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도덕에 관한 진리에 대해 성경과 교회 어느 쪽이 최종 권위를 갖고 결정하느냐에 대해 로마교회와 종교개혁은 과격한 차이와 대조를 갖는다.

로마교회는 어머니 교회로서 교회가 정경을 확정하였으므로 교회가 성경을 지배해야 바른 권위가 행사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교회가 성경을 해석할 권리를 갖고 바르게 행사한다고 하였다. 교회가 바른 해석을 하므로 공회의의 결정들이 성경의 바른 해석이다. 이에서 나아가 교황이 성경의 해석에 있어서 궁극적인 권위를 행사한다. 교황은 교회의 머리이므로 교회가 구원진리에 있어서 오류를 범하지 않듯이, 교황은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오류를 가질 수 없다고 한다. 교회가 진리를 결정하므로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되어도 교회의 결정은 진리로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종교개혁은 개인들의 사사로운 해석을 최선으로 여겨 혼돈과 혼란을 야기하였다고 시비하였다. 그러므로 교회의 해석이 바른 성경의 해석이고 그 의미라고 주장하였다.

종교개혁은 성경만으로 (sola scriptura)의 원리에 의해서 성경이 계시의 유일한 원천이고 전통은 불필요한 것으로 배척하였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를 창조하였으므로 교회는 성경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그리스도와 사도들에게서 구전으로 전해왔다는 계시는 없고, 필요한 모든 내용이 성경에 다 수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은 로마교회의 계시의 두 원천 주장을 배척하였다. 따라서 개혁자들은 외경 (apocrypha)을 성경에서 삭제하고 구약정경에 담겨져 있는 책들만을 정경 (canon)으로 삼았다.

이에 대해 로마교회는 종교개혁의 성경이 부족하다고 정죄하고 구약의 외경까지 정경으로 확정하였다. 그리고 히브리어 구약과 희랍어 신약이 권위본이 아니라, 4세기말과 5세기 초엽 히에로노무스 (Hieronomus, Jerome)가 번역한 불가타 (Vulgata) 성경이 권위본이라고 확정하였다. 이것을 트렌트 공회의 (concilium Tridentinum, 1545-1563)가 재확인하고 또 유전도 진리의 원천이라고 확립하였다. 그 후 1962-65년에 열린 제 2 바티칸 공회의 (concilium Vaticanum II)에서도 외경과 유전들을 재확인하였다.

그러나 로마교회의 성경관에 변화가 없으므로 구원과 생활에 관한 진리에 대하여 권위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살피는 것이 바르다. 성경만으로 (sola scriptura)의 구호로 출발한 종교개혁은 성경의 종교가 되었다. 성경이 말한 것이 진리이고 확실히 믿을 사항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권위를 갖는다. 칼빈이 말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로부터 늘 새롭게 말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의 말씀이 영구히 기억되도록 하시려고 성경에 기록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이 최종 권위를 갖는다는 것이 종교개혁의 입장이다.

그러나 로마교회는 교회의 동의에 의해 성경에 권위가 승인되는 한에서 성경이 권위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교회가 정경을 확정했다는 것은 성경의 권위가 교회의 권위에 종속함을 뜻한다. 그들의 주장은 교회가 이 글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켜주고 또 성경이 전체로 손상됨이 없이 우리 시대에까지 전달되어 왔다는 것을 확신시켜 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한 책은 받되 다른 책은 거부하게 된 것도 교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 규칙을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성경을 정경으로 받도록 된 것도 교회가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칼빈의 말대로 사람들의 결정에 우리의 신앙을 의존하게 하는 것이다 (Institutio, I, 7, 1). 오히려 사도들의 증언대로 교회가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졌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가르침이 교회의 터이면 교회가 존재하기 전에 성경은 이미 권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교회는 교회가 성경 곧 사도들의 가르침에 정초되었어도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글들이 교회가 결정하기 전에는 어두웠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성경이 교회를 선행하는데도 교회가 성경을 판단할 권위를 갖는다는 것이 되어 성경의 확실성이 교회의 승인에 의한 것이 되므로 불가하다. 성경은 스스로 자신의 진리를 현시한다 (Institutio, I, 7, 2).
 


로마교회는 자기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우구스티누스의 진술을 예로 든다. 나는 가톨릭교회의 권위가 복음을 믿도록 움직이지 않았다면 복음을 믿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Contraepistolam Manichaei quam vocant fundamenti, v). 그러나 이 진술이 로마교회의 주장의 근거로 사용될 수 없는 것은 문맥에서 이해해야하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경건한 사람들의 신앙이 교회의 권위에 근거되어 있다거나, 복음의 확실성이 교회의 권위에 의존해 있다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복음의 진리에 대해 교회가 일치해서 불신자들을 충동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복음의 확실성이 없을 것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영으로 아직 조명 받지 못한 자들은 교회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르쳐질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복음으로부터 배우는데 진리를 깨달아 구원에 이르도록 교회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뜻이다. 교회의 권위는 복음의 신앙을 위한 입문일 뿐이다 (Institutio, I, 7, 3).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이 성경 안에서 친히 말씀하시므로 성경이 최고의 증명을 받는다. 우리가 믿는 교리의 신실성은 하나님이 그 저자이시기 때문에 가능하다. 합리적 논증이나 사람들의 합의에 의해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성경에서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즉 성령이 성경에서 증거하시는 것은 모든 이성의 능력을 넘어간다. 그리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도 성령의 증거로 이루어진다. 교회의 권위가 진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성경에서 직접 말씀하시므로 성경이 권위를 갖는다. 성령의 내적 증거로 사람들의 심장에 성경의 진리가 확증된다. 그러므로 성경의 가르침이 믿음을 일으키지, 교회의 권위와 결정이 믿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또 선포된 내용들을 하나님의 명령들로 받아들이도록 성령이 사람의 심장을 움직이신다 (Institutio, I, 7, 4).

그러므로 성경은 교회의 결정 없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지고 수납된다. 성경은 자기 입증적이다. 성령이 증거하시므로 외적 증거와 추론 없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진다. 즉 성경은 자기 가신성을 지닌다 (autopistia). 칼빈의 말대로 성경이 하나님의 입에서 사람들의 봉사에 의해 우리에게로 흘러왔다는 것이 확증된다. 왜냐하면 참 믿음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심장에 날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Institutio, I, 7, 5). 교회는 단지 성경의 진리를 전파할 뿐이다.

칼빈의 가르침대로 성경은 모든 인간의 지혜보다 탁월하므로 성경의 권위를 논증이나 교회의 합의에 의해서 세울 수 없다. 성경은 인간적인 재능과 호의들보다 탁월하며 신적이므로 (Institutio, I, 8, 2) 그 자체로 진리를 증명하고 세운다. 따라서 교회의 동의와 합의에 의해서 성경이 믿어지고 권위를 갖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성경에 종속하고 성경의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 성경이 성령의 역사로 자기 가신성을 가지므로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역사하여 그 권위를 세운다. 그러므로 성경의 권위는 교회의 결정과 무관하게 스스로 행사되고 확정되었다. 따라서 교회의 권세는 주의 말씀에 종속하므로 성립한다 (Institutio, IV, 8, 4).

그러나 로마교회는 주장하기를 교회는 자체로 무류하다고 한다. 교회는 그의 신랑인 그리스도에 의해 결코 버림받지 않고 그의 영에 의해 진리로 인도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령에 의해 인도되기 때문에 교회가 무류하고 따라서 교황의 결정도 무류하게 진행된다고 한다. 교회는 어디로 가든지 참인 것만을 생각하고 말한다. 따라서 교회가 규정하는 것은 다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회가 구원에 관한 필수적인 문제들에 관한 결정에 있어서 무류한 것은,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가르침 받을 때뿐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매여 있으면서 교회가 구원에 필수적인 사항들을 가르칠 때만 무류하다.

칼빈의 가르침대로 성령은 복음과 분리되지 않는다 (Institutio, IV, 8, 13).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고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속하기 위해서 보내졌으므로 그리스도의 구원사역 외에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성령의 지배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지배받는 것을 말한다. 성령의 인도는 말씀과 분리할 수 없고, 해소될 수 없도록 말씀과 결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교회가 말씀을 떠나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수 없다 (Institutio, IV, 8, 13).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 없이 교회가 바른 가르침을 할 수 없다.

또 로마교회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임재와 성령의 인도에 의해 무류하므로 공회의의 결정에 오류가 없다고 주장한다. 보편 공회의는 교회의 참 형상이므로 성령에 의해 직접 지배되었기 때문에 오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성경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말씀이 없어도 교회의 결정으로 교리가 확정되었으므로, 공회의의 결정이 교회의 바른 가르침이고 교리라고 주장한다. 가령 유아세례는 성경의 명료한 명령 없이도 교회의 작정으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또 니카야 신경은 성경에 명시되지 않은 진리 곧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 실체 (ὁμοούσια, consubstantialis)임을 교리로 확정하였다. 성경에 동일 실체가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하여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으로 제시되며 한 하나님만이 계신다고 가르치므로 동일 실체는 성경에서 나온 귀결이다 (Institutio, IV, 8, 16). 이처럼 공회의가 교회를 바르게 대변한다고주장하나, 그리스도가 공회의를 주재하는 경우는 공회의가 그의 말씀과 그의 영에 의해 지배되었을 때뿐이다 (Institutio, IV, 9, 1).

또 공회의가 바른 교리를 생산한 경우는 니카야, 콘스탄티노폴리스, 에베소, 칼케돈 공회의뿐이고 다른 공회의는 성경과 배치되는 결정들을 하였으므로 구속력이 없다 (Institutio, IV, 9, 7). 정통 공회의는 성경으로 결정한 공회의이고 임의로 교회가 교리를 결정한 것이아니다. 제 2 에베소 공회의는 유티커스의 이단적 주장을 교리로 결정하였고, 제 2 니카야 공회의는 우상숭배를 결정하였으니 성경에 배치되므로 성령에 의해 결정한 것이 전혀 아니다 (Institutio, IV, 9, 9).

그러므로 성령을 모든 공회의들의 결정에 매어 둘 수 없다. 이렇게 공회의의 결정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교황주의자들이 교회의 모든 권세를 교황에게로 넘기기 위해서 주장한 것에 불과하다. 공회의는 계명에 추가나 삭제를 하면 안 되고 또 그런 결정을 한 공회의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였다고 할 수 없다 (Institutio, IV, 9, 1, 2). 따라서 주교들이 모여서 결정한 공회의라고 그 결정들이 다 권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배척될 결정들을 하였다.

또 로마교회는 주장하기를 주교는 주교이므로 권세를 갖는다고 한다 (Alister E. McGrath, Reformation Thought, 1993, 142). 이것도 전혀 정당성과 성경적 근거가 없다. 주교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권위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주의 말씀과 이름에 봉사하기 위해서 부름 받았으므로 말씀을 바르게 봉사할 때만 권위를 갖는다. 칼빈의 주장대로 선지자들과 사도들과 사도들의 후계자들은 다 주의 말씀에 봉사하도록 부름 받았다. 그들에게 성령이 준 권세와 권위는 다 말씀의 봉사를 위해서 주어진 것이지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사제의 권위는 말씀의 전달자일 때에만 성립한다 (Institutio, IV, 8, 2). 그러므로 사제들의 권위는 그 자체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고 부름 받은 사명을 충실히 수행할 때에만 타당하다.

로마교회는 주장하기를 주교들이 그 자체로 권위를 가지며 또 교황은 성경의 해석과 가르침에 무류하므로 성경을 해석하는 일도 교회가 해야 한다고 한다. 궁극적으로는 교황이 주교들의 도움을 받아 해석해야 하고 종교개혁처럼 개인들이 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신학서론, 274-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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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 박사는 서울대학,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원(Th.M), 화란의 자유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다. 화란의 자유대학에서 칼 발트의 신학을 지지하는 지도교수 베인호프와 다른 발트의 제자 신학자들과의 토론에서 칼 발트의 신학의 부당성을 증명하였다. 발트의 사상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논문 '그리스도 창조-중보자직'을 관철하여 박사학위를 얻었고, 이 논문이 독일 튀빙겐대학이 선정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 논문 100편에 수록되어 한국 교회의 위상을 드높였다. 총신대 신대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 십년 동안 목회자들을 길러내는 교수사역에 헌신하다 영예롭게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연구하시며 <바른믿음>의 신학자문 역을 맡아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