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 신학위원회 보고서 1항에 대한 질문과 반박

(이 글은 합신 신학위 보고서 1항에 대한 질문과 반박이다.) 합신 신학위원회에서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자신의 구원의 자격(의로움)을 얻었고, 또한 자기를 믿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었다는 거짓 교리를 주장하는 합신의 김병훈 교수와 노승수 목사를 돕기 위해 매우 어리석은 일을 했다. 성경의 신앙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문서를 작성하여 합신 뿐 아니라 한국 교회의 신앙에 위해를 가하는 나쁜 일을 했다. 그러므로 부득이 하나님과 복음을 위해 바로 잡는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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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의 주장 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도 삽입되어 있는 행위언약 사상은 이와 같이 기독교의 근본을 허물고 은혜의 하나님의 성품까지도 왜곡한다.”

합신 신학위원회의 반박>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에 삽입되어 있는 행위언약 사상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 이해의 토대이며 성경적 원리에 일치합니다.

(신앙고백서 7.2) 사람과 맺으신 첫 번째 언약은 행위언약이었다. 이 언약으로 완전하며 개인적인 순종을 조건으로 아담에게, 그리고 아담 안에 있는 그의 후손들에게 생명이 약속되었다(갈 3:12; 10:5; 5.12-20; 2:17; 3:10).”(합신 신학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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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민고백이 가르치는 행위언약은 심각한 거짓 신학이다. 명칭부터가 성경과 다르다. 성경은 아담과의 언약을 '첫 언약'(히 9:15), 그리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첫 언약을 다시 복구하는 '새 언약'(눅 22:20)이라고 한다. 성경은 첫 언약 때문에 그리스도가 아담과 그의 후손들을 위해 죽으셨다고 가르친다. 아담에게 영생과 모든 은혜를 주시어 자기 백성으로 창조하셨고, 영원히 아담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영원히 아담의 하나님이 되시기로 언약하신 것이 첫 언약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신실하신 인격을 걸고 아담과 첫 언약을 체결하셨다. 아담을 영원한 자기의 백성으로 삼겠다고 아담과 스스로에게 맹세하고 선포하신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교만해져서 스스로 하나님 자리에 앉고자 반역하여 영원히 죽어야 할 저주를 자청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스스로 아담이 받을 저주를 대신 받으시어 다시 아담과 그의 후손들을 자기 백성으로 회복하셨다.

아담과 하나님의 첫 언약과 그리스도의 피로 회복되어진 새 언약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성경의 언약에 대한 바른 관점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만든 웨신서에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처음에 영생을 주신 적도 없고, 그를 하나님 백성으로 삼은 적도 없다고 한다. 아담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기는 했으나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나 은혜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곧 죽을 아담을 만드시고 아담에게 순종을 잘하면 영생을 주겠다는 이상한 조건적 행위언약을 만드셨다고 한다. 합신 신학위가 소개한 웨신서의 행위언약에 대한 내용을 다시 보자.

“(신앙고백서 7.2) 사람과 맺으신 첫 번째 언약은 행위언약이었다. 이 언약으로 완전하며 개인적인 순종을 조건으로 아담에게, 그리고 아담 안에 있는 그의 후손들에게 생명이 약속되었다(갈 3:12; 10:5; 5.12-20; 2:17; 3:10).”

아담이 순종을 잘하면 영생 주시기로 했다면, 그때 아담에게는 완전한 생명도 없었고, 하나님 백성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별 생각없이 사람을 만들었고, 그 사람이 순종을 잘하면 영생을 주기로 했는데, 그가 순종을 하지 않아 재미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담을 죽이고 다시 흙으로 새 아담을 만들고서 “이전 아담은 순종하지 않아서 내가 죽였고, 너를 또 만들었다! 잘 순종해라!”라고 하셨어야 자연스럽다. 그런데 왠일인지 하나님이 친히 죄없는 사람이 되시어 아담의 죗값을 대신 지불하심으로 아담을 다시 자기 배성으로 회복시키셨다는 것이 웨민고백을 만든 청교도들의 주장이다.

말이 되는가? 자기 백성도 아닌 아담이 죽을 짓을 했으면 그냥 죽이셔야 자연스럽다. 왜 아담을 위해 하나님이 대신 죗값을 지불하시면서 그를 다시 자기 백성으로 회복시키셨는가? 아담이 처음부터 모든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자녀였기 때문이 아닌가?

아담과의 첫 언약은 아담이 순종하면 하나님 백성으로 삼겠다는 행위언약이 아니었다. 첫 언약은 하나님 백성으로 창조된 아담을 영원히 버리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 백성되게 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아담의 하나님으로 영원히 남으시겠다는 언약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후 마땅히 죽을 짓을 한 아담을 위해 하나님이 대신 죽으시고 아담을 살리시는 일이 일어났을까?

웨신서를 만든 청교도들의 행위언약은 그리스도가 대신 죽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지 못한다. 웨신서의 행위언약에 의하면, 아담의 원죄가 기껏해야 무슨 순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원죄와 다르다. 성경은 명백하게 아담의 원죄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한 반역죄(호 6:7)라고 한다.

성경을 따르는 것이 옳은가? 청교도들의 웨신서를 따르는 것이 옳은가? 대체 웨신서가 뭐라고 이렇게 성경을 우습게 여기는 것인가? 웨신서를 경전으로 삼고 성경을 참고서로 삼는 것이 합신의 신앙인가?

웨신서를 만들 당시에는 아직 언약신학 형성 단계의 초기였다. 언약 신학에 대한 결론이 난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웨신서보다 늦게 만들어진 대요리문답에는 생명언약이라는 다른 명칭의 언약이 등장한다. 그 내용은 아담이 범죄하지 않고 태초의 상태가 지속되었다면 지금까지 아담이 죽지 않고 살았을 것을 의미하는 내용이다.

웨신서의 행위언약을 굳게 따를 때 좋은 점은 전통을 사랑하는 심지가 깊은 그리스도인들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을 믿고 가르치지 않는 그릇된 신앙으로 기울져서 훗날 하나님의 책망을 받게되는 심각한 약점이 따르게 된다. 그래서 올바른 성경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웨신서의 행위언약이 그릇되었다고 지적했다.
 

"행위언약은 위의 언약체결 논의에서 살폈듯이 잘못 설정된 언약개념이다. 처음 창조 시 아담을 불완전하게 창조하셔서 계명을 지키면 영생에 이르도록 하겠다는 조건으로 언약을 체결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경륜에 전적으로 어긋난다. 성경 그 어디에도 그런 시사는 없다. 단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과 그 준수 강조를 행위언약으로 바꾼 것이다."(서철원, 인간론, 168-171)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이 창조경륜을 몰랐으므로 선악계명이 하나님 섬김을 하느냐 거부하느냐로 결정되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중략) 구원섭리를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이 이해하지 못했어요. 히브리서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행위언약의 계명을 지키므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으로 여겨 오늘의 참상을 이루어냈습니다.”(서철원, 왜 웨민(WCF)의 구원론과 아브라함의 구원이 맞지 않습니까?, 바른믿음)
 

웨신서에 기술된 행위언약에 대해 좋은 연구를 제공했고,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합신이 해외의 석학을 초청하여 강연을 들을 때 강사였던 로버트 래담 박사도 행위언약 개념이 칼빈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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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신 김병훈 교수, 이승구 교수, 로버트 래담 박사, 조병수 총장

“칼빈은 자신의 창세기 주석서나 <기독교강요>에서 타락 이전의 아담의 상태가 행위언약과 유사한 조건적인 상태였다고 가르치지 않았다.”(Robert Letham, The Westminster Assembly, 227)

또한 래담은 웨신서의 행위언약 개념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인 견해를 다른 학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위언약 사상은 점점 심각한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행위언약 개념을 가장 반대한 사람은 홈즈 롤스턴 3세(Holmes Rolston 3)였다. 그는 행위언약 사상이 칼빈의 신학으로부터 심각하게 벗어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종교개혁을 통해 자리잡은 신학과는 반대되는, 즉 율법을 은혜보다 더 앞세우는 나쁜 결과를 만들어 버리는 그릇된 사상이라고 주장하였다”(Robert Letham, The Westminster Assembly, 228-29)
 

칼빈은 행위언약이라는 용어와는 전적으로 무관한 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담이 순종을 잘하면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로 언약했다는 나중의 행위언약 사상과 그가 완전히 무관했다는 것이 다음의 <기독교강요>의 말에서 나타난다.
 

“아담에게서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주지 않으셨을 때에 주께서는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하셨다(창 3:22).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아담이 잃어버린 불멸성을 그 과실이 회복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존 칼빈, 기독교강요, 4.14.12)

“그러므로 아담이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여 벌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참으로 교만이 모든 악의 처음이었다는 어거스틴의 단정은 옳다. 사람이 자기의 처지에 만족하고 바른 한계를 넘으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태초의 상태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이다.”(존 칼빈, 기독교강요, 2.1.4)
 

겸손하고 온유한 심정으로 합신의 신학위원회의 교수님들에게 다음과 같은 점들을 정중하게 요청드린다.

1. 합신 신학위원회라는 명칭을 쓰지 말고 각 사람의 이름을 나열하여 주기를 바란다. 성경대로 믿자고 주장하는 사람을 교단의 이름으로 조롱하는 대단한 문서를 만드는 분들이라면, 적어도 자기의 인격을 걸어야 옳다. 스스로 이름도 드러내지 못하고 단체의 명칭으로 이런 일을 한다면, 앞으로 누가 합신의 신학을 존경할까?

2. 웨신서를 성경보다 더 절대적으로 따르는 자세는 고상하고 지조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성경이 신앙과 신학의 유일한 원칙이라는 진리 앞에서는 참으로 위험스럽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자신의 구원의 자격(의로움)을 만드셨다는 이단 사상을 주장하는 합신의 김병훈 교수와 노승수 목사를 두둔하기 위해 작성한 이 엄청난 보고서에 그 이론의 근거가 되는 성경의 구절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칼빈이 어떻고 ... 무슨 신앙고백서가 어떻고 ... 말하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구세주의 자격(의로움)을 얻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한 줄도 찾아내지 못하고 그런 보고서를 쓴다는 사실이 창피하지 않는가? 나는 박사 학위가 없으나 박사 학위를 가진 분들을 달리본다. 박사 학위를 가지고 교수를 하는 분들이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의 근거가 되는 성구 하나를 제시하지 못하고 교단의 신학을 대표하는 보고서를 쓴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는가?

3. 정이철 목사 신학에 대한 보고서 1항에서 논술된 아담이 순종을 잘하면 하나님이 영생을 주기로 했다는 웨신서의 행위언약의 근거는 성경의 어디에 있는가? 영생의 조건에 대해 하나님이 아담에게 언약했다는 근거는 성경 어디에 나오는가? 순종을 잘하면 영생을 주기로 했다고 하는데, 무엇에 대한 순종이었는가? 아담이 논어, 맹자, 중용 등의 중국 고전들의 가르침에 순종하면 영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인가? 웨신서가 이렇고 ... 무슨 신앙고백서가 저렇고 ... 그런 소리를 더 주절거리지 말고 성경에서 근거를 찾아서 말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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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