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안녕하세요? 노승수님이 정 목사님을 겨냥하여 다음의 글을 쓴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어떤 이가 청교도가 이단이라면서 율법 없이도 복음이 윤리가 가능하다는 취지 주장을 하는 걸 봤다. 그런데 이게 청교도들만의 신학이 아니다. 칼뱅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신학 프레임 자체가 이것을 주장한다. 예컨대 2문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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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문 :이러한 기쁜 위안 속에서 살고 죽기 위하여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답 :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나의 죄와 그 비참함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둘째 어떻게 그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벗어났는가, 셋째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릴 것인가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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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로부터 위로를 얻기 위해서 알아야 할 3가지를 1. 우리의 비참의 심각성 2. 비참에서 벗어나는 도리 3. 그에 대해 감사하는 도리를 다루고 있다. 그중 1번째인 우리 비참의 심각성은 이어지는 3문에서 율법에서 알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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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문 : 어떻게 당신의 비참함을 알 수 있습니까?
답 : 하나님의 율법이 내게 가르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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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없다. 이는 5문에서 확실히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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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문 : 당신은 그 모든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있습니까?
답 :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과 내 이웃을 미워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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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곧바로 복음으로 가야한다고 이 신앙고백서가 설명할까? 9문이 말하는 바를 들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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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문 : 인간이 수행할 수도 없는 율법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도록 요구하신 것은 부당한 처사가 아닙니까?
답 :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실 때 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악마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무분별하게 불순종함으로 자신은 물론 후손들까지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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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문의 질문과 응답은 우리가 여전히 율법을 지킬 것을 요구받는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회심 전뿐만 아니라 회심 후에도 요구된다는 사실을 90문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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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문 : 새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선을 즐거이 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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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이 율법을 지켜 향하는 이 선행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물론 성전으로 나아가는 은혜의 방편을 통해서 가능하다 이전 문답들이 그것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을 압축하여 91문은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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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문 : 선한 일은 무엇입니까?
답 : 우리 자신의 의견이나 사람의 관습에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참된 믿음으로만 행하는 일이 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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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92문부터는 십계명의 해설이다. 즉 십계명이 구약 백성에게만 요구된 것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 요구되는 계명이라는 점을 보여주며 이를 율법의 제3용도라 한다.

물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이것이 믿음과 은혜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이 구조 곧 율법과 성전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구조는 청교도들만의 이단적(?) 주장이 아니라 사도들이 전승한 복음의 핵심이다. 수고하세요!"

 

답변>
저는 구원 받은 성도와 율법의 관계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 율법은 남은 죄를 더 알게 하고, 그리스도가 대신 고난을 받고 죽으신 이유, 즉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서 그리스도가 대신 죽으셨음을 정확하게 알게 해 주는 율법의 기능을 믿고 인정합니다.

단지 제가 강조하는 것은 율법을 적용해야 할 시기와 상황을 바르게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과정에서 율법이 하는 일은 1도 없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구원은 오직 복음선포를 받고, 성령의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습니다. 지금 북한에 가서 사람들을 구원하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 전에 구약의 율법을 전하여 먼저 준비를 시키고 난 후 준비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라는 것이 청교도들의 거짓 신학입니다. 저는 그것이 청교도주의의 이단성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청교도 시대에는 모든 안 믿는 사람들이 교회와 가깝게 살고 있었고, 교회에 다니고 세례도 받았으므로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시도를 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아예 멸시하는 좌파 사상이 가득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모두 교회를 드나들던 청교도들의 시대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제가 말하는 좌파 사상이란 기독교를 노골적으로 부정하고, 남녀의 성구별을 폐지하고, 성전환 수술과 트랜스젠더와 낙태와 동성결혼 등을 권장하는 미국 민주당의 정치 사상을 말합니다)

우리의 상황은 사도들의 이방인 전도의 상황과 같습니다. 그 어떤 사도도 율법을 전하여 사람이 스스로 죄를 뉘우치면서 자신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 가게 만드는 회심 사상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했고, 필요하면 구약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그때 성령이 역사하여 택하신자들이 믿음고백에 이르게 하심으로 구원을 주셨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는 율법이 신앙에 무익하니 버리자는 것이 아니고 바르게 성경적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구원 받지 못한 자에게 율법을 전하여 자신의 구원을 준비시킨다는 것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이단 사상입니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는 율법은 이미 구원 받은 자들을 더 하나님 백성답게 살도록 만드는 하나님의 수단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훗날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의 효력을 소급하여 적용받음으로 구원을 얻었고, 구원 얻은 후 하나님 백성 답게 살기 위해 율법을 지키도록 명령받았습니다. 신약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의 공로를 적용받아 구원 받았고, 구원 받은 후 여전히 남아있는 죄를 알게 만드는 율법의 도움을 받으며 삽니다.

그리고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고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유지한다는 가르침을 찾을 수 없습니다. 신약의 백성들이 구원 후에 구약의 백성들의 방식으로 구약의 율법을 지키라는 가르침도 성경에 없습니다. 신약 백성의 율법준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적용하는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육신의 방식으로 율법을 지키라 하면 신자들을 율법주의 이단으로 만들게 됩니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롬 8:4)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갈 5:18)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사도 바울은 율법의 요구가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원리를 그리스도의 구속을 적용하는 성령의 사역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금도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기 위해 구약의 방식으로 율법을 지키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율법주의 이단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동시에 율법을 지키라는 사상은 저주 받을 이단사상이라고 바울이 갈라디아서에 통렬하게 선포했습니다.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

다시 요약하겠습니다. 구약 백성에게나 신약 백성에게나, 율법은 구원을 받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구원을 받은 이후 하나님 백성 답게 살도록 만드는 하나님의 수단이었습니다. 구약 백성은 육신의 노력과 행위로 율법을 지켜야 했고, 신약 백성을 그리스도의 구속을 적용하여 주시는 성령의 은혜로 율법의 겉모양뿐 아니라 율법의 정신까지 지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약 백성들과 율법의 관계입니다.

그러면 위의 (노승수 목사가 썼다는) 글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어떤 이가 청교도가 이단이라면서 율법 없이도 복음이 윤리가 가능하다는 취지 주장을 하는 걸 봤다. 그런데 이게 청교도들만의 신학이 아니다.”(노승수 목사)

->저는 구원을 받을 사람에게 율법을 먼저 배우게 만들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는 청교도 회심사상을 비판합니다.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났는지, 어떻게 더 성화되어야 하는지 설명하는 것은 정상적인 신앙이라고 주장합니다.

“(하교리 2문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로부터 위로를 얻기 위해서 알아야 할 3가지를 1. 우리의 비참의 심각성 2. 비참에서 벗어나는 도리 3. 그에 대해 감사하는 도리를 다루고 있다. 그중 1번째인 우리 비참의 심각성은 이어지는 3문에서 율법에서 알 수 있다고 말한다.”(노승수 목사)

->다시 분명하게 말하겠습니다. 비록 하.교.리라 할지라도,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 율법을 통해 영혼의 비참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면, 성경과 기독교를 왜곡하는 이단적인 주장입니다. 하.교.리가 율법을 구원 받은 사람에게 적용하라고 하는지, 구원 받기 이전의 사람에게 적용하라고 하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교리 9문의 질문과 응답은 우리가 여전히 율법을 지킬 것을 요구받는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회심 전뿐만 아니라 회심 후에도 요구된다는 사실을 90문이 보여준다.”(노승수 목사)

->분명하게 말하겠습니다. 만일 하.교.리가 회개(회심은 잘못된 말) 전에도 율법을 지키라고 하면 매우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하.교.리가 구원 받은 신약의 백성에게 구약 백성의 방식으로 율법을 지킬 것을 가르친다면, 그 저자가 아직 성경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 문서를 작성했기 때문입니다.

신약 백성에게 구약의 율법을 구약의 방식으로 지키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이미 사도 바울에게서 저주를 받았습니다. 신약 백성에게 율법이 거울의 역할을 하여 남은 죄를 보여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율법을 성취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을 적용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입니다. 이것을 설명하지 못하면서 아는 체하는 말을 많이 하면 결국 많은 사람들을 율법주의 이단으로 이끌어 본인도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 자기를 구원했고, 그리스도가 자기를 위해 스스로 속죄했다는 주장으로 합동 이대위에 이단규정 대상자로 심사받고 있는 사람은 더 아는 체하지 말고, 먼저 자기의 이단성을 회개해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다음의 기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합동 김병훈 교수 노승수 목사(합신, 동서울)의 건 이대위로 배정"(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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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