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노우호 목사님의 율법 이해는 어떻습니까? 정 목사님께서 다음의 영상을 들어보시고 말해 주십시오.


답변>
운전하면서 대략 들어보았습니다. 일일이 녹취할 시간과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참 이 상황이 애매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전에 노우호 목사님의 교회에 가서 설교도 하고 강의도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으면서 비판한다는 것은 사람이 하기 쉬운 일이 아니고, 너무 쉽게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중요하지만, 인간미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미가 너무 없으면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마음에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운전하면서 노우호 목사님의 강의를 들은 기억을 더듬어서 써 보겠습니다.

노 목사님의 요지는 율법은 처음부터 칭의를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 백성이 복을 받게 하려고 주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백성들에게 구원(칭의)를 주시려고 율법이 오지 않았고 이미 은혜로 구원을 얻은 백성들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려고 율법이 왔다는 노 목사님의 설명은 지극히 맞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구원을 얻게 하려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믿어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섬겨서 복과 은혜를 더 누리게 하시려고 주신 것이 구약의 율법입니다. 동시에 완전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필요성을 계시하는 것이 율법이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노 목사님의 이해와 가르침은 아주 탁월하다고 생각됩니다. 구약의 하나님 백성들은 율법을 잘 지킴으로 하나님의 복을 더 누렸고, 율법을 잘 지키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노우호 목사님은 율법의 다른 부분들이 폐기된 것은 확실하나 1)도덕과 윤리에 관한 내용들, 2)음식과 위생에 대한 내용들은 폐지되지 않고 지금도 유효하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율법의 도덕과 윤리에 대한 내용들에 대해 제 견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직접 노 목사님의 어느 부분이 틀렸다! 비성경적이다!라고 지적하거나 찾아서 녹취하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성경의 일반적인 가르침을 설명하겠으니, 노 목사님이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고 가르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도덕과 윤리에 관한 부분

구약의 율법의 도덕과 윤리에 관한 내용은 지금도 유효하고 우리의 신앙에 대해 살아있는 부분입니다. 율법이 가르치고 지적하는 도덕, 윤리에 대한 내용이 우리의 삶에서 실현되지 않고 있으면, 우리는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런데 구약의 율법의 도덕, 윤리에 대한 내용이 우리에게서 실현되게 하는 방법에 대해 잘못 가르치면 율법주의 이단으로 빠지게 됩니다. 구원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 백성에게 요구되는 삶이 따라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아무 자격 없이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완전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구원 받은 사람답게 거룩해지고 의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어 지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성화가 반드시 일어나야 하고,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없으면 구원파 이단과 같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떻게 거룩해지고 의로워지는가? 에 대한 정확하고 성경적인 제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은 하나님이 선물하시는 믿음과 은혜로 얻는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후 거룩해지고 의로워지는 성화는 자기의 노력과 결심으로 되어진다고 합니다. 이것은 틀렸습니다.

구약의 율법들 가운데 도덕과 윤리에 관한 내용을 지금 우리가 구약의 방식으로 노력하여 힘써 지켜야 된다고 강조하면, 그것이 바로 이단사상이고 율법주의입니다. 만일 노 목사님이 그것을 가르치고 있으면 돌이키셔야 합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도 율법의 도덕과 윤리 조항들을 바르게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점은 신약 시대의 성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에 절절히 물들었으므로 도저히 그리 못합니다. 혹시 할지라도 수박을 겉으로 핥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구원 받은 자기 백성을 거룩하고 의롭게 만드는 실질적이고 위대한 방법을 따로 고안하셨습니다. 그것을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이렇게 예고하셨습니다.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3)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렘 32:40)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11:19,20)

은혜로 구원 받은 구약의 하나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다운 도덕과 윤리, 즉 거룩하고 의로워진 삶이 전혀 나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의 도덕과 윤리에 대한 내용을 아무리 강조하고 윽박질하였어도 하나님 백성들은 그리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율법의 도덕과 윤리 조항들을 잘 지킬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고안하셨는데, 바로 율법의 도덕과 윤리 조항들에 합당한 새로운 마음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미치면 행동이 미치고, 마음이 온전하면 행동이 온전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신약의 사람에게 율법의 도덕, 윤리 조항을 잘 지키게 하는 새로운 마음을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 조항들이 다 이루어진 완전한 신앙 인격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을 일으키시는 성령을 부으셨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가 없는 것처럼 만드시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구속을 적용하는 성령을 부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성도는 성령을 받음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완전하게 그렇게 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구원 받는 순간부터 그 길로 나아갑니다. 지금도 유효한 구약의 율법의 도덕과 윤리 조항들을 지키는 길은 육신의 노력과 각오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곧 성령의 인도를 따라 신구약 66권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말씀으로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이미 구약의 율법의 윤리, 도덕 조항들이 이루어지는 인격과 삶이 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같은 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사도행전의 신자들의 이 모습은 구약의 율법의 윤리, 도덕 조항들에게 지극히 합당하고, 어떤 면에서 그 이상을 넘어선 거룩하고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무슨 방법으로 이렇게 되었습니까? 예수 믿고 구약의 율법의 도덕과 윤리 조항들을 힘써 지켰습니까? 혹시 청교도들처럼 먼저 율법을 지키는데 힘쓰면서 예수 믿기를 준비했습니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초대교회 신자들과 사도들이 예수 믿음과 율법을 동시에 강조하였다는 내용은 한줄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로 충만, 즉 말씀으로 충만하였고 성령으로 충만하였으며 기도하기를 힘썼을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적용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을 뿐입니다. 율법 조항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나 선포는 1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신자들은 저절로 율법의 정신이 그대로 실현되는 삶, 즉 하나님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말씀으로 충만했고 성령으로 충만하였으며 기도하기를 힘썼다는 것이 정답입니다. 모든 구약의 율법 조항들이 전부 이루어진 (율법의 실체) 인격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율법 아래 죄로 신음하는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법적으로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가 구약의 모든 율법을 다 지킨 것으로 간주되고 율법 준수의 요구에서 해방됩니다. 믿은 자에게는 더 이상 율법 준수가 요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율법이 이루어진 거룩하고 의로운 삶, 즉 하나님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삶은 여전히 요구됩니다. 그것을 이루는 방법은 율법이 다 이루어진 상태로 성육신하시어 율법의 기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시고, 죄인들에게 자신을 대신하는 성령을 보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 잘 믿으면 특별하게 율법을 강조하지 않아도 율법의 정신과 조항들 하나하나가 다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믿고 별도로 율법을 지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하고 정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원 이후 별도의 율법 준수 주장은 성경을 허무는 이단사상입니다. 율법의 완성 상태로 오신 하나님의 성육신자가 율법의 정죄 하에 있는 죄인들을 대신하여 속죄의 죽음을 당하셨고, 자기처럼 율법의 정신과 목적이 다 이루어진 인격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자기를 닮아가도록 성령을 부으셨습니다. 성령충만하면 예수를 닮아가고 죄를 이깁니다. 그런 방식으로 율법의 도덕, 윤리 조항들이 성취되는 것이지 별도로 율법의 도덕과 윤리 조항들을 지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죄를 죄로 알게 하는 율법의 기능은 살아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 대로 살지 못하고 말씀 충만하지 못하면, 율법 조항들의 도덕, 윤리 부분에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칼빈과 개혁주의자들이 말하는 율법의 제3용법입니다. 만일 우리가 율법의 도덕, 윤리 조항에 걸리고 있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거나 그리스도인 답게 성령과 말씀 중심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회개하고 말씀따라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결코 예수 믿고 동시에 구약의 율법의 도덕, 윤리 조항들을 별도로 지키기를 힘쓰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도덕과 윤리 조항들의 성취가 성령의 법으로 되지 않고 사람이 애써서 되게 한다는 것은 율법주의 이단의 가르침입니다. 

신약의 역사에서 아무도 구약의 율법의 도덕, 윤리 조항들을 구약 사람들의 방식으로 지키는 노력으로 거룩해지고 의로워져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가르치면 이단이 됩니다.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로 옷 입으면 절로 율법의 도덕과 윤리 조항들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여 진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롬 13:14)

신약은 구약의 율법의 윤리, 도덕 조항들을 별도로 지키라고 하지 않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L22,23)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구약의 율법의 도덕, 윤리 조항에 미치지 못할까요? 노우호 목사님은 지난 500년 동안 세계 교회가 율법에 대해 잘 못 가르쳤다고 하고, 율법이 폐기되었다는 그릇된 사상에 사로잡혀 있는 교회를 구출해야 한다고 한다지요? 한국 교회가 성경적 근거없는 ‘오직 믿음’에 사로 잡혀있다고 한다고 한다지요? 그러면 결국 이단 됩니다. 이신칭의를 허물면 이단 됩니다.

이신칭의는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으로 완전한 구원을 받고, 그 순간부터 성령의 법으로 거룩해지고 의로워지는 삶으로 변화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서 조금이라도 율법의 어떤 부분을 지켜서 거룩해지고 의로워지라고 하면 이단입니다. 구원파는 하나님이 주신적도 없는 거짓 믿음을 가지고 장난하는 집단인데, 정당한 이신칭의 믿음을 가진 사람을 구원파적인 믿음을 가졌다고 하면 안 됩니다. 한국 교회에 거룩이 없는 이유는 처음부터 거짓 믿음의 씨가 많이 뿌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율법의 어떤 부분을 지키라는 주장이 실종되어 이리 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노우호 목사님이 뭐라고 가르치는지 말하지 않겠습니다.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은 후 구약의 율법의 윤리, 도덕 조항을 별도로 지키라고 하면 복음을 허무는 이단적인 주장입니다. 율법의 윤리, 도적 조항들을 율법의 실체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어지는 일이지, 그리스도의 그림자였던 율법 조항을 지금 지키는 육신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말씀과 성령의 법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허무는 이단 사상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성경 66권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전하고 성령의 은혜를 소망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의 열매는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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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