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 신학위원회 보고서 2항에 대한 두 번째 반박

(이 글은 합신 신학위 보고서 2항에 대한 정이철 목사의 두 번째 질문과 반박이다. 이미 2항에 대한 첫 번째 반박을 올렸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심각한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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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 주장>
“성경이 부정하는 행위언약 사상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사상이 칼빈에게는 없다”

합신 신학위 반박>
“칼빈이 행위언약 사상을 부정하거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 의한 의는 수동적 순종만을 위한 준비일 뿐이라고 가르친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에서 그리스도의 율법 순종의 의를 배제시키지 않았습니다.”(합신 신학위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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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정이철 목사는 청교도 신학의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가 불가능한 이유로서 율법에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을 의롭게 만드는 기능이 없다는 사실을 자주 설명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율법에게는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에게 구원의 의를 주는 기능이 없으므로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의로움을 얻었다는 청교도 신학의 주장은 거짓이다.

그런데 합신의 교수님들은 칼빈을 빙자하여 그 진리를 허물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켜서 얻으신 의로움이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것을 칼빈이 인정했다는 것이다. 같은 율법이라도 그리스도에게는 다르게 작용한다는 논리을 펼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과 신학의 근거는 오직 성경이다. 율법에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에게 구원의 의로움을 준다고 성경이 가르치지 않으면, 칼빈이라도 그것을 바꾸지 못한다. 우리가 칼빈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가 성경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칼빈이 성경에 없는 가르침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잘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성경에 의하면, 율법은 사람에게 구원에 필요한 의를 주기 위해 오지 않았다. 율법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이끌고자 왔다. 율법은 구원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섬겨서 복을 받게 하는 의로움을 주는 것이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가장 먼저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자. 그들은 그 전에 이미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구원 받았는가? 훗날에 나타날 그리스도의 속죄의 효력을 소급하여 적용받음으로 구원받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예시하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그리스도 속죄를 미리 적용받았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에게 세례를 베푸시고, 그리스도의 피와 살에 참여하는 성찬을 베푸신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세례를 베푸셨고 성찬을 베푸셨다. 죽지 않고 살아서 홍해를 건넌 것이 그들이 받은 세례였고, 사람의 방법으로 먹을 수 없는 만나와 반석의 생수를 먹은 것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신 성찬이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그 반석은 그리스도시라.”(고전 10:1-4)

이미 구원받고, 세례와 성찬까지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졌다. 무엇을 말하는가? 설마 뒤늦게 온 율법이 가짜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의를 주어 제대로 구원받게 하려는 것이었을까? 그게 아니다. 구원에 필요한 의는 그리스도 대속의 공로를 미리 적용하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이미 주어졌다.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은혜로 구원 받았으니 하나님의 백성답게 바르게 살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언제나 율법은 구원을 받는 과정과는 무관하다. 아무리 율법을 잘 지켜도 구원에 필요한 의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율법은 그리스도에게도 동일하다.  그런데 합신의 교수님들이 무엇이라 말했는지 다시 보자!

“칼빈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에서 그리스도의 율법 순종의 의를 배제시키지 않았습니다.”(합신신학위 반박)

칼빈을 빙자하여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은 개혁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님들에게는 금해야 할 심각한 내용이다. 혹시 합신의 교수님들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드러내지 않으신 율법의 숨겨진 기능 하나를 칼빈이 찾아냈다고 보았을까? 칼빈이 종교개혁을 위한 신사도로 임명되어 율법의 숨겨진 기능 하나를 찾아 활성화시켜 신약 교회에 풀어놓았다고 보았을까? 
 

 

신.구약의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의 말을 통해 율법의 기능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하자.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수 23:5,6)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잘 지키라 했던 여호수아의 유언은 그 백성들에게 구원을 위해, 또는 구원의 지속을 위해 율법의 의가 더 필요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소급적용 받아 구원받은 그 시대의 백성들에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부족하여 행함으로 얻는 의를 추가하려고 했을까? 그게 아니다. 나중에 있을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의롭다함을 얻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더 잘 섬겨서 더 풍성한 복을 받게하려고 함이었다.

그러면 신약의 사도들은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을까? 신약 성경 어디에도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율법의 의가 주어진다는 말씀이 없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갈 3:11)

사도는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는 길이 없다고 분명히 가르쳤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의로움을 얻는 길이라고 했다.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갈 3:21)

사도는 율법에게 구원을 위한 의를 주는 기능이 있다면,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고 율법을 통해 구원의 길을 만드셨을 것이라고 했다. 합신의 교수님들은 대체 칼빈의 무슨 대단한 말을 보고 율법 순종으로 칭의를 얻을 수 있는 길이 기독교 속에서 비밀리에 전해지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의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과 스승들은 율법 준수로 말미암아 칭의가 주어진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합신의 스승 박윤선 박사, 칼빈, 서철원 박사의 말을 차례대로 보자.

“후대에 들어온 율법은 성질상 은혜 언약과 고체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다만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다. 여기서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함은 인생들로 하여금 그 범죄한 것이 많음을 알도록 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다는 뜻이다(롬 4:15, 5:20). 그러면 율법의 목적은 새로운 구원 방법을 제시함이 아니고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함에만 있다.”(박윤선, <계시의존사색> (영음사, 2015), 126)

 

“다른 곳에서 바울은 ‘율법은‥‥‥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고 가르친다(갈 3:19). 즉, 사람들이 자기의 유죄를 깨닫게 함으로써 그들을 겸손하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를 찾기 위한 참되고 유일한 준비가 되므로, 바울이 여러 가지로 표현한 교훈들은 서로 잘 일치한다.” (칼빈, 기독교강요, 2.7.2.)
 

“율법의 기능은 죄를 알게 해주는 것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 준다. 율법은 이러이러한 것을 행하면 범죄하고 지적하고 교훈한다. 그러므로 내 죄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 것인지를 율법이 알려준다. 내 양심에 가책을 일으켜서 죄를 알도록 하고,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게 한다 ... 율법은 살리고 구원하는 기능은 없고 정죄하고 죽이는 기능을 갖는다.”(서철원, 하교리 강해,48)


합신의 교수님들은 칼빈이 두 가지의 칭의론, 즉 율법 순종으로 의를 얻을 수도 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를 얻을 수도 있다고 가르쳤다면서, 다음의 <기독교강요>의 내용을 제시했다.

“바울은 두 가지를 가르친다. 바울은 말한다. 우리가 모든 점에서 율법을 성취함으로써 또 하나님 앞에서 감당함으로써 의로움에 다다를 수 없기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에 복속되어야 했으니 그의 순종을 우리에게 전가하시기 위한 의도였다 ... 그리고 바울은 율법에 의해 정죄되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저주를 감당해야 한다고 덧붙인다.”(CO 27:693)

칼빈이 “바울은 두 가지를 가르친다.”라고 말하므로 마치 사도가 (어렵기는 해도) 율법 순종으로 의를 얻는 길이 있으나 사람은 그리하지 못하므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를 얻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처럼 보인다. 나에게는 칼빈의 저 말이 기록된 책이 없으므로 전후 문맥을 확인할 수가 없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칼빈이 칭의를 얻게하는 두 가지 방법을 말했는지 확인해 보기 바란다.

혹시 칼빈이 그리 말했다 해도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사도가 무엇이라 말했는지가 중요하다. 분명한 사실은 사도 바울의 모든 성경이 칭의를 얻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구약의 사람이나 신약의 사람 모두 믿음으로만 의를 얻는다. 구약시대의 사람은 오실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으로 나중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소급적용 받으므로 의를 얻었다. 신약의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를 얻는다.
 

다음은 합신 교수님들이 제시한 칼빈이 율법 순종으로 의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는 또 다른 근거이다. 

“누구든지 율법을 성취할 자에게 주어질 그것을 그리스도에게 구해야만 한다. 또는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레 18:5)라고 율법 안에서 우리의 행위에 대하여 약속하신 것을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 우리가 얻는다 ... 율법을 지키는 것이 의로움이라면,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짐을 지심으로서 우리를 하나님께 화목시키셨으니 마치 우리가 율법을 지킨자들인 것처럼 우리에게 은혜로운 공로를 얻어주셨다는 것을 누가 부정하겠가?”(기독교강요 2.17.5)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레 18:5)에 대한 주석을 통해 칼빈이 율법 순종으로 영생의 의를 얻는 것이 가능하다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레위기 18장 5절은 가나안 땅을 선물로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전 원주민들처럼 동성애, 수간, 친족간의 성행위 등의 죄악을 저지르지 않으면 그들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일 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원주민들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영생의 의를 얻을 수 있었다면, 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서도 영생의 의를 얻을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절반은 될 것이다.

바울 사도가 로마서 10장 5절에서 레위기의 부분을 인용하였는데, 사도의 의도는 율법 순종으로 의를 얻는 것이 가능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로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5-9)
 

합신 교수님들은 율법 순종으로 의를 얻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칼빈의 다음의 말도 제시했다.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죄를 제거하시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불화를 걷어내시고 우리에게 의를 얻어주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다시 은혜와 친절을 입게 되었는지 질문이 있다면 이렇게 일반적으로 대답할 수 있으니, 즉 그가 전체 생애를 지나는 순종을 통하여 우리를 위해 성취하셨다 ...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그의 세례시에도 자신이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으로 완성하셔서 의의 한 부분을 이루셨다고 말씀하셨다(마 3:15) 결론적으로 그가 종의 형체를 입은 때부터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자유의 값을 치르기 시작하셨다.”(기독교강요 2.16.5)

합신 교수님들이 칼빈의 말을 잘못 인용했다. 이 내용은 그리스도가 순종으로 구세주의 자격인 의로움을 얻었다는 내용이 아니다. 능동순종 교리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문장속에서 ‘순종’, ‘의’라는 단어만 나오면 무조건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로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위에서 칼빈이 말한 ‘의’가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가 되기 위해 율법 준수를 통해 얻었다는 의로움이라면, 왜 ‘의의 한 부분’이라고 했겠는가?

칼빈이 그리스도가 성육신으로부터 일생 동안 하나님의 모든 뜻에 순종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하는 속죄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사실을 설명한 내용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죄 없고 의로운 사람으로 오시었고, 완전히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모든 의로운 일들은 완수하셨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속죄의 어린양으로 오시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심으로 우리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께 완전한 만족을 드리신 속죄의 어린양이셨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완전한 만족을 드리시기 위한 속죄의 어린양으로서의 순종이었다. 칼빈의 저 말은 합신 교수님들이 지지하는 능동순종 교리를 지지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은 어떠한 경우에도 구세주가 되기 위한 자격으로서 의로움을 얻기 위한 순종이 결코 아니었다.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되심으로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죄없는 의로운 사람으로 오셨으므로 더 이상의 추가적인 의로움이 필요한 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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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