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과 번영 복음에 대한 불편한 진실(2)

 

정양호 (kpm)

한국 교회의 번영복음은 우리나라가 가난했던 60-70년대에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라는 정치, 사회 구호와 기복신앙의 토착문화와 어쩌면 기막히게 딱 들어 맞아 폭발적인 메가처치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돈과 명예, 세속적 성취가 성공의 잣대가 아님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성경 말씀을 왜곡하여 마치 세속적 성공 이야말로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동일시하였고, 번영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죄에 대한 문제까지도 덮어버리고 합리화하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한국에서 성령 치유집회를 한 나이지리아 기적의 목사 티비 조수아(T.B. Joshua. 2016.7,26)는 가나(Ghana) 무당 난나에게서 영력을 전수받았고(“TB Joshua is my boy! - Witch doctor Kwaku Bonsam”) 크리슬람 (Chrislam:기독교와 이슬람교의 혼합교)의 신앙을 가진 자로 알려져 있다. 거짓목사인지 아닌지도 분별하지 하려고 하지도 않고 휘황찬란한 조명, 현란한 음악과 조명, 외쳐 대는 통성기도와 웅성거리는 군중들 사이에서 흥분과 열정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화려한 단 위에 광명의 천사처럼 나타나, “할렐루야, 아멘”으로 열광하면서 능숙한 기적의 쇼 비즈니스 역사를 한다. 이 치유집회에 2만명이 몰렸다는 것은 번영 복음 거짓 성령운동이 보편화된 한국교회의 현 상황을 잘 반영해준다.

권수경 교수(고려신대원)는 ”번영복음의 속임수” 저서를 통해 한국교회를 위협하는 가장 큰 병균이 번영복음이라고 꼬집었다. 그 이유는 “번영복음은 기독교의 탈을 쓴 가짜복음, 이교요 사교이다. 번영복음의 밑바탕에는 탐욕을 섬기는 우상 숭배 뿐 아니라 범신론(汎神論)이라는 이교 사상이다. 하나님 대신 세상을 사랑하라는 마귀의 속삭임이다.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구원을 썩어 없어질 세상 제물과 맞바꾸는 어리석음이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짓밟는 사상이다. 이 거짓 사상이 우리의 타락한 본성, 곧 탐욕과 결합되어 우리를 영원한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것이 오늘 한국교회 성도와 교회의 비리와 타락을 낳는 주된 원인이다. 이단보다 위험한 사상이 한국교회의 구석구석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사유화 행태의 세습문제를 비롯하여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비리와 부패가 바로 번영복음이 낳은 썩은 열매들이다. ”라고 질타하면서 "한국교회는 신학자, 목회자, 온 교인들은 목사의 설교를 무조건적으로 듣지 말고, 베뢰아 사람들처럼 “이것이 과연 그러한가?” 물을 때 비로소 바른 믿음 위에 자라갈 수 있다.”고 충고하였다. (NEWSM.2019.08)
 

IV. 아프리카 대륙을 잠식하고 있는 번영복음

작년에 자칭 선지자라는 Alph Lukau 남아공 목사는 “죽은 자를 삼일만에 부활시켰다”고 짜고 치기 고스톱 숫법으로 조작을 하여 고발을 당한 웃기는 사건이 있기도 하였다. (2019.2.27)

최근, “남아공에서 교회를 운영하면서, 죽은 자도 살리고, 에이즈도 고칠수 있고, 시각 장애인의 시력을 회복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예언자 행세를 하면서 큰 운동장에 사람을 모으고, 사기 행각을 벌려 엄청난 돈벌이, 돈세탁 혐의로 기소된 셰퍼드 부시리(Shepherd Bushiri) 자기 나라 말라위(Malawi)로 도망쳤다고 보도하였다. (2020.11.16)

“아프리카독립교회”(African Independent Churches)는 통계적으로 남아공 기독교의 절대다수를 차지 하고 있는데, 그들은 조상숭배, 치유, 방언, 세번침수 등이 주골자이다. 이런 기복적 종교문화에 번영복음, 신사도운동은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격이 되는 것이다.

지난해에 한기총에서 이단 면제부를 주었다는 자칭 사도적 교사 변승우 목사 (사랑하는교회, 성령신학교)의 아프리카 선교팀이 작년에 우간다 북부 먼 곳까지 소위 부흥회팀으로 온 것을 보았다. 뒤배경을 보니 우간다 교회 부흥의 주역이라고 알려진 죤 물린디 (John Mulinde)와 밀접한 연계를 하고 있었다. “하나님과 직접 대면했다”는 그는 전형적인 신사도계 번영복음주의자이다.

구원파 이단의 한 분파인 “기쁜소식선교회” (박옥수, Good News Mission)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34개국의 TV방송으로 그의 메시지를 나르고 있다.

예루살렘에서 개최되었던 “지구촌 성공회 컨퍼런스”에서 우간다 알프레드 주교는 아프리카에 전파되고 있는 번영복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는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라고 비판하였다. 아프리카 대륙에 번영복음의 설교가 급증하고 있다는 경고와 함께 브라질과 남미 여러 나라에서도 번영복음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는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전한다(2018.6)

5년전 우간다로 사역지를 옮기면서 처음에 여러 교회를 순회하며 리써치를 하였다. 한번은 성공회 한 교회를 방문하여 주일 설교를 하였다. 설교 후 그 담임 목사는 “강사 목사에게 사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헌금하라”라고 하였다. 헌금 바구니 째로 들고 와 무릎위에 놓았다. 그는 계속해서 “전자 오르간을 샀는데 헌금해야 한다. 현찰이 없는 사람은 약속 헌금이라도 하라.”라면서 한 시간여 동안 헌금 설교만 하였다. 도대체 어디서, 누구에게 이런 비즈니스 목회를 배웠을까? 선교사가 운영하는 주말 목회자 훈련반에서 목회자들에게, 가난하고 어려운 교회 성도들의 적은 헌금에 의존하지 말고 사도 바울처럼 목회자 스스로 땀 흘려 일하라고 강조한다.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기복 신앙의 아프리카 토양속에 번영신학이 꽈리를 틀고 성경적 바른 진리의 증거를 방해하고 있다. 한국교회와 마찬가지로 겉보기에는 신앙이 있는 것 같은데 진실성, 열정, 헌신적인 예수꾼을 찾기가 쉽지 않고 복음을 위한 신실한 소명자도 찾기 힘든다. 자칫하면 선교사도 이 쓰나미의 물결에 휩쓸리기 십상인 환경이다. 사회 병리적인 현상 뒤에는 영적인 문제가 늘 도사리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 중에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죄로 얼룩진(predominated) 문화라는 이름을 가진 어둠의 세력이 성경적 바른 복음의 진보와 질적, 양적으로 건강한 교회의 성장을 얼마만큼 방해하고 있는지 계속 주시하고, 이제 한국 개혁주의 교회가 세계 선교의 주역으로서 반기독교적 정치, 문화, 사회의 토양을 어떻게 성경적 바른 진리로 변혁시킬 것인지, 그 동인(動因)을 고심해야 할 때이다.
 

V. 바른 신앙, 바른 교회를 파괴하는 이 번영복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

두말할 필요없이 교회 지도자인 목사의 바른 신학, 바른 신앙이 기본 관건이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비즈니스하는 것에 대해 용납할 수 없음을 이미 보여주셨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 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마21:12-13)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막13:22)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이미 이런 거짓 교사들의 행태를 케이스바이케이스의 실제적 샘플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오늘날 목회자들이 성경의 가이드라인 만을 따라 지킨다면 전혀 이상이 없을 것이다. 이적의 현장에서 사도 베드로의 태도는 바로 오늘날 목회자들의 자세이다.

(행3:)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이적의 주인공인 베드로와 요한에게 시선을 집중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인 데도 베드로는,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3:12)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 예수님이 하셨다고 정직하게 그 사실을 사실대로 선포하였다.

그 다음 장면은 유명한 마술사 시몬의 사례이다. (행8:20-23) 스데반이 순교한 후 예루살렘교회의 핍박이 시작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흩어져 복음을 전했는데 빌립이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 전도할 때 귀신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는 이적이 나타나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믿었다. 그 중에 마술사로 자칭 하나님의 능력, 큰 자라고 소문난 시몬 마술사도 믿고 세례를 받고 빌립을 따라다녔는데 다른 목적의 호기심때문에 그냥 따라다녔을 뿐이었다.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이 보낸 베드로와 요한을 합류하였을 때 사도들의 안수를 통해 성령 임재의 큰 역사를 보면서 아마 실감하였던 것 같다.

이때 마술사 시몬은 사도들에게 금전 투자를 통해 “이 권능을 주어 내가 안수할 때 성령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 라고 거래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긍정적인 대답 대신 사도 베드로로부터 마술사 시몬은 예상 밖의 엄청난 꾸중을 듣게 되었다.

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
2. 너의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3. 너는 악독이 가득하여 불의에 중독되었다.

그가 베드로의 책망을 들었지만 회개하지 않고 자기 길로 간 것 같다. 그렇다면 마술사 시몬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는 거짓 회심자의 전형적인 행태였다. 교회 다니고 세례도 받았는데 구원의 감격도, 확신도 없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예수 믿기 전 눈속임 마술사로 돈을 엄청나게 벌었던 성공 신드롬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거기에다 성령의 능력을 전수받기만 하면 한번 더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돈을 투자하여 성령 하나님을 한갓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하였다. 아프리카 “Healing School”에 능력전수(impartation) 받으러 다니는 한국 목사들과 비슷한 케이스 같다.

C.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할 때,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에게,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행14:1-15) 이것을 본 사람들이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자기네 방언인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라고 할 정도로 쇽킹한 이적이 일어났다. 그들의 반응은 두 사도에게 신(神)의 별명(쓰스, 허메)을 부르면서 온 무리가 자신들 앞에 나타난 신(神)에게 제사까지 지내려고 하였을 때, 그들은 결사적으로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영광을 막아섰다.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性情)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곧이어 유대인들이 두 사도들을 향해 돌로 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아무도 도와주지 아니하였다. 그냥 겉으로 만이라도 신(神)인 것처럼 잠자코 내버려 두었더라면 아마 돌에 맞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너무 그 영광을 거부하여 초라하게 된 모습에 지혜없이 행동한 것은 아닌지 후회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들은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그들이 자신들 앞에 영광을 거부한 것은 욕심이 없어서도 아니고 복음 전파를 좀더 수월하게 하기위한 지혜가 없어서도 아니었다.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性情)을 가진 사람이라” 그 영광은 자기들 몫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공개적으로 선을 그어 고백을 하였다. 그들은 “예수 믿으면 나처럼 된다.” “이적을 일으킨다.” “부자 된다” “성공 한다” 라는 번영복음 모델 쇼가 아니었다. 능력을 행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신데 그분이 너희를 회개하도록 부르신다는 증거요 우리는 종(둘로스)일 뿐이다는 고백이었다.

왜 바울과 바나바가 목숨을 걸고 이 겸손을 쟁취하려고 애썼을까? 눈 앞에 보이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영광을 거부하지 않으면 그 영광의 유혹이 자신들을 삼켜, 교만의 옷을 입게되고, 결국은 주님이 부르신 복음 사명자의 길을 바로 갈 수 없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목회자나 성도나 같은 성정인데 그 같은 성정(性情)을 뭔가 다른 것처럼 숨기는 종들이 많다고들 한다. 선교지에서 부자(富者)로 떵떵거려야 선교가 잘 된다는 말을 듣는다. 어떤 면에서 돈으로 하는 선교가 가장 쉬운 선교이다. 하나님께 받은 특별 은사를 받아 자신의 것 인 양 착각하고, 자랑하고, 자신의 이름을 선전하며, 스스로 영광을 높이고, 호주머니를 채우는 자들도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놀라운 일, 땀을 많이 흘리는 사역을 한다해도 “주여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눅17:10) ”가라 하면 가고 멈추라 하면 멈추겠습니다.”라는 겸손의 자세가 주의 종의 기본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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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호 선교사는 고신에서 공부하고 안수받았으며, 현재 KPM(고신총회세계선교회)와 NGO Good Partners(김인중 목사, 이사장)의 파송을 받아 우간다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천주교와 오순절 운동 신학 류에 오염되지 않은 순결한 성경적 복음을 우간다의 원주민들에게 전하고자 애쓴다. 우간다의 낙후된 여러 지역들을 순회하면서 복음과 함께 의료 봉사로 영혼들을 섬기고 있고, 늘 기독교의 세계적 동향을 살피고 연구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