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알거림은 비성경적인 오순절 체험의 징조로 등장

1900년대 초반 미국의 이단들이 시작한 옹알거림 현상이 이제 온 세계에 퍼졌다. 많은 사람들이 옹알거리는 현상이 '영으로 기도'하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을 처음 시작한 1900년대 초의 미국의 이단들은 자신들의 옹알거리는 거짓방언으로 말미암아 지상 교회가 완전해지는 종말의 새 시대로 진입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을 따른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에 의해 설립되어 1800년 동안 지상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던 보편교회는 나사 빠진 불완전한 교회였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기존의 교회에서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이 단 한번으로 성취되었고, 이후 반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은 오순절을 개인적으로 계속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들은 구약의 오순절 명절의 의미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날에 일어난 성령의 지상강림으로 인해 완전하게 성취되었고, 더 이상 남아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성취된 유월절,초실절,오순절

어린 양을 잡아 죽이는 유월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죽으심으로 완전하게 성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월절 날에 잡혀 죽으셨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는 더 이상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다. 아직 보리 추수하기에는 이른 4월 초에 갓 익은 보리 한 단을 하나님께 바치는 초실절도 부활의 첫 열매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으로 완전하게 성취되었으므로 더 이상 지키지 않는다. 유월절로 시작하는 7일 동안의 무교절 동안에는 반드시 한번의 안식일을 지켜야 했고, 그 다음 날이 초실절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이 바로 그 날이었으니, 초실절에 드려지는 제물 처음익은 보리 한 단은 가장 먼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했다.

초실절로부터 50일이 지나면 오순절이다. 이때가 되면 이스라엘의 들판의 보리가 무르익어 본격적으로 추수하게 된다. 대대적인 보리 추수를 시작하기 전 하루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드리면서 즐거워했던 축제의 날이 바로 오순절이다.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정결함을 얻은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신 날이 바로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이었다. 지상의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추수)되는 종말적인 구원의 추수사역이 시작된 것이다. 구약의 보리농사 추수를 시작하는 오순절은 성령강림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의 추수를 예시했던 명절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오순절도 성령강림으로 완전하게 성취되었으니, 이제는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다.

오순절 운동은 성경적 근거없는 운동

옹알거리는 소리를 도입하여 전 세계에 퍼뜨린 이단들은 자신들이 신자들에게 오순절을 다시 되풀이시킨다고 했다. 구약의 모든 명절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성취되었는데, 어찌 오순절만 다시 개인적으로 재현되겠는가? 더 웃기는 것은 개인들에게 오순절이 한 번도 아니고 수 십번, 수 백번도 반복적으로 재현될 수 있고, 그것이 곧 성령충만이라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오순절 성령체험운동 이전에 존재했던 지상의 교회가 불완전한 교회라고 진단하였고, 자신들로 말미암아 지상 교회와 완전해지면서 종말의 대 부흥의 시기로 진입한다고 했다. 이런 소리가 이단이 아니면 뭐가 이단일까?

대부분의 사이비 이단들의 중대한 문제 중의 하나가 기존 교회의 신앙을 폄하하고 자기들의 사상만이 옳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성경의 진리를 따르는 기존의 교회들의 신앙을 부정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그런데 사도행전 2장에서 성취된 오순절을 개인들에게 반복적으로 재현시킨다면서 출현한 오순절 운동도 당시의 기존 교회의 신앙을 폄하하고 부정하면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기존의 교회들은 사도행전 2장에서 성취된 오순절만 믿고, 1900년대 초부터 다시 개인적으로 재현되고 반복되는 오순절을 체험하지 못하니 불완전한 신앙이고 온전치 못한 믿음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이런 주장은 이단이 아닌가? 그런 논리를 몰고서 등장한 영이 성령일까? 성령을 가장하는 귀신일까? 

19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파송 선교사가 오순절 운동에 물들면 지원금을 끊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교회에서 부목사 또는 일부 평신도 지도자가 오순절 운동에 물들면 파직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왜 지금은 그런 바람직한 일 보기가 어려워졌을까? 오순절 운동의 세력이 너무도 거대해졌기 때문이다. 오순절 재현운동을 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없을 정도로 크게 세력을 넓혀 전 세계 교회의 3/4을 점령했다는 통계가 나오는 실정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제는 많은 시간이 지나 당당한 ‘기존교회’가 되어버렸고, 정통신학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세상적인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숫자가 늘고, 세상적인 힘을 가졌다고 해서 성경까지 뜯어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황을 따르는 사람이 전 세계를 가득 매웠을지라도, 교황이 진리를따르는 신자 5,000만명을 학살하는 세상적인 권세를 가졌을지라도 결국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아무도 성경을 뜯어 고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미혹된 사람들이 사탄이 좋아하는 대로 성경을 임의로 해석할 뿐이다.  


그러나 명백한 이 사실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 사도행전 2장에서 구약의 오순절 명절의 의미와 목적은 완전하게 성취되었다. 이미 성취된 오순절이 개인적으로 다시 성취되고 무한히 반복된다는 이론은 성령을 가장하고 교회에 들어오는 더러운 귀신들의 정체를 숨겨주는 이론이다. 그런 거짓된 전도를 하는 패역한 자들의 사역을 정당화시켜주는 틀려먹은 이론이다.

그 명백한 증거를 하나 들어보자! 그 일을 시작한 주역들은 개인들에게 재현되는 오순절의 증거가 방언이라고 했다. 현대의 옹알거림은 그 이단들이 개인적으로 오순절을 다시 체험하게 만드는 운동을 벌이면서, 개인적으로 경험되어지는 오순절의 그 핵심 징조로서 강조되었던 현상이다. 그들은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이 이방인들의 외국어였다는 것을 알았고 인정했다. 또한 자신들의 거짓된 오순절 운동의 증거로서 나타나는 옹알거리는 현상도 사도행전 2장과 동일한 외국어라고 주장했다. 자신들을 통해 등장한 외국어 방언으로 인해 선교사가 되기 위해 굳이 외국어를 배울 필요도 없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그것을 통역하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된다고 했다. 그때가 1901년, 1906년이었으니 외국에 나가서 실험할 기회가 없었으므로 한 동안 그런 말이 통했다.

그러나 몇 십 년이 지나 외국의 현지에 가서 자신이 받은 옹알거리는 소리 현상을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결과는 ‘황당무개’ 그 자체였다. 현지어와 비슷한 옹알거리는 소리를 시연해 보았으나 그 나라에서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옹알거리는 소리가 무의미한 소리임을 깨닫고 현지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또 다른 이론이 등장했다. 현대의 옹알거리는 소리는 사도행전 2장의 외국어가 아니고 ‘영의 언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의 방언이 바로 영의 언어였다고 이야기하였다. 성경의 방언이 두 종류였다는 웃기지도 않는 신학이 이렇게 탄생하였다. 그런데 오늘 날 이 사실을 바르게 아는 목회자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바르게 알지 못하여 많은 목회자들이 오히려 옹알거리는 평신도들 앞에서 주눅이 들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옹알거리는 재주를 가진 신자들에게 기껏 가르치는 말은 “지나치게 하면 안 됩니다!”라는 정도이다.

옹알거리는 거짓 영에 지배당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보자! 그들은 고린도 전서의 ‘영의 기도’가 현재의 옹알거리는 현상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의 문제가 무엇이지 살펴보자!
 

A. ‘영으로 기도하고’(고전 14:15)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할꼬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전 14:15)

바울이 ‘영으로 기도하고’라는 표현한 것이 오늘 날의 옹알거리는 방언현상으로 기도하는 것을 뜻한다고 주장하는 말들도 많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다른 곳에서 ‘성령으로 봉사하며’(빌 3:3)라고 말한 내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동일한 헬러어가 두 곳에서 쓰였다. ‘영으로 봉사하며’라고 다시 번역해도 무방하다. 성령으로 봉사하라는 말씀이 ‘방언으로 봉사하라’는 뜻이 아닌 것처럼, ‘영으로 기도하고’라는 내용도 방언으로 기도하라는 의미일 수가 없다. 만일 그렇다면 바로 뒤에서 나오는 ‘영으로 찬미하고’(고전 14:15)는 방언으로 찬미하라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방언찬양에 대한 말씀이 보이지 않는다. 방언찬양이라는 것은 기독교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영으로 기도하라는 것은 이방인들의 주문을 암송하는 것처럼 비인격적으로 주술적으로 기도하지 말고,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정성과 지성과 인격을 담아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B.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고전 14:14)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을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고전 14:14)

바울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라고 말한 내용을 지금의 옹알거리는 현상이 신자들의 영혼이 기도하는 것이라고 우기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영혼의 기도가 비록 신자의 인격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지라도 그의 영혼에게는 신령한 힘을 미치는 능력있는 기도이므로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바울이 말하는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방종교들의 인간에 대한 이원론적 이해를 좇아가는 어리석음일 뿐이다. 인간이 의지적(지성적)인 부분과 영적인 부분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면서, 영혼과 마음이 인간 속에서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여기는 생각에서 나오는 말이다. 대부분의 세상 종교들은 인간의 영혼이 육체(마음)로부터 분리되어 별도로 사고하고 활동한다고도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는 인간은 영혼과 육체가 완전하게 결합되어 탄생하는 인격체이다. 영혼과 육체의 완전한 결합으로 인해 발생한 인격이 곧 인간이다. 성경 어디에도 영혼이 육신(마음)으로부터 독립하여 고유한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의 몸은 부모로부터 유전되어 만들어졌고, 영혼은 하나님이 손수 지으시어 우리의 몸속으로 넣어주셨다. 임신 과정의 어느 때에 영혼과 육체의 결합이 이루어지는지를 알 수 없으나, 영혼과 몸이 완전하게 연합됨으로 인해 살아있는 인격체가 되었다.

인격이라는 말 속에는 몸과 영혼이 모두 내포되어있다. 그리고 숨이 끊어지기 전에는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영혼과 육체가 결합되어 나타나는 인격으로 존재한다. 오직 숨이 끊어지는 순간 영혼은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육체는 부패 과정을 거쳐서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그 전에는 잠시도 영혼만의 별도의 활동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방언 기도가 인간의 마음과는 무관한 영혼의 직접적인 기도이니 크게 유익되는 신령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매우 위험스럽다. 자칫 저급한 육신보다는 고급한 영혼을 직접 보양하는 특별한 신앙활동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성립될 수도 있는 위험한 사상이다.

바울 사도는 육신과 영혼을 위하는 각각의 신앙활동이 따로 있다는 사상을 가졌던 사람이었던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사도 바울의 글 어디에도 그런 사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면 바울 사도는 왜 이렇게 표현하였던 것일까? 사도 바울이 이 문장을 통하여 강조한 것은 비인격인 옹알거리는 현상, 또는 성경의 진짜 방언을 기도 시간에 풀어놓는 행동이 그 신자에게 전혀 유익이 되지 못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런 행동이 정상적인 기독교 신앙의 범주에 속하지 못한다는 것을 특별하게 강조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일이다. 결코 마음에는 아무 작용도 못하는 옹알거리는 소리 현상이 영혼과 직접 연관된 신령한 성령의 현상이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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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