을 그리스도에게로 세례 받음을 예표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고전 10:1-2). 아담이 그리스도의 표상으로 제시되었다(롬 5:14). 또 복음서 기자들은 그리스도를 제 2 아담으로 제시하고 아담과 대비시켰다(마 4:1-4; 막 1:12-13; 눅 4:1-3).

하나님이 모든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므로 성경이 전체적으로 그리스도론적으로 이해되고, 구약은 예표론적으로 이해되었다. 구약은 전체로 그리스도를 사전 표상하였다.
 

 

근세 성경 해석은 해석의 문맥을 성경 밖 곧 철학에 두었다. 근세철학이 바른 성경 해석의 문맥으로 제시되고 이해되었다. 그러므로 당대 사고방식에 성경을 맞추어 해석함으로 신학이 그 소임을 다하고 또 동시대인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산출하는 것으로 여겼다. 동시대의 사상에다 성경을 해석해 넣는 것은 성경의 명백한 증거들을 그 근본 뜻을 벗어나 전혀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당대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복음이 당대의 사상과 상황을 해석하고 변개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메시지를 받아야 할 당대인들의 상황을 표준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성경적 그리스도교는 변조되어 신개신교주의 곧 성경을 떠나 근세인의 의식으로 돌아간 자유주의가 되었다.

18세기부터 시작된 성경의 번역은 20세기에 이르러서도 계속되었다. 성경이 말하는 명백한 뜻이 그 문장이 말하는 언어사건으로 바뀌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제 언어사건이 일으킨 것이 되었다. 예수의 부활은 신약의 보도대로 실제 발생한 것이 아니지만 부활했다고 선포할 때, 그 선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부활이 그 마음에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활 선포가 부활을 사건으로 만든다. 따라서 예수는 믿음 안으로 부활하였다. 내가 한 사람을 지목해서 그를 형제라고 부르면 혈육 관계를 넘어서서 형제가 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존재도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선언하므로 사건으로 발생한다.

시대상황으로 성경을 번역하기 위해서 성경 해석이 두 지평의 융합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는 새로운 해석법을 도입하였다. 성경이라는 고대문서가 갖는 문화적 지평과 성경 해석자가 서 있는 문화적 지평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성경 해석은 현대 문화적 지평이 성경의 해석을 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 본문이 현재 상황을 해석하고 결성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해석법은 하이데거의 실존적 해석과 철학자 가다머 (Hans Ceorg Gadamer)의 해석학의 도입이다.

철학에 의한 성경 해석은 성경의 본래적인 주장을 과도하게 변형시킨다. 그러므로 철학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해석법을 고수해야 한다. 성경 해석은 성경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종교개혁의 해석 원리이다. 성경은 성경에 의해서 해석되고, 그리스도에 의해서 해석되어야 함을 말한다. 성경 해석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그리스도가 말하도록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 새로운 철학체계가 성경과 합치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성경의 내용을 변형하면 안 된다.

또 현대인의 세계관과 성경이 합치한다는 것을 밝혀 신학이 현대 문화체계에 자리를 갖기 위해 성경을 변형하면 안 된다. 현대의 사고방식과 맞아야 그리스도교 신앙이 선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그리스도는 성경의 제시대로만 선포되면 수납된다. 지연인들이 그리스도 선포를 받아들이느냐, 아들이지 않느냐는 성령이 결정한다.(신학서론, 25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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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 박사는 서울대학,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원(Th.M), 화란의 자유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다. 화란의 자유대학에서 칼 발트의 신학을 지지하는 지도교수 베인호프와 다른 발트의 제자 신학자들과의 토론에서 칼 발트의 신학의 부당성을 증명하였다. 발트의 사상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논문 '그리스도 창조-중보자직'을 관철하여 박사학위를 얻었고, 이 논문이 독일 튀빙겐대학이 선정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 논문 100편에 수록되어 한국 교회의 위상을 드높였다. 총신대 신대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 십년 동안 목회자들을 길러내는 교수사역에 헌신하다 영예롭게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연구하시며 <바른믿음>의 신학자문 역을 맡아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