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이란(1회)

총신과 합동 목회자들이 매우 자주 쓰는 용어는 ‘개혁주의’이다. 한국 말 ‘개혁주의’를 영어로 직역하면 ‘Reformationism’(종교개혁주의)인데, 이런 말을 영어에서 보지 못했다. 개혁주의라는 말은 정상적인 신학 용어가 아니고,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것이다. 아마도한동안 활발하게 책을 펴냈던  '개혁주의 신행협회'라는 출판사 이름에서 이 용어가 기원되어 한국 교회에 확산된 같다.

그러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 ‘개혁신학’이라고 해야 한다. 영어로는 'Reformed Theology'(개혁된 신학)이고 또는 ‘Refomation Therelogy'(종교개혁 신학)이다. 개혁신학은 종교개혁으로 탄생된 교회, 즉 ‘개혁된 교회’(Reformed Church)의 신학이다. 칼빈에 의해 그 골격이 완성되었으므로 ‘칼빈주의’(Calvinism)라고 한다.

어떤 교회들이 개혁신학 위에 세워졌을까? 칼빈에 의해 세워진 교회들, 즉 칼빈의 제자 존 낙스로부터 시작된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와 거기에서 미국과 한국과 세계 여러 곳에 확산되어 있는 장로교회들이 개혁신학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칼빈에 의해 스위스에서 처음 시작되어 네덜란드, 프랑스와 미국으로 확산된 개혁교회들도 개혁신학 위에 세워진 교회들이다. 

종교개혁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독일의 루터인데, 루터의 신학과 개혁신학은 어떤 관계일까? 루터의 신학을 따르는 교회를 개혁교회라고 분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루터에 의해 확립된 ‘이신칭의’ 교리는 칼빈에 의해 세워진 개혁신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신칭의 외에도 종교개혁을 먼저 시작한 루터의 신학의 많은 내용들이 칼빈을 통해 수립된 개혁신학의 중요한 자산들이 되었다. 

칼빈에 의해 완성된 종교개혁 신학이 곧 개혁신학이다. 그렇다고 칼빈의 모든 말들이 100% 성경에 합당한 내용이라는 것은 아니다. 칼빈의 가르침들 가운데 버려야 할 내용이 0.1도 없다는 것이 아니다. 개혁신학의 절대적 기준은 언제나 성경이지 결코 칼빈을 추종하는 것을 개혁신학이라고 하지 않는다. 성경이 교회와 교리들과 신앙을 다스리고 통제하는 절대적 권한을 행사한다는 개혁신학의 원칙이다.

그럼에도 칼빈이 존경을 받고 그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이유는 칼빈의 대표작 <기독교강요>와 다른 저술들 속에서 나타나는 내용들이 다른 어느 누구의 신학보다 성경을 바르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칼빈의 성경 주석들과 <기독교강요> 사이에서 종종 불일치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과 같은 원리를 참조해야 한다. 

1)가장 중요한 기준은 성경이다. 성경의 말과 맞지 않는 칼빈의 말은 무시되어야 한다.
2)보편교회가 이미 결정한 교리들과 신학 안에서 그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3)칼빈의 가르침들 안에서도 그가 일평생 동안 지속적으로 보완하여 완성한 <기독교강요>를 좀 더 우선시해야 한다.

개혁신학은 신앙고백서들을 통해 표현되었다. 칼빈이 죽은 후 그의 신학이 유럽의 개혁교회들 속에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여러 종류의 신앙고백서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개혁파 신앙고백서들이 개혁신학의 중요한 원리와 규범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혁신학의 최고의 표준과 기준은 언제나 성경이다. 오직 성경만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무오한 계시의 말씀이고, 교회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절대적인 기준이기 때문이다. 신앙고백서는 우리 같은 성령의 조명 하에 있었던 사람들이 그 시대의 신앙 이슈들을 그 시대의 신학 안에서 표현여 작성한 문서들이다. 그 사람들도 어떤 상황에서는 지금 우리들 보다 더 온전하지 못했고, 그 시대의 한계 속에 갇혀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 그들은 지금 우리보다  심한 신학적 무지에 빠져 있었고, 성경 전체에 대해 조망과 이해에서 우리보다 부족한 상태에 있기도 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혁교회는 신앙고백서가 아니라 오직 성경을 원칙으로 한다. 성경만이 교회의 교리와 신앙을 지배하고 통제한다고 고백하고, 신앙고백서들과 다른 모든 문헌들은 성경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참고서일 뿐이다. 이것이 개혁신학의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정신이다.

“개혁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멋있게 복창한다. 그러나 그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면서 단지 멋을 내는 수준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나오는 말일지라도, 칼빈의 다른 성경 주석에 나오는 말일지라도, 유럽의 개혁교회들이 만들어 낸 어떤 신앙고백서나 다른 문서에 들어있는 내용일지라도, 성경에 맞지 않은 내용은 언제든지 고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한다. 이것을 뜻하는 말이 바로 “개혁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라는 말이다.

당대의 세계적인 신학자들이 보편교회(공교회)의 공의회로 모여 많은 교리들을 결정했다. 공의회가 결정했으므로 그대로 교회의 진리가 되었었는가? 그것은 아니다. 공의회에서 결정되었을지라도 개혁교회가 따르지 않고 가벼이 날려버린 것들도 많다. 그래도 되는 것일까? 당연하다. 왜 그러한가? 성경에 맞지 않는 내용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보편교회의 공의회라도 성경에 반하는 교리를 결정하면 그저 쓰레기 하나를 생산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은 상태에서 교회를 성경 위에 세우는 진리를 올바로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공의회나 또는 어떤 공의회의 할아버지가 결정했을지라도 성경에 반하는 내용은 개혁교회에서 수용되지 못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나오는데 ...”

“박형룡 박사의 책에 그렇게 나오는데 ...”

“박윤선 박사도 그렇게 책에다 써놓았는데 ...”

성경을 절대시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호소하고 고집부리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그들은 거짓된 신학(이단 사상)을 고집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전의 존경받는 선생님들의 시대적인 한계와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모든 신학자들이 '저렇다!'라고 말해도 오직 성경이 '이렇다!'라고 말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다른 모든 것들을 그냥 날려버려야 한다. 이 중요한 개혁신학의 원리를 무시하고, 권위(?) 있는 사람들의 말들과 글들을 찾아다지면서 인생을 허비하는 것을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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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